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경계작전 속 매일 교육·훈련 ‘담금질’
긴장의 연속인 소초 임무…충분한 휴식 필수
“장병들 사기 올리자” 북카페·노래방 설치도
비무장지대, DeMilitarized Zone, DMZ, 非武裝地帶. 여러 나라의 말로 풀이해도 비무장지대(DMZ)는 군사활동을 막기 위해 무장을 금지한 구역을 뜻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DMZ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이 품은 아픔인 동시에 희망의 상징이기도 하다.
한때 ‘미지의 땅’이라고 불렸었다. 혹자는 ‘지구 상에서 가장 무서운 곳’이라며 치를 떨기도 했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자연의 보고(寶庫)’라며 경외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때로는 대립의 상징이, 때로는 화합의 장이 됐다. 그렇게 69년 동안 DMZ에 붙은 수식어는 시시각각 변해갔다.
이제 DMZ는 더는 낯선 땅이 아니다. 판문점과 공동경비구역(JSA)을 비롯한 일부 지역은 국민의 견학이 가능해졌고, 직접 가보지 못하더라도 이미 수많은 사진·영상을 통해 DMZ는 베일을 하나둘 벗은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MZ는 여전히 우리가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할 장소인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가 지키고 있는 이곳이 우리에게 주는 수많은 함의와 현실을 느끼며 내일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2015년 ‘DMZ 동서횡단- 냉전을 넘어 희망을 보다’ 기획시리즈 이후 7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이번 기획 시리즈는 DMZ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춘다.
DMZ를 지키는 사람들이 느끼는 저마다 다른 감정 속에서 DMZ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기 위함이다. 앞으로 국방일보는 1년 동안 매달 DMZ 동쪽에서 서쪽 끝을 누비며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볼 계획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작은 축선의 중앙, 강원도 철원군의 GOP부대인 육군6보병사단 개천돌진대대 ○○소초다.
글=맹수열/사진=조용학 기자
GOP, 비무장지대의 시작을 지키다
DMZ는 1953년 7월 27일 유엔군과 공산군 측이 맺은 정전협정에 의해 생성된 구역이다. 정전협정은 한반도에 수많은 선을 만들어냈다.
한반도 동서 155마일(약 248㎞)을 따라 군사분계선(MDL)이 그어졌고, 이를 중심으로 남북 양쪽으로 각각 2㎞ 떨어진 거리에 북방한계선(NLL)과 남방한계선(SLL)이 생겨났다. NLL과 SLL 사이 길이 155마일, 너비 4㎞의 군사적 완충지대, 우리가 흔히 DMZ로 부르는 비무장지대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DMZ는 원칙적으로 남북이 공동으로 영유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법에 따라 이곳을 관장·관리하는 기구는 유엔군과 공산군 대표로 구성된 군사정전위원회다. 이런 기묘한 구조로 인해 DMZ 안에는 원칙적으로 군 병력이 상주할 수 없다. DMZ 안 초소(GP)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장병들이 ‘민정경찰’이라는 마크를 달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여정의 시작을 GP가 아닌 GOP로 설정한 것 역시 이런 까닭에서다. 민정경찰 마크를 달지 않은, 우리 군이 공식적으로 지키고 있는 최전방의 부대가 바로 GOP 부대이기 때문이다. GOP 부대들은 69년째 DMZ를 내려다보며 ‘수호(守護)의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아는 것처럼 정전협정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사건이 아니었다. 1951년 7월 10일 개성 내봉장에서 시작된 정전협정은 2년이 넘는 지루한 시간 동안 159회 본회담, 179회 분과위원회 회담, 188회 참모장교 회담, 238회 연락장교 회담 등 764회 회담이 낳은 산물이다. 이 기간 협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전투가 이어졌고, 그만큼 많은 목숨이 스러져갔다. 특히 철원은 1952년 10월 백마고지전투 등 큰 전투가 끊이지 않던 중부전선의 요충지였다. DMZ 동서 횡단에 앞서 DMZ의 한가운데, 최고 격전지인 철원을 방문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전통에 대한 자부심, 최전방 수호로 이어져
현재 철원 지역 최전방에는 여러 부대가 상주하고 있다. 그중에서 우리가 방문한 육군6보병사단은 6·25전쟁 당시 전군 최다 전투(154회), 최다 적 사살(9만여 명), 압록강 진격 등 수많은 전공을 세운 부대로 유명하다. 부대의 역사를 오롯이 담은 푸른 육각별 마크에 대한 장병들의 자부심 역시 대단했다.
