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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하운드(2020)
감독: 아론 슈나이더
출연: 톰 행크스, 엘리자베스 슈, 칼 글루스맨, 스티븐 그레이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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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 교전처럼 중압감, 불안, 손실을 동반하는 전투에는 두 가지 중요한 요인이 더 작용한다. 바로 리더십과 병사들의 사기인데, 1943년 중반 이후 이 두 요인은 한쪽에 유리하게 기울기 시작한다.” (『제국을 설계한 사람들』, 폴 케네디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처칠의 악몽 ‘유(U)보트’
거만하고 독불장군인 데다가 성마른 기질을 가진 윈스턴 처칠은 두 가지 천재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는 언어였다. 처칠은 영국 국민이 듣기를 바라고 들을 필요가 있을 바로 그때 용기와 도전에 관한 놀라운 연설을 했다. 둘째는 외교 역량이었다. 그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중립을 파기하고 영국에게 엄청난 양의 원조와 무기를 보내주도록 설득했다.
1940년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영국이 기사회생하며 전장은 대서양으로 이동했다. 영국의 반격은 두 가지에 성패가 달려있었다. 미국이 지원하는 식량·연료·군수품을 대서양 건너 영국에 무사히 보급하는 것과 영국군 병사·무기를 아프리카·인도에 무사히 수송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독일엔 유보트가 있었다.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배운 대로 영국으로 향하는 해상 수송로에 ‘이리 떼’라 불리는 수백 척의 유보트를 보냈다. 잠수함을 이용한 독일의 통상파괴전과 영국 해군의 대잠수전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되풀이됐다.
해군력이 영국보다 열세였던 독일이 수입에 의존하는 영국을 굴복시키려면 통상파괴전이 효과적이었다.
유보트는 연합군의 예상보다 치명적이었다. 훗날 처칠이 “전쟁 중에 정말로 나를 두렵게 한 것은 독일의 유보트였다”고 한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처칠의 악몽은 현실로 나타났다. 연합군 상선단은 1942년 한 해에만 무려 780만 톤의 피해를 봤고, 그중 630만 톤이 무시무시한 무기인 유보트에 의해 격침됐다.
처칠이 이름을 붙인 ‘대서양 전투’에서 최종적으로 연합국은 상선 3500척과 함선 175척을 잃었다. 군 전사자는 3만6200명, 상선 탑승원 사망자는 3만6000명이었다.
독일은 잠수함 783척을 잃었고 전사자는 3만 명이었다. 대서양에서 연합군의 승리가 결정되는 1943년 5월까지 바다엔 피바람이 몰아쳤다.
해전에서 리더의 자질은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2월. 미 구축함 킬링(콜사인:그레이하운드)의 함장 어니스트 크라우스 중령(톰 행크스 분)은 미국에서 영국으로 군수물자를 수송하는 연합군 수송선단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는다. 수천 명의 군인과 군수물자를 실은 선단이 출항하고, 이어 항공기의 지원을 받을 수 없어 ‘블랙핏’이라 불리는 대서양 중앙부에 도착한다. 유보트가 연합군 상선과 군함을 잡기 위해 밤마다 출몰하는 곳이다.
얼마 후 유보트의 신호를 감지하고 호송선 ‘그레이하운드’와 이를 맹렬히 쫓는 유보트 ‘그레이울프’는 일대 격전을 벌인다.
자, 이제 절체절명의 순간에 믿어야 하는 건 크라우스 함장의 판단과 선택뿐이다. 함장은 적재적소에 부하들을 배치하고 적절한 판단을 내리며 자기 한 몸 아끼지 않고 뛰어다니면서 최선을 다한다. 과연 그의 구축함은 무사히 영국에 도착할 수 있을까? 그가 호위하는 수송 선단은 무사할까?
영화 ‘그레이하운드’(2020)는 크라우스 함장에 초점을 맞춰 전투에 직면한 리더의 고뇌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함장은 승조원에 둘러싸여 있지만 늘 혼자 결정을 내려야 하고 거기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 위기의 순간에 승조원들이 보내는 의심의 눈길은 그를 힘들게 한다. 명령에 따르지만 그들의 표정에는 공포의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함장의 흔들림 없는 모습과 행동 속에서 마침내 그레이하운드는 하나가 된다.
영화는 실제로 벌어진 ‘에어갭 전투’를 기반으로 만들었지만, 재미와 촬영의 편이성 때문에 슬쩍 허위도 끼워 넣는다. 주인공이 지휘하는 구축함은 1942년 6월 취역한 플레처급(USS 킬링)으로 영화 속 설정과 맞지 않는다. 그레이하운드 함번 DD-548은 실제로는 결번이다. 유사한 함번은 DD-542, DD-543, DD-549 등이 있는데 가상의 구축함으로 다른 영화에 심심찮게 등장한다. 할리우드에서 전화 번호를 555-0100에서 555-0199번까지 ‘찜’한 뒤 수천 편의 영화에 돌려쓰는 것과 같다.
주연배우인 톰 행크스는 각본과 제작까지 맡았다. 많은 천재적 예술가들이 노년이 되면 자신의 과제와 의무에 대해 생각을 달리한다.
전엔 이런저런 이유로 필요한 일을 했다면, 나중엔 정말 하고 싶은 일, 재미있는 일에 매달린다. 영화 ‘엘비스’(2022)로 이어지는 그의 행보가 자못 흥미로운 이유다.
독일 해군 총사령관 되니츠, ‘이리 떼 전술’로 연합군에 큰 타격
많은 수 동시 투입 수적 우위 확보
제2차 세계대전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병기는 뭐니 뭐니 해도 독일군 잠수함 유보트일 것이다. 독일의 ‘Bf 109’ 전투기도 막아낸 영국은 정말 유보트 때문에 굶어 죽을 위기에 빠졌다. 그 중심엔 독일 해군 총사령관 카를 되니츠가 있었다. 전사(戰史)는 그를 잠수함의 파괴력과 전술적 중요성을 입증한 인물로 기록했다.
되니츠는 제1차 세계대전 때 유보트 함장으로 실전을 경험한 베테랑이었다. 그는 대양해군을 육성하기 힘든 독일의 여건상 상대적으로 생산비가 낮으면서 은밀성은 높은 잠수함이 해군의 주력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잠수함 크기에 집중하기보다는, 많은 수를 동시에 투입해 적에 대한 수적 우위를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1차 대전 패전 이후 잠수함 총 톤수 규제를 받았기 때문에 이 점은 독일의 전략 구상에 아주 중요했다.
그는 히틀러 집권 후 잠수함대를 재건하고 1936년 함대사령관이 됐다. 유보트 한 척이 연합국 선단을 발견하면 다른 유보트를 불러 모아 떼로 공격하는 ‘이리 떼(wolf pack)’ 전술을 개발해 적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기존엔 잠수함 한 대가 치고 빠지는 게릴라 전술을 사용해 효과가 제한적이었다.
실패는 갑자기 찾아왔다. 그것도 성공의 정점에서. 연합군은 1943년 3월부터 약 2개월간 치러진 대규모 해전에서 기적과도 같은 전세 역전을 이뤄냈다.
승리의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1939~1945년 영미 조선소에서 생산한 선박은 4250만 톤에 달했다. 게다가 연합국이 독일의 ‘에니그마’ 암호를 해독하고, 장거리 초계기와 광대역 레이다 같은 대잠 무기를 개발하면서 유보트도, 되니츠의 운명도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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