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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머리 MBA, 교실에서 경영자를 만들 순 없다

입력 2022. 07. 04   19:18
업데이트 2022. 07. 0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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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A가 경영을 안 가르친다고?

현장 경험 없는 젊은이 뽑아
이론·분석기법 등만 가르쳐
오만한 사람·불행한 결과 초래

교육 과정에 일대 혁신 필요
리더십·책임감 등 덕목 중요
군 일상 자체가 좋은 경영 수업
비즈니스와 경영의 적합도

 

하버드 경영대학원. 필자 제공
하버드 경영대학원. 필자 제공
스탠퍼드 경영대학원. 필자 제공
스탠퍼드 경영대학원. 필자 제공

첫 페이지를 펼칠 때만 해도 ‘설마 그럴 리가’라고 생각했다. MBA가 경영을 가르치지 않는다니 누가 믿겠는가. 책장을 덮을 즈음엔 고개가 끄덕여졌다. 왜 그렇게 많은 비즈니스 예측이나 경영 판단의 오류가 발생했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됐다. 이 책은 바로 『MBA가 회사를 망친다(Managers Not MBAs)』다.

저자는 헨리 민츠버그 캐나다 맥길대 경영학과 교수다. 그는 경영을 숙련된 경험, 창의적 직관력, 과학적 분석 등이 조화를 이루는 영역으로 본다. 무엇보다 경영은 실천이다.

상황에 따른 판단과 실행이 매일 이어지는 현장이다. MBA 비즈니스 스쿨은 매니저가 지식과 경험을 동원해 적절하게 판단하고 실행하고, 동료와 소통하며 일을 수행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교육기관이다.

그런데 현 비즈니스 스쿨은 경험이 전혀 없는 학생을 뽑아 이론과 비즈니스 연구 사례와 분석 기법만 가르친다. MBA 졸업생 대부분은 새로 취업한 기업의 고객이나 직원, 제품이나 기술 또는 제조와 유통 프로세스에 대한 현장 지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현장 지식을 가진 사람들을 관리하는 매니저가 된다.

민츠버그 교수는 “폭넓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지식을 쌓은 사람들이 간판이 없다는 이유 하나로 (MBA 출신의) 관리를 받는다”라고 지적했다.

물론 현장 경험이 늘 옳은 것은 아니다. 고정 관념이나 정서적 판단이 작용해 적절한 판단을 흐릴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위험에 빠지지 않으려면 스스로 인식과 상황을 객관화할 필요가 있다. 관리자 위치라면 더욱 그렇다. MBA(Master of Business Administration)와 같은 교육과정이 필요한 이유다. 초기엔 MBA가 관리자 재교육 기능을 톡톡히 해냈지만, 점차 ‘교육을 위한 교육’으로 변질했다. 비싼 수업료는 경력 세탁과 이직, 고액 연봉, 인맥 쌓기(네트워킹)를 위한 입장권일 뿐이었다.

급기야 1979년 데릭 복(Derek Bok) 하버드대 총장이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교육 방식을 비판했다. 복 총장은 특히 사례 연구와 관련 토론의 교육적 효과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그의 보고서는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과 졸업생의 반발에 부딪혔고 MBA 스스로 개혁할 기회를 놓쳤다.

MBA 교육은 현장 경험이 전혀 없거나 고작 몇 년인 젊은이를 대상으로 이뤄진다. 젊은이는 현장 경험과 지식, 통찰력 부족을 만회하기 위해 MBA가 제공하는 비즈니스 분석과 기법을 배우는 것에 골몰한다. ‘적합하지 못한 사람’을 ‘잘못된 방법’으로 교육함으로써 ‘오만한 사람’과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 민츠버그 교수가 지적한 MBA의 문제점이다. 하버드의 사례 연구나 스탠퍼드의 이론 교육을 받다 보면 그 마약에 취해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그는 설명했다. MBA 학생들은 모든 사람의 위에서 언어와 숫자로 된 간단한 자료를 보고 중대한 의사결정을 내리고 틀림없는 전략을 세워 부하직원에게 실행시키는 리더를 꿈꾼다. MBA 과정만 끝내면 온갖 경영을 할 수 있다는 허상까지 갖는다.

