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화랑탐방기

뚝심과 강단으로…새로운 감각 구상미술 주력

입력 2022. 11. 08   15:35
업데이트 2022. 11. 08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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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프레스
 
홍익대 예술학과 88학번 김정대 대표
졸업 후 부산서 활동하다 2013년 상경
일찍부터 신학철·안창홍 작가 등 주목
상업성 낮은 형상계열 작품 꾸준히 선봬

 

추색이 완연한 인디프레스.  사진=인디프레스
추색이 완연한 인디프레스. 사진=인디프레스
인디프레스 전시장 모습.  사진=인디프레스
인디프레스 전시장 모습. 사진=인디프레스
인디프레스 전시장에서 바라본 영추문.  필자 제공
인디프레스 전시장에서 바라본 영추문. 필자 제공

경복궁 동쪽의 북촌이 사대부들의 주거지였다면 반대편의 서촌은 역관, 화원 등 다양한 개성의 중인계급이 모여 살았다. 리버럴리스트의 기질을 가진 자들이 많이 살았다.

화원은 아니었지만 겸재 정선도 여기서 태어나 살면서 근처의 인왕산을 보며 ‘인왕제색도’를 남겼다. 추사 김정희의 집터도 이곳에 있었다. 수많은 시인묵객이 서촌을 거쳐 갔다.

그런 기운이 이어져서 이후에도 많은 미술인이 이곳에 터를 잡았다. 한때 홍익대 미대가 이곳 누상동에 있었다. 천경자(1924~2015), 한묵(1914~2016), 이봉상(1916~1970) 등 홍익대 미대의 교수들이 서촌에서 이웃으로 지내며 살았다. 전쟁 때 부산에서 피란 시절을 한묵과 함께한 이중섭도 서촌에서 잠시 살았다.

한국화가 남정 박노수(1927~2013)의 집은 이제 미술관으로 변모했고 청전 이상범(1897~1972)의 집도 잘 보전돼 있어 방문객이 많다.

서촌은 남북으로 뻗은 자하문로를 기준으로 동서로 나뉜다. 1993년 시민들에게 인왕산이 개방되면서 서촌 서쪽은 등산객들이 애호하는 명소가 됐다. 통인시장에도 관광객이 몰린다. 서촌의 동쪽은 경복궁, 청와대가 가까워서인지 서쪽에 비해 한산한 편이었다. 이 일대에는 화랑과 미술관이 많다. 대림미술관과 진화랑이 터줏대감이었다.

여기에 리안갤러리, 갤러리시몬, 아트사이드 갤러리 등이 가세했다. 경복궁 담벼락 옆길 효자로, 가지가 하늘까지 치솟은 플라타너스와 은행나무에 추색이 짙다.

낙엽을 밟으며 깊어가는 가을 속을 산책하는 행인 중에는 미술 애호가들도 많다.

경복궁 영추문 바로 앞에 2층 건물의 화랑이 있다. 인디프레스다. 화랑 이름이 프레스로 끝나니 이상하다. 그렇다.

원래는 부산에서 화랑과 출판사를 겸해 출발했기에 인디프레스(독립출판)란 이름이 붙었다. 몇 권의 책을 출판했지만 이제 출판 일은 잠시 뒤로 미뤘다.

김정대 인디프레스 대표는 홍익대 예술학과 88학번이다. 1986년 덕수궁에 있던 국립현대미술관이 과천으로 옮기면서 우리나라에도 본격적인 미술관의 시대가 열렸다.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미술계는 분주해졌다. 미술관, 화랑 등 미술 현장에서 요구되는 큐레이터, 미술행정가, 미술비평가, 미술기자 등을 양성하기 위해 홍익대에 예술학과가 개설됐다. 홍익대 교수이던 미술평론가 이일, 화가 박서보 등이 주도했다. 1기로 입학한 김정대의 동기로는 박정구(부산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조선령(부산대 교수), 최광진(미술평론가), 박승숙(미술심리치료사) 등이 있다. 2기로는 윤재갑(상하이 하오아트뮤지엄 관장), 이숙경(영국 테이트모던 수석 큐레이터), 김준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 등이 입학했다.

