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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인사이드] 최첨단 무기 못지 않게 ‘인구’ 여전히 국력이다

입력 2022. 09. 20   16:53
업데이트 2022. 09. 2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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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보병 전투체계 발전 방향
러, 우크라 침공 후 1만5000명 병력 손실
병력 부족 해결 위해 군사기업까지 투입
우크라이나, 숙련된 예비군 동원
미국서 지원하는 최신 무기 교육에 집중

미국·프랑스·독일·영국·이탈리아 등
기술 중심의 보병 시스템 개발
첨단 무기로 무장한 소수정예 보병 추구
위장기술 추가해 전투병력 손실 해결

 

찰나의 순간 생사가 결정되는 전장에서 훈련을 통한 경험만큼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문제는 전쟁이라는 급박한 상황에서 충분한 수준의 훈련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사진은 마일즈 모의교전장비를 활용해 훈련 중인 미 해병대원의 모습. 출처=미 국방부 홈페이지
찰나의 순간 생사가 결정되는 전장에서 훈련을 통한 경험만큼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문제는 전쟁이라는 급박한 상황에서 충분한 수준의 훈련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사진은 마일즈 모의교전장비를 활용해 훈련 중인 미 해병대원의 모습. 출처=미 국방부 홈페이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 각국은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미래 보병 전투체계를 완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무력 침공 이후 미국과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미래 보병 전투체계 획득계획은 물론 미래 보병 개념이나 전투 교리까지도 수정하려는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다. 과거와 같은 대규모 징집·동원이 불가능해졌을 뿐만 아니라 충분한 숫자의 숙련된 전투병력 확보가 전쟁 승패를 좌우하는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계동혁 전사연구가



자원자와 예비군들로 편성된 우크라이나 영토방위군(TDF)의 주요 임무 중 하나는 주변국에서 지원한 구소련제 무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것이다. 사진은 폴란드에서 지원한 T-72 계열 전차를 다루는 TDF 모습. 출처=우크라이나군 합동군 페이스북 계정
자원자와 예비군들로 편성된 우크라이나 영토방위군(TDF)의 주요 임무 중 하나는 주변국에서 지원한 구소련제 무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것이다. 사진은 폴란드에서 지원한 T-72 계열 전차를 다루는 TDF 모습. 출처=우크라이나군 합동군 페이스북 계정


미래 전쟁, 그중에서도 보병 전투체계의 발전방향과 보병의 역할은 언제나 관심의 대상이 돼 왔다. 그리고 최근까지 보병의 미래는 공상과학(SF) 전쟁영화에서 묘사되는 ‘최첨단 무기와 정보통신장비로 무장하고, 기동화된 일당백의 전투능력을 갖춘 소수정예 전사”가 당연하게 여겨졌다. 실제로 SF 전쟁영화 속에 등장하는 혁신적인 무기나 장비 등이 하나둘 실용화되는 것은 물론 첨단 무기로 무장한 소수정예의 보병은 세계 각국이 추구하는 보병의 미래와 많은 부분에서 일치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2014년 개봉한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나 2016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고스트 워’(원제 Spectral) 같은 SF 전쟁영화는 미래 보병의 모습이나 발전방향 등을 논할 때 자주 언급되는 작품들이다. 그런데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무력 침공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미래 보병 전투체계의 효용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보병의 미래를 바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지금까지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국방 혹은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보병의 미래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최첨단 무기와 정보통신장비로 무장하고, 기동화된 소수정예 전사’로 정의해 왔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지속적인 국방예산 감축과 저출산 문제로 인한 전투병력 확보의 어려움이 가장 심각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저출산에 따른 인구절벽은 대부분 선진국에서 공통으로 겪는 문제이며, 인력 중심에서 기술 중심으로 군 구조를 변화시키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기도 하다.

그런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무력 침공 이후 양국 군 모두 병력 손실을 보충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전시 병력을 확보하고, 전투력을 유지하는 문제가 새롭게 대두됐다. 병력 부족 문제는 세계 최강을 자처하는 미군조차도 예외는 아니며, 과거와 같이 대규모 병력을 전시에 동원하는 것 역시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더욱이 단순한 숫자가 아닌, 각종 최첨단 무기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숙련된 전투병력의 확보는 전쟁 승패를 결정짓는 새로운 변수로 급부상하고 있다.


UH-60P 의무후송헬기로 부상병 후송훈련 중인 미 육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통해 장병의 생존이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면서 군진의료체계의 중요성 역시 새롭게 강조되고 있다. 출처=미 국방부 홈페이지
UH-60P 의무후송헬기로 부상병 후송훈련 중인 미 육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통해 장병의 생존이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면서 군진의료체계의 중요성 역시 새롭게 강조되고 있다. 출처=미 국방부 홈페이지


보병의 생존을 보장하라!

미국은 2030년대 실전 배치를 목표로 랜드 워리어(Land Warrior), 솔저 2025(Soldier 2025), 퓨처 포스 워리어(Future Force Warrior) 등 다양한 명칭의 미래 보병 전투체계 개발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프랑스·독일·영국 등도 미래 보병 전투체계의 실전 배치를 완료했거나 단계적 개량을 진행 중이다.

