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군사 전쟁과 영화

‘브레이브하트’ 시즌2 독립을 완성하다

입력 2023. 01. 04   17:17
업데이트 2023. 01. 04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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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영화-아웃로 킹(2018)

아웃로 킹(2018)
감독: 데이비드 매켄지
출연 : 크리스 파인, 플로렌스 퓨, 에런 존슨, 스티븐 딜레인

잉글랜드 에드워드1세 압정에 반기 
로버트 1세 스코틀랜드 국왕 즉위
지리 이점 살려 배녹번전투 대승
철저한 고증 통해 역사적 사건 담아

 

로버트 1세는 전장에서의 수많은 참패와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고 스코틀랜드를 독립 국가로 만든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영화 ‘아웃로 킹’ 스틸컷. 사진 제공=넷플릭스
로버트 1세는 전장에서의 수많은 참패와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고 스코틀랜드를 독립 국가로 만든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영화 ‘아웃로 킹’ 스틸컷. 사진 제공=넷플릭스

 

영화 ‘브레이브하트’에서 멜 깁슨이 킬트를 입은 모습. 오늘날 우리가 전통이라고 알고 있는 것들의 상당수가 근대 역사의 격변 속에서 지배 권력이 ‘국민통합’의 이데올로기 장치로서 빚어낸 ‘근대의 산물’이다. 사진 제공=IMDb
영화 ‘브레이브하트’에서 멜 깁슨이 킬트를 입은 모습. 오늘날 우리가 전통이라고 알고 있는 것들의 상당수가 근대 역사의 격변 속에서 지배 권력이 ‘국민통합’의 이데올로기 장치로서 빚어낸 ‘근대의 산물’이다. 사진 제공=IMDb

 


“(영국) 군주정은 대개는 미스터리처럼 은밀하게, 때로는 꽃수레처럼 행진하면서 권력이 정당화되는 것을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옥스퍼드 영국사』케네스 O. 모건 지음, 한울아카데미 펴냄)



잉글랜드 압정에 맞선 스코틀랜드

‘군림하되 통치하지는 않았던(reign but not rule)’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2022년 9월 8일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영면했다. 스코틀랜드인들은 생전 스코틀랜드에 관심과 애정을 아끼지 않았던 여왕의 죽음을 애도했다.

하지만 여왕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곧 군주제 지지나 영국에 대한 충성심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여왕의 죽음과 찰스 3세의 즉위는 공교롭게도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움직임을 부추겼다. 스코틀랜드 자치정부는 올 10월 분리독립을 위한 주민투표를 진행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왜 그럴까. 영국 자체가 여러 민족과 왕국의 연합체이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인들은 대외적으로 영국인이지만 정체성은 엄연히 다르다. 스코틀랜드인(Scottish)에게 “영국인(English)이냐”고 묻는 것 자체가 실례다.

섬 북부에 켈트족의 스코틀랜드 왕국이 수립된 것은 1034년. 스코틀랜드 왕국은 잉글랜드를 지배하던 노르만 왕조와 결혼을 통해 안정된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잉글랜드와의 평화는 1286년 스코틀랜드 왕 알렉산더 3세의 예기치 않은 죽음과 함께 끝났다.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1세는 군대를 이끌고 스코틀랜드를 점령했다.

키가 188cm에 달해 ‘긴 다리 왕’으로 불린 에드워드 1세는 강압적으로 스코틀랜드를 통치했다. 대기근이 발생해 사방에서 굶어 죽어도 에드워드 1세는 막중한 세금을 부과했다. 잉글랜드가 준 굴욕과 학정으로 스코틀랜드에서는 분노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를 지배한 지 5년째 되는 1296년, 농민 출신 윌리엄 월레스가 독립 전쟁을 일으켰다. 멜 깁슨이 감독·주연한 영화 ‘브레이브하트’(1995)의 실존 모델이 바로 윌리엄 월레스다.



스코틀랜드 독립 결정한 배녹번전투

영화 ‘아웃로 킹’(2018)은 ‘브레이브하트’의 다음 이야기로 이어진다. 윌레스에 이어 독립 전쟁을 이끌었던 인물이 ‘로버트 더 부르스(크리스 파인)’다. 영화는 잉글랜드 에드워드 1세가 스코틀랜드의 귀족들을 무력진압하고 항복을 받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에드워드 1세에 반기를 든 부르스는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유력한 가문을 이끌던 ‘존 코민’을 살해하고, 1306년 스코틀랜드 국왕 ‘로버트 1세’로 즉위한다. 하지만 그의 고난은 이제 시작이었다.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는 결코 만만한 왕이 아니었다. 또다시 군대를 보내고, 1306년 스코틀랜드군은 참패한다. ‘무기를 든 사람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마라’는 에드워드 1세의 지침에 따라 수많은 스코틀랜드 귀족이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로버트 1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소수 정예의 이점을 살려 게릴라전을 펼친다. 하나하나 잉글랜드에 빼앗긴 성들을 되찾는 로버트 1세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때마침 에드워드 1세가 사망하고 에드워드 2세가 왕위를 물려받은 것. 전면전을 벌이기로 마음먹은 로버트 1세는 배녹번 강이 흐르는 늪지로 잉글랜드군을 유인하는데….

