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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최초 여성 조종사’ 현실의 벽 넘어 날아오르다

입력 2023. 02. 08   16:40
업데이트 2023. 02. 17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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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영화 - 군잔 삭세나: 더 카르길 걸(2020)


실존 인물 ‘군잔 삭세나’ 이야기 각색
유일했기에 쉽지 않았던 훈련 생활
카르길 전쟁 활약까지 역경 극복 담아

70년 넘은 인도·파키스탄 분쟁
미·중 대리전…카슈미르 혼돈 여전


군잔 삭세나: 더 카르길 걸(2020)
감독: 샤란 샤르마
출연: 잔비 커푸어, 판카지 트리파티, 앙가드 베디

 



만약에 전쟁의 결과가 분명하게 예측됐었다면, 많은 전쟁이 시작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게오르크 지멜(Georg Simmel)이 말한 것처럼 “두 당사국의 상대적 군사력에 대한 정확한 지식은 실제 전투를 통해서만 획득된다”. 결국, 잘못된 계산이 전쟁을 일으킨다. (『핵무기 전파, 그 끝없는 논쟁』 중, 케네스 월츠·스콧 세이건 지음, 박영사 펴냄)


핵무기 보유국끼리 벌인 최초의 전쟁

인도와 파키스탄은 분쟁 가운데 탄생한 국가들이다. 70여 년 동안 두 나라는 카슈미르를 놓고 마치 ‘머리빗을 서로 가지려고 싸우는 두 대머리 노인’처럼 정치적·군사적 대결을 벌이고 있다. 1947년 영국이 ‘왕관 속의 보석’이라 불리던 식민지 인도제국을 두 국가로 분리 독립시키면서 비극은 시작됐다.

당시 카슈미르 군주국은 인도제국에서 반자치권이 있는 군주국 중 가장 규모가 컸다. 카슈미르 군주를 비롯한 지배층은 힌두교도였고, 주민 80%는 이슬람교도였다. 처음부터 갈등을 내재한 상태였던 셈이다. 종족 구성상으로는 카슈미르가 파키스탄에 귀속되는 게 순리처럼 보였다. 하지만 카슈미르 군주가 인도 합류를 결정하면서 분쟁의 씨앗을 심었다.

1947년 10월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은 무장 집단이 주도인 스리나가르를 침공했고 분쟁은 본격화됐다. 분쟁은 이듬해 인도와 파키스탄 간 첫 전면전으로 확대됐다. 양측은 유엔의 중재로 한발 물러났고, 카슈미르는 인도령(잠무 카슈미르)과 파키스탄령(아자드 카슈미르)으로 분단됐다.

이후 인도가 잠무 카슈미르를 연방의 하나로 편입해버렸다. 현지 주민과 파키스탄은 강력하게 반발했고 파키스탄은 1965년 2차 전쟁을 일으켰다. 3차 전쟁은 인도가 1971년 동파키스탄 독립 문제에 개입하면서 발발했다. 인도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고, 동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로 독립했다.

하지만 카슈미르 분쟁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이제는 성격을 달리하게 됐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모두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 것. 두 나라가 교대로 핵실험을 한 다음 해인 1999년 5월 파키스탄군이 국경선을 넘어 카르길 지역을 불법 점령하자 국제사회는 핵전쟁의 공포에 떨어야 했다.

이제 인도와 파키스탄의 카슈미르 분쟁은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 양상을 띠고 있다. 알카에다 토벌 등 대테러 정책을 위해 파키스탄을 지원해 온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로 말을 갈아탔다. 반면 중국은 미국과 인도를 견제하고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을 위해 파키스탄을 지지하고 있다. 종교·영토·대테러전에서 미·중 패권 다툼으로 이어지면서 카슈미르 분쟁의 평화적 해결은 갈수록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금녀의 벽을 허물고 인도의 하늘 지킨 영웅

‘군잔 삭세나: 더 카르길 걸’(2020)은 파키스탄군이 국경선을 넘어 인도 잠무 카슈미르주 카르길 지역을 점령하면서, 28년 만에 벌어진 ‘카르길 전쟁(1999년 5월 3일~7월 26일)’이 배경이다. 인도 육군 대령인 아버지, 육군 장교로 근무 중인 오빠 등 군인 가정에서 자란 군잔 삭세나(잔비 커푸어)는 어린 시절부터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은 꿈을 키운다. 성인이 된 군잔은 민간 비행학교에 입학하려 하지만 등록금이 너무 비싸 좌절한다. 꿈을 접어야만 했던 순간 아버지는 공군 사관학교에서 최초로 여성 파일럿을 모집한다는 신문광고를 보여준다.

