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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몰랐던 부산 속으로…

입력 2023. 02. 23   17:11
업데이트 2023. 02. 23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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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명소’ 보수동 책방골목. 필자 제공
‘부산의 명소’ 보수동 책방골목. 필자 제공

 

전화박스를 이용한 솔밭예술마을의 작은 도서관. 필자 제공
전화박스를 이용한 솔밭예술마을의 작은 도서관. 필자 제공

 

2013년 문 연 창작예술인 공간 솔밭예술마을. 필자 제공
2013년 문 연 창작예술인 공간 솔밭예술마을. 필자 제공

 

이기대 해안공원에서 오륙도 해맞이 공원까지 이어진 이기대 해안 산책로. 필자 제공
이기대 해안공원에서 오륙도 해맞이 공원까지 이어진 이기대 해안 산책로. 필자 제공

 

드높은 빌딩 숲에 푸르른 바다, 이국적인 풍광을 자아내는 광안대교 등 부산을 떠올리면 세련된 이미지가 가득하다. 하지만 부산은 이국적이고 세련된 모습만이 매력적인 도시가 아니다. 우리의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세련된 부산만 봤다면 오히려 소박한 부산의 매력이 훨씬 감동으로 다가올 것이다. 


오랜 친구 집 놀러 가듯… 6개의 공방 자리한 솔밭예술마을

예술 창작 분야는 경제 사정이 어려워질수록 제일 먼저 뒷전으로 밀리는 분야여서 그런지 이른바 돈이 안 되는 전공이나 직업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간다. 꿈을 꾸는 청년 혹은 예술가를 지원한다는 의미로 각 지방자치단체나 정부는 공방이나 작업실을 지원하면서 예술가들의 자립을 돕곤 한다. 지원의 손길을 내미는 곳은 지자체에 국한되지 않고 예술대학이나 갤러리, 아트센터 등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부산에서도 지역예술인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자 지난 2013년 솔밭예술마을(해운대구)이 문을 열었다. ‘솔밭’이라는 이름은 200년이 넘은 소나무들이 집들과 한데 어우러져 살고 있어서 그렇게 지었다. 소나무들을 최대한 해치지 않고 건물을 지어 건물 사이에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 진풍경도 만나볼 수 있다.

솔밭예술마을이라고 하면 경기도 파주에 있는 헤이리 예술마을처럼 거대한 규모를 떠올릴지 모르겠다. 6개의 공방이 자리한 솔밭예술마을은 창작예술인의 모습을 더욱 친근하고 가깝게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멀리서 바라보는 예술이 아닌, 곁에서 같이 공감하고 즐기는 예술이다.

솔밭예술마을은 전화박스를 이용한 작은 도서관이나 주변 길고양이를 보살피기 위한 밥그릇이 놓인 마당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아기자기함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솔밭예술마을에 상주하고 있는 예술인의 예술품을 가까이서 살펴보고 그들과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런 것이 진정한 예술마을의 존재 이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예술마을에 방문해 체험거리를 즐기는 것도 좋겠지만 한 바퀴 둘러보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꼭 무언가를 만들어서 남겨야 하는 것이 예술은 아니기 때문이다. 작은 공방을 친구 집에 놀러 가듯 방문해 그들의 생각을 공유하고 작품 설명을 듣거나 혹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무언가를 가슴에 담아가기 때문이다. 친구 집에 방이 몇 개고 몇 평인지가 그 친구와 우정을 쌓는 데에 척도가 되지 않듯 솔밭예술마을은 소나무와 어울려 지어진 공방을 들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훈훈해진다.


느리게 걸어야 보이는 것들… 이기대 해안 산책로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 걷기 여행 열풍이 불면서 둘레길, 올레길, 갈맷길 등 전국에 걷기 좋은 길들이 많이 생겨났다. 덩달아 아웃도어 용품까지 큰 인기를 끌었다. 덕분에 전국에 수많은 ‘~길’이 발굴된 점은 고맙지만, 점점 주객이 바뀌는 것같아 아쉽다. 당장 히말라야 산을 오를 것 같은 기세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아웃도어 제품으로 풀세팅하고 ‘ㅇㅇ길, ㅁㅁ길을 다녀왔다’라고 인증하는 걸 보면 걷기 여행 자체를 즐기기보다 길을 정복하러 다닌다는 인상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길의 시작점에서 출발해 끝지점까지 완주하는 것도 물론 뿌듯하고 의미 있는 일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길 위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과 천천히 느리게 걸으며 눈으로 담을 수 있는 풍경을 뒤로 한 채 목적지 완주만을 겨냥한 걷기가 과연 얼마나 깊은 의미가 있을까?

사람은 상처받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자연스레 대자연의 품을 찾게 된다. 거대하고 변함없는 대자연 속에 있다 보면 쉽게 변하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들이 서서히 치유돼 간다. 그런 대자연의 보살핌을 가장 안락하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이야 말로 느리게 걷는 것이다.

