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군사 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

젊은 소비자들 ‘로컬’에 빠지다

입력 2022. 09. 07   18:24
업데이트 2022. 09. 07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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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에서 만나는 2022 트렌드 - 맥도날드가 보성 녹차밭을 찾은 이유
‘희소성’ 소비문화에서 중요한 가치
지역 정체성·스토리로 독특한 매력
직접 그곳에 가야만 경험…공간 한정적
콘텐츠 수준 향상·SNS 발달도 한몫
동네 사람들 간 소비생활 공유도 활발

 

맥도날드가 만든 ‘보성 녹돈 버거’ 광고.
맥도날드가 만든 ‘보성 녹돈 버거’ 광고.

“워메~ 징하게 맛있네!’

전남 보성의 녹차밭에서 햄버거를 크게 한 입 베어 문 할아버지 한 분이 ‘스르르 타령’을 부른다. ‘육즙이 스르르 녹아내린다’고 해서 ‘스르르 타령’이다.

이 광고는 맥도날드가 만든 ‘보성 녹돈 버거’ 광고의 한 장면이다. 최근 전성기를 다시 찾은 메뉴, 햄버거들 간의 ‘로컬’ 경쟁이 치열하다. 쉐이크쉑에서는 한정판 메뉴로 명인이 담근 씨간장을 소스로 활용한 ‘더 헤리티지 370’ 버거를 출시하여 다른 한정판 메뉴보다 1.5배 가까이 판매량을 올렸다. 맥도날드는 지난해 조기 품절 사태를 일으킨 ‘창녕 갈릭 버거’를 올해 재출시하기도 했다. 미국 문화의 상징인 햄버거가 한국의 맛을 찾아다닐 만큼 요즘 ‘로컬’은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프리패스로 통한다.

로컬은 꽤 오래전부터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로컬푸드’가 대표적인데, ‘고창 복분자 스무디’ ‘횡성 한우로 만든 조미료’처럼 친환경이나 몸에 좋은 것, 좋은 재료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유명 산지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반면, 최근 로컬은 전 국민이 다 아는 지역일 필요가 없다. 사람들이 모르는 지역일수록, 모르는 스토리가 숨어 있을수록 ‘힙(hip)함’의 상징이 된다.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볼 법한 것이 아니라 색다른 경험을 선사할 수 있는 콘텐츠로 요즘 소비자들에게 프리미엄이 되고 있는 것이다.

20대 사이에서 화제가 된 ‘DAEGU(대구) 티셔츠’
20대 사이에서 화제가 된 ‘DAEGU(대구) 티셔츠’

이마트24×청춘버스 273 컬래버 상품. 사진=이마트24
이마트24×청춘버스 273 컬래버 상품. 사진=이마트24

최근 로컬이 소비되는 현상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지역 정체성과 스토리로 독특함을 만드는 로컬 상품이다. 20대 사이에서 화제가 된 ‘DAEGU(대구) 티셔츠’도 그러한 예시이다. 대구에 위치한 스트리트 편집숍에서 기획한 한정판 티셔츠인데 커다랗게 ‘DAEGU’라는 영문이 적혀 있고 대구의 지역번호인 ‘053’을 디자인으로 살린 디테일도 포인트다. 와인·위스키와 함께 인기가 많아지고 있는 전통주 역시 생산 지역을 강조함으로써 지역 정체성을 표방한다.

한 잔을 마시더라도 특별함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전통주만 전문으로 구입할 수 있는 전통주 보틀숍도 등장했다.

로컬에는 도시 단위 지역만이 아니라 더 작은 단위도 해당한다. 예를 들면 대학가별 맛집 같은 것이다. 편의점 브랜드 이마트24는 대학가 명물 음식을 상품으로 기획한 일명 ‘청춘버스 273 프로모션’을 선보였다. ‘273’은 서울 시내버스 노선인데, 서울 소재 대학교 10곳 이상을 거치기 때문에 ‘비공식 스쿨버스’로 불린다.

이대 맛집 ‘빵낀과(빵 사이에 낀 과일)’와 협업한 ‘빵낀과 과일샌드’, 경희대 맛집 ‘여기가 좋겠네’와 협업한 ‘고기 떡볶이’ 등 총 6종이 기획상품으로 출시되었다.

실제 273번 버스를 타고 QR코드를 찍으면 할인쿠폰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색다른 경험을 상품에 녹여냈다.

