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육군

[국방일보 기자가 간다] 육군11기동사단, 궤도장비 장거리 기동훈련

배지열

입력 2022. 08. 31   17:13
업데이트 2022. 08. 31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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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동과 소음 견디는 법은…
훈련 또 훈련
최악 조건 견뎌내는 법은…
안전 또 안전

국방일보 기자가 간다
⑫ 육군11기동사단, 궤도장비 장거리 기동훈련
 
대규모 훈련 시작 전 K2 전차 탑승
차체 오르는 과정부터 험난
동행하며 ‘흔들리는 불편함’ 체험
 
장병들 비 맞으면서 이동
기동력 발휘·전투수행 의지 높여
배후령 고개서 다음 기동 준비
젖은 몸 전차 열기로 녹이며 휴식도

 

강원도 일대에서 펼쳐진 육군11기동사단 백호대대 궤도장비 장거리 기동훈련에서 K2 전차 행렬이 터널을 통과하고 있다.
강원도 일대에서 펼쳐진 육군11기동사단 백호대대 궤도장비 장거리 기동훈련에서 K2 전차 행렬이 터널을 통과하고 있다.
본지 배지열(오른쪽) 기자가 K2 전차에 올라 헬멧을 건네받고 있다.
본지 배지열(오른쪽) 기자가 K2 전차에 올라 헬멧을 건네받고 있다.
기동훈련 중 휴식 시간에 K2 전차 궤도의 이상 여부를 살펴보는 백호대대원.
기동훈련 중 휴식 시간에 K2 전차 궤도의 이상 여부를 살펴보는 백호대대원.
장병들이 비에 젖은 몸을 K2 전차에서 나오는 열기로 녹이는 모습.
장병들이 비에 젖은 몸을 K2 전차에서 나오는 열기로 녹이는 모습.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유명 광고에서 활용돼 많은 사람의 뇌리에 남은 이 문구는 침대나 자동차 성능을 뽐낼 때 쓰인다. 잠잘 때 뒤척여도, 도로를 주행 중일 때도 흔들리지 않고 편안하게 쓸 수 있다는 의미다. 이 문구의 뜻을 뒤집어보자. ‘흔들리는 불편함’. 듣기만 해도 부정적인 느낌이 가득하다. 하지만 최전방 전선을 수호하고, 빠른 기동을 위해 전차·장갑차를 운용하는 장병들에게는 익숙한 단어다. 육군11기동사단 백호대대의 궤도장비 장거리 기동훈련에 동행하면서 장병들이 감수하는 ‘흔들리는 불편함’을 체험했다.

글=배지열/사진=조종원 기자


전차 탑승은 경험만…실제 기동은 장갑차로

전국 곳곳에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 30일 오전. 강원도 춘천시 인근 야산에서 백호대대 장병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들은 전날 주둔지인 강원도 홍천군을 출발해 약 90㎞를 달려왔다. 이날은 강원도 양구군까지 약 70㎞를 기동할 예정이다. K2 전차 20여 대와 K277 지휘용 장갑차 등 대대 전 장병과 장비가 움직이는 대규모 훈련이다.

기자는 기동훈련 시작 전 K2 전차에 탑승했다. 가까이서 전차를 올려다보자 긴장감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차체를 오르는 과정부터 험난했다. 궤도를 밟고 차체에 올라설 때도 위에서 누군가가 잡아줘야 했고, ‘밟지 마시오’라고 표기된 부분이 많아 어디를 디뎌야 하는지 가늠되지 않았다. 마치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듯 최정상까지 한참이 걸리는 느낌이었다.

전차가 기동할 때 장병들이 늠름하게 탑승해 있던 곳도 직접 보니 생각했던 모습이 아니라 당황스러웠다. 걸터앉을 수 있는 좌석이 아니라 철제 발판 위에 서 있어야 했다. 하지만 발판을 딛고 서서 주위를 바라보니 시원한 바람과 탁 트인 시야가 가슴을 울렸다. ‘이래서 전차를 타는 거구나’ 하고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전차에 올랐다는 기쁨도 잠시, 우의와 헬멧을 힘껏 때리는 빗방울은 전혀 반갑지 않았다. 이날 백호대대 장병들은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고, 거센 바람이 불며, 산악지역에 안개까지 껴 시야가 제한되는 최악의 조건에서 기동해야 했다.

기동훈련 중 기자는 K2 전차 대신 K277 지휘용 장갑차에 탑승했다. K2 전차에는 전차장·포수·조종수 등 3명이 탑승한다.

K2 전차 조종수로 3년간 복무 중인 윤장호 하사는 “조종수가 볼 수 없는 시야를 전차장이 보고 지시를 내리고, 포수도 사격 상황이 아닐 때는 주변 통제와 함께 전차의 눈이 돼야 한다”며 “‘내 생명 전차와 함께’라는 생각으로 전우가 다치지 않게 기동하는 게 우선”이라고 설명했다. 아쉽지만 이러한 안전상의 문제 등으로 장갑차에서 궤도장비가 기동하는 느낌을 체험했다.