“사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철원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6사단이 어떤 부대인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GOP 경계 임무를 수행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부대의 역사에 스며들어 갔죠. 대한민국의 최전방 요충지를 지키고 있다는 긍지는 매일 제가 철책을 오르내릴 수 있게 하는 힘입니다.” 부산이 고향인 한동윤 상병은 무거운 장비와 방탄조끼를 착용하고도 지친 기색 없이 고지를 오르며 이렇게 말했다.
일부 해안 지역이 있기는 하지만 DMZ의 대부분은 험준한 산지로 구성돼 있다. ○○소초 역시 굽이진 능선을 따라 세워진 철책을 담당하고 있다.
GOP의 임무는 GP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수색’과 ‘경계’라는 두 축 가운데 GOP 장병들이 맡은 것은 경계. 이들을 ‘최전방 수호병’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런 임무 특성에 기인한다. 2019년 폐지된 입영제도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이들을 최전방 수호병으로 부르며 휘장을 수여하고 있다. GOP 경계 임무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다.
○○소초 장병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막중한 임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송지홍(중위) 소초장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경계 작전 속에서도 매일 교육·훈련을 계속하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끊임없는 교육·훈련, GOP 완전작전의 바탕
기자가 소초를 방문한 지난 14일 역시 송 소초장을 중심으로 한 교육·훈련은 계속됐다. 작전지역 지도를 펼쳐놓은 송 소초장은 장병들에게 여름철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조치 요령을 교육했다. 일방적인 소초장의 교육이 아닌 토론 형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점에 눈길이 갔다.
장병들은 소초장이 제시한 상황에 맞춰 자신이 어떤 임무를 수행해야 할지 스스로 발표를 이어갔다.
“지금은 물론 광망을 통한 과학화 경계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과거보다 조금은 몸이 편해진 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적은 언제, 어디서든 내 앞으로 올 수 있죠. 사소한 디테일이 경계작전의 완성도를 좌우한다는 신조로 매일 교육 내용을 숙지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교육을 마친 조규형 상병의 말이다.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진 장병들은 곧바로 상황조치 훈련에 돌입했다. 훈련을 이끄는 이는 역시 송 소초장. 광망 절단 상황을 가정한 장병들은 즉시 군장을 갖추고 상황실로 뛰어들어가 총기를 받았다. 송 소초장의 지휘에 따라 총기 안전을 확인하고 게이트를 거쳐 현장으로 달려나가는 장병들의 움직임에는 군더더기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평소 이들이 얼마나 훈련에 매진하고 있는지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20여 분 만에 모든 조치를 마친 뒤 돌아가는 길. 전입 온 지 2주 됐다는 원호섭 이병은 “현장으로 달려나갈 때마다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면서도 “소초장과 선임들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두려움을 떨치고 작전에 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긍지와 자부심 속에서 수호 의지를 읽다
세상과 단절된 공간 같지만, GOP 역시 사람 사는 곳임은 다르지 않다. ○○소초의 일과는 보통 교육·훈련과 철책 점검의 반복이다.
소초는 힘든 임무가 이어지는 만큼 장병들의 충분한 휴식 보장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장병들은 작은 노래방, 북카페 등에서 시간을 보내며 피로를 씻어냈다. 간이 운동기구를 설치하고 몸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이들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최전방 부대는 열악하다’는 세간의 인식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여러 복지 정책의 수혜를 입으며 GOP 부대 역시 아늑한 시설을 누릴 수 있게 됐다.
특히 휴대전화 사용이 허용되면서 장병들의 만족도와 사기가 크게 올랐다고 한다.
최전방수호병 제도는 사라졌지만, GOP 부대 장병 대부분은 스스로 자원해서 온다고 한다. 이날 부대에 전입 온 김윤찬·노현민 이병 역시 마찬가지.
두 사람은 “GOP 근무는 살면서 경험하기 힘든 일”이라면서 “한 번뿐인 군 생활 기간을 보다 멋지게 보내기 위해 GOP 부대에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소초의 하루는 밤새 계속됐다. 쉽게 훼손되지는 않는다지만 혹시 모를 철책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출동하는 야간 전투준비조, 0시부터 5시간 동안 철책 너머 불모지를 감시해야 하는 경계 임무, 새벽이면 어김없이 순찰을 도는 소초장, 다시 시작되는 아침을 준비하기 위한 철책 점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지치지 않는, 지칠 수 없는 이유는 대한민국 최전방을 사수한다는 긍지와 책임감이었다. 늦은 밤 장병들과 함께 철책을 돌며 ‘수호’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연중 기획 다시, DMZ] 야간전투 준비… 경계… 순찰… 다시 아침을 준비하는 철책 점검
맹수열
입력
2022.
07.
26
17:09
업데이트
2022.
09.
