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되자
국내 미술애호가 시각·미감 변화
생태계 구성원 경쟁력 글로벌 기준 조정
백남준 판화집 기획·전시 등 적극 소개
1990년대 해외작가전 유치에 온 힘
현대미술 중심 틀 잡아 도쿄시장 역전
백남준은 1984년 1월 1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생중계하며 하룻밤 사이에 자신의 이름을 전 국민에게 알렸다. 4년 뒤인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리면서 이를 기념하는 올림픽 야외조각공원이 들어섰다. 이에 맞춰 서울을 찾아온 세자르, 스타치올리 등 세계의 조각가들은 작업도 하고, 심포지엄도 열었다.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미술인들이 서울에 몰려든 건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1989년에는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행됐다. 국내 미술애호가들은 직접 해외의 미술관과 화랑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해외를 다녀온 그들의 시각과 미감은 변해갔다. 이제 국내 작가들의 경쟁력도 글로벌의 기준으로 새롭게 조정돼야만 했다. 변신은 국내 미술생태계 구성원 모두에게 요구됐다.
이 시기 현대화랑에서는 미국 팝아트를 중심으로 하는 뉴욕현대미술전(1988년), 소토전(1988년), 로레 베르트전(1989년), 에릭 오르전(1989년) 등이 열렸다.
작가들은 직접 방한해 현장에 작품을 설치했다. 어린 시절 한국·홍콩·일본 등에서 자랐고, 청년 시절 독일로 떠나 세계적인 예술가들과 함께 경쟁하며 활동한 백남준은 이런 시류에 딱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백남준이란 캐릭터는 글로벌 화랑으로 도약해야 하는 현대화랑에 미래를 제시했다.
백남준의 등장은 국내 미술인들의 변신을 촉발했다.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는 미술이 아니라며 부정하고 배척하는 국내 미술인도 많았다. 하지만 대중들이 그를 오히려 쉽게 받아들였다. 1988년 경기도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올림픽 개막에 맞춰 백남준의 ‘다다익선’을 설치했다. 그러나 당시 백남준의 다양한 오브제 작품을 봤거나, 그 유명한 퍼포먼스를 실제로 본 한국인은 미술계에서조차 매우 드물었다. 이런 가운데 현대화랑은 백남준전을 열었다. 백남준의 판화 모음집 출판을 기획하고 전시를 열며 백남준을 적극적으로 소개했다.
1990년 7월 20일 갤러리현대 뒤뜰에서 요제프 보이스를 추모하는 백남준의 굿 ‘늑대의 걸음으로: 서울에서 부다페스트까지’가 벌어졌다. 이 굿은 일반인들에게도 관람이 개방되었다. 백남준 전문가인 장 폴 파르지에가 현장에서 프랑스 TV방송국의 해설을 맡았다. 백남준의 일거수일투족을 국내의 대중들이 가까이서 직접 대면했다.
일본에 있던 화가 이우환은 이 퍼포먼스를 보러 일부러 서울에 왔다. 관람객 모두에게 이날의 경험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1993년 예술의 전당, 국립현대미술관 그리고 갤러리현대에서 ‘서울 플럭서스 페스티벌’이 열렸다. 르네 블록이 예술감독을 맡았다. 에릭 앤더슨, 에이오, 필립 코너, 켄 프리드만, 제프리 헨드릭스, 딕 히긴스, 김순기, 앨리슨 놀즈, 래리 밀러, 앤 노엘, 벤저민 패터슨, 빌렘 드 리더, 에멋 윌리엄즈가 서울로 초청됐다. 갤러리현대에서는 이들의 작품들이 전시됐다. 갤러리현대에 매일 나타나던 플럭서스 멤버들은 저녁이 되면 이태원 아트리움에서 댄스파티를 하며 한국 미술인들과 직접 소통했다.
1989년의 독일 통일, 1991년의 소련 붕괴에 이어 인터넷의 상용화가 시작됐다. 1995년에는 광주비엔날레가 시작되었다. 1990년대가 되자 갤러리현대는 해외작가전의 유치에 더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크리스토(1992년), 베르나르 브네(1994년), 얀 케르살레(1995년), 이미 크뇌벨·고트프리드 호네거·엘스워스 켈리·세자르 발다치니(이상 1996년), 장미셸 바스키아(1997년), 독일현대미술 3인전: 고타르트 그라우브너·게르하르트 리히터·이미 크뇌벨(2003년), 귄터 위커·로버트 인디애나(이상 2004년), 안드레아스 거스키·토마스 스트루스(2005년), 로버트 라우센버그(2006년) 등 전시회가 열렸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국제 미술시장에서 중국세가 강해졌다. 뉴욕의 소더비와 크리스티 등 미술품 경매장에 중국의 현대미술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갤러리현대에서는 쩡판즈·탕쯔강(이상 2007년), 아이웨이웨이·지아 아이리(이상 2008년) 등의 전시회가 열렸다. 2007년에는 바젤아트페어로 유명한 도시, 스위스 바젤의 바이엘러 갤러리와 교환전을 갖는다. 이어서 줄리앙 슈나벨, 개념미술 작가인 온 가와라(이상 2008년), 구와쿠보 도루·사라 모리스·토마스 스트루스(이상 2010년) 등의 전시회가 열렸다.
