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음원 서비스 ‘멜론’의 인기곡 투표 ‘최애 수록곡 대전’에서 트로트 가수 임영웅이 방탄소년단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표 차이는 무려 41만여 표.
국내 중년 팬덤의 대표 주자가 글로벌 팬덤 아이돌 그룹을 꺾은 셈이다. 멜론은 유료 회원권 판매를 위해 ‘무료 회원은 하루 1번’ ‘유료 회원은 하루 5번’ 투표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중년 팬들은 이를 적극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의 주력 인물은 바로 구매력이 있는 중년 혹은 그 이상의 연령대에 포진한 소비자다.
새로운 소비 지형을 그리고 있는 이들은 누구인가? 최근 사회 전반적으로 경제 활동을 하며 풍요로운 노년을 지내는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가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은 2025년이면 65세 이상의 인구 비중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가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고령화 속도가 빠른 축에 속한다.
이 중에서도 우리나라 전체 인구 30% 이상을 차지하는 50~74세는 나이가 들어도 활발하게 사회·경제활동을 한다는 점에서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로 불린다. 이들이 주도하는 시장 규모는 2030년이면 168조 원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일각에선 내놓고 있다.
액티브 시니어는 그 명칭처럼 활동적이며 자신의 삶에 진심을 다한다. 이는 기존의 시니어 소비자와는 상당히 다른 특징적인 면이다.
과거 노년층은 가족 중심적인 전통적인 가치관을 바탕으로 자기 자신을 가족과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삶을 충실히 이행했다.
반면 액티브 시니어는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즐기는 쪽에 가깝다.
퇴직 후 연금이나 퇴직금 혹은 자식들의 용돈으로 생활하는 이전의 시니어 세대와는 달리 액티브 시니어는 스스로 삶의 주체가 되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하다.
자녀에게 의존하는 삶보다 내가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한다거나, 가보고 싶었던 곳으로 여행을 가는 등 자신의 여가 생활을 적극적으로 주도하는 편이다.
이러한 라이프 스타일을 영위하기 위해 외적·내적 건강 관리를 꾸준히 한다거나 경제적인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자기 계발을 끊임없이 하는 경향이 있다.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2020년도 노인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의 11.9%가 월평균 9.0시간을 건강관리, 운동 관련, 문화예술, 정보화, 어학, 인문학 등 학습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더불어 자신을 위해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투자한다. 약 1만 명의 시니어 회원을 보유한 시니어 플랫폼 ‘시니어인사이트랩’의 2021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10명 중 5명이 ‘가족보다 나를 위해 소비’(53.1%)하며, ‘나를 위한 시간과 돈 투자에 아끼지 않는다’(68.8%)고 밝혔다.
이뿐만 아니라 ‘꾸준한 취미활동’(81.3%), ‘건강을 위한 꾸준한 운동’(65.6%), ‘정기적인 건강검진’(75.0%)을 통해 자기 관리에도 충실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10명 중 7명이 개인 SNS 계정을 관리하고 소통하며, ‘자기 생각과 의견을 표현’(87.5%)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불어 예전 시니어와 ‘요즘’ 시니어의 가장 큰 차이점은 단연 온라인에 대한 태도다. 액티브 시니어는 이전 노년층보다는 확연히 다르게 온라인 환경에 친숙하다.
“요즘 애들은 못 따라가겠네”라고 말한다면 요즘 시니어가 아니다. 트렌드 세터까진 못 되어도 최소한 얼리어답터를 지향하는 이들은 각종 트렌드 정보에 목마르다.
능숙한 모바일 검색으로 유명 맛집과 핫플레이스를 먼저 다녀보고 자녀에게 추천하는 이들은 건강정보에도 준전문가라 할 만큼 정보 검색과 수집에 열심이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디지털 전환이 이루어졌던 지난 2년여 동안 이들도 엄지족 대열에 합류했다.
하나금융연구소 ‘세대별 온라인 소비 행태 변화와 시사점’에 따르면, 2019년 대비 2020년의 배달앱 서비스 결제 규모는 50대에서는 163%, 60대에서는 142% 각각 증가했다.
OTT 서비스 결제 규모에서도 50대는 181%, 60대는 166%가 각각 올랐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온라인 카드 결제액 역시 20대 등 다른 연령층에 비해 중·장년층의 증가 폭이 높게 나타났다. 하나금융연구소에 따르면 온라인 카드 결제 금액 증가율은 50대 50%, 60대 이상 55%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어떻게 액티브 시니어는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하는 신소비자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존 시니어들보다 이들은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은 자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부터 기존 노인들과 액티브 시니어 간의 가구 형태와 학력, 건강 수준 등에서 존재하는 차이가 본격적으로 가시화하고 있다. 가구 형태는 2011년과 비교했을 때 혼자 살거나 부부가 함께 사는 노인 단독가구가 증가했다.
또 2011년에서 2020년으로 오면서 ‘무학’ 비중이 31.6%에서 10.6%로 크게 줄며 학력 수준이 높은 노인들이 늘었다.
노인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건강 수준도 크게 향상된 경향을 보였다. 경제활동이 늘면서 경제 수준도 향상됐다.
가구 총소득도 최근 들어 늘었고 소득 항목도 스스로 돈을 버는 근로소득 비율이 증가하는 반면 가족으로부터 부양받는 사적 이전소득은 감소했다.
그렇다. 이제 시니어를 하나로 묶어 통으로 취급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전혀 다른 면을 보이는 새로운 시니어 소비자가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인 정책 스펙트럼을 확대하고 정부에서는 정교한 맞춤형 정책을, 기업 입장에서는 연령별로 더욱 촘촘한 마케팅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
특히 이들의 경제적 활동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질 때 소비 시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이들의 소득 보전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이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시니어 기술창업 실태와 활성화 방안’ 발표에서 시니어 기술창업자 창업 연령은 평균 50.8세이며, 이들 중 기업 경력자 비중이 84.6%에 달하고 대부분 기술 중심형 창업이 주류라고 분석했다. 자생적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할 시니어 기술창업이 정부 지원제도 부족과 중장년기술창업센터에 대한 지원 예산 부족 및 인프라 미비 탓에 소외되고 있다.
실제로 시니어 창업 초기 자금조달원은 퇴직금 등 자기 자금 비중이 높았고 벤처 자금은 2.0%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경제적으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재기 넘치는 활동가들의 인생 2막을 위해 우리 모두가 나서야 하는 이유다.
필자 이수진은 서울대학교 소비자학 학·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으로 소비문화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