군잔은 우여곡절 끝에 시험에 합격하지만, 문제는 첫날부터 발생한다. 여성용 화장실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탈의실마저 없어 교육 시간에 매번 지각한다. ‘마담 군잔’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온갖 차별을 겪으며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낸다. 동료들은 부정 탄다며 그와의 연습 비행을 거부한다. 영화는 이런 차별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텨 꿈을 이룬 군잔과 끝까지 딸을 믿고 지지해준 아버지의 모습을 화면에 담아 잔잔한 감동을 준다.

영화 후반부는 파일럿이 돼 카르길 전쟁에 투입된 군잔의 활약상을 그린다. 인도 여성 최초로 헬기를 이용한 부상병 후송과 물자 수송 임무를 맡아 작전에 투입된 군잔은 그동안 자신을 무시하던 교관을 목숨을 걸고 구출하는데….

영화는 현실의 벽을 허물고 인도의 하늘을 지킨 영웅이자 실존 인물인 군잔 삭세나 중위에 관한 실화를 기초로 제작했다. 현재 인도 공군에는 1600여 명의 여성 대원이 복무 중이다.



항쟁·테러로 점철된 카슈미르, 영국식으로 ‘캐시미어’라 부르죠


‘남아시아의 화약고’ 카슈미르(Kashmir)는 해발 최저 300m에서 최고 7000m에 달하는 고원지대로 타원형 접시 모양의 지형이다. 총면적은 약 22만㎢로 한반도와 비슷하다.

히말라야산맥 서쪽에 자리 잡은 카슈미르 지역은 북동쪽으로는 중국 신장웨이우얼 자치구, 동쪽으로는 티베트, 남쪽으로는 인도, 서쪽으로는 파키스탄, 북서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과 각각 맞닿아 있다.

이곳은 겨울이면 생각나는 캐시미어(Cashmere·카슈미르의 영국식 표기)의 원산지이기도 하다.

캐시미어 원모(原毛)는 일교차가 큰 고원지대에 사는 산양이나 산염소에서 얻는다. 털갈이를 할 무렵(5~7월), 빗살이 달린 갈고리를 이용해 속 털을 긁어낸 뒤 겉 털과 속 털을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구별해 속 털만 골라낸다. 이렇게 얻은 속 털도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순도를 높여가기 때문에 여성용 스웨터 한 벌을 제작하기 위해선 약 4마리 분량의 캐시미어가 필요하다.

이렇듯 까다롭고 어려운 생산 공정 때문에 캐시미어 공급량은 늘 수요량에 미치지 못해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 양모의 10배 이상 가격으로 거래되는 이유다.

캐시미어는 가벼우면서 보온성이 좋고 촉감이 부드러울 뿐 아니라 우아한 질감과 아름다운 광택 때문에 ‘섬유의 보석’이란 존칭이 붙어 다닌다. 캐시미어가 유럽에 알려진 것은 동인도 주식회사가 여성용 숄을 만들어 전파하면서부터 시작됐다.

특히 나폴레옹 3세의 부인 유제니 황후가 즐겨 입어 유명해졌다. 당시 캐시미어 숄의 가치는 금보다 귀해서 ‘왕의 섬유’라고도 불렸다.

캐시미어 모직 제품의 따스함이나 부드러움과 달리 현대 카슈미르는 항쟁과 억압, 그리고 테러로 점철된 차갑고 날카로운 비극의 역사로 가득한 곳이다. 때문에 오늘날 캐시미어는 분쟁 중인 인도 북부 카슈미르 지역을 제치고, 중국(내몽골·티베트), 몽골, 아프가니스탄의 고산지대에서 주로 생산된다.

 

필자 김인기 국장은 전자신문인터넷 미디어전략연구소장, 테크플러스 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전자신문인터넷 온라인편집국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 속 IT 교과서』가 있다.
필자 김인기 국장은 전자신문인터넷 미디어전략연구소장, 테크플러스 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전자신문인터넷 온라인편집국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 속 IT 교과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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