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월맹군과 장기전에 ‘고엽작전’
밀림 황폐화·인체 치명적 피해 야기
한국군 장병들도 모기약으로 알아
다이옥신 성분 노출돼 후유증 심각
현재 베트남 내 환자 400만 명 달해
베트남 참전장병에 합당한 예우 필요
1965년 11월 미군은 베트남의 이아드랑 계곡에서 북베트남 정규군(월맹군)과 처음으로 대규모 접전을 벌였다. 미군은 압도적인 화력에도 불구하고 예상외로 크게 고전했다.
한때 헬기 착륙지점이 폐쇄되고 전 병력이 포위되어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은 무차별 폭격(브로큰 애로우)을 요청할 상황까지 내몰렸다. 항공 지원과 포병 사격의 도움으로 미군은 이아드랑 계곡 전투에서 승리했으나 이 전투는 베트남전 전개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군은 월맹군의 끈질긴 투혼에 곤혹스러웠고, 월맹군은 처음 경험한 미군의 화력에 놀랐다. 이 전투 이후 월맹군은 정글에 은둔하면서 게릴라전에 주력하게 되었다. 베트남전은 서서히 장기전의 늪에 빠져들었다.
미군은 정글에서 각종 부비트랩과 저격에 시달렸고. 월맹군은 사이공 서북부 ‘철의 삼각지대’에 구축한 250㎞의 ‘구찌터널’을 이용해 사이공 도심에서도 미군을 공격했다.
월맹군은 캄보디아와 라오스의 정글 지대에 ‘호찌민 루트’로 명명된 보급로를 개척해 남베트남 지역으로 인력·장비를 보급했다.
미군 정보부는 호찌민 루트의 존재를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지만, 이 루트를 폐쇄하는 것은 극도로 어려운 일이었다. 워낙 깊은 정글 지대였기에 보병을 투입하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미군이 호찌민 루트를 차단하려고 쏟아부은 폭탄의 양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투하된 폭탄의 세 배를 훌쩍 넘었다.
하지만 월맹군의 보급로는 끊기지 않았다. 가끔 호찌민 루트에 투입된 특수부대(그린베레)가 월맹군에 큰 타격을 줬지만, 호찌민 루트를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었다.
고심하던 미군은 정글 자체를 없애는 ‘고엽(枯葉) 작전’을 실행했다. 항공기를 이용해 ‘에이전트 오렌지’로 명명된 고농도 제초제를 살포해 정글을 없애는 작전이었다.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고엽제를 뿌리자 엄청난 면적의 정글이 사라졌고, 정글 속을 이동하는 월맹군들은 미군 항공기에 쉽게 포착되었다.
월맹군은 피해가 늘어나자 캄보디아와 라오스 내륙 깊숙한 곳으로 보급로를 옮겼다. 이를 파괴하자면 미군은 캄보디아와 라오스까지 침공해야 했다.
그것은 중국과 소련이 개입할 명분을 주는 위험한 도박이었다. 어쩔 수 없이 미군은 캄보디아와 라오스 국경 인근을 폭격하는 선에서 멈춰야 했다.
미군은 고엽제 살포로 전투 사상자가 절반 이상 줄었다고 득의양양했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미군의 집요한 폭격으로 민간인 사망자가 폭증했고, 대다수 베트남 민간인들이 베트콩에 가담하는 결과를 낳았다. 게다가 울창한 밀림을 급속히 황폐하게 만든 고농도 제초제는 인간에게도 치명적이었다.
베트남에서 사용된 고엽제는 저장 용기의 색깔에 따라 에이전트 오렌지, 에이전트 화이트, 에이전트 블루, 에이전트 퍼플, 에이전트 핑크, 에이전트 그린의 6가지로 명명되었다. 그중 에이전트 오렌지가 가장 많이 살포됐고 그 피해도 가장 컸다. 오렌지색 드럼통에 담겨 있었던 에이전트 오렌지가 문제가 된 것은 다이옥신 성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이옥신은 극히 적은 양으로도 인간의 생명과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는 맹독성 물질이어서 단위도 10억분의 1g인 나노그램(ng)과 1조분의 1g인 피코그램(pg) 단위로 구분된다. 다이옥신의 독성은 청산가리(Kaliumcyanid)의 1만 배, 비소(As)의 3000배에 이른다. 또 ‘국제암연구소’에서 1급 발암물질로 규정되어 있으며, 미국 독성학 프로그램(US National Toxicology Program)에서도 중증 발암물질로 규정되었다.
