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연
세대·국경·계급 ‘선(線)’을 넘어…나눔·봉사·사랑 ‘선(善)’을 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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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 같이하자” 단원 모집 나선 김선오 원사
SNS에 글 올리자 순식간에 360여 명 모여
2021년부터 연탄 나눔·환경정화 다양한 활동
20대 초반 초급간부부터 중견간부까지 구성
봉사하며 자연스레 소통 늘고 결속력 강해져
미군도 “함께하자” 합류…커지는 선한 영향력
육군5포병여단 ‘승포 간부봉사단’은 뛰어난 군사지식과 인성을 겸비해 부대원들에게 모범이 되고 있다. 솔선수범해 봉사활동을 펼치는 간부들의 따뜻한 면모를 보며 부대원들의 마음에 존경심이 생긴 것이다. 주민들을 위한 지역 정화활동부터 미군과의 연합봉사까지, 선행이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소매를 걷어붙이는 봉사단을 소개한다.
조수연 기자/사진=부대 제공
쓰레기 주울 때만큼은 계급 잊고 소통
18일 오전 경기도 포천시 영평천. 얼어붙은 하천 옆 갈대숲에서 봉사단원들의 정화활동이 한창이었다. 궂은 날씨에도 해맑은 표정으로 갈대 사이사이에 숨어든 쓰레기를 열심히 줍는 모습을 보며 마음까지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봉사단을 설립한 계기는 간부들의 인성 함양을 위해서였어요. 코로나19가 길어지면서 부대활동이 많이 축소됐거든요. ‘간부들끼리 얼굴 보고 좋은 일도 하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죠. 그 결과는 대성공입니다. 서로 굉장히 돈독해졌고, 전투력도 상승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보고 있으니까요.” 승포 간부봉사단장을 맡고 있는 김선오 원사의 말이다.
김 원사는 2021년 3월 부대 간부들이 활동하는 SNS에 단원 모집공고를 올렸다. ‘지원하는 사람이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게시한 공고문. 그런데 다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360여 명이 순식간에 모였다. 일부 간부는 자녀들까지 데려와 참여하겠다고 나섰다.
봉사단은 20대 초반의 초급간부부터 중견간부들까지, 다양한 연령과 계급으로 이뤄져 있다. 이들은 매월 1~2회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김 원사는 봉사활동이 군 본연의 임무와 존재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육군, 나아가 국군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군인이라는 사명감으로 봉사하고 있어요. 작게는 내가 생활하는 지역, 넓게는 대한민국을 지킨다는 책임감으로 똘똘 뭉쳐 모든 간부가 적극적으로 활동합니다.”
봉사현장은 세대가 다른 장병들 사이에서 이야기장이 된다. 쓰레기를 주울 땐 잠시 계급을 잊고 마음이 활짝 열린다고 한다. 봉사활동 자체가 안겨 주는 기쁨도 큰 보상이지만, 여러 장병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선물이라는 게 김 원사의 설명이다.
“대화하면 쉽게 풀릴 수 있는 문제도 소통의 부재로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후배 간부들과 함께 쓰레기를 주우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군 생활 노하우도 전하고 있습니다. 대대장님도 자주 참여해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시거든요. 봉사활동이 여러 방면에서 부대 발전에 도움이 됩니다.”
자연스레 따라오는 민·군 상생은 덤이다. 지역 관광명소 환경 정화활동을 꾸준히 하면서 주민들과 서로를 깊이 이해하게 됐다고 한다. 훈련장 인근 주민들의 민원 해소에도 일조하고 있다. 2021년 말에는 지역 소외계층, 지난해 3월에는 경북지역 산불 피해 이웃에 성금을 쾌척했다. 지난달에는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연탄 2100여 장을 구매해 강원도 철원군 지역주민 7가구에 전달하고, 보일러와 전등을 수리하는 등 보금자리를 손봤다.
“지역주민들이 이해해 주시기 때문에 훈련할 수 있잖아요. 봉사할 때마다 많이 좋아해 주셔서 저희가 더 행복합니다. 추운 날씨에도 나오셔서 음료와 과일을 챙겨 주시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선행도 ‘We Go Together’
봉사활동을 지속하다 보니 미군과 특별한 인연도 생겼다. 지난달 지역신문에 실린 단원들의 연탄 봉사활동 소식을 접한 미 8군사령부 봉사단체 ‘BOSS 군인회’에서 함께하자는 연락을 받은 것. 소속과 국적은 다르지만 같은 목적을 위해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전개한 봉사활동은 마치 하나의 연합작전 같았다.
영하 15도에 달하는 추운 날씨에 80여 명의 한미 장병이 모여 연탄 나르기 연합작전을 펼쳤다. 언어가 다른 탓에 잠시 어색한 기류가 흘렀지만, 농담을 나누며 선행을 함께하니 어느덧 가까워졌다. 봉사를 마칠 즈음엔 서로 부둥켜안고 사진을 찍으며 다음을 기약할 정도로 애틋한 사이가 됐다고.
미군과의 봉사활동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여단은 2021년 10월 경기도 포천지역 미군 부대와 대규모 봉사활동을 했다. 여단 장병 300여 명과 미군 200여 명은 철원 담터사격장에 모여 훈련장 및 지역 정화활동을 했다.
봉사단 총무를 맡고 있는 황원길 상사는 소속과 계급은 다르지만 ‘모두가 하나’라는 든든함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연탄을 한 방향으로 쌓아야 하는데 연탄의 위아래를 잘 모르는 미군들에게 설명하면서 한 장 한 장 조심스럽게 배달했습니다. 그러다가 실수로 떨어뜨려 연탄이 깨졌을 때 ‘한 장당 변상금이 있다’고 농담을 하며 즐겁게 봉사한 기억이 납니다.”
‘멋진 군인 아버지’ 이미지는 덤
봉사단이 지속하는 선행의 영향력은 각 가정까지 뻗쳤다. ‘어린 딸을 어떻게 바르게 키울까’ 하는 걱정으로 가득했던 황 상사에게 봉사단은 최고의 해결책이었다. ‘아버지가 모범을 보이자’는 각오로 시작한 봉사활동. 따라나온 아이는 비가 와 봉사가 취소되는 날이면 눈물을 터뜨릴 정도로 ‘열혈’ 단원이 됐다. 황 상사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이와의 추억을 만들어 준 봉사단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TV만 보며 지내던 주말에 아이와 함께 쓰레기를 줍고,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뜻깊게 보내고 있어요. 군인으로서 멋진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 주고, 아이와 교감도 깊어져 일석이조입니다.”
봉사단은 철원군·포천시 중심이었던 활동지역을 올해 경기도 연천군까지 넓힐 계획이다. 가정의 달 5월에는 지역 노인요양원을 방문해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고, 6월 호국보훈의 달에는 지역 전적지와 현충탑을 정비하는 등 계기성 행사도 다수 기획하고 있다.
김 원사는 마지막으로 봉사단에 대한 애정과 지속의지를 밝혔다. “봉사활동을 통해 제가 얻는 것이 더 많습니다. 봉사단을 창설한 지 3년 차이지만 앞으로 30년, 40년, 우리 부대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봉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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