토마스 스트루스는 남북한의 아파트 건축물을 욕망과 통제라는 상반되는 두 개의 관점으로 담은 사진들을 제시했다. 2019년에 열린 프레드 샌드백(1943~2003)의 사후 개인전은 가느다란 실이 공간을 가르면서 조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미술관급 전시였다.
오늘날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는 한국의 단색화 작가들의 전시는 이미 1970년대 후반에 현대화랑에서 이루어졌다. 그 당시는 막연한 미래만 있는 작가들이었다.
지금 그들의 작품이 엄청난 가격으로 현실 세계에서 거래되고 있다. 최근에 와서 갤러리현대는 캔버스 위에 그려진 그림이 아닌, 설치·퍼포먼스 등 보다 실험적인 작가들을 세계에 알리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작가가 이승택, 이건용, 이강소다. 이들은 2023년에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아방가르드: 1960~70년대 한국의 실험미술’전을 갖는다.
지난 9월, 프리즈서울에 참가한, 과거 현대화랑의 자매화랑이었던 동경화랑 대표 다바타 유키히토는 한국 미술계와 현대화랑의 약진을 부러워했다. 이제는 도쿄의 미술시장이 서울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부러움이었다. 이 역전은 현대화랑이 일찍부터 국내의 미술시장을 현대미술 중심으로 틀을 잡았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다.
갤러리현대 신관 안쪽에는 프랑스 요리와 와인을 내놓는 레스토랑과 갤러리가 함께하는 두가헌이 있다. 레스토랑 두가헌은 오래된 전통한옥이다. 먼 옛날에서 천천히 온 듯한 햇빛이 눈꺼풀을 간지럽힌다. 한옥 건너편의 양옥은 구한말에 지어진 근대 러시아풍의 건물, 갤러리 두가헌이다. 미래를 향해 시간이 바쁘게 흘러가는 현대미술의 현장 갤러리현대와 시간의 이끼가 두툼하게 끼어 있는 두가헌은, 근대의 온축과 미래의 설렘을 다 담아내고 있다.
필자 황인 미술평론가는 1980년대 후반 현대화랑에서 일하면서 지금은 거의 작고한 대표적인 화가들을 많이 만났다. 전시기획과 공학과 미술을 융합하는 학제 간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되자
국내 미술애호가 시각·미감 변화
생태계 구성원 경쟁력 글로벌 기준 조정
백남준 판화집 기획·전시 등 적극 소개
1990년대 해외작가전 유치에 온 힘
현대미술 중심 틀 잡아 도쿄시장 역전
백남준은 1984년 1월 1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생중계하며 하룻밤 사이에 자신의 이름을 전 국민에게 알렸다. 4년 뒤인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리면서 이를 기념하는 올림픽 야외조각공원이 들어섰다. 이에 맞춰 서울을 찾아온 세자르, 스타치올리 등 세계의 조각가들은 작업도 하고, 심포지엄도 열었다.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미술인들이 서울에 몰려든 건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1989년에는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행됐다. 국내 미술애호가들은 직접 해외의 미술관과 화랑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해외를 다녀온 그들의 시각과 미감은 변해갔다. 이제 국내 작가들의 경쟁력도 글로벌의 기준으로 새롭게 조정돼야만 했다. 변신은 국내 미술생태계 구성원 모두에게 요구됐다.
이 시기 현대화랑에서는 미국 팝아트를 중심으로 하는 뉴욕현대미술전(1988년), 소토전(1988년), 로레 베르트전(1989년), 에릭 오르전(1989년) 등이 열렸다.
작가들은 직접 방한해 현장에 작품을 설치했다. 어린 시절 한국·홍콩·일본 등에서 자랐고, 청년 시절 독일로 떠나 세계적인 예술가들과 함께 경쟁하며 활동한 백남준은 이런 시류에 딱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백남준이란 캐릭터는 글로벌 화랑으로 도약해야 하는 현대화랑에 미래를 제시했다.
백남준의 등장은 국내 미술인들의 변신을 촉발했다.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는 미술이 아니라며 부정하고 배척하는 국내 미술인도 많았다. 하지만 대중들이 그를 오히려 쉽게 받아들였다. 1988년 경기도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올림픽 개막에 맞춰 백남준의 ‘다다익선’을 설치했다. 그러나 당시 백남준의 다양한 오브제 작품을 봤거나, 그 유명한 퍼포먼스를 실제로 본 한국인은 미술계에서조차 매우 드물었다. 이런 가운데 현대화랑은 백남준전을 열었다. 백남준의 판화 모음집 출판을 기획하고 전시를 열며 백남준을 적극적으로 소개했다.
