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업계 임금 줄인상, 그 후…
비대면서비스 확산에 높아졌던 개발직군 몸값
올해 오프라인 수요 늘며 고스란히 인건비 부담으로
게임개발사 베스파, 무리한 연봉 인상 후 90% 권고사직
넷마블 “영업손실, 인건비 영향” 네이버 “채용 축소”
지난달 취업포털 사람인이 848개 회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기업의 약 72%가 정보기술(IT) 분야 업체의 연봉 인상 소식이 부담스럽다고 답했습니다. IT 업계 연봉 인상 이슈가 동종업계는 물론 타 산업 분야까지 영향을 미쳤을 정도로 IT 업계 연봉 인상이 대단했던 겁니다. IT 업계 연봉 인상 뉴스가 부담스러운 가장 큰 이유에 대해 기업들은 ‘같은 수준으로 올려 줄 여건이 안 돼서’(약 55%, 복수응답 가능)라고 답했으니까요.
하지만 올 하반기 들어 분위기가 점차 바뀌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코로나19가 다시 확산세로 돌아서긴 했지만 엔데믹 상황으로 빠르게 인식 전환이 이뤄지면서 오프라인 수요가 급격히 증가해 비대면서비스 중심의 IT 업계가 점차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IT 회사가 밀집한 판교에서는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이 곳곳에서 나옵니다.
화려했던 과거는 옛말
지난해 IT 기업들은 개발직군을 중심으로 대규모 채용에 나서면서 연봉 줄인상에 들어갔습니다. 기업에 따라 한 번에 수천만 원의 연봉 인상이 이뤄지기도 했는데요.
게임개발사인 크래프톤은 개발자 연봉을 2000만 원씩 올렸고, 엔씨소프트는 1300만 원을 인상했습니다.
사람인 조사 결과 국내 기업들이 평균적으로 직전 사업연도 연봉의 5.6%를 올린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파격적인 인상인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신입사원 초봉 6000만 원, 수천·수백만 원의 사이닝 보너스와 인센티브, 억대 스톡옵션 등이 IT 업계를 상징하는 키워드가 됐죠.
판교 분위기 역시 고조돼 수입차 딜러들이 밀려드는 주문에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고 합니다. 명품 브랜드 중에서도 콧대 높기로 유명한 에르메스가 경기도권 최초로 현대백화점 판교점에 입점하기로 결정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분위기가 다릅니다. 코로나19 상황 동안 온라인으로 쇼핑하고 드라마를 보고 주문하고 일했는데 엔데믹 전환에 비대면시장이 빠르게 가라앉기 시작했고, 인플레이션까지 겹치면서 유료서비스 이용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주변에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해지하거나 온라인쇼핑을 줄이는 사례가 심심찮게 들리죠.
이 같은 상황은 전 세계가 마찬가지여서 글로벌 IT 기업인 애플, 구글, 메타(옛 페이스북),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기업도 인력 감축에 돌입한 상황입니다.
테슬라와 넷플릭스는 정규직을 해고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테크업계를 다룬 기사에서 ‘파티는 끝났다’고 표현했을 정도입니다.
인건비 감당 못 해 회사마저 휘청
회사가 위기를 감지하면 어떻게 될까요? 인사에 변화가 오기 시작합니다.
지난해 한 번에 수백 명씩 채용을 결정하던 IT 업계 채용 훈풍은 올해 들어 바람조차 느끼기 힘들 정도로 잠잠합니다.
비대면서비스 확산과 저금리 기조에 연쇄적으로 연봉 인상을 결정한 지 1년 만에 IT 회사마다 인건비 걱정을 하게 됐습니다.
더 이상 사람을 뽑지 않는 수준만이 아닙니다. 코스닥에 상장된 게임개발사인 베스파는 이달 들어 대량 권고사직을 통보했습니다. 현재 베스파 직원 수는 100명이 넘는데, 이 중 핵심 인력을 제외한 직원 90% 이상이 권고사직 처리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IT 업계에 큰 충격을 줬습니다.
김진수 베스파 대표가 나서 “투자 유치로 회생을 노렸는데 안타깝다”고 말해 대규모 권고사직이 불가피한 상황임을 전했습니다.
베스파의 지난해 매출은 약 454억 원으로, 영업손실 441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지난 1분기 감사의견 거절을 받아 주식거래마저 정지됐습니다.
이 같은 적자 상황에도 베스파는 지난해 IT 업계 임금 인상 열풍에 합류해 전 직원 연봉을 1200만 원씩 올려 줬습니다. 그 결과는 처참해 지난해만 해도 300명이 넘었던 직원 수가 이제 10명 남짓으로 줄어 소규모로 게임 개발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2017년 ‘킹스레이드’ 성공에 힘입어 이듬해 코스닥시장 입성에까지 성공한 베스파의 추락은 IT 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회사가 힘든데 왜 인건비를 늘리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베스파로서는 불가피한 결정이었을 수 있습니다.
IT 업계는 타 분야보다 이직이 자유로운 것으로 알려진 데다 지난해 기대작으로 꼽힌 ‘타임디펜더스’ 출시를 앞둔 상황에서 대규모 자본을 앞세운 대기업들이 앞다퉈 인재 영입 경쟁을 벌이자 이직을 막기 위해서라도 직원들에게 대기업급 연봉을 제안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게다가 올해 들어 금리 인상이 계속되면서 추가적인 투자 유치가 힘들고, 주식거래 정지로 증권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 방법도 막혔습니다.
베스파는 상장폐지만은 막아야 하기 때문에 지식재산권(IP)을 바탕으로 인수합병(M&A)을 노리게 됐습니다.
채용 보릿고개 오나
급격히 경직되는 IT 업계에서 감원 우려는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국내 3대 게임사 중 한 곳인 넷마블은 10년 만인 올해 1분기 119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는데, 인건비 영향이 컸습니다.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해 인건비가 20% 넘게 늘어 전체 영업비용 중 가장 높은 증가세를 보인 겁니다.
마찬가지로 지난 1분기 적자 전환한 컴투스도 같은 기간 인건비가 62% 이상 증가했고, 외주용역비는 1400% 급증했습니다.
이들 회사 모두 지난해 전 직원 대상 800만 원의 일괄 연봉 인상을 단행한 곳입니다. 지난해 인건비율이 가장 큰 폭으로 오른 기업 역시 IT 회사입니다.
카카오의 지난해 인건비율은 24%를 넘었습니다. 카카오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 성장에 그쳤는데 말입니다.
네이버는 올해 채용 규모를 30% 축소하기로 했습니다. 지난해 대규모 채용을 했기 때문에 기존 채용 수준으로 돌아가는 거란 입장이지만, 구직자 입장에선 아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필자 배윤경은 매경닷컴에서 정보기술(IT) 시장을 취재하는 기자다. 소프트웨어·포털·게임·블록체인 등 신기술 분야 소식을 독자에게 쉽게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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