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일의 미래

“대체 불가한 사람입니까?” AI와의 자리 싸움

입력 2022. 12. 26   16:44
업데이트 2022. 12. 26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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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미래] 에필로그-일의 본질을 보라


올해 가장 뜨거운 키워드 AI 
은행원·계산원 넘어 판사까지 등장
모든 직업군이 위협받는 현실
인간만의 비교 우위가 무기
‘희소성’에서 답 찾아야

 

스타벅스와 아마존이 협업해 뉴욕에 만든 실험적 매장에서 고객은 계산원을 거치지 않고 무인결제로 주문한 커피를 가져간다. 이 매장의 바리스타 29명은 한 표 차이로 최근 노조 가입을 하지 않기로 했다. 필자 제공
스타벅스와 아마존이 협업해 뉴욕에 만든 실험적 매장에서 고객은 계산원을 거치지 않고 무인결제로 주문한 커피를 가져간다. 이 매장의 바리스타 29명은 한 표 차이로 최근 노조 가입을 하지 않기로 했다. 필자 제공



올 한 해 칼럼을 연재하며 가장 많이 쓴 단어는 인공지능(AI)이다. 일의 미래에 AI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봤다. 불행하게도 어두운 쪽이다.

지금까지 기술과 일자리의 관계에 관한 전망은 밝은 쪽이었다. 신기술이 나오면 특정한 일자리를 없애거나 줄이지만, 새 일자리가 훨씬 많이 생겨났다는 논리다. 산업혁명부터 정보혁명까지 수치로도 검증됐다. 다가올 AI 혁명도 다를 바 없다고 말하는 낙관론자들은 그 예로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든다. 은행원 일자리를 위협할 것으로 여겨졌던 이 기계 덕분에 은행원은 단순 업무에서 벗어나 고객 욕구를 파악하고 서비스하는 고도의 업무로 옮겨 갔다. 전체 일자리 수요도 늘었다.

요즘 인터넷뱅킹을 넘어 모바일뱅킹이 대세다. 은행에 갈 일이 좀처럼 없다. 점포도 하나둘 사라지거나 2층 구석으로 옮겨 간다. 심지어 경쟁 은행과 공간을 나눠 쓴다. 직원의 절대 수가 감소한다는 얘기다. 연말 5개 시중은행의 희망퇴직 규모가 2400여 명에 이른다. 사상 최대 실적을 낸 은행들이다. 때아닌 인력 구조조정은 다가올 위기에 선제 대응하는 차원도 있지만, 디지털과 비대면화로 현재의 인력 규모를 더 이상 가져갈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결과다.

AI는 은행원의 전문 업무까지 침투했다. 인력 구조조정 몸살은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물론 은행 내 기술 금융인력과 인터넷 전문은행, 핀테크 전문 기술업체의 직원 수가 늘었다. 하지만 금융업 전체의 고용 감소를 벌충하기엔 턱없이 모자란 규모다.

고객센터는 일자리가 풍부한 곳이다. 유통, 금융, 통신, 가전, 공공기관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있다. 꾸준히 늘어나던 고객센터 인력 수요가 최근 주춤하고 있다. 사람 상담사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도화한 AI 챗봇 때문이다.

기업들이 콜센터 인력을 당장 줄이는 건 아니다. 직원이 더 깊이 있는 고객 상담을 하거나 부가가치가 더 높은 업무를 수행하도록 한다. 그런데 음성 인식, 음성 합성, 자연어 처리 등 AI 챗봇 기술의 발전 속도가 매섭다. 기술 공급가격도 가파르게 내려갈 것이다. 고객센터 인력 대체는 사실상 시간문제다.

은행원과 콜센터 직원뿐만이 아니다. 계산원, 의사, 교사, 마케터, 인사 담당자, 운전사, 판사, 기자, 연예인 등 거의 모든 직업인이 AI로부터 일자리를 위협받는다. 에스토니아 사법부는 2020년부터 우리 돈으로 1000만 원 미만의 소액재판을 AI 판사에게 맡겼다.