27
14:46
정전협정 특집 연중 기획 '다시, DMZ'
① 철원-육군6보병사단
지치지 않는 낮·지칠 수 없는 밤… 6·25전쟁 전군 최다 전투와 적 사살 공로
GOP 경계 임무 '최전방 수호병' 푸른 육각별 마크 자부심도 대단
끝없는 경계작전 속 매일 교육·훈련 ‘담금질’
긴장의 연속인 소초 임무…충분한 휴식 필수
“장병들 사기 올리자” 북카페·노래방 설치도
비무장지대, DeMilitarized Zone, DMZ, 非武裝地帶. 여러 나라의 말로 풀이해도 비무장지대(DMZ)는 군사활동을 막기 위해 무장을 금지한 구역을 뜻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DMZ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이 품은 아픔인 동시에 희망의 상징이기도 하다.
한때 ‘미지의 땅’이라고 불렸었다. 혹자는 ‘지구 상에서 가장 무서운 곳’이라며 치를 떨기도 했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자연의 보고(寶庫)’라며 경외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때로는 대립의 상징이, 때로는 화합의 장이 됐다. 그렇게 69년 동안 DMZ에 붙은 수식어는 시시각각 변해갔다.
이제 DMZ는 더는 낯선 땅이 아니다. 판문점과 공동경비구역(JSA)을 비롯한 일부 지역은 국민의 견학이 가능해졌고, 직접 가보지 못하더라도 이미 수많은 사진·영상을 통해 DMZ는 베일을 하나둘 벗은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MZ는 여전히 우리가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할 장소인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가 지키고 있는 이곳이 우리에게 주는 수많은 함의와 현실을 느끼며 내일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2015년 ‘DMZ 동서횡단- 냉전을 넘어 희망을 보다’ 기획시리즈 이후 7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이번 기획 시리즈는 DMZ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춘다.
DMZ를 지키는 사람들이 느끼는 저마다 다른 감정 속에서 DMZ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기 위함이다. 앞으로 국방일보는 1년 동안 매달 DMZ 동쪽에서 서쪽 끝을 누비며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볼 계획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작은 축선의 중앙, 강원도 철원군의 GOP부대인 육군6보병사단 개천돌진대대 ○○소초다.
글=맹수열/사진=조용학 기자
GOP, 비무장지대의 시작을 지키다
DMZ는 1953년 7월 27일 유엔군과 공산군 측이 맺은 정전협정에 의해 생성된 구역이다. 정전협정은 한반도에 수많은 선을 만들어냈다.
한반도 동서 155마일(약 248㎞)을 따라 군사분계선(MDL)이 그어졌고, 이를 중심으로 남북 양쪽으로 각각 2㎞ 떨어진 거리에 북방한계선(NLL)과 남방한계선(SLL)이 생겨났다. NLL과 SLL 사이 길이 155마일, 너비 4㎞의 군사적 완충지대, 우리가 흔히 DMZ로 부르는 비무장지대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DMZ는 원칙적으로 남북이 공동으로 영유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법에 따라 이곳을 관장·관리하는 기구는 유엔군과 공산군 대표로 구성된 군사정전위원회다. 이런 기묘한 구조로 인해 DMZ 안에는 원칙적으로 군 병력이 상주할 수 없다. DMZ 안 초소(GP)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장병들이 ‘민정경찰’이라는 마크를 달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여정의 시작을 GP가 아닌 GOP로 설정한 것 역시 이런 까닭에서다. 민정경찰 마크를 달지 않은, 우리 군이 공식적으로 지키고 있는 최전방의 부대가 바로 GOP 부대이기 때문이다. GOP 부대들은 69년째 DMZ를 내려다보며 ‘수호(守護)의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아는 것처럼 정전협정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사건이 아니었다. 1951년 7월 10일 개성 내봉장에서 시작된 정전협정은 2년이 넘는 지루한 시간 동안 159회 본회담, 179회 분과위원회 회담, 188회 참모장교 회담, 238회 연락장교 회담 등 764회 회담이 낳은 산물이다. 이 기간 협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전투가 이어졌고, 그만큼 많은 목숨이 스러져갔다. 특히 철원은 1952년 10월 백마고지전투 등 큰 전투가 끊이지 않던 중부전선의 요충지였다. DMZ 동서 횡단에 앞서 DMZ의 한가운데, 최고 격전지인 철원을 방문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전통에 대한 자부심, 최전방 수호로 이어져
현재 철원 지역 최전방에는 여러 부대가 상주하고 있다. 그중에서 우리가 방문한 육군6보병사단은 6·25전쟁 당시 전군 최다 전투(154회), 최다 적 사살(9만여 명), 압록강 진격 등 수많은 전공을 세운 부대로 유명하다. 부대의 역사를 오롯이 담은 푸른 육각별 마크에 대한 장병들의 자부심 역시 대단했다.