고엽제는 베트남 17도선 남부의 정글과 남부 라오스의 호찌민 루트, 메콩삼각주 지대의 늪과 수로에 집중적으로 뿌려졌다. 제초제가 인간에게 해로운 것은 당연한 이치지만, 미군 사령부는 에이전트 오렌지를 비롯한 고엽제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한국군 백마부대, 청룡부대, 맹호부대의 작전 지역에도 상당량의 고엽제가 살포되었다. 당시 한국군 장병들은 뿌옇게 살포되는 고엽제를 ‘모기약’으로 알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래서 일부 장병들은 모기를 퇴치하려고 고엽제를 몸에 바르기도 했다. 세월이 흐르고 전쟁이 끝난 후 고엽제의 후유증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엽제의 폐해가 널리 알려진 것은 1979년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의 베트남 전쟁 참전병들이 제기한 집단 소송을 통해서였다. 전쟁이 끝난 후 피부병과 청각장애, 악성종양, 기형아 출산, 신경계와 면역계 이상, 호흡기 질환 등에 시달리던 참전용사들이 다우케미컬 등 7개 고엽제 제조회사를 상대로 미국 정부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고엽제 소송은 전 주월 미군 총사령관 웨스트 모어랜드(1914~2005) 장군이 증인으로 청문회에 출석할 만큼 큰 문제가 되었던 다국적 초대형 소송이었다. 다우케미컬은 고엽제 살포를 시작하기 전에 연구 용역 조사를 통해서 고엽제의 독성을 이미 알고 있었으나 1970년까지 이 사실을 은폐했다는 사실이 청문회를 통해 드러났다.
다우케미컬의 자료 은폐 작업이 드러나자 비로소 고엽제 살포가 전면 중지되었다. 현재까지 9600만 인구 중 약 400만 명 정도가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는 베트남도 현재까지 미국 제약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실정이다.
당시 미 해군 줌 월트 장군의 아들도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고엽제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미국의 제프 브레크너 감독은 1988년, 줌 월트 일가의 비극을 다룬 영화 ‘사령관의 아들’을 제작했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도 개봉했지만, 고엽제 후유증의 심각성을 널리 알리지는 못했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참전병들은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지 못한 채 ‘베트남 풍토병’으로 알려진 질병을 앓으면서 고통을 겪어야 했다.
뒤늦게 고엽제 후유증의 심각성을 깨달은 정부는 1993년에 이르러서야 피해자 확인과 보상에 나섰다. 베트남 참전은 우리 경제발전의 토대가 되었고, 전장에서 쌓은 실전 경험으로 국방력 향상에 기여했다. 그러므로 베트남 참전장병에 대한 합당한 예우는 국가의 당연한 의무다. 전쟁의 고통은 세대를 넘어 이어진다. 고엽제의 비극이 알려준 값비싼 교훈이다. 사진=필자 제공
필자 이정현은 중앙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미군, 월맹군과 장기전에 ‘고엽작전’
밀림 황폐화·인체 치명적 피해 야기
한국군 장병들도 모기약으로 알아
다이옥신 성분 노출돼 후유증 심각
현재 베트남 내 환자 400만 명 달해
베트남 참전장병에 합당한 예우 필요
1965년 11월 미군은 베트남의 이아드랑 계곡에서 북베트남 정규군(월맹군)과 처음으로 대규모 접전을 벌였다. 미군은 압도적인 화력에도 불구하고 예상외로 크게 고전했다.
한때 헬기 착륙지점이 폐쇄되고 전 병력이 포위되어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은 무차별 폭격(브로큰 애로우)을 요청할 상황까지 내몰렸다. 항공 지원과 포병 사격의 도움으로 미군은 이아드랑 계곡 전투에서 승리했으나 이 전투는 베트남전 전개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군은 월맹군의 끈질긴 투혼에 곤혹스러웠고, 월맹군은 처음 경험한 미군의 화력에 놀랐다. 이 전투 이후 월맹군은 정글에 은둔하면서 게릴라전에 주력하게 되었다. 베트남전은 서서히 장기전의 늪에 빠져들었다.
미군은 정글에서 각종 부비트랩과 저격에 시달렸고. 월맹군은 사이공 서북부 ‘철의 삼각지대’에 구축한 250㎞의 ‘구찌터널’을 이용해 사이공 도심에서도 미군을 공격했다.
월맹군은 캄보디아와 라오스의 정글 지대에 ‘호찌민 루트’로 명명된 보급로를 개척해 남베트남 지역으로 인력·장비를 보급했다.
미군 정보부는 호찌민 루트의 존재를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지만, 이 루트를 폐쇄하는 것은 극도로 어려운 일이었다. 워낙 깊은 정글 지대였기에 보병을 투입하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미군이 호찌민 루트를 차단하려고 쏟아부은 폭탄의 양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투하된 폭탄의 세 배를 훌쩍 넘었다.
하지만 월맹군의 보급로는 끊기지 않았다. 가끔 호찌민 루트에 투입된 특수부대(그린베레)가 월맹군에 큰 타격을 줬지만, 호찌민 루트를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었다.
고심하던 미군은 정글 자체를 없애는 ‘고엽(枯葉) 작전’을 실행했다. 항공기를 이용해 ‘에이전트 오렌지’로 명명된 고농도 제초제를 살포해 정글을 없애는 작전이었다.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고엽제를 뿌리자 엄청난 면적의 정글이 사라졌고, 정글 속을 이동하는 월맹군들은 미군 항공기에 쉽게 포착되었다.