MBA 교육이 기업의 매니저 육성과 어긋나는 정도에 머물면 다행이다. 심지어 해악을 끼친다. 미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2006년 4월 주요 기업 CEO 440명의 학력을 분석한 결과 MBA 출신의 기업 수익률이 대졸 출신은 물론 박사, 일반 석사 출신보다 낮았다. 실적 부진 기업 경영진의 90% 이상이 MBA 출신이라는 분석도 있다. 엔론, 리먼 브러더스, 시티그룹, 메릴린치 등 2000년대 금융위기 장본의 CEO들이 모두 MBA 출신인 것도 공교롭다.

MBA 출신이 투자금융사와 함께 가장 많이 가는 곳이 경영 컨설팅 회사다. MBA 졸업생이 많기로 유명한 M사는 1980년 미국 AT&T의 의뢰를 받아 20년 뒤 휴대전화 사용자 수를 예측했다. 90만 명이 될 것으로 봤으나 실제 사용자는 1억 명에 달했다. 이 경영컨설팅 업체는 1990년대 말 LG에 가전사업 전망이 어두우니 GE에 넘기라고 조언했다. 2007년엔 스마트폰 대중화에 시간이 걸린다는 보고서도 줬다. 이 조언을 따라 피처폰에 집중한 LG는 스마트폰 시대를 제때 타지 못했으며, 결국 휴대전화 사업을 접었다. 반면 가전사업 매각을 일축한 덕분에 세계 최고의 가전회사가 되었다.

이런 일이 흔하다. 심지어 컨설팅 업체는 진실이 아니라 고객이 듣기를 원하는 얘기를 해주는 대가로 먹고사는 기업이라는 이미지까지 씌워졌다.

컨설팅업체로선 억울하겠지만, 회사와 MBA 출신 컨설턴트가 자초한 측면이 분명 있다.

컨설턴트가 가장 잘하는 것이 적자기업의 구조조정이다. 비용을 발생시킨 조직을 없애거나 자산을 매각하면 곧바로 흑자로 돌아선다. 학교에서 배운 그대로다.

그런데 없앤 그 조직이나 직원, 자산이 알고 보면 이 회사의 핵심 경쟁력일 수 있다. 미래 경쟁력에 치명상을 줄 수 있는 일인데 컨설턴트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

구조조정을 한 대가로 오른 몸값을 맞춰줄 새로운 곳을 찾아가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MBA 출신 CEO는 취임하는 날부터 다른 회사로 갈 생각을 한다’는 농담까지 있다.

화려했던 MBA의 명성이 최근 빛을 잃었다. 금융위기 이후 특히 그렇다. 구직난을 겪는가 하면 고액 연봉도 옛이야기가 됐다. 미국 경제연구국 보고서(2020년)에 따르면 등록금과 기회비용을 고려할 때 MBA 출신이 평생 순소득을 고작 1% 증가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MBA보다 아래에 있는 것은 인문대(-3%)와 예술대(-12%)뿐이었다.

비싼 수업료와 고용시장 호조로 줄었던 MBA 지원자가 코로나 팬데믹과 경기침체 전망과 함께 다시 늘 전망이다. 통상 불황기에 취업과 근무 기회가 줄어들면서 자기 계발 시간을 가지려는 사람이 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육과정에 일대 혁신이 없다면 또다시 수요가 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회계를 비롯한 경영 업무 상당수를 인공지능(AI)으로 대체할 수 있는 시대다. 경영 상황이 변화무쌍한 격변기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효율적인 결정을 내린 경험을 가진 사람을 필요로 한다.

가치는 희소성에서 나온다.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대인 접촉을 꺼리는 사회로 갈수록 협력, 소통, 배려, 헌신과 같은 덕목은 더 희귀해진다. 리더십과 책임감 역시 마찬가지다. 이러한 덕목을 특히 기업 경영에서 필요로 한다. 위의 덕목을 조금만 갖고 있어도 취업이든 승진이든 유리하다. 정작 MBA는 이를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는다.

이런 덕목을 많이 배우는 조직이 뜻밖에도 군이다. 리더십과 책임감의 경우 군 일상 자체가 배움이다. 의무이든 직업이든 병역서비스를 하는 이상 자연스럽게 배운다.

당신은 지금 MBA보다 좋은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필자 신화수는 30년간 기술산업 분야를 취재했으며 전자신문 편집국장, 문화체육관광부 홍보협력관, IT조선 이사 등을 역임했다. 기술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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