진동·소음에 한동안 귀가 먹먹해

“출발하겠습니다.” 장갑차를 지휘하는 서용훈 중사의 한마디가 떨어지자 본격적으로 차체가 흔들렸다. 차체를 울리는 진동 때문에 탁자 위에 올려놓은 취재 수첩이 절로 움직이더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차체의 떨림이 온몸에 전해지는 승차감에 깜짝 놀란 것도 잠시, 전차가 기동하면서 내는 소음이 귓전을 때렸다. 출발 전에 서 중사가 건네준 무전기가 달린 헬멧을 쓰자 소음은 한결 덜했다. 하지만 무전이 잘 안 들릴 정도의 소음은 내내 계속됐다. 나중에 목적지에 도착해 하차하고 나서도 한동안 귀가 먹먹할 정도였다.

장갑차 뒤에 마련된 좌석에 앉으니 밖에서 안을 볼 수 없는 구조다. 내부에 있는 발판을 디딘 서 중사의 다리와 조종수 이정우 일병의 등 너머로 조금이나마 빛이 들어올 뿐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갑자기 내부가 캄캄해졌다. 터널에 진입한 것 같았다. 천장 구조물에 달린 랜턴과 전구를 켜니 그나마 빛이 생겼다.

궤도장비가 안전하게 기동하려면 전차장과 조종수가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한다. 기자가 탑승한 장갑차를 조종하는 서 중사와 이 일병은 지난 4월부터 호흡을 맞췄다. 무전기 너머로 들려오는 두 사람의 대화에서 애정과 신뢰가 묻어났다. 서 중사가 뒤에서 차가 달려오는 상황을 설명하고 차로를 변경해야 하는 타이밍을 알려주자, 그에 따라 이 일병의 손이 움직였다. 서 중사는 행렬이 잠깐 멈춘 틈에 이 일병에게 사탕을 건네면서 “줄 게 이거밖에 없다”며 ‘츤데레(무심한 척 챙겨주는 모습을 이르는 말)’ 같은 모습도 보였다. 이 일병은 “평탄한 길을 가면 솔직히 지루할 때도 있는데 그때마다 말도 걸어주시고, 많이 챙겨주셔서 감사하다”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밀폐된 공간의 특성 탓일까. 기자를 괴롭히던 소음과 진동도 어느새 익숙해지자 잠이 쏟아졌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몰던 차에서도 뒷좌석에서 머리만 닿으면 잠들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러던 중 깜빡 잠들었나 보다. 서 중사의 “기자님 괜찮으십니까”라는 무전에 번쩍 정신이 들었다.

행렬이 약 20㎞를 이동해 중간 휴식 지점인 배후령 고개에 도달했다. 정차 시에는 궤도에 고임목을 올려둬 비탈길에서 차량이 미끄러지는 사태에 대비했다. 장병들은 비를 맞으면서 이동해 흠뻑 젖은 몸을 전차 뒤편으로 나오는 열기로 녹이며 휴식을 취했다. 엔진오일과 미션오일 등을 주입하면서 다음 기동을 준비하는 모습도 보였다.

휴식을 취하는 동안 서 중사 옆에 앉아 궁금했던 질문을 쏟아냈다. K1 전차를 6년, K2 전차를 3년 탄 데다 장갑차까지 탑승한 그에게는 분명히 숨겨둔 비기가 있으리라. 진동과 소음을 효율적으로 견뎌내며 한 자세를 오래 유지하는 법, 화장실은 어떻게 참는지 등 ‘족보’처럼 내려오는 그런 노하우 말이다. 조용히 질문을 듣던 그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런 방법도 있겠지만, 정답은 없습니다. 그저 ‘훈련 또 훈련’하면서 익숙해지는 거죠.” 꼼수라도 부려보려 했던 몇 시간 전의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장비 우수성 확인…시민 호응에 ‘뿌듯’

대대는 이번 훈련을 앞두고 영외 도로 조종훈련 등으로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훈련 중에도 현장에서 긴급 노상 정비소를 운영하는 등 전시 정비능력 향상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강선호(대위) 중대장은 “이번 훈련으로 장비의 우수성을 확인했고, 승무원의 전투기량도 극대화했다”며 “종심 전투와 공세 기질이라는 기동사단 목적에 맞게 기동성을 갖추도록 훈련에 매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병들은 일반 도로를 달리는 경험을 쌓으면서 뿌듯함을 얻기도 했다. 좀처럼 보기 힘든 전차 행렬에 궂은 날씨에도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이 호응을 보냈기 때문이다. K2 전차장 정민교 중위는 “이동할 때 시민들이 손을 흔들어 주셨는데, 국민과 나라를 지키는 우리의 역할을 다시 한 번 상기했다”며 “최근 K2 전차가 수출되는 등 좋은 성능을 인정받고 있는데, 최일선에서 장비를 다루는 소대장으로서 막중한 사명감을 토대로 훈련에 임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대대는 1일 강원도 인제군을 거쳐 주둔지로 복귀한다. 기동 거리는 370㎞에 달한다. 기동사단 개편, K2 전차 전력화 이후 최초로 300㎞ 이상을 궤도장비가 기동하는 훈련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노유섭(중령·진) 백호대대장은 “독일의 하인츠 구데리안 장군이 ‘전차의 엔진도 주포만큼이나 강력한 무기다’라고 역설할 만큼 전차의 기동력은 중요하다”며 “이번 훈련은 기동사단의 전시 기동력과 장병들의 전투 수행 의지, 전차부대로서 자긍심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고 강조했다.


배지열 기자
조종원 기자 < alfflxj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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