“사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철원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6사단이 어떤 부대인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GOP 경계 임무를 수행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부대의 역사에 스며들어 갔죠. 대한민국의 최전방 요충지를 지키고 있다는 긍지는 매일 제가 철책을 오르내릴 수 있게 하는 힘입니다.” 부산이 고향인 한동윤 상병은 무거운 장비와 방탄조끼를 착용하고도 지친 기색 없이 고지를 오르며 이렇게 말했다.
일부 해안 지역이 있기는 하지만 DMZ의 대부분은 험준한 산지로 구성돼 있다. ○○소초 역시 굽이진 능선을 따라 세워진 철책을 담당하고 있다.
GOP의 임무는 GP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수색’과 ‘경계’라는 두 축 가운데 GOP 장병들이 맡은 것은 경계. 이들을 ‘최전방 수호병’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런 임무 특성에 기인한다. 2019년 폐지된 입영제도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이들을 최전방 수호병으로 부르며 휘장을 수여하고 있다. GOP 경계 임무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다.
○○소초 장병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막중한 임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송지홍(중위) 소초장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경계 작전 속에서도 매일 교육·훈련을 계속하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끊임없는 교육·훈련, GOP 완전작전의 바탕
기자가 소초를 방문한 지난 14일 역시 송 소초장을 중심으로 한 교육·훈련은 계속됐다. 작전지역 지도를 펼쳐놓은 송 소초장은 장병들에게 여름철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조치 요령을 교육했다. 일방적인 소초장의 교육이 아닌 토론 형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점에 눈길이 갔다.
장병들은 소초장이 제시한 상황에 맞춰 자신이 어떤 임무를 수행해야 할지 스스로 발표를 이어갔다.
“지금은 물론 광망을 통한 과학화 경계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과거보다 조금은 몸이 편해진 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적은 언제, 어디서든 내 앞으로 올 수 있죠. 사소한 디테일이 경계작전의 완성도를 좌우한다는 신조로 매일 교육 내용을 숙지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교육을 마친 조규형 상병의 말이다.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진 장병들은 곧바로 상황조치 훈련에 돌입했다. 훈련을 이끄는 이는 역시 송 소초장. 광망 절단 상황을 가정한 장병들은 즉시 군장을 갖추고 상황실로 뛰어들어가 총기를 받았다. 송 소초장의 지휘에 따라 총기 안전을 확인하고 게이트를 거쳐 현장으로 달려나가는 장병들의 움직임에는 군더더기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평소 이들이 얼마나 훈련에 매진하고 있는지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20여 분 만에 모든 조치를 마친 뒤 돌아가는 길. 전입 온 지 2주 됐다는 원호섭 이병은 “현장으로 달려나갈 때마다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면서도 “소초장과 선임들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두려움을 떨치고 작전에 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긍지와 자부심 속에서 수호 의지를 읽다
세상과 단절된 공간 같지만, GOP 역시 사람 사는 곳임은 다르지 않다. ○○소초의 일과는 보통 교육·훈련과 철책 점검의 반복이다.
소초는 힘든 임무가 이어지는 만큼 장병들의 충분한 휴식 보장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장병들은 작은 노래방, 북카페 등에서 시간을 보내며 피로를 씻어냈다. 간이 운동기구를 설치하고 몸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이들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최전방 부대는 열악하다’는 세간의 인식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여러 복지 정책의 수혜를 입으며 GOP 부대 역시 아늑한 시설을 누릴 수 있게 됐다.
특히 휴대전화 사용이 허용되면서 장병들의 만족도와 사기가 크게 올랐다고 한다.
최전방수호병 제도는 사라졌지만, GOP 부대 장병 대부분은 스스로 자원해서 온다고 한다. 이날 부대에 전입 온 김윤찬·노현민 이병 역시 마찬가지.
두 사람은 “GOP 근무는 살면서 경험하기 힘든 일”이라면서 “한 번뿐인 군 생활 기간을 보다 멋지게 보내기 위해 GOP 부대에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소초의 하루는 밤새 계속됐다. 쉽게 훼손되지는 않는다지만 혹시 모를 철책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출동하는 야간 전투준비조, 0시부터 5시간 동안 철책 너머 불모지를 감시해야 하는 경계 임무, 새벽이면 어김없이 순찰을 도는 소초장, 다시 시작되는 아침을 준비하기 위한 철책 점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지치지 않는, 지칠 수 없는 이유는 대한민국 최전방을 사수한다는 긍지와 책임감이었다. 늦은 밤 장병들과 함께 철책을 돌며 ‘수호’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