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군사 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

식도락 시장에 뛰어든 명품들

입력 2022. 07. 13   16:38
업데이트 2022. 07. 13   16:54
0 댓글
명품 브랜드들의 변신
구찌 이어 디올·루이비통까지
카페·레스토랑 잇따라 진출
패션 제품군 비해 저비용으로
명품 브랜드 체험 기회 제공
소비자 호감 이끌어내는 게 목표
뷰티·리빙으로 제품군 확대
경험 고객 브랜드 충성도 높아
 
젊은 소비자들이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명품 브랜드의 정체성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식음료 업장을 운영하는 명품업체들이 늘고 있다. 위 사진부터 구찌가 플래그십 스토어에 연 ‘구찌 오스테리아’, 디올이 팝업 스토어에 선보인 ‘카페 디올’, 루이비통이 플래그십 스토어 안에 오픈한 팝업 레스토랑 ‘피에르 상 앳 루이비통’. 

 사진 제공=각 업체
젊은 소비자들이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명품 브랜드의 정체성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식음료 업장을 운영하는 명품업체들이 늘고 있다. 위 사진부터 구찌가 플래그십 스토어에 연 ‘구찌 오스테리아’, 디올이 팝업 스토어에 선보인 ‘카페 디올’, 루이비통이 플래그십 스토어 안에 오픈한 팝업 레스토랑 ‘피에르 상 앳 루이비통’. 사진 제공=각 업체
디올이 팝업 스토어에 선보인 ‘카페 디올’
디올이 팝업 스토어에 선보인 ‘카페 디올’
루이비통이 플래그십 스토어 안에 오픈한 팝업 레스토랑 ‘피에르 상 앳 루이비통’
루이비통이 플래그십 스토어 안에 오픈한 팝업 레스토랑 ‘피에르 상 앳 루이비통’


자크루이 다비드(1748~1825)의 그림 ‘단두대로 가는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왕비의 마지막 모습을 담고 있다. 베르사유 궁에서 가장 화려하게 빛나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한 필의 말이 끄는 사다리 마차를 타고 시민들과 똑같은 대접을 받으며 혁명 광장의 단두대로 향했다. 두 팔을 결박당한 채로 허리를 곧게 편 왕비는 초라한 면직 모자로 짧게 잘린 머리카락을 감춘 여느 사형수와 다르지 않았다. 날카로운 콧대와 굳게 다문 입술에 수모를 견디려는 안간힘과 명예를 지키려는 위엄이 남아 있는 듯하다.

옷은 사회적 신분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그림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의 신분이 왕비에서 사형수로 전락했음을 극명하게 드러내 주는 상징적 요소가 옷인 이유다. 18세기의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속한 지위 속의 세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라벨을 입고 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방식은 공적인 자리나 사적인 자리에서도 같은 영향력을 나타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직업, 지방색, 종교, 사회계급이 의복에 표현되었는데 런던과 파리 거리에서 사람들이 어떤 모자를 쓰고 어떤 리본이나 단추를 달고 있는지를 눈여겨보면 그 사람의 직종부터 직위까지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의복은 전통적으로 사회계급이나 신분을 상징하는 역할을 했다. 거리를 다닐 때 입고 다니는 옷차림을 통해 지배계층인 양반인지 아니면 천민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 또한 색상과 문양을 이용하여 다양한 계급과 신분을 표현했다. 예를 들어 문무백관의 관복은 품계에 따라 색깔을 달리했다. 두루마기의 경우 3품 이상은 홍포, 4·5·6품은 청포, 7·8·9품은 녹포로 하여 색깔에 따라 품계를 구분했다. 가족 내에서도 의복은 상징적인 역할을 했는데, 결혼한 여성과 결혼하지 않은 여성은 각기 다른 색깔의 치마와 저고리를 입었다. 결혼 전에는 홍색 치마에 노란 저고리를 입었지만 결혼한 새색시의 경우 홍색 치마에 연두색 저고리를 입었으며, 출산하면 남색 치마에 오색 저고리를 입었다. 상징성으로 인해 의복만 보아도 그 사람의 계급과 신분을 알 수 있었다.

그 옛날 고가의 의류는 일반 시민들에게는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의 물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누구나 돈을 지불하면 고가의 옷을 입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후기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계급 사회가 몰락하고, 생활 양식은 다양화되었다. 한 개인이 갖는 기본권이 급격히 커지면서 사회 계급과 소비 간의 상관관계는 약화됐다.

