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화랑탐방기

그곳 마당에는 대구 현대미술의 자부심이 있다

입력 2022. 07. 26   17:10
업데이트 2022. 07. 26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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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보다, 품다, 화랑탐방기 - 갤러리신라(상)
국내 유일 개념미술·미니멀아트
개관 30주년 맞은 기념전서 조명
이광호 대표 “이윤보다 품격” 소신
화랑이자 미술관 역할도 맡아
사방팔방 미술인 모이는 플랫폼 역할

 

갤러리신라 전시장 전경.  사진=갤러리신라
갤러리신라 전시장 전경. 사진=갤러리신라

갤러리신라 개관 30주년 기념전 2부 전시에 참여한 작가 니엘 토로니.  사진=갤러리신라
갤러리신라 개관 30주년 기념전 2부 전시에 참여한 작가 니엘 토로니. 사진=갤러리신라

해방 전 우리나라의 3대 도시는 서울, 대구, 평양이었다. 근대미술의 3대 도시도 마찬가지다. 평양은 일찍 개화했다. 한국의 근현대미술사를 장식하는 평양 출신 화가는 무수히 많다. 한국 서양화 개척자인 김관호(1890~1959)를 위시해 김찬영, 이종우, 박고석, 황유엽, 김병기, 황염수 등이 있다.

서울에 이어 제2의 도시였던 대구는 서병오(1862~1935) 등 전통적인 서화가가 많았다. 그리고 근대미술 작가인 이인성(1912~1950), 이쾌대(1913~1965)를 비롯해 서세옥, 곽인식, 김구림, 이강소, 박현기 등 현대미술가들을 배출했다.

이처럼 미술문화가 일찍부터 꽃을 피운 대구에는 화랑이 많다. 주로 봉산문화회관이 있는 중구 봉산동 문화의 거리에 몰려 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동원화랑, 국내외 유명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우손갤러리가 대표적인 화랑이다.

봉산동에서 1㎞쯤 떨어진 중구 대봉동에는 주로 현대미술을 다루는 화랑이 몰려 있다. 대봉동의 갤러리신라는 올해로 개관 30주년을 맞았다. 30년 전 이 화랑이 문을 열었을 때 참여한 작가는 현재 세계적으로도 각광받고 있는 박서보, 이강소, 이우환, 김창열, 윤형근 등이다.

올해 3월 이들 작가의 작품으로 30주년 기념전 1부 전시를, 5월엔 갤러리신라에 전시했었던 해외 작가들의 작품으로 2부 전시를 열었다. 2부 전시명은 ‘아이디어와 미니멀아트’다. 전시명에서 알 수 있듯이 갤러리신라는 국내에선 유일하고, 아시아에서도 매우 드문 개념미술과 미니멀아트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화랑이다. 개념미술과 미니멀아트는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미술이다. 전문가들도 이해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30년간이나 화랑을 지속할 수 있었던 건 이광호(1955~ ) 대표의 현대미술에 대한 소신과 집념 덕분이다.

2부 참여 화가는 도널드 저드, 구와야마 다다아키, 게르하르트 리히터, 로버트 배리, 앨런 찰턴, 프레드 샌드백, 마에다 노부아키, 마루야마 도미유키, 이미 크뇌벨, 스즈키 다카시, 스가 기시오, 미모 로젤리, 레슬리 폭스크로프트, 프랑수아 리스토리, 리처드 롱, 니콜라 샤르동, 리처드 세라, 니엘 토로니 등 미술계에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세계적인 작가들이다.

이들 중에서 구와야마 다다아키(1932~, 미국 뉴욕), 앨런 찰턴(1948~, 영국 런던), 마에다 노부아키(1949~, 일본 구마모토), 마루야마 도미유키(1956~, 일본 나가노), 스즈키 다카시(1957~, 일본 도쿄), 스가 기시오(1944~, 일본 이토), 미모 로젤리(1952~, 이탈리아 토스카나), 레슬리 폭스크로프트(1949~, 영국 셰필드), 니엘 토로니(1937~, 프랑스 파리) 등은 갤러리신라 전시를 위해 대구를 방문·체류했다. 개념미술가 로버트 배리는 평론가 로버트 모건(1943~, 미국 뉴욕)을 대신 보내 전시를 진행하게 했다.