1990년 7월 20일 갤러리현대 뒤뜰에서 요제프 보이스를 추모하는 백남준의 굿 ‘늑대의 걸음으로: 서울에서 부다페스트까지’가 벌어졌다. 이 굿은 일반인들에게도 관람이 개방되었다. 백남준 전문가인 장 폴 파르지에가 현장에서 프랑스 TV방송국의 해설을 맡았다. 백남준의 일거수일투족을 국내의 대중들이 가까이서 직접 대면했다.
일본에 있던 화가 이우환은 이 퍼포먼스를 보러 일부러 서울에 왔다. 관람객 모두에게 이날의 경험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1993년 예술의 전당, 국립현대미술관 그리고 갤러리현대에서 ‘서울 플럭서스 페스티벌’이 열렸다. 르네 블록이 예술감독을 맡았다. 에릭 앤더슨, 에이오, 필립 코너, 켄 프리드만, 제프리 헨드릭스, 딕 히긴스, 김순기, 앨리슨 놀즈, 래리 밀러, 앤 노엘, 벤저민 패터슨, 빌렘 드 리더, 에멋 윌리엄즈가 서울로 초청됐다. 갤러리현대에서는 이들의 작품들이 전시됐다. 갤러리현대에 매일 나타나던 플럭서스 멤버들은 저녁이 되면 이태원 아트리움에서 댄스파티를 하며 한국 미술인들과 직접 소통했다.
1989년의 독일 통일, 1991년의 소련 붕괴에 이어 인터넷의 상용화가 시작됐다. 1995년에는 광주비엔날레가 시작되었다. 1990년대가 되자 갤러리현대는 해외작가전의 유치에 더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크리스토(1992년), 베르나르 브네(1994년), 얀 케르살레(1995년), 이미 크뇌벨·고트프리드 호네거·엘스워스 켈리·세자르 발다치니(이상 1996년), 장미셸 바스키아(1997년), 독일현대미술 3인전: 고타르트 그라우브너·게르하르트 리히터·이미 크뇌벨(2003년), 귄터 위커·로버트 인디애나(이상 2004년), 안드레아스 거스키·토마스 스트루스(2005년), 로버트 라우센버그(2006년) 등 전시회가 열렸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국제 미술시장에서 중국세가 강해졌다. 뉴욕의 소더비와 크리스티 등 미술품 경매장에 중국의 현대미술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갤러리현대에서는 쩡판즈·탕쯔강(이상 2007년), 아이웨이웨이·지아 아이리(이상 2008년) 등의 전시회가 열렸다. 2007년에는 바젤아트페어로 유명한 도시, 스위스 바젤의 바이엘러 갤러리와 교환전을 갖는다. 이어서 줄리앙 슈나벨, 개념미술 작가인 온 가와라(이상 2008년), 구와쿠보 도루·사라 모리스·토마스 스트루스(이상 2010년) 등의 전시회가 열렸다.
토마스 스트루스는 남북한의 아파트 건축물을 욕망과 통제라는 상반되는 두 개의 관점으로 담은 사진들을 제시했다. 2019년에 열린 프레드 샌드백(1943~2003)의 사후 개인전은 가느다란 실이 공간을 가르면서 조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미술관급 전시였다.
오늘날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는 한국의 단색화 작가들의 전시는 이미 1970년대 후반에 현대화랑에서 이루어졌다. 그 당시는 막연한 미래만 있는 작가들이었다.
지금 그들의 작품이 엄청난 가격으로 현실 세계에서 거래되고 있다. 최근에 와서 갤러리현대는 캔버스 위에 그려진 그림이 아닌, 설치·퍼포먼스 등 보다 실험적인 작가들을 세계에 알리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작가가 이승택, 이건용, 이강소다. 이들은 2023년에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아방가르드: 1960~70년대 한국의 실험미술’전을 갖는다.
지난 9월, 프리즈서울에 참가한, 과거 현대화랑의 자매화랑이었던 동경화랑 대표 다바타 유키히토는 한국 미술계와 현대화랑의 약진을 부러워했다. 이제는 도쿄의 미술시장이 서울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부러움이었다. 이 역전은 현대화랑이 일찍부터 국내의 미술시장을 현대미술 중심으로 틀을 잡았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다.
갤러리현대 신관 안쪽에는 프랑스 요리와 와인을 내놓는 레스토랑과 갤러리가 함께하는 두가헌이 있다. 레스토랑 두가헌은 오래된 전통한옥이다. 먼 옛날에서 천천히 온 듯한 햇빛이 눈꺼풀을 간지럽힌다. 한옥 건너편의 양옥은 구한말에 지어진 근대 러시아풍의 건물, 갤러리 두가헌이다. 미래를 향해 시간이 바쁘게 흘러가는 현대미술의 현장 갤러리현대와 시간의 이끼가 두툼하게 끼어 있는 두가헌은, 근대의 온축과 미래의 설렘을 다 담아내고 있다.
필자 황인 미술평론가는 1980년대 후반 현대화랑에서 일하면서 지금은 거의 작고한 대표적인 화가들을 많이 만났다. 전시기획과 공학과 미술을 융합하는 학제 간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