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1986년 개장한 서울 서남권 최대 공원
정문의 '성무탑'
공군의 기상과 승리 향한 염원 담아
지·덕·용 겸비한 지휘관 양성 의미
항공기 전시된 '에어파크'
F-4·F-5·F-86 전투기 등 8대
동작아트갤러리
옛 공사 교회 리모델링 한 문화공간
한미 양국 모금으로 건립
美 공사 첨탑교회 닮아…등록문화재 지정
용맹함 상징 1974년 건립된 '충효탑'
6·25전쟁 활약 옥만호 장군 이름 딴 연못
공군 제1호 불사 '보라매법당'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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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년 전 이곳은 청춘의 꿈이 영그는 학교였다. 하늘에서 나라를 지키겠다는 포부를 안고 전국에서 몰려든 젊음의 기운이 넘쳤다. 학업에 대한 생도들의 열의는 뜨거웠고, 교정은 웅비(雄飛)의 나래로 가득 찼다. 당시 흔적은 현재 외형만을 유지한 채 드문드문 남아 있는 몇 채의 건물로만 기억될 뿐이다. 하지만 학교를 상징하는 애칭은 그대로 남아 널리 회자되며 추억을 되새기게 한다. 1986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개장한 서울 서남권 최대 공원으로 시민들의 안식처가 된 공간, 바로 옛 공군사관학교(공사) 자리였던 보라매공원이다. 글=이주형/사진=백승윤 기자
지하철 신림선 보라매공원역 1번 출구를 나와 공원을 향해 걷다 보면 정문의 옛 공사를 기념하는 조형물을 만난다. 성무탑이다. 탑에 ‘성무대(星武臺)’라는 글자가 적혀 있어 그러한 명칭이 붙었다. 사관생도들의 성금을 모아 1962년 세워진 것으로 우주를 향하는 공군의 기상과 승리를 향한 염원을 담아 만들었다고 한다. 원래 성무대라는 명칭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지었다. 별을 일컫는 ‘성(星)’ 자는 ‘하늘의 지도자’를, ‘무(武)’ 자는 무예(武藝)를 ‘단련하다’는 뜻이다. 결국 성무는 공군사관학교의 교육인 지(智), 덕(德), 용(勇)을 겸비한 우수한 하늘의 지휘관을 길러 낸다는 의미이니 사관학교에 딱 어울리는 이름인 셈이다. 성무탑 아래에는 동판으로 새겨진 헌시가 보인다.
하늘에 건다
드높고 푸르른 하늘에 건다
부귀와 영화에 눈을 둘소냐
세계를 품하고 나르는 의지
영겁을 지나도 찬연하리라
청춘의 순결을 한데 모아서
성무대 언덕에 치솟는 불길
보라 어둡고 혼미한 세상에
의연히 선 불사조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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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무탑을 지나 왼쪽 길로 들어서면 보라매공원의 또 다른 자랑거리 ‘에어파크(Air Park)’가 나타난다. 에어파크는 충북 청주로 이전한 공사와 보라매공원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2008년 조성됐다. 설계와 디자인 모두 공군이 맡았다. 총 8대의 비행기가 전시돼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F-4·F-5 전투기’와 6·25전쟁 당시 긴급 투입됐던 ‘F-86 전투기’, 장거리 대량수송·공수투하·해상초계·탐색 및 구조 임무 등 공군의 주력 전술기로 베트남전에서 맹활약했던 ‘C-123K 수송기’, 베트남전에서 수송·공중지원·강습·탐색구조 등 전 분야에 걸쳐 눈부신 활약을 했던 ‘UH-1 헬기’ 등 한때 전투에 투입됐거나 훈련·수송 임무를 맡았던 비행기들이 언제라도 다시 날아오를 듯 그 위상을 뽐내고 있다.
그 사이로 공군의 태동과 창설, 6·25전쟁, 발전, 미래를 담은 공군의 역사와 공사의 옛 전경을 품은 동판이 원형 관람석 형태로 게시돼 있다.