프랑스는 이미 2000년 미래 보병체계 시범운용을 완료하고, 현재 펠린(FELIN)으로 불리는 대보병통합데이터링크장비(Fantassin a Equipement et Liaisons Integres) 3만1455세트의 실전 배치를 완료했다. 이외에도 독일 육군의 IDZ(Infanterist der Zukunft), 영국 육군의 FIST(Future Integrated Soldier Technology), 이탈리아 육군의 SF(Soldato Futuro), 스위스 육군의 IMESS(Integriertes Modulares Einsatzsystem Schweizer Soldat), 이스라엘 국방군의 ANOG 혹은 IAS(Israel’s Integrated Advanced Soldier program), 싱가포르 육군의 ACMS(Advanced Combat Man System), 일본 육상자위대의 ACIES(Adanced Combat Infantry Equipmant System) 등 여러 형태의 차세대 보병 시스템이 개발 혹은 실전 배치 중이다.

이들 계획의 공통점은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병사 개개인의 전투력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궁극적으로는 미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문제는 적의 공격으로 병력 손실이 발생했을 경우 즉각적인 충원은 물론 숙련된 전투병력의 확보 역시 쉽지 않다는 것이다.


병력 부족에 고전하는 러시아군

러시아의 무력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중심으로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전황은 현재 지구전(War of Attrition) 혹은 소모전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다. 특히 여전히 ‘특수군사작전’이라고 부르며 러시아 스스로 손발을 묶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에서 전투 중인 러시아군의 병력 부족 문제는 심각한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 국방부 전략사령부 산하 국방정보국(Defence Intelligence)도 지난 5월 말 공개한 보고서에서 “우크라이나 무력 침공 이후 약 3개월 동안 러시아군 주요 전투부대의 병력 손실은 약 1만5000명으로 심각한 수준이며, 그 피해는 점점 더 가중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지난 3월 7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징집병을 우크라이나 전투에 투입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이후 러시아군의 병력 보충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결국 지난 5월 말 러시아 정부는 기존 18~40세의 러시아인과 18~30세의 외국인만 지원 가능했던 계약제 직업군인 모집 기준을 변경하는 특별조치를 단행했다.

한편 지난 8월 초 미국 CNN은 러시아 내의 많은 교도소에서 사면을 전제로 재소자 수천 명을 대상으로 한 불법적인 신병 모집이 이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가 죄수를 상대로 모병에 나선 것은 그간 누적된 러시아군의 인력 손실이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미 러시아는 부족한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내무군 같은 준군사조직이나 와그너그룹 같은 민간 군사기업을 우크라이나에 투입하는 상황이다.


예비군 적극 활용하는 우크라이나군

우크라이나군 역시 병력 부족 문제가 있지만, 예비군을 적극 활용해 러시아군보다는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지난 6월 29일, 미국 의회연구원이 발표한 ‘우크라이나군 전투력 평가와 전망(Ukrainian Military Performance and Outlook)’ 평가 보고서에서 우크라이나군의 예비군 활용과 그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먼저 미국 의회연구원은 우크라이나군의 효과적인 병력 운용, 그중에서도 숙련된 예비군 동원을 높이 평가했다. 지난 2월 24일 이후 우크라이나군은 즉시 예비군을 동원해 우크라이나 곳곳에서 러시아군의 침공을 효과적으로 저지했다. 예비군과 실전 경험이 있는 자원자들 덕분에 우크라이나군은 병력 운용에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었으며, 손실된 군 병력을 재충원하기 위한 신병교육훈련의 부담을 경감시킬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현재 자원자와 예비군들은 우크라이나 영토방위군(TDF)으로 편성돼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지원하는 각종 무기·군수품을 관리하는 것은 물론 정규군을 대신해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서 벌어지는 전투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모든 TDF가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일부 지역에서 TDF는 러시아군이 나타나자마자 무기를 버리고 전선을 이탈하기도 했으며, 일부는 잘못된 행동으로 러시아군의 드론에 노출돼 집중 포격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군 내에서 TDF는 사회적 경험을 바탕으로 매우 중요한 허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 폴란드·체코 등 주변국에서 지원하는 구소련제 장비를 능숙하게 다루는 것 역시 이들의 몫이다. 이들 덕분에 우크라이나군은 미국에서 지원하는 최신형 무기에 대한 신병들의 작동 교육과 훈련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최첨단 무기가 있어도 이를 다룰 수 있는 숙련 전투병력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사진은 FGM-148 재블린 대전차미사일 실탄 사격훈련 중인 미군. 출처=미 국방부 홈페이지
최첨단 무기가 있어도 이를 다룰 수 있는 숙련 전투병력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사진은 FGM-148 재블린 대전차미사일 실탄 사격훈련 중인 미군. 출처=미 국방부 홈페이지


생존성과 숙련된 전투병력의 확보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들이 야심 차게 추진 중인 미래 보병 전투체계에 대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보병의 생존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 우크라이나군 보병은 미국과 서방세계가 지원한 각종 대전차미사일로 러시아군의 주력 전차를 격파했고 상당한 전과를 올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장병의 희생이 있었다. 아무리 최첨단 무기와 통신장비로 무장한 미래 보병이라고 해도 위치가 노출되고 적 전차와 각종 화포, 심지어 지대지미사일의 공격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드론과 각종 센서로부터 미래 보병의 생존을 보장하는 위장기술이 미래 보병 전투체계에 추가될 전망이다.

생존이 미래 보병 전투체계에 새롭게 추가된 필수조건이라면 전투병력 부족 문제, 특히 숙련된 전투병력의 손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는 점도 중요한 문제다. 현재 가장 효과적인 대안은 상비군은 최소로 운용하는 대신 예비군을 적극 활용하는 방안이다.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절벽 문제는 우리나라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며, 러시아가 계약제 직업군인 모집 연령의 상한선을 폐지한 것을 단순히 웃어넘길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최첨단 무기의 유무 못지않게 21세기에도 여전히 인구가 국력이라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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