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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남성 피고인을 국선변호 하게 됐다. 피고인은 사건 이후 갑자기 쓰러져 요양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나는 피고인과 상담하기 위해 그가 있는 요양병원으로 갔다. 병원 원무과 안내를 받아 피고인이 있는 810호 병실에 들어서니 6개의 침상이 있었고 모두 고요하게 누워 있었다. 다들 코에 음식과 물을 넣을 투명한 줄을 달고 있었고 대부분 80대나 90대로 보였다. 피고인에게 사건에 대해 물었지만,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고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 6명의 움직임 없는 사람들 속에서 한참 있었는데, 나는 그 방에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 계획이나 욕망대로 살지 않고 있는 상태. 존재 자체만이 의미 있는 상태. 그들은 이제 더 이상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되고 속박에서도 벗어난, 마치 꿈에서 깨어난 사람들로 보였다.
사람들은 욕망을 가지고 크고 작은 계획을 세운다. 나도 그렇다. 많은 것을 하지만 내가 원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을 때도 있다. 문득 내가 건강한 몸과 정신으로 이 욕망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맛집을 검색하며 시간을 보내던 나는 3일 단기로 단식원에 들어가기로 했다. 집에서 단식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음식을 만들면서 단식하기란 쉽지가 않을 것이란 생각에 단식원을 택했다.
단식원은 교외의 산 중에 있었고, 그곳에는 다양한 이유로 들어온 사람들이 있었다. 유니폼이 안 맞아서 단식원에 들어온 승무원, 술을 끊으려고 들어온 미술학원 강사,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과거의 몸매를 찾기 위해 들어온 여성과 동대문에서 옷가게를 한다는 40대 여성 등.
단식원에서는 매일 다른 입소자들과 함께 근처 수목원을 산책했다. 자연을 보면 그 안에 신이 있는 것 같다. 바람으로, 풍경으로, 햇살로, 비로, 꽃으로 나무로 나를 어루만져주고 쓰다듬어주는 느낌. 산책을 마치고 단식원으로 돌아와 따뜻한 감잎차를 마시면서 단식원 앞마당에서 풍욕을 했다. 단식원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이 고요해졌다.
어느 날은 단식원에 들어온 지 10일이 다 돼간다는 여성 2명이 검정 비닐봉지를 들고 마당으로 나와서 나에게 “쑥 캐러 갈래요?”라고 했다. 이 산골에서 쑥을 캐다니, 너무 신나고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아 흔쾌히 따라나섰다. 길을 걸으면서 텃밭을 가꾸고 있는 할머니에게 지금 뜯으시는 풀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이것은 아욱, 이것은 머위…. 우리는 이보다 더 진지할 수 없을 정도로 경청했다. 그것은 자연과 식물에 관한 관심이라기 보다는 식탐에서 우러나온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쑥을 캐지 못하고 돌아왔다. 단식으로 기력이 없어진 일행들은 쑥을 잡고 앉았다가 일어설 때 휘청거리며 신음했다. 결국 한번 앉으면 일어설 수 없다는 이유로 쑥은 캐지 못하고 돌아왔다.
프로그램에 따라 요가수업도 했다. 단순히 팔을 들고 터는 동작만으로도 한숨과 신음 소리가 났고, 요가 선생님이 한쪽 다리라도 올리라고 하면 아비규환이었다. 힘들기도 했지만, 단식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단식 내내 땅콩 한 알, 두부 한 조각만 먹어 봤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단식 중 녹여 먹던 죽염 몇 알은 나에게 신세계를 선사해 주었다. 3일밖에 되진 않지만 내가 단식으로 얻은 것은, 욕망을 제어해본 경험으로 얻은 자신감이다. 그리고 자연에서 난 음식 재료들의 맛을 더 잘 느끼게 되었다는 점이다. 카레를 하기 위해 당근을 썰다 한 조각 입에 넣어 씹어보면 당근이 이렇게 맛있었던가 싶다. 이후 요양병원 810호에 누워 있던 피고인 재판이 있던 날, 단식결단의 씨앗이 되어 준 그는 여전히 그곳에 누워 있었고, 나 혼자 법정에 갔다. 그는 꿈에서 깨어났고, 나는 여전히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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