사실 보라매공원은 ‘보라매’라는 말이 전해 주는 것처럼 공군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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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기생부터 37기생까지 배출
정전 5년 후인 1958년 12월 당시 경남 진해에 있던 공사가 서울 신대방동으로 교정을 옮겨 왔다. 그리고 1985년 충북 청주로 공사가 이전하기 전까지 7기생부터 37기생까지 이곳에서 배웠고, 총 28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더불어 공군본부와 교재창, 91건설전대 등도 이 지역에 함께해 공군타운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에어파크에서 나와 중앙바닥분수를 지나 좌측으로 발걸음을 돌리면 1974년 건립된 충효탑이 반갑게 맞이한다. 충효(忠孝)와 호국비천(護國飛天)이라는 글귀 위에 하늘을 나는 보라매가 앉아 있다. 공군의 용맹함을 상징하는 충효탑은 해체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 신림선 도시철도 공사 때문이다. 이로 인해 2018년 1월 철거됐고 2022년 2월 그 자리에 복원됐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그해 5월 충효탑 앞에서는 서울시를 비롯해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신림선 개통식 행사가 열렸다.
공사 시절의 건물들이 철거된 자리에는 다른 건물들이 세워졌다. 건물 형태는 그대로 보존된 채 리모델링된 곳도 있다.
작가이자 공군역사자문위원인 김영욱 씨에 따르면 에어파크 서쪽에 있는 보라매공원 관리사무소는 공사 회관, 보라매청소년수련관은 1중대 건물이었고 2대대가 자리 잡고 있던 곳은 서울대 보라매병원이 들어섰다. 보라매 독서실 역시 군 성당 건물이었다. 야외 휴식터에 성당 모자이크 흔적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조깅트랙과 그 사이 중앙잔디광장은 공사 연병장과 단상을 그대로 활용한 것이다. 특히 중앙잔디광장은 졸업식 및 임관식이 거행되는 장소였다. 분열식(分列式)과 사열식(査閱式), 열병식(閱兵式) 등의 각종 퍼레이드가 벌어지던 곳이다. 여름철에 잡초가 많이 자라면 생도들이 잡초를 뽑기 위해 무수히 땀을 흘리며 드나들었다. 또 육·해·공, ‘삼군사관학교 체육대회’를 앞두고 생도들이 한 달간이나 응원연습을 했던 공간이기도 하다.
잔디광장을 걷다 보면 연못으로 발길이 절로 이어진다. 연못의 이름은 옥만호. 특이하게도 ‘호’ 자는 ‘호수 호(湖)’가 아닌 ‘빛날 호(鎬)’를 쓴다고 한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 이름을 따서 붙였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1970년 연못을 조성할 때 당시 공사 학교장이었던 옥만호 장군이다. 그는 6·25전쟁 때 공군 3대 전승작전 중 하나인 평양 승호리철교 차단작전에 편대장으로 참전했으며, 이후 공군참모총장을 지냈다. 그러나 연못 주위를 한 바퀴 돌아도 옥만호라는 연못 이름이 적힌 안내판은 보이지 않았다. 단지 음악분수라고 해서 언제 가동되는지를 알려 주는 표지판만 있을 뿐이다. 물론 아직 겨울이라 음악분수 감상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보라매공원에 갔으면 찾아가야 할 곳이 또 있다. 에어파크 남서쪽 언덕에 위치한 공군 보라매법당이다. 이는 공군의 제1호 불사(佛寺·절)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법당은 조국의 하늘을 지켜 국가 안보의 역군이 되겠다는 뜻을 지닌 생도들을 위해 1971년 11월 12일 공군 불교신도들의 염원과 각계 후원으로 건립됐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성무호국사(星武護國寺)’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공사가 충북 청주로 옮겨 가고는 보라매법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현재는 공군항공안전단에서 관리하고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군종특별교구에 속해 있으며, 민간에도 개방돼 적극적인 참여와 사랑을 받고 있다. 여담이지만 ‘성무호국사’라는 명칭은 다른 곳으로 인계됐다. 청주로 이전해 간 공사에 세워진 불사에서 이름을 받아 계속 사용하고 있다.