자동화 옹호론자들은 로봇이나 AI에게 노동을 넘겨주고 인간은 기본소득을 받아 생활하는 진정한 ‘노동 해방’을 꿈꾼다. 인류는 유희의 인간, 이른바 ‘호모루덴스(Homo Ludens)’에 한결 가까이 간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 역할마저 AI에게 빼앗길 판이다. 호모루덴스의 핵심은 창조 활동인데 AI가 소설을 쓰고, 노래를 만들며, 그림을 그린다. 아직 높은 수준이 아니라고 해도 뻔한 작품만 만드는 창작인들을 잔뜩 긴장시킬 정도의 실력이다.

심지어 종교인도 대체한다. 일본과 태국에서는 각각 민다르, 프라마하라는 이름의 AI 스님이 인간을 상대로 설법을 한다. 태국의 가상 AI 스님과 달리 눈, 머리, 손과 같은 실체를 가진 민다르 스님의 설법 내용은 ‘인간은 무엇인가’다.

‘희소성의 원칙(Law of Scarcity)’은 경제학의 핵심이다. 드물거나 독점적일수록 가치가 더 크게 오른다는 원리다. 늘 변치 않을 것 같던 이 법칙이 최근 고도의 자동화로 인해 흔들린다.

인간의 일을 AI와 로봇이 대체하면서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진다. 상품도, 노동력도 희소성을 잃는다. 값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인력 투입이 기계보다 훨씬 싼 분야만이 속도가 더딜 것이다. 특이점을 지나면 그 속도는 어떤 인위적인 법과 제도로도 막기 힘들 정도로 빨라진다.

AI에게 이렇게 일자리를 죄다 내줘야 하나. 물론 아니다. 격차가 더 벌어지기 전에 인간의 비교 우위를 되찾아야 한다. 없더라도 만들어야 한다. 그 답 역시 희소성에 있다.

스타트렉의 우주선 엔터프라이즈호에는 ‘물질재생성 장치(Replicator)’가 있다. 분자 구조를 복제해 식량을 비롯한 어떤 물건도 만들어 낸다. 엔터프라이즈호에 희소성이 있는 것은 없다. 돈마저 필요 없다. 이 우주선에 희소성이 있는 것은 평판과 신뢰와 같은 무형자산이다. 인간만이 가질 수 있다.

사람은 이제 무엇이 자신의 존재를 가치 있게 만들 것인지 고민하고 차별화해야 한다. 남다른 지식과 개성도 차별화 포인트다. 언어능력만 봐도 많은 사람이 잘하는 영어보다 스페인어나 아랍어를 하면 더욱 차별화할 수 있다. 똑같은 제품도 한정판이라고 하면 달리 보는 세상이다. 제 장점을 돋보이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업(業)의 본질을 잘 아는 것도 중요하다. 뉴스산업 종사자들은 스스로 뉴스 콘텐츠를 만들어 판다고 생각한다. 착각이다. 파는 것은 콘텐츠가 아니라 구독자다. 구독자가 많을수록 광고를 비롯한 비즈니스 기회가 많이 생긴다.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구독자를 끌어모으는 유효한 수단의 하나다.

불안(anxiety)과 공포(fear)는 비슷한 감정인데 차이가 있다. 공포는 그 감정을 일으키는 대상이나 상황이 바깥에 실체로 있다. 그 대상이 없어지거나 상황을 피하면 공포는 사라진다. 불안은 그 대상이나 상황이 모호하며 내부에 있다. 사라져도 불안은 가시지 않으며, 오히려 더 심해지기도 한다. 위험을 회피하는 성향의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고 정신의학자들은 말한다.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려면 극복하겠다는 마음가짐과 자신감, 그 대상에 더 바짝 다가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AI발 일자리 쇼크는 피한다고 없어지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이를 극복하려면 먼저 AI가 도대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이른바 ‘AI 리터러시(Literacy·문해력)’다. AI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양하게 경험해야 한다. 전문가 수준의 코딩은 아닐지라도 알고리즘을 이해할 정도는 돼야 한다. 그래야 공감과 포용과 같이 인간이 AI보다 앞서는 덕목을 찾아내고 키울 수 있다. 이 또한 언젠가 AI에게 따라잡힐지 모른다. 그래도 사람이 비교 우위인 것을 끊임없이 찾아야 AI로 대체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건투를 빈다.

 


필자 신화수는 30년간 기술산업 분야를 취재했으며 전자신문 편집국장, 문화체육관광부 홍보협력관, IT조선 이사 등을 역임했다. 기술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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