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화랑탐방기

화랑 이름과 어울리게…목판화 전시에 진심

입력 2022. 12. 27   16:55
업데이트 2022. 12. 27   16:56
0 댓글

화랑탐방기-나무화랑


인사동 초입 건물 4층에 위치 
1993년 우리나라 첫 대안공간으로 시작
목판화에 정통한 평론가 김진하 대표
다양한 목판화 전시로 작품 매력 알려

지난해 나무화랑에서 열린 ‘신학철-포토콜라주-한국현대사’전의 모습.
지난해 나무화랑에서 열린 ‘신학철-포토콜라주-한국현대사’전의 모습.

 

나무화랑 전경.
나무화랑 전경.


나무화랑은 인사동 초입의 건물 4층에 있다. 1층에는 블랙디아, 2층에는 방미자한복, 3층은 바이올렛갤러리 그리고 4층이 나무화랑이다. 이 건물의 오른쪽에 바로 붙은 노화랑은 단독건물로 꽤 큰 건물이다. 노화랑의 왼쪽 건물 4층이라고 하면 찾기가 쉽다.

나무화랑은 전체면적으로 따지면 큰 공간의 화랑은 아니나 넓고 시원하게 보인다. 그건 일반적인 화랑과는 달리 사무실, 접대실, 수장고 등을 따로 크게 할애하지 않고 전체면적 대부분을 전시공간으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벽면은 화이트 큐브가 아닌 시멘트 색깔 그대로다. 차갑고 무뚝뚝한 벽면에서 장식성을 배제하고 본질적인 미술만을 추려서 전시하겠다는 결기가 느껴진다.

나무화랑의 모체는 나무기획이었다. 나무기획은 1989년 현재의 나무화랑 자리에 터를 잡았다.

이 건물은 동문당화랑이 있던 자리다. 동문당은 원래 표구사였다. 상문당, 동문당, 동산방이 인사동을 대표하는 표구사였다. 그리고 이들 표구사는 나중에 다 화랑이 됐다. 예전에는 인사동에 화가와 서예가의 작업실이 꽤 있었다. 동문당 화랑의 4층은 동양화가 운보 김기창의 작업실이었다. 동문당 표구사는 김기창이 애호하던 표구사이기도 했다. 김기창의 패션 스타일은 흰 고무신에 빨간 양말이었다. 큰 덩치에 대식가인 김기창은 갈비를 좋아해 인사동에 와서 작업할 때면 갈비집 일억조를 자주 찾았다. 가끔은 동문당에서 가까운 한식집 선천도 다녔다. 김기창의 작업실을 동양화가 민경갑이 이어받았다. 민경갑이 떠난 뒤 홍익대 미대 출신의 기획자 김진하, 이섭, 장익화가 만든 나무기획이 들어왔다.

나무화랑은 1993년 인사동 성화빌딩의 지하에서 시작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대안공간이었다. 당시 성화빌딩 지하에는 금호미술관, 가나화랑, 갤러리도올 등이 있어 미술인들의 발길이 잦았다. 2009년 나무화랑은 그때까지도 나무기획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현재의 건물로 들어왔다. 김진하 대표가 단독으로 나무화랑을 맡았다.

나무화랑이란 이름과 어울리게 어떤 미술 장르보다도 목판화 전시를 많이 했다. 한국은 목판화와 금속활자 인쇄 등 어느 나라보다도 판화의 역사가 깊은 나라다. 그러나 현재 목판화는 대중적으로 그리 인기가 많은 미술 장르가 아니다. 이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화랑도 별로 없다. 그러기에 나무화랑의 역할이 막중하다.

목판화는 석판화·동판화·실크스크린 등 판화의 여러 판종 중에서 가장 직정(直情·자신이 생각한 것을 꾸밈없이 그대로 드러냄)적인 느낌을 전달하는 판화다. 판목을 완성하는 재료라고는 오직 나무와 칼뿐이다. 매우 원시적이긴 하나 작가의 신체성을 가장 솔직하게 전달한다. 거기다가 결을 가진 나무의 신체성도 솔직하게 전달된다. 자연인 나무와 자연으로 돌아간 사람이 어울려 협업하는 미술이 목판화다.

