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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은 국가와 결혼했다” 대영제국 건설한 엘리자베스 1세

입력 2022. 09. 21   17:02
업데이트 2022. 09. 21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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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에이지(2007)

감독: 셰카르 카푸르
출연: 케이트 블란쳇, 제프리 러시, 클라이브 오웬, 에디 레드메인


16세기 영국의 군주 엘리자베스 1세
신·구 종교 대립과 여왕 암살 음모…
혼돈 딛고 대영제국 건설한 통치력 그려
스페인 무적함대와의 결전 등 볼거리



“영국인들은 최초의 제국 건설자들이 아니라 포르투갈, 에스파냐, 네덜란드, 프랑스 제국들의 찌꺼기를 찾아다니는 해적들이었다. 그들은 제국의 모방자들이었다.” “이런 식으로 영제국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즉 해상 폭력과 도둑질의 소용돌이 속에서 말이다.” (『제국』 니얼 퍼거슨 지음, 민음사 펴냄)


영국 해적, 스페인 무적함대를 깨다

“해군이 아니라 해적이 되자.(Pirates! Not the Navy)”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혁신적 제품을 만들기 위해 내건 슬로건이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성공하려면 규모가 크고 관료적인 해군보다 작고 민첩한 해적이 유리하다는 의미다.

16세기 영국은 잡스가 처한 상황만큼이나 불확실한 환경에 둘러싸여 있었고 나라 곳간은 비어 있었다. 잡스가 모델로 삼았던, 해적을 부국강병에 동원한 원조는 엘리자베스 1세(1533~1603)다. 여왕은 스페인 선박을 공격하고 나포하는 해적질을 공인했다. 일등공신은 프랜시스 드레이크. 스페인의 물자 수송선을 약탈한 드레이크를 비롯한 영국의 해적들은 단순한 도적이 아니었다. 재정난에 시달리던 엘리자베스 여왕의 지원을 받는 일종의 정부 공인 벤처기업이었다.

여왕은 이들을 영국의 부를 증대하고 해외 영토를 확장하는 애국자로 봤다. 이들은 외교적으로도 유용했다. 주변국들이 항의하면 ‘정부 정책에 반하는 해적의 소행’으로 치부해버렸다.

드레이크는 빼앗은 금은보화를 영국 왕실로 보냈다. 해적의 표적이 된 스페인은 드레이크의 처벌을 영국에 요구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여왕은 처벌은커녕 드레이크의 배에 올라 직접 기사 작위를 수여했다. 스페인 왕 펠리페 2세는 격분했다. 영국이 스페인에서 독립하려는 네덜란드를 지원한 것도 분노를 키웠다.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악감정까지 더해졌다. 이때 엘리자베스 1세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나는 국가와 결혼했다.”

화가 난 펠리페 2세는 1588년 무적함대로 응징에 나섰다. 무적함대는 1571년 레판토 해전에서 오스만 주력 함대를 격파한 최강이었다.

1588년 5월 23일 130척으로 구성한 무적함대가 출항했다. 승조원은 8500명, 보병은 1만9000명이었다. 칼레 항구에서 스페인 육군 3만 명을 더 태워 영국 본토에 상륙시킬 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처럼 스페인은 육군 중심으로 전략을 짰다. 하지만 작전은 헛발질이었다. 스페인군은 영국 땅을 밟을 기회조차 없었다.

이에 맞선 영국 해군은 고작 전함 80척에 병력은 8000여 명에 불과했다. 영국은 변칙 전술로 대응했다. 작전권을 쥔 해적왕 드레이크의 작품이었다. 속도가 빠르고 장거리포를 장착한 영국 함대는 치고 빠지기 공격을 퍼부었다. 부하들도 해적으로 잔뼈가 굵은 터라 손발이 척척 맞았다. 배 위에서 백병전을 펼치려던 무적함대의 허를 찌른 전술이었다.

기상이변으로 생긴 강한 북풍도 영국 편이었다. 무적함대는 바람을 안고 항해하느라 싸우기도 전에 지쳐버렸다. 승리의 결정적 비결은 화공이었다. 화약과 기름으로 불타는 선박이 스페인 군함으로 돌진했다. 결국, 무적함대는 퇴각했다. 이 칼레 해전을 계기로 영국과 스페인 운명은 정반대가 됐다.