독립 전쟁의 분수령이었던 이 전투에서 로버트 1세는 습지의 이점을 살린 전략을 펼치고, 스코틀랜드군은 질과 양 모두 뒤떨어지는 5000여 명의 병력으로 2만여 명의 병력을 격파하는 대승리를 거둔다. 에드워드 2세는 간신히 목숨만 부지해 도망치고, 마지막 요충지 스털링 성은 마침내 스코틀랜드의 품으로 돌아온다. 이후 1328년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에딘버러-노샘프턴 조약을 체결한다. 이로써 스코틀랜드는 독립을 되찾는다. 에드워드 1세의 침공으로부터 반세기 만이었다.

사실 영화 ‘브레이브하트’는 역사 왜곡이 심했다. 프랑스 공주이자 영국 왕자비였던 소피 마르소와의 러브라인 을 비롯해 영화를 위해 바꾼 설정이 한둘이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당시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킬트를 입지 않았다. 반면에 ‘아웃로 킹’은 철저한 고증을 통해 역사적 사건과 전투 장면을 화면에 담았다.



스코틀랜드 남자는 언제부터 치마를 입었을까?

 
원피스 형태 전통의상 ‘플레이디’
잉글랜드 제철업자 작업용으로 바꿔
19세기 이후 민족의상 탈바꿈



스코틀랜드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위스키, 백파이프, 킬트가 아닐까.

이중에서 킬트는 타탄 체크 무늬 옷감으로 만든 남성용 하의(치마)다. 무늬 색이나 테두리선 두께, 격자 크기, 색상으로 가문이나 계급을 드러냈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자신들의 오랜 역사와 문화가 바로 여기에 농축돼 있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에릭 홉스봄에 의하면 킬트의 역사는 길게 잡아도 300년이 되지 않는다. 아이러니한 것은 킬트는 스코틀랜드를 침략하고 지배한 잉글랜드 사람들이 만들었다는 것. 1707년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에 강제 병합된다. 당시 고산지대 사람들의 전통의상은 ‘플레이디’였다. 플레이디는 커다란 담요를 어깨에 걸쳐 몸을 감싸고 허리에 벨트를 묶는 원피스 형태의 전통의상이었다. 값이 싸고 추운 밤에 걸치기에는 제격이었지만 일하기엔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최소한 잉글랜드 제철업자 토머스 로린슨이 보기엔 그랬다. 킬트는 그가 스코틀랜드인들을 인부로 부리면서 길고 거추장스러운 전통의상을 작업용으로 바꾼 간편복이었다. 19세기 이후 민족의 원형을 찾는 낭만주의 바람이 불면서 어쩌다 보니 이것이 스코틀랜드의 민족의상이 된 것이다.

잔치판을 깨는 얘기 같지만 엘리자베스 2세가 생전에 고색창연한 마차를 타고 웨스트민스터로 향하는 모습을 보며 영국인들은 한결같이 ‘천년의 전통’을 되뇌었다. 하지만 거창한 왕실 의례조차 19세기 후반에 시작한 것이다. 영국 버킹엄 궁전 수문장 교대식도 19세기 대영제국이 ‘만들어낸 전통’에 불과하다

독일, 이탈리아는 이런 영국의 전통 창조를 ‘커닝’했다. 영국식 모델에 기초해 국기, 국가, 국경일을 정했다. 개항 이후 서구를 따라잡은 일본의 제도와 문화 대부분도 마찬가지다. 왕을 신성시하는 이른바 ‘천황’부터 음식에 이르기까지….

그렇다면 왜 우리가 유구한 전통이라고 알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 근대에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을까.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이 말 그대로 전통사회를 파괴하고, 근대사회를 창출해가는 과정에서 국민통합의 장치로서 새로운 전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근대 유럽의 최대 발명품은 뭘까? 답은 ‘국가의 전통’이라는 무형물이다.

 

필자 김인기 국장은 전자신문인터넷 미디어 전략 연구소장, 테크플러스 대표를 역임했으며, <br>현재 전자신문인터넷 온라인편집국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 속 IT 교과서』가 있다.
필자 김인기 국장은 전자신문인터넷 미디어 전략 연구소장, 테크플러스 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전자신문인터넷 온라인편집국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 속 IT 교과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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