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배태준 조명탄] 계단 오르기

입력 2022. 07. 13   14:54
업데이트 2022. 07. 13   15:04
0 댓글

배태준 변호사
배태준 변호사

지인과 오랜만에 저녁을 하는데 살을 쫙 빼서 나타났다. 마흔 넘어 살 빼기가 보통 일이 아니라 비결을 물어보니 매일 계단을 삼십 분씩 올랐다고 한다. 살다 보면 따로 시간을 내 운동하기가 어려운데 계단 오르기는 건물이 있는 곳 어디서든 할 수 있다고 한다. 휴대전화로 영상을 보거나 노래를 들으면 지루하지도 않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개업을 하면서 더 찐 살 때문에 걱정이 많았던 내게 이만한 희소식이 없었다. 그 말을 듣고 당장 다음 날부터 계단을 올랐다.

직접 해보니 생각보다 내게 잘 맞는 운동이었다. 불규칙한 변호사의 삶 속에 고정적으로 헬스장을 방문하기가 쉽지 않았다. 집 근처에 끊으면 사무실에서 늦게까지 야근을 하거나 주말에도 출근할 일이 생긴다. 사무실 근처로 잡으면 출장과 재택근무가 이어진다. 헬스장에서 만난 지인의 끝나고 소주 한 잔하자는 말을 이기지 못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날도 있었다. 헬스클럽 회원권을 연간으로 끊고 몇 번 가지 않다가 나중에 환불을 요청했더니 위약금 떼고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을 받고 후회한 적도 있다.

다음에는 시내에서 자전거 타기를 다이어트 방법으로 시도했다. 미국에서 살던 도시를 가장 사랑한 이유는 자전거였다. 마침 서울에도 공용자전거 시스템이 생겼다. 망설임 없이 일 년 회원권을 끊었다. 쾌적한 날 한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면 스트레스가 풀렸다. 서울의 야경이 다른 도시 못지않게 예쁘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여가의 목적과는 별개로, 나처럼 자전거를 타서는 다이어트 효과를 보기 어려웠다. 너무 덥거나, 춥거나, 비가 오는 날이 적지 않았다. 출근 후에는 일도 하고 사람도 만나는데 매번 갈아입을 옷을 가지고 타기도 쉽지 않고 회사 근처 마땅한 샤워장을 찾을 수도 없었다. 양복바지가 찢어진 적도 있었다. 가장 큰 사건은 시내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치료와 후유증으로 몇 달이 그냥 지나갔고 지금도 허리가 아프다. 지금도 공용자전거를 종종 타지만 계단 오르기의 보조적 역할에 가깝다.

법무장교로 근무할 때도 살 빼기를 시도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계룡대에 발령을 받자마자 야심차게 수영과 체력단련장을 끊었다. 게으른 천성 탓인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업무가 바쁜 날도, 이상하게 몸이 찌뿌둥한 날도 있었다. 약속도 종종 있었다. 핑계다. 하루 삼십 분 운동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지는 않았다. 큰 병에 걸린 것도 아니다. 일과 중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이다. 운동을 잘하는 후배들을 따라 달걀만 먹는 것도 시도해 봤는데 며칠 지나니 라면, 빵 등 탄수화물 덩어리를 물고 있었다.

마지막 도전이라고 생각하고 계단 오르기를 한다. 아직은 효과가 나쁘지 않다. 주변에서 살이 빠진 것 같다는 말을 듣기 시작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식당에서 음식 하나를 시킬 때도 칼로리를 유심히 본다. 피곤해서 침대에서 뒹굴뒹굴하고 싶은 날에도 운동복을 갈아입는다.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몇 가지 깨달은 것은 있다. 운동뿐만 아니라 새로운 것을 익히고 배우려면 가까운 곳에서 시작해야 한다. 아무리 더 좋은 방법이나 수단이 있더라도 그곳까지 가는 길에 시간이 오래 걸리면 사람은 쉽게 지친다. 습관은 생활에서부터 만들어야 한다. 두 번째는 동기부여다. 내게는 얼마 전 지인의 ‘방송 나가려면 얼굴 살을 빼야 하지 않아?’라는 말이 큰 자극이 되었다. 꼭 얼굴이 넓적해서 방송이 안 들어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하고 싶은 것을 위해서 꼭 노력하고 싶었다.

이 글을 쓰는 것 역시 나와의 다짐이다. 사람들을 오랜만에 만났을 때 “예전보다 풍성해지셨네요?”라는 말을 들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내일도 꼭 알람 소리에 맞춰 일어나야겠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