프레스기가 필수 불가결인 동판화, 석판화 등과는 달리 목판화는 프레스기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제작이 가능하다. 화가 오윤은 판목 위에 종이를 놓고 숟가락 등으로 살살 문질러서 목판화를 완성했다. 이우환, 정상화 등 일본에서 활동하던 화가들이 초기에 소형 목판화를 제작해 생활비를 일부 도모한 일이 있다. 목판화가 특별한 도구 없이 좁은 공간에서도 제작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김진하 대표는 휘문고등학교 출신이다. 휘문고는 미술에 강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로 휘문고의 미술교사였던 고희동의 영향으로 장발, 서동진, 오지호, 이승만, 윤희순, 이쾌대 등이 배출됐다. 장발의 휘문고 제자로 조각가 김종영이 있다. 장발은 광복 후 초대 서울대 미대 학장이었다. 김종영은 장발과 함께 광복 직후 서울대 교수를 거쳐 나중에 서울대 미대 학장을 지냈다.

휘문고는 미술 중에서도 판화에 특히 강하다. 판화가인 미술교사 이상욱(1923~1988)의 제자로 김상구(1945~ )가 있다. 김상구는 국내에서 몇 안되는 목판화 전업작가다. 나무화랑에서 개인전, 단체전 등 여러 번의 전시를 열었다.

김진하는 기획자이자 미술평론가다. ‘출판미술로 본 한국 근현대목판화 1883~2007: 나무거울 전’(제비울미술관, 2007~2008)을 기획하면서 낸 책자 『나무 거울』은 ?화를 공부하는 미술인들의 필독서다. ‘한국고판화의 재해석-1 / 능화판’(김내현화랑, 2008)과 ‘한국고판화의 재해석-2 / 시전지와 문자향’ 전 (나무화랑, 2012) 등을 기획해 고대, 근대, 현대 판화의 정신성과 조형성을 이어가는 작업을 했다. 목판화에 관한 한 김진하는 국내 최고의 지식인이자 실천가다.

1995년 아시아 최초의 국제판화아트페어인 ‘서울판화미술제’(현재의 에디션아트페어)가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다. 이 행사를 2년 이상 준비해 결국 아트페어까지 성사되게 주도적으로 일한 사람은 판화가 김상구다. 이때 한국판화미술진흥회가 창립됐다. 회장은 대구의 맥향화랑 대표 김태수가 맡았다. 맥향화랑은 김상구전을 비롯해 많은 판화전을 개최했다. 김진하가 작가 활동을 할 때 소속돼 있던 목판모임 ‘나무’의 전시회를 1984년에 열기도 했다. 김상구, 김태수 모두 다 김진하와 인연이 깊은 사람들이었다. 나무기획은 한국판화미술진흥회와 함께 많은 일을 했다.

나무화랑의 주요 작가로는 김주호, 이상국, 이흥덕, 이수종, 최병민, 최민화, 김보중, 이태호, 송창, 손기환, 정복수, 류연복, 김준권, 정동석, 김진열, 문영태, 김영진, 김상구, 안정민, 최경선, 박광열, 윤여걸, 이인철, 김억, 정비파, 신학철, 김재홍, 이명복, 김석, 박건, 최경태, 송용민, 성병희, 용해숙, 최은경 등이 있다. 비판적 형상미술을 하는 작가들이 주류를 이룬다.

인사동은 미술인들로 북적인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만나서 술잔을 기울인다. 인사동길은 낙원상가를 통과해 돈화문로 11길이 된다. 낙원상가를 통과하는 보행자 길 오른쪽에서 멈추면 상가의 2층으로 올라가는 외부 계단이 있고 그 계단에 붙어 두세 명이 겨우 앉을 만한 자그마한 가게가 있다. 김진하 대표가 여기로 가끔 맥주를 마시러 출몰한다. 사진=필자 제공


필자 황인 미술평론가는 1980년대 후반 현대화랑에서 일하면서 지금은 거의 작고한 대표적인 화가들을 많이 만났다. 전시기획과 공학과 미술을 융합하는 학제 간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