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선형으로 뱅글뱅글 돌아가며 건물의 최상층까지 올라가는 길의 구조를 가진 인사동 건물 쌈지길 전경.
사진=한국관광공사
인사동에서 창업한 화랑들이 많았으나 대부분 인사동을 떠났다. 1970년 인사동에서 개관한 현대화랑은 일찌감치 1975년에 삼청동으로 떠나 훗날 화랑들의 삼청동 시대를 여는 초석이 되었다. 국제화랑은 1980년대 후반에, 학고재는 2000년대 후반에 삼청동으로 이전했다. 가나아트센터도 평창동으로 확장했다.
인사동을 개관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지키고 있는 화랑은 선화랑이다. 선화랑은 창업주 김창실에 의해 1977년에 종로구 인사동 184번지, 현재의 위치에 개관했다.
1979년부터 1992년까지 계간 미술잡지 『선미술』을 발행했다. 당시는 미술잡지 발행이 힘들었다. 국내에 미술 인구가 적어서다. 글 쓸 필자도, 잡지를 사 볼 독자도 다 적었다.
당연히 제작단가가 올라갔다. 미술잡지를 만들면 적자가 났는데 이를 화랑이 그림을 팔아 보전했다. 1973년부터 계간 미술잡지 『화랑』을 발행한 현대화랑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미술잡지로는 중앙일보에서 발행하는 『계간미술』, 건축설계회사인 공간에서 발행하는 종합예술지 월간 『공간』 등이 있었다.
『공간』 은 주로 건축을 다루었는데 이 속에 음악, 무용, 미술 파트가 포함되어 있었다.
국내의 미술인들은 일본에서 발행되는 월간 『미술수첩』을 더 열심히 볼 때였는데, 국내 작가의 작품세계는 서로 정보교환이 잘 안 되었다.
이를 화랑의 자본력이 어느 정도 해결해주었다. 제1대 국립미술관 학예실장을 지낸 유준상,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유명한 명지대 석좌교수 유홍준, 안동대 교수 서성록 등 여러 평론가가 ‘선미술’에서 일했다.
선화랑의 대표작가로는 김형근, 곽훈, 이숙자, 김병종 등이 있다. 마르크 샤갈, 앙투안 부르델, 마리노 마리니, 사진그룹 매그넘 등 외국작가들의 전시도 많이 열었다.
1984년에는 젊은 작가 육성을 위한 ‘선미술상’도 제정해 황인기 등 22명의 수상 작가를 배출했다.
선화랑 개관 45주년 기념전으로 2022년 6월 9일부터 7월 16일까지 80대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작품활동 중인 추상화가 곽훈의 전시회가 열렸다.
인사동길에는 이색적인 6층짜리 건물이 있다. 가나아트센터가 모체인 인사아트센터다. 프랑스의 건축가 장미셸 빌모트가 설계했다. 건물 전면은 3층 높이의 가벽이다.
이 가벽을 통과하여 대나무가 양옆으로 늘어선 나무계단을 오르면 건물의 출입구가 나타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와 지상 6층을 오르내릴 수가 있다.
꼭대기에 올라가면 인사동이 다 내려다보인다. 건물 전체가 전시장인데 여러 전시가 동시에 열린다. 모두 대관전시다. 인사아트센터 안에는 지방자치단체 혹은 미술관이 운영하는 전시공간이 따로 있다. 2017년에는 부산갤러리가, 2020년에는 경남갤러리가 문을 열었다. 2021년에 개관한 G&J 갤러리는 광주와 전남도립미술관에서 운영한다.
2011년에 개관한 ‘인사아트센터JMA’는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운영한다. 내 고향 출신으로 활동하는 미술작가는 누구인가를 알고 싶으면 인사아트센터로 가면 된다.
인사아트센터의 맞은편은 2004년에 문을 연 쌈지길이다. 중정(中庭)이 있는 거대한 건물이다. ‘길’이라고 명명한 건 나선형으로 뱅글뱅글 돌아가며 건물의 최상층까지 올라가는 길의 구조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꼭대기에 오르면 인왕산과 북악산을 품은 서울이 원경으로 잡힌다.
