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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순국 90주기 추념식

서현우

입력 2022. 12. 19   17:07
업데이트 2022. 12. 20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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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 의거 잊지않겠습니다
박민식 보훈처장 등 200여 명 참석

 

19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거행된 매헌 윤봉길 의사 순국 90주기 추념식 참석자들이 추모공연을 감상하고 있다. 보훈처 제공
19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거행된 매헌 윤봉길 의사 순국 90주기 추념식 참석자들이 추모공연을 감상하고 있다. 보훈처 제공


일제에 폭탄을 투척해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세계 만방에 알린 매헌 윤봉길 의사의 순국 90주기 추념식이 19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거행됐다.

사단법인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린 행사에는 박민식 국가보훈처장, 명노승 기념사업회장과 회원, 독립유공자 유족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국민의례, 약전봉독, 추념사, 헌화·분향, 유시 낭독, 추모가 순으로 진행됐다.

1908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윤 의사는 1919년 3·1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일제의 식민교육을 배척해 덕산공립보통학교를 자퇴하고, 사설 서당인 오치서숙에서 수학했다.

1928년 부흥야학원을 세워 농민 자녀들을 교육했고, 이듬해 월진회를 조직해 농촌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일제의 압박으로 성공할 수 없음을 깨달아 1930년 중국에 망명했다.

이어 1931년 백범 김구 선생을 만나 의열투쟁 결의를 다졌고, 1932년 김구 선생이 주도하던 한인애국단에 가입했다.

이후 윤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을 맞아 일본군의 상하이 점령 전승 행사가 개최되는 홍커우공원에서 수통형 폭탄을 단상 위로 던져 일본군 사령관 등을 폭살했다.

이 의거는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중국의 지원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독립운동의 구심체 역할을 하는 계기가 됐다. 

의거 직후 윤 의사는 일본 경찰에 체포돼 가혹한 고문과 취조를 받았다. 그해 5월 사형을 선고받고, 12월 19일 가나자와 육군형무소 공병 작업장에서 총탄에 맞아 25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윤 의사의 유해는 김구 선생의 요청으로 이봉창·백정기 의사 유해와 함께 봉환돼 1946년 효창공원(삼의사 묘역)에 안장됐다. 정부는 윤 의사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서현우 기자

서현우 기자 < lgiant61@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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