의복이 더 이상 계층을 구별 짓는 상징만으로는 작용하지 않게 된 것이다. ‘사치의 민주화’가 이뤄진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의복 시장의 확대와 대중화 과정에서 고가 의류시장은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명확한 신분 질서가 무너진 현대 사회에서 고급스러운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명품 브랜드는 대중과의 ‘구별 짓기’ 전략을 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소위 ‘구별 짓기-따라가기’ 전략을 통해 해당 브랜드에 대한 대중의 열망을 자극하는 것이다.

대중과의 구별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던 명품 브랜드들이 최근 들어 이전과는 다른 행보를 걷고 있다. 명품과 식도락,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단어 조합이 최근 트렌드로 떠올랐다. 명품 브랜드들의 카페, 레스토랑 등 F&B(식음료) 진출 소식이 연이어 들려온다. 지난 3월, 구찌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플래그십 스토어 ‘구찌 가옥’ 6층에 ‘구찌 오스테리아 다 마시모 보투라(구찌 오스테리아)’를 열었다. 이어 5월에는 디올이 팝업 스토어에 카페를 냈고, 루이비통도 같은 달 플래그십 스토어 안에 팝업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겨우 한 달여 사이에 내로라하는 명품 브랜드 모두가 F&B(Food & Beverage·식음료) 카드를 들고 나왔으니, 그 효과와 파급력을 짐작할 만하다.

온라인에서 명품 브랜드의 변화도 눈에 띈다. 대중성이 높은 온라인 쇼핑 시장에서도 명품 브랜드를 구매하는 것이 쉬워졌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 발발 이후 온라인 명품 쇼핑 플랫폼이 가파르게 성장했다. 비대면 쇼핑이 대세가 됐고, 억눌렸던 소비 심리가 명품·고가품을 통한 보복 소비로 이어지며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으며,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모바일 앱을 통해 명품을 구매하는 이들도 크게 증가한 것이 그 배경이다.

온라인 명품 쇼핑 플랫폼 머스트잇의 경우 2018년 947억 원이었던 거래액이 2020년에는 2514억 원, 지난해에는 3527억 원을 기록했다. 비슷한 성격의 발란은 2020년 512억 원에서 지난해 3200억 원으로 거래액이 무려 여섯 배나 뛰었다. 트렌비도 1000억 원대에서 3000억 원대로 세 배 뛰었다. 전자상거래 업계의 새로운 카테고리로 명품 특화 플랫폼이 떠오르면서 투자 유치도 활발했다. 발란은 누적 투자액 445억 원, 트렌비는 400억 원, 머스트잇은 280억 원을 기록했다.

이처럼 명품업체가 식음료업장을 운영하고 온라인으로 눈을 돌린 이유는 명쾌하다. 판매 제품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으로 소비자가 자사의 아이덴티티를 접하게 하는 것, 이 경험을 통해 브랜드에 대한 호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목표다. 상당수 패션업체가 제품군을 가방, 옷, 신발 등에 국한하지 않고 뷰티 제품에 해당하는 향수까지 넓히거나, 리빙 아이템인 테이블웨어 등을 선보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처럼 라이프스타일 전반에서 다양한 접점으로 명품을 경험한 고객은 해당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강해진다는 게 정설이다.

특히 엔데믹 시대를 맞이해 소비자와 접점을 늘리고 친근감을 확보하여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기 위한 브랜드들의 시도는 더욱 확대될 것이다. 물론 위험 요소도 있다.

브랜드 이름값으로 손님들의 이목을 잠깐 끌 수는 있겠지만, 지속 가능하지는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름값이 붙더라도 그 자체로 완성도가 있지 않으면 매력을 잃을 수 있다. 무엇보다 브랜드가 지향하는 이미지와 F&B 사업의 방향이 맞지 않는다면 단순한 유행으로 지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한가지 명확한 사실은 마리 앙투아네트만 착용할 수 있었던 명품 시계 브랜드 ‘브레게’를 물론 구매하기는 어렵더라도 적어도 체험해볼 수 있는 시대라는 점이다. 사진 제공=각 업체


필자 이수진은 서울대학교 소비자학 학·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으로 소비문화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가 있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