쌈지길은 2005년에 문을 연 일본 도쿄 오모테산도의 오모테산도힐즈와 같은 구조다. 오모테산도힐즈는 1927년에 세워진 바우하우스식 건물인 ‘도준카이 아오야마 아파트’ 자리에 섰다. 역사적인 건물이라 그 흔적을 일부 남겨두었다. 인사동의 쌈지길 자리에는 인사동길 쪽으로 자그마한 가게들이 많이 있었다. 쌈지길은 그 가게들을 다 살렸다. 그래서인지 쌈지길은 큰 건물인데도 인사동길과 위화감이 없다. 쌈지길에는 공예전문점들이 많다. 군것질거리도, 식당도 있다. 산책하듯 건물을 뱅글뱅글 돌아가며 천천히 오르내리는 재미가 있다.
최근 복합갤러리 공간인 ‘인사동 마루’와 문화복합몰인 ‘안녕 인사동’이 개관했다. 화랑과 식당이 함께 있어 쉬어가며 작품을 감상하기에 좋다.
‘안녕 인사동’ 안에는 90개의 브랜드가 모여 있다. 전시장은 물론이고 닭갈비집, 막걸리집, 카페, 양갱집 등이 입점해 젊은이들이 북적거린다.
조계사 길 건너 옛 제주은행 자리에 들어선 ‘호텔아벤트리종로’ 골목으로 들어가면 동산방화랑이 있다. 원래는 표구사 동산방이었다. 장우성, 천경자, 박노수 등이 자주 이용했다. 1974년에 동산방화랑이 되었다. 창업주 박주환(1929~2020)과 그의 아들 박우홍 부자 모두 한국화랑협회 회장을 지낼 정도로 오래된 화랑이다.
오래된 화랑만이 가진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섬세한 관람객은 작품보다도 오랜 시간의 숙성에서 발효되어 나오는 공간의 향기를 먼저 잡아낸다.
안국역에서 인사동길을 내려오면 길 오른편에 통문관이 나타난다. 1934년에 출발했으니 현존하는 서점 중 가장 오래되었다. 창업주는 이겸로(1909~2006)다.
국학 관계의 고문헌이 많다. 국내의 학자들은 물론 한국학을 공부하는 외국인들이 많이 찾고 있는데 문이 닫혀 있을 때가 많다. 통문관의 맞은편에는 나무아트와 노화랑이 있다.
미술평론가이자 기획자인 김진하가 운영하는 나무아트는 민중미술 계열의 전시를 자주 연다. 김진하가 목판화 이론에 정통한 만큼 목판화 전시도 자주 열린다.
노화랑은 굵직굵직한 현대미술전을 연다. 이강소, 윤형근 등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화가와 송수남, 박석원, 지석철, 서승원 등 홍익대 교수 출신들의 작품전이 자주 열린다.
인사동에는 몇 개의 옥션(경매) 회사가 있다. 칸옥션은 그중 하나다. 칸옥션의 경매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분기별로 열린다. 주로 고서화를 다룬다.
고서화의 가격은 최근 많이 평가절하된 상태다. 교과서에 나오는 옛날 화가들의 작품을 의외로 싸게 살 수도 있다. 한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김옥균, 박영효, 유길준 등 역사적 인물과 손재형, 유희강 등 근현대 서화가의 서예작품과 김집, 정인보 등 역사책에 나오는 문인들의 서간 등도 가격이 그리 비싸지가 않다. 도전해볼 만하다.
경매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출품된 작품의 감상은 무료로 개방되어 있다.
갑신정변의 주역 박영효의 글씨를 본 후, 그의 집터인 인사동 경인미술관으로 가서 오미자차를 한잔 마시는 기분은 어떨까. 역사의 무게와 시원한 오미자차 한잔의 가벼운 휘발성, 이 둘의 산뜻한 만남도 좋겠다.
필자 황인 미술평론가는 1980년대 후반 현대화랑에서 일하면서 지금은 거의 작고한 대표적인 화가들을 많이 만났다. 전시기획과 공학과 미술을 융합하는 학제 간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나선형으로 뱅글뱅글 돌아가며 건물의 최상층까지 올라가는 길의 구조를 가진 인사동 건물 쌈지길 전경.