월맹군은 피해가 늘어나자 캄보디아와 라오스 내륙 깊숙한 곳으로 보급로를 옮겼다. 이를 파괴하자면 미군은 캄보디아와 라오스까지 침공해야 했다.
그것은 중국과 소련이 개입할 명분을 주는 위험한 도박이었다. 어쩔 수 없이 미군은 캄보디아와 라오스 국경 인근을 폭격하는 선에서 멈춰야 했다.
미군은 고엽제 살포로 전투 사상자가 절반 이상 줄었다고 득의양양했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미군의 집요한 폭격으로 민간인 사망자가 폭증했고, 대다수 베트남 민간인들이 베트콩에 가담하는 결과를 낳았다. 게다가 울창한 밀림을 급속히 황폐하게 만든 고농도 제초제는 인간에게도 치명적이었다.
베트남에서 사용된 고엽제는 저장 용기의 색깔에 따라 에이전트 오렌지, 에이전트 화이트, 에이전트 블루, 에이전트 퍼플, 에이전트 핑크, 에이전트 그린의 6가지로 명명되었다. 그중 에이전트 오렌지가 가장 많이 살포됐고 그 피해도 가장 컸다. 오렌지색 드럼통에 담겨 있었던 에이전트 오렌지가 문제가 된 것은 다이옥신 성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이옥신은 극히 적은 양으로도 인간의 생명과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는 맹독성 물질이어서 단위도 10억분의 1g인 나노그램(ng)과 1조분의 1g인 피코그램(pg) 단위로 구분된다. 다이옥신의 독성은 청산가리(Kaliumcyanid)의 1만 배, 비소(As)의 3000배에 이른다. 또 ‘국제암연구소’에서 1급 발암물질로 규정되어 있으며, 미국 독성학 프로그램(US National Toxicology Program)에서도 중증 발암물질로 규정되었다.
고엽제는 베트남 17도선 남부의 정글과 남부 라오스의 호찌민 루트, 메콩삼각주 지대의 늪과 수로에 집중적으로 뿌려졌다. 제초제가 인간에게 해로운 것은 당연한 이치지만, 미군 사령부는 에이전트 오렌지를 비롯한 고엽제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한국군 백마부대, 청룡부대, 맹호부대의 작전 지역에도 상당량의 고엽제가 살포되었다. 당시 한국군 장병들은 뿌옇게 살포되는 고엽제를 ‘모기약’으로 알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래서 일부 장병들은 모기를 퇴치하려고 고엽제를 몸에 바르기도 했다. 세월이 흐르고 전쟁이 끝난 후 고엽제의 후유증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엽제의 폐해가 널리 알려진 것은 1979년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의 베트남 전쟁 참전병들이 제기한 집단 소송을 통해서였다. 전쟁이 끝난 후 피부병과 청각장애, 악성종양, 기형아 출산, 신경계와 면역계 이상, 호흡기 질환 등에 시달리던 참전용사들이 다우케미컬 등 7개 고엽제 제조회사를 상대로 미국 정부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고엽제 소송은 전 주월 미군 총사령관 웨스트 모어랜드(1914~2005) 장군이 증인으로 청문회에 출석할 만큼 큰 문제가 되었던 다국적 초대형 소송이었다. 다우케미컬은 고엽제 살포를 시작하기 전에 연구 용역 조사를 통해서 고엽제의 독성을 이미 알고 있었으나 1970년까지 이 사실을 은폐했다는 사실이 청문회를 통해 드러났다.
다우케미컬의 자료 은폐 작업이 드러나자 비로소 고엽제 살포가 전면 중지되었다. 현재까지 9600만 인구 중 약 400만 명 정도가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는 베트남도 현재까지 미국 제약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실정이다.
당시 미 해군 줌 월트 장군의 아들도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고엽제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미국의 제프 브레크너 감독은 1988년, 줌 월트 일가의 비극을 다룬 영화 ‘사령관의 아들’을 제작했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도 개봉했지만, 고엽제 후유증의 심각성을 널리 알리지는 못했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참전병들은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지 못한 채 ‘베트남 풍토병’으로 알려진 질병을 앓으면서 고통을 겪어야 했다.
뒤늦게 고엽제 후유증의 심각성을 깨달은 정부는 1993년에 이르러서야 피해자 확인과 보상에 나섰다. 베트남 참전은 우리 경제발전의 토대가 되었고, 전장에서 쌓은 실전 경험으로 국방력 향상에 기여했다. 그러므로 베트남 참전장병에 대한 합당한 예우는 국가의 당연한 의무다. 전쟁의 고통은 세대를 넘어 이어진다. 고엽제의 비극이 알려준 값비싼 교훈이다. 사진=필자 제공
필자 이정현은 중앙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