세계 최강 스페인은 유럽 2등 국가로 전락했고, 영국의 ‘황금기(Golden Age)’가 시작됐다.


변방 영국, 어떻게 제국을 건설했나

영화 ‘골든 에이지’(2007)는 영국의 국운이 피어나기 시작한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주목한다. 배경은 신교도와 구교도의 대립이 한창이던 16세기 유럽.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의 왕 펠리페 2세는 영국 왕위 계승 서열 2위인 메리 스튜어트(사만사 모튼)를 이용해 신교도인 엘리자베스(케이트 블란쳇)를 제거하려고 한다.

엘리자베스를 보좌해 온 프란시스 월싱엄(제프리 러시)은 스페인의 위협에서 영국을 지키기 위해서 권력자와 정략 결혼할 것을 촉구하지만, 여왕의 마음은 어느 날 감자와 담배를 궁정에 들고 나타난 탐험가 월터 라일리(클라이브 오웬)에게 끌린다. 한 여자로서 사랑받는 삶과 여왕의 길 사이에서 번민하던 와중에 메리의 엘리자베스 암살 음모가 발각되고, 그녀의 처형은 스페인에 침공의 빌미를 제공한다. 엘리자베스는 세계를 주름잡았던 스페인의 무적함대와 결전을 준비하는데….

영화는 절대왕정 시대의 화려한 왕궁과 의상을 통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또 당대에 일어났던 신·구교 종교 대립, 아메리카 탐험과 중상주의 정책, 여왕을 둘러싼 암살 음모 사건(배빙턴 음모 사건), 해상권을 둘러싼 영국과 스페인과의 전쟁(칼레 해전) 같은 다양한 역사적 사건을 중심에 놓고 있다.


여왕이 ‘나의 해적’ 칭한 남자

‘해적왕’ 드레이크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교역을 지배한다. 세계의 교역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의 부를 지배하며, 결국 세계 자체를 지배한다.”(월터 라일리)

근대 영국인의 심성을 단적으로 드러낸 이 말은 세계 패권의 향방에서 바다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영화 속 월터 라일리는 두 명의 역사 속 실존 인물이 합성됐다. 군인이자 정치인, 탐험가였던 월터 라일리라는 원래 인물에 해적 프랜시스 드레이크를 더한 것.

월터 라일리는 재기발랄한 지식인이자 무인이었다. 신대륙에 식민지 개척에 나섰고 처녀 여왕 엘리자베스를 기려 ‘버지니아’로 명명했다. 자신감이 지나쳤던 그는 여왕의 시녀와 비밀 결혼한 것이 들통나면서 총애를 잃었다. 제임스 1세가 등극한 후 왕의 명령을 어겨 서슬 퍼런 도끼날에 생을 마감했다.

영화 속 스페인 함선과 식민지를 약탈하고 무적함대를 섬멸한 월터 라일리의 모습은 ‘해적왕’ 드레이크다. 그는 당시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엘리자베스 1세가 ‘나의 해적’이라고 불렀을 만큼 신임했던 인물로, 아프리카나 아메리카에선 노예 상인의 얼굴로 알려졌다. 마젤란의 세계 일주 항해로 위신이 높아진 스페인을 부러워했던 엘리자베스 여왕은 드레이크에게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항해를 명했다. 드레이크는 온갖 난관과 위험을 무릅쓰고 위업을 달성했을 뿐 아니라 항해 중에 빼앗은 보화의 절반을 여왕에게 바쳤다. 당시 영국 왕실의 1년 국고 수입보다 많은 액수였다. 여왕은 그에게 훈장과 작위로 보답했다.

드레이크의 모험(?)은 훗날 해적과 보물섬에 관한 많은 소설이나 영화에 영감을 주었다. 오스만 투르크의 바르바로사와 함께 악랄한 해적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유이’한 인물이었다.


필자 김인기 국장은 전자신문인터넷 미디어전략연구소장, 테크플러스 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전자신문인터넷 온라인편집국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 속 IT 교과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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