사진=한국관광공사
인사동에서 창업한 화랑들이 많았으나 대부분 인사동을 떠났다. 1970년 인사동에서 개관한 현대화랑은 일찌감치 1975년에 삼청동으로 떠나 훗날 화랑들의 삼청동 시대를 여는 초석이 되었다. 국제화랑은 1980년대 후반에, 학고재는 2000년대 후반에 삼청동으로 이전했다. 가나아트센터도 평창동으로 확장했다.
인사동을 개관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지키고 있는 화랑은 선화랑이다. 선화랑은 창업주 김창실에 의해 1977년에 종로구 인사동 184번지, 현재의 위치에 개관했다.
1979년부터 1992년까지 계간 미술잡지 『선미술』을 발행했다. 당시는 미술잡지 발행이 힘들었다. 국내에 미술 인구가 적어서다. 글 쓸 필자도, 잡지를 사 볼 독자도 다 적었다.
당연히 제작단가가 올라갔다. 미술잡지를 만들면 적자가 났는데 이를 화랑이 그림을 팔아 보전했다. 1973년부터 계간 미술잡지 『화랑』을 발행한 현대화랑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미술잡지로는 중앙일보에서 발행하는 『계간미술』, 건축설계회사인 공간에서 발행하는 종합예술지 월간 『공간』 등이 있었다.
『공간』 은 주로 건축을 다루었는데 이 속에 음악, 무용, 미술 파트가 포함되어 있었다.
국내의 미술인들은 일본에서 발행되는 월간 『미술수첩』을 더 열심히 볼 때였는데, 국내 작가의 작품세계는 서로 정보교환이 잘 안 되었다.
이를 화랑의 자본력이 어느 정도 해결해주었다. 제1대 국립미술관 학예실장을 지낸 유준상,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유명한 명지대 석좌교수 유홍준, 안동대 교수 서성록 등 여러 평론가가 ‘선미술’에서 일했다.
선화랑의 대표작가로는 김형근, 곽훈, 이숙자, 김병종 등이 있다. 마르크 샤갈, 앙투안 부르델, 마리노 마리니, 사진그룹 매그넘 등 외국작가들의 전시도 많이 열었다.
1984년에는 젊은 작가 육성을 위한 ‘선미술상’도 제정해 황인기 등 22명의 수상 작가를 배출했다.
선화랑 개관 45주년 기념전으로 2022년 6월 9일부터 7월 16일까지 80대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작품활동 중인 추상화가 곽훈의 전시회가 열렸다.
인사동길에는 이색적인 6층짜리 건물이 있다. 가나아트센터가 모체인 인사아트센터다. 프랑스의 건축가 장미셸 빌모트가 설계했다. 건물 전면은 3층 높이의 가벽이다.
이 가벽을 통과하여 대나무가 양옆으로 늘어선 나무계단을 오르면 건물의 출입구가 나타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와 지상 6층을 오르내릴 수가 있다.
꼭대기에 올라가면 인사동이 다 내려다보인다. 건물 전체가 전시장인데 여러 전시가 동시에 열린다. 모두 대관전시다. 인사아트센터 안에는 지방자치단체 혹은 미술관이 운영하는 전시공간이 따로 있다. 2017년에는 부산갤러리가, 2020년에는 경남갤러리가 문을 열었다. 2021년에 개관한 G&J 갤러리는 광주와 전남도립미술관에서 운영한다.
2011년에 개관한 ‘인사아트센터JMA’는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운영한다. 내 고향 출신으로 활동하는 미술작가는 누구인가를 알고 싶으면 인사아트센터로 가면 된다.
인사아트센터의 맞은편은 2004년에 문을 연 쌈지길이다. 중정(中庭)이 있는 거대한 건물이다. ‘길’이라고 명명한 건 나선형으로 뱅글뱅글 돌아가며 건물의 최상층까지 올라가는 길의 구조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꼭대기에 오르면 인왕산과 북악산을 품은 서울이 원경으로 잡힌다.
