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조명탄_윤성근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대표] 바틀비에게서 배운 교훈

입력 2023. 01. 12   16:30
업데이트 2023. 01. 12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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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근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대표
윤성근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대표



2023년이 시작되고도 벌써 며칠이 지났다. 내겐 설렘보다 걱정이 앞선다. 왜냐면 새해 계획을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계획이라고 해봐야 딱히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올해 무엇을 해야 할지 미리 생각해두지 않으면 하루하루가 불안하다. 그런데 계획이라고 하는 건 참 이상하게도 미리 세워뒀다고 해서 다 이뤄지는 게 아니다.

나는 계획 세우는 걸 좋아하는데 한편으로 이 계획이 자꾸 실패하다 보니 계획을 세우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그렇다고 계획을 안 세우자니 그것도 역시 마음이 불편하다.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의 끝에 만난 것은 역시 한 권의 책이었다.

책방에서 일한 지 몇 년이 지났을 무렵, 한 손님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회사에 다니다가 그만두고 이제는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시니까 너무 좋으시겠어요.” 나는 이 말에 그냥 덤덤히 “네, 그렇죠, 뭐”라고 답할 수도 있었지만,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전혀 달랐다. “하고 싶은 일을 해서 좋다기보다는 하기 싫은 일을 안 해도 되니까 좋더라고요.”

내가 이 말을 하게 된 동기는 허먼 멜빌이 쓴 짧은 소설 『필경사 바틀비』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멜빌은 『모비 딕』이라는 소설로 유명한 작가인데 그가 살아있을 동안에는 빛을 보지 못했다. 이제는 현대 미국 문학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모비 딕』이다. 이 기념비적인 작품이 당시엔 혹평받았고 판매 부수도 50권 정도였다니 하늘도 무심한 처사라는 말은 이런 일을 두고 하는 게 아니겠는가.

하지만 멜빌은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고 『필경사 바틀비』도 그런 끈질긴 열정을 통해 태어난 명작이다. 제목 그대로 주인공 바틀비는 문서를 대필하는 간단한 일을 하는 필경사로 변호사 사무실에 취직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바틀비는 사장이 시키는 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고집을 피우는 희한한 캐릭터다.

바틀비는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며 무엇이든 하기를 거부한다. 분명 이상한 사람이지만 어쩐지 묘한 매력이 있다. 대체 무엇이 이 기묘한 인물에게 매력을 느끼게 한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바틀비가 반복해서 말하는 저 문장이 내게 신선한 감각을 선물해 준 것이다.

문장을 살펴보면 바틀비는 그냥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안 하는 편을 택한다고 일부러 길게 말한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지만 자신은 안 하는 편을 선택하겠다는 강한 의지라고 볼 수 있다. 바로 그렇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책방을 하면서 정말로 좋았던 이유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회사에 다니며 하고 싶지 않았던 일을 안 하는 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발상의 전환이 아닌가!

내친김에 나는 계획을 세울 때도 이와 같은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 계획은 언제나 하고 싶은 일을 위주로 세운다. 반대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앞으로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계획한다면 어떨까? 결론은 성공적이었다. 같은 말이라도 ‘건강을 위해 운동을 열심히 하겠다’라고 하는 것보다 ‘몸에 나쁜 음식은 안 먹겠다’라고 계획을 세우니까 마음에 부담이 훨씬 적었다.

계획이 실패하는 이유는 대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도 많은 게 사실이지만, 때론 하고 싶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보면 세상이 조금은 다르게 보인다.

바틀비에게 배운 것은 내 앞에 길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안 하는 편을 선택했기 때문에 얻은 좋은 기억도 얼마든지 있다. 중요한 것은 그냥 안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편을 선택하는 결단과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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