비록 군과 관계하지는 않지만 우리 근대역사와 관련해 소소한 볼거리가 많다는 것 또한 보라매공원의 매력이다. 보라매청소년수련관 앞에는 독립운동가 김마리아의 동상이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과 미국에서 공부한 김마리아는 3·1 만세운동에 앞서 일본 유학생들이 독립을 요구한 2·8 독립선언에 적극 참여하고 독립운동과 민족 교육, 여권 신장을 위해 헌신했다.
이외에도 신탁통치에 반대한 학생과 6·25전쟁 학도병들을 기리는 반탁·반공순국학생충혼탑을 포함해 한국학생건국운동공적비, 산업재해희생자위령탑 등도 관심을 가져야 할 기념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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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아트갤러리
캠프 그리브스, 평화문화진지, 탄약정비공장 등은 모두 이른바 군 유휴시설을 활용한 문화적 재생공간이다. 국내에 이런 시설은 몇 개 더 있다. 국군기무사령부 본관이었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기무사 수송대 부지였던 서계동 열린문화공간, 서울 역사의 TMO였던 문화역서울284, 그리고 보라매공원의 옛 공군사관학교 성무교회를 리모델링한 동작아트갤러리 등이다.
보라매공원 안쪽, 동작구 시설관리공단 옆에는 생뚱맞게 뾰족하게 솟은 건물이 하나 있다. 동작아트갤러리, 원래 이곳은 1964년 건립된 공사 교회 건물이었다. 당시 이름은 성무교회(건축가 최창규)였다.
교회는 장지량 교장 당시 미 공군참모총장 커티스 르메이 대장과 미 공군 장병들, 국내 기독교 신자와 학생들의 모금으로 건립됐다. 미국 콜로라도 미 공사의 뾰족 첨탑교회를 벤치마킹한 급경사 형태 지붕의 디자인이 특색이다.
당시 공군대학 위치에 세우자는 주장도 있었으나 생도 생활권 내 자리해야 한다는 다수 의견을 따라 생도 내무반(1, 2병동) 동편 언덕으로 결정했다. 이와 함께 건물 구조도 당시로선 최신 공법을 도입해 기둥을 세우지 않고 목재 앵글을 조립해 내부 공간을 크게 만들었다.
명칭은 교회였지만 개신교와 천주교가 시간을 번갈아 가며 예배와 미사를 올렸다. 공사 생도들의 기도처였으며, 공군으로 복무하는 많은 군인이 결혼식 장소 1순위로 꼽을 만큼 사랑받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1985년 공사 이전으로 상황은 바뀌었다. 이듬해 학교 터는 보라매공원으로 재탄생했지만 교회는 청소년수련관 창고로 쓰이며 빛이 바랬다. 다행히 교회는 2013년 리모델링을 통해 동작구 최초의 문화예술 전시공간인 동작아트갤러리로 재탄생했다.
위기는 또 찾아왔다. 이 건물 부지를 용도 변경해 사용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 이에 공군과 해당 자치단체인 동작구는 건물을 보존해야 한다며 2018년부터 꾸준하게 국가문화재 등록을 추진해 왔다. 독특한 건축기법과 옛 공사의 역사를 보여 줄 수 있는 유일한 현존 건물이라는 게 근거였다. 그리고 2019년 3월 11일 문화재청은 이러한 건의를 받아들여 ‘서울 구 공군사관학교 교회’라는 명칭으로 국가등록문화재 제744호로 등록했다.
덕분에 교회는 원형을 유지한 채 현재 미술 전시와 강연 등 각종 문화행사가 자주 열리는 주민들의 공간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한국과 미국 두 나라가 함께 세우고 마음을 나눴던 역사가 담겨 있고, 이곳을 지키고자 하는 움직임이 피어났던 곳, 보라매공원을 찾았던 날 살짝 둘러보면서 의미를 되새겨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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