쌈지길은 2005년에 문을 연 일본 도쿄 오모테산도의 오모테산도힐즈와 같은 구조다. 오모테산도힐즈는 1927년에 세워진 바우하우스식 건물인 ‘도준카이 아오야마 아파트’ 자리에 섰다. 역사적인 건물이라 그 흔적을 일부 남겨두었다. 인사동의 쌈지길 자리에는 인사동길 쪽으로 자그마한 가게들이 많이 있었다. 쌈지길은 그 가게들을 다 살렸다. 그래서인지 쌈지길은 큰 건물인데도 인사동길과 위화감이 없다. 쌈지길에는 공예전문점들이 많다. 군것질거리도, 식당도 있다. 산책하듯 건물을 뱅글뱅글 돌아가며 천천히 오르내리는 재미가 있다.
최근 복합갤러리 공간인 ‘인사동 마루’와 문화복합몰인 ‘안녕 인사동’이 개관했다. 화랑과 식당이 함께 있어 쉬어가며 작품을 감상하기에 좋다.
‘안녕 인사동’ 안에는 90개의 브랜드가 모여 있다. 전시장은 물론이고 닭갈비집, 막걸리집, 카페, 양갱집 등이 입점해 젊은이들이 북적거린다.
조계사 길 건너 옛 제주은행 자리에 들어선 ‘호텔아벤트리종로’ 골목으로 들어가면 동산방화랑이 있다. 원래는 표구사 동산방이었다. 장우성, 천경자, 박노수 등이 자주 이용했다. 1974년에 동산방화랑이 되었다. 창업주 박주환(1929~2020)과 그의 아들 박우홍 부자 모두 한국화랑협회 회장을 지낼 정도로 오래된 화랑이다.
오래된 화랑만이 가진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섬세한 관람객은 작품보다도 오랜 시간의 숙성에서 발효되어 나오는 공간의 향기를 먼저 잡아낸다.
안국역에서 인사동길을 내려오면 길 오른편에 통문관이 나타난다. 1934년에 출발했으니 현존하는 서점 중 가장 오래되었다. 창업주는 이겸로(1909~2006)다.
국학 관계의 고문헌이 많다. 국내의 학자들은 물론 한국학을 공부하는 외국인들이 많이 찾고 있는데 문이 닫혀 있을 때가 많다. 통문관의 맞은편에는 나무아트와 노화랑이 있다.
미술평론가이자 기획자인 김진하가 운영하는 나무아트는 민중미술 계열의 전시를 자주 연다. 김진하가 목판화 이론에 정통한 만큼 목판화 전시도 자주 열린다.
노화랑은 굵직굵직한 현대미술전을 연다. 이강소, 윤형근 등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화가와 송수남, 박석원, 지석철, 서승원 등 홍익대 교수 출신들의 작품전이 자주 열린다.
인사동에는 몇 개의 옥션(경매) 회사가 있다. 칸옥션은 그중 하나다. 칸옥션의 경매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분기별로 열린다. 주로 고서화를 다룬다.
고서화의 가격은 최근 많이 평가절하된 상태다. 교과서에 나오는 옛날 화가들의 작품을 의외로 싸게 살 수도 있다. 한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김옥균, 박영효, 유길준 등 역사적 인물과 손재형, 유희강 등 근현대 서화가의 서예작품과 김집, 정인보 등 역사책에 나오는 문인들의 서간 등도 가격이 그리 비싸지가 않다. 도전해볼 만하다.
경매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출품된 작품의 감상은 무료로 개방되어 있다.
갑신정변의 주역 박영효의 글씨를 본 후, 그의 집터인 인사동 경인미술관으로 가서 오미자차를 한잔 마시는 기분은 어떨까. 역사의 무게와 시원한 오미자차 한잔의 가벼운 휘발성, 이 둘의 산뜻한 만남도 좋겠다.
필자 황인 미술평론가는 1980년대 후반 현대화랑에서 일하면서 지금은 거의 작고한 대표적인 화가들을 많이 만났다. 전시기획과 공학과 미술을 융합하는 학제 간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