시몬스 청담 그로서리 스토어. 사진=시몬스
시몬스 청담 그로서리 스토어. 사진=시몬스

로컬이 소비되는 두 번째 유형은 직접 ‘그곳에 가야만’ 할 수 있는 공간 한정적인 경험이다. 예를 들어, 파리바게뜨는 일부 지역에서만 한정 수량을 판매하는 지역별 샌드 시리즈를 만들었다. IT 기업이 밀집한 경기 성남시 판교에는 흔히 두뇌 회전에 좋다고 하는 호두를 활용한 ‘판교호감샌드’를, 제주에서는 제주 특산물인 우도 땅콩을 넣은 ‘제주마음샌드’를 판매하는 식이다. 제주마음샌드는 여행 기념품으로 인기를 얻으며 3년간 누적 1600만 개가 팔려나갔다.

먹거리 상품만이 아니라 공간 콘텐츠도 인기다. 대표적인 것이 침대회사 시몬스가 세운 ‘시몬스 청담 그로서리 스토어’라 하겠다. 청담동 후미진 골목에 위치한 3층짜리 단독 주택을 개조했는데 진짜 식료품(그로서리)을 파는 것은 아니고 우유갑에 든 쌀, 삼겹살 모양 수세미, 햄버거 상자에 든 메모지를 판다. 3층에는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제공하겠다는 브랜드의 기치에 맞게 정신적 편안함을 위한 ‘멍 때리기’를 실천할 수 있는 미디어 아트 전시를 운영 중이다. 강렬한 색감과 콘셉트로 인증놀이를 즐기는 MZ세대에게 ‘인스타성지’로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로컬 트렌드의 세 번째 유형은 ‘현지인’ 콘텐츠다. 이전에는 사람들이 서울 시내 몇 개의 주요 ‘핫’플레이스에 모여들었다면 지금은 동네의 ‘힙’플레이스를 찾아다닌다. 그 동네를 잘 아는 현지인의 추천은 아무나 쉽게 얻을 수 없는 만큼 귀한 정보로 통한다. 자칭 ‘로컬 큐레이터’인 성수동 주민이 운영하는 ‘제레의 뚝섬살이’ 인스타그램 계정은 팔로워가 4만2000명이 넘는다. 추천 맛집이나 새로 생긴 가게 등 성수동에서 벌어지는 일을 실시간으로 제보받아 업로드한다.

외부 방문객이 로컬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만이 아니라, 같은 동네 사람들 간의 소비생활 공유도 중요해지고 있다. 라이프스타일을 기반으로 한 느슨한 연대가 중요해지는 요즘, ‘동네’는 마치 취향처럼 강력한 구심점이 되는 것이다. ‘성수동 백과사전’은 맛집·병원 등을 비롯한 생활 정보를 나누는 오픈채팅방으로 이미 1500명이라는 최대 인원이 함께하고 있어 새로 입장이 불가능할 정도로 인기다.

이처럼 로컬 콘텐츠가 부상하는 이유는 점점 더 ‘희소성’이 중요한 가치가 되는 소비문화에 있다. 과거에는 대기업 제품 및 서비스로 ‘실패하지 않는’ 것, 유명 브랜드 상품을 ‘나도 한번’ 경험해보는 것이 중요했지만, 브랜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남과 같은 것의 매력이 크지 않다. 지금은 개인 자영업자들이 생산해내는 로컬 콘텐츠의 수준도 높아졌고 SNS 발달로 숨어 있던 매력도 널리널리 퍼질 수 있게 되면서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경험을 하는 것이 소비에서 훨씬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로컬로의 회귀는 반짝 유행이 아니라 큰 흐름으로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가 2019년 출시한 로컬 정보 플랫폼 ‘MY 플레이스’에서 활동하는 리뷰어가 3년 만에 1000만 명을 넘어섰다는 사실이 이러한 흐름을 잘 보여준다. ‘MY 플레이스’는 맛집뿐만 아니라 다양한 업종·테마별 장소에 대한 리뷰를 모아놓은 곳으로 자신이 방문한 곳의 리뷰를 남기는 것은 물론 내 취향과 맞는 리뷰어를 팔로우 하여 SNS 피드처럼 리뷰를 받아볼 수도 있다. 올봄에는 각 리뷰어들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전용 프로필 서비스도 시작하였는데, 반년 만에 100만 명 이상이 팔로우 관계를 맺었다고 한다. ‘지역성’이 소비문화에서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 권정윤은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에서 학·석·박사 학위를 마치고 현재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트렌드코리아』 시리즈의 공저자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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