예술학과 출신들의 활동은 다양하다. 그런데 화랑 대표는 찾아 보기 힘들다. 상업화랑의 대표가 되려면 예술학과에서 가르치는 학과목의 배움과는 다른 능력과 기질이 요구된다.

그만큼 김정대의 행보는 다른 동기들에 비해 특이하다. 그는 대학 졸업 이후 오랫동안 부산에서 활동하다 몇 년 전 상경해 자리를 잡았다.

그가 부산에서 개업한 최초의 화랑 이름은 ‘강’이었다. 부산 동래구 명륜동, 부산대 앞 등을 옮겨 다녔다. 6평 정도의 자그마한 규모였다. 7년 정도 ‘강’을 운영했다.

그러다 3년을 쉰 후 2007년 해운대에 ‘인디프레스’란 화랑 겸 출판사를 냈다. 서울로 온 건 2013년이다. 부산의 공간은 지금도 존재한다.

한동안 ‘인디프레스 부산’ ‘인디프레스 서울’이란 이름으로 두 공간을 운영했다. 인디프레스 부산은 2021년에 ‘청사포’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인디프레스 부산에서는 황용엽, 양달석, 송혜수 등의 드로잉전을 열었다. 황용엽(1931~ )은 평양미술학교를 다니다 6·25전쟁이 발발한 뒤 월남, 국군이 돼 전투에서 크게 다치고 상이군인이 됐다. 그리고 홍익대에 편입했다. 그는 실향의 아픔과 인간의 실존을 형상화한 ‘인간’시리즈를 발표했다.

양달석(1908~1984)과 송혜수(1913~2005)는 각각 고향인 경남 거제, 부산에서 활동한 화가들이다. 모두가 형상계열의 화가들이다.

서울에서 맨 처음 문을 연 곳은 효자동 40-1번지였다. 이후 2016년 현재의 통의동 7-25번지로 이전했다. 그가 주력하고자 하는 미술은 새로운 감각의 구상미술이다.

구상미술 작가 중에는 민중미술 작가들도 있다. 때때로 민중미술만을 취급하지 않느냐는 오해도 받는다. 일찍부터 신학철, 안창홍 등의 작가들을 주목하고 집중했다.

최민화, 황재형, 강요배, 오윤, 장경호, 박불똥, 최진욱, 박강원, 공성훈, 이흥덕, 정복수, 주재환, 서용선, 구본주 등의 작품이 인디프레스에서 전시됐다.

2015년에 열린 주재환, 박이소, 최정화의 ‘쓰리스타쑈’전은 매우 감각적인 전시였다.

미술계 내부의 시선에서 보자면 인디프레스의 전시작가들은 모두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훌륭한 작가들이다. 그러나 몇몇을 제외하곤 상업성이 떨어진다. 한국의 미술시장은 민중미술, 구상미술 등 형상계열의 작품들보다는 단색화 등 물성계열의 작품들에 편중된 형편이다. 이 구조를 잘 알면서도 김정대 대표는 자신의 신념을 밀어붙인다.

형상계열의 작품을 전시하면서 이 계열의 작가들에게 큰 힘이 돼주는 김 대표는 뚝심과 강단으로 뭉쳐진 부산 사나이다.

큰 덩치에 콧수염, 거기다 중절모를 쓴 모양새는 흑백영화 주인공처럼 고전적인 데가 있다. 그의 뚝심과 강단에 매료된 화가들도 많다.

그는 술과 대화를 좋아한다. 전시회 오프닝의 뒤풀이로 근처의 식당을 찾는다. 돼지고기 두루치기와 계란말이로 유명한 뚱낙원, 닭튀김의 이서방양념치킨을 찾는다.

사람의 숫자가 적을 때는 금천교시장(세종마을음식문화거리) 골목에 있는 다래국수를 가기도 한다. 부산 사나이답게 성격이 화끈해 술을 마시면 술값을 본인이 다 내야 직성이 풀린다. 김 대표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든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김 대표 자신이 한국미술문화의 중심이 돼버렸다.


필자 황인 미술평론가는 1980년대 후반 현대화랑에서 일하면서 지금은 거의 작고한 대표적인 화가들을 많이 만났다. 전시기획과 공학과 미술을 융합하는 학제 간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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