대구 방문이 첫 방한인 외국 화가도 많았다. 이들은 대구에 머무는 동안 계명대, 경북대, 갤러리신라 등에서 강연하거나 대구지역 작가들과 교류하는 시간을 가졌다. 설치작업의 경우 전시현장에서 작품을 제작해야 하므로 대부분 재료를 대구에서 구해야 한다. 작가의 일을 도와줄 조수도 필요하다. 조수로 대구시내의 미대 학생 혹은 젊은 작가들이 동원됐다. 세계적인 작가와 일주일 이상 함께 일하다 보면 배우는 게 많을 수밖에 없다.

일본 현대미술의 대표적 미술운동인 모노하(物派)의 작가 스가 기시오는 전시를 위해 3주나 대구에 머물렀다. 조수가 된 미대 학생들은 자신들의 작품 포토폴리오를 들고 가 스가에게 고견을 청했다. 스가는 작품에서 좋은 점만을 지적해 주며 격려했다. 젊은 작가들에게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있겠는가.

작가들은 작가들대로 근처 경주를 관광하거나 대구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인 서문시장을 찾아 한국인의 삶을 관찰했다. 대구시내에 있는 토속음식을 즐기며 한국을 이해하려 했다. 스가는 봉덕시장에서 막걸리에 돼지국밥을 즐겼다. 일본라멘 위에 얹는 차슈 비슷한 한국의 돼지고기 수육을 좋아했다. 스위스 출신으로 파리에서 활동하는 니엘 토로니는 포도 증류주인 그라파를 좋아했다. 대구에서 한국의 소주를 처음 맛본 토로니는 소주가 그라파 못지않게 맛있다며 식사 때마다 소주를 찾았다. 그는 한국을 사랑하는 팬이 돼 프랑스로 돌아간 뒤에도 파리에서 한국의 젊은 유학생들이 여는 전시는 꼭 찾아가 격려를 해 주고 있다.

갤러리신라는 대구상고 교장의 사택 터였다. 대개 화랑은 빌딩만 있거나 빌딩의 일부 공간을 사용하는데, 갤러리신라는 독립된 건물과 더불어 넓은 마당을 갖췄다. 심하게 추운 날이 아니면 갤러리신라의 오프닝 리셉션은 커다란 은행나무가 서 있는 갤러리 마당에서 열린다. 갤러리신라가 경영하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서빙으로 진행되는 오프닝 리셉션은 품격이 매우 높다. 와인을 마시며 전시 작가, 대구의 미술인, 서울에서 온 미술인들이 모여 인사와 대화를 나눈다. 갤러리신라 마당은 사방팔방 미술인들이 모이는 플랫폼이 된다. 대구의 미술인들은 서울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세계적인 작가·평론가들을 대구에서 만나 그들과 식사를 하고 대화도 나누는 행운을 누리며 산다.

대구는 ‘대구현대미술제’(1974~1979)라는 전국적인 규모의 현대미술 행사를 개최했다. 그 당시로는 유일무이한 전국적인 아방가르드 미술행사였다. 이 연례행사를 모델로 삼아 나중에 서울에서 ‘에꼴드 서울’ 같은 현대미술전이 생겨났다. 그래서 대구는 현대미술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시민들의 미술에 대한 안목도 높다.

미술대학은 숫자도 많고 수준이 높다. 경쟁력 있는 화가가 많다. 미술품 거래량도 적지 않다. 이런 배경의 대구지만 대구미술관은 2011년이 돼서야 개관했다. 그 빈자리를 오랫동안 갤러리신라가 대신했다. 갤러리신라는 말이 화랑이지 실제로는 미술관 역할도 담당했어야 했다. 이윤을 따져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판매는 부진하나 정신성이 높은 작품으로 구성된 고품격의 전시들을 해 왔다. 경제적으로는 타격이 컸지만, 덕분에 국제적인 평판은 상당히 높아졌다. 해외 일류작가들이 앞다퉈 갤러리신라에서 전시를 하고 싶어 한다.


필자 황인 미술평론가는 1980년대 후반 현대화랑에서 일하면서 지금은 거의 작고한 대표적인 화가들을 많이 만났다. 전시기획과 공학과 미술을 융합하는 학제 간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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