수많은 아름다운 자연의 길 중에서도 나에게 맞고 좋은 길은 사람마다 다 다를 수밖에 없다. 또 우리네 인생이 모두가 같이 시작하고 끝을 맺은 적이 있었던가. 각자의 시작과 끝은 각자 정해야 진정한 걷기여행이 아니겠는가. 부산이야말로 바다를 보면서 느리게 걸을 수 있는 길이 많아 걷기 여행으로 제격이다. 해안선을 따라 놓인 길마다 분위기나 경관이 달라 기회가 된다면 전부 걸어봐도 좋다. 저마다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기대(남구)는 해안공원을 중심으로 바닷가가 보이는 이기대 해안 산책로, 동백 꽃담길을 걸을 수 있는 이기대공원로로 나뉜다. 공원 위쪽 길인 이기대공원로는 차도와 인도가 함께 있는 길이고 해안로는 바다 해안선을 따라 숲속을 거닐 수 있는 걷기를 위해 조성된 길이다.

각기 매력이 다른 길이 나란히 놓여있기 때문에 왕복으로 거닐면서 공원로와 해안 산책로를 모두 걸어 보기를 추천한다.

우선 산책로는 이기대 해안공원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나무 데크로 만들어진 계단을 오르면서 시작된다. 동생말부터 이어지는 해안 산책로는 전망대를 지나 오륙도 해맞이 공원까지 이어지지만 이기대공원에서 시작해 원하는 곳까지만 걸어도 좋다. 원하는 곳에서 어디든 시작해 원하는 어디서든 끝낼 수 있어야 진정한 걷기여행이다.

울퉁불퉁한 길은 걷기 좋게 나무 데크로 정비해 놨고 숲속 길은 자연 그대로의 분위기를 한껏 느끼게 할 수 있게 그대로 뒀다. 운치 있는 데크 길과 자연의 품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숲길을 번갈아 걸어가니 한결 더 발걸음이 가볍다. 해안 산책로 사이 숲길 중간에는 벤치가 마련돼 있어 산책하는 사람들의 쉴 곳이 돼 준다.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 숲 사이로 푸른 바다가 보이는 풍경은 푸름의 결정체를 바라보는 것 같아 피곤했던 눈마저 맑아지는 듯하다.


좁은 골목 사이 숨은 보석 찾기… 절판된 책도 구할 수 있다는 보수동 책방골목

모든 것이 풍족한 시대를 사는 지금의 세대들에게 헌책은 생소한 문화일 수 있다. 새 책도 안 사는 요즘 같은 세상에 헌책을 사고 팔았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면 헌책을 왜 사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는 인구가 점점 줄어 출판 시장과 동네 서점이 설 자리를 잃고 있는 요즘, 아직도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골목이 부산 중구에 살아 숨 쉬고 있다. 국제시장을 지나 대청로 네거리에서 보수동 가로에 이르기까지 길게 이어진 좁은 골목길이 보수동 책방 거리다. 중고 서적이나 구간(舊刊·예전에 나온 책)은 40~70%까지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고 새 책도 살 수 있어 부산 사람들과 타지 사람들이 뒤섞여 늘 복잡하다.

6·25전쟁 이후 부산이 임시수도가 됐을 때 북한에서 피난 온 구 보문서점의 주인 손정린 씨 부부가 골목 안 목조 건물 처마 밑에서 상자를 깔고 미군 부대에서 나온 헌 잡지, 만화 고물상으로부터 수집한 각종 헌책 등을 팔기 시작한 것이 보수동 책방골목의 시작이다.

1960~1970년대에는 70여 개 점포가 들어서 보수동 책방골목의 명성이 자자했다. 당시 생활이 어려운 수많은 학생과 지식인들이 책을 사고 팔면서 학업을 이어가는 그들에게 책방골목은 꼭 필요한 곳이었다. 또 구입한 책을 읽고 다시 되파는 형태로 더 많은 책을 읽으려는 학생들과 시민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이렇게 형성된 보수동 책방골목은 경제 발전으로 새 책의 수요가 많아지자 헌책을 비롯해 새 책과 양서를 구비해 저렴하게 판매함으로써 책을 사랑하는 서민들의 벗으로서 현재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책벌레들은 좁은 골목에 따닥따닥 붙어있는 서점을 가로질러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만큼 다양한 책들이 모여 있다. 절판돼 구하기 힘든 책도 보수동 책방이라면 구할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은 미로 같은 책방 속에서 척척 책을 찾아내는 서점 주인들 덕이다.

경제발전으로 인한 수요 하락과 재벌형 서점, 온라인 서점의 등장으로 서울을 비롯해 전국의 헌책방 골목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 와중에 보수동 책방 골목처럼 아직도 활발하게 헌책방 골목의 명맥을 유지하는 곳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선물한 사람의 메시지나 그 전 주인이 남긴 책갈피에서 그들의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헌책은 그만이 가진 위트와 추억이 있다. 최근 온라인 서점 중 하나가 헌책방을 운영해 큰 성공을 거뒀다. 책은 읽으려는 것이지 소유하려는 것이 아님을, 헌책방이 주는 매력과 추억을 그리워했던 이들이 많았다는 증거가 아닌가 싶다.

필자 김유정은 여행기자로 활동을 하다가 현재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여행 에세이 『소설여행』을 비롯해 여행가이드 북 8권을 썼다.
필자 김유정은 여행기자로 활동을 하다가 현재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여행 에세이 『소설여행』을 비롯해 여행가이드 북 8권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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