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스포츠 연예·문화

[박현민의 연구소(연예를 구독하소)] 누가 ANNA를 만들었나

입력 2022. 06. 28   16:43
업데이트 2022. 07. 29   09:35
0 댓글

10. 안나와 애나, 허상이 만든 시한부 행복

 
수지, 거짓된 인생 사는 ‘안나’ 변신
리플리 증후군 주요 소재로 차용
무수한 거짓말로 실제의 삶 침식
불합리한 경쟁·그릇된 욕망 조명
우리 사회 구조의 이면 드러내
가짜 상속녀 실화 ‘애나 만들기’ 비슷

 

쿠팡플레이 ‘안나’ 스틸컷. 사진=쿠팡플레이
쿠팡플레이 ‘안나’ 스틸컷. 사진=쿠팡플레이
넷플릭스 ‘애나 만들기’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넷플릭스 ‘애나 만들기’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사람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씁니다.’

가수 겸 배우 수지가 데뷔 첫 단독 주연을 맡은 쿠팡플레이 시리즈 ‘안나’가 지난 24일 첫선을 보였다. 수지가 초반에 읊조린 이 덤덤한 내레이션은, 앞으로 그가 작품 속에서 펼쳐낼 거짓으로 점철된 인생에 대한 나름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다. ‘안나’는 사소한 거짓말을 시작으로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게 되며 결국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일부를 잃어버린 여자 유미(수지)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총 6부작 중 현재 공개된 것은 1~2회로 이를 모두 합해도 러닝타임은 2시간이 채 넘지 않는다. 당초 공개 전 우려와 기대가 모두 존재했던 ‘안나’는, 일단 초반 합격점을 받아든 분위기다. 2017년 출간된 정한아 작가의 장편소설 『친밀한 이방인』을 토대로 한 영화 ‘싱글라이더’의 이주영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새롭게 탄생된 시리즈 ‘안나’는 실제 있음 직한 이야기를 적절한 에피소드를 곁들이며 몰입감을 끌어올렸다. 특히 주인공 유미로 분한 수지는 10대 학창 시절부터 시작해 대학교수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거머쥐는 인생 역전의 순간까지 극 대부분을 거의 단신으로 이끌었다. 여전히 ‘첫사랑의 아이콘’으로 기억되던 수지는 ‘안나’를 통해 이를 완전히 떨쳐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해당 수식어를 탄생시킨 영화 ‘건축학개론’(2012) 개봉으로부터 약 10년 만의 일이다.

‘안나’는 리플리 증후군을 주요한 소재로 차용했다. 유미가 안나가 되는 과정, 그리고 안나로서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사는 내내 무수한 거짓말이 반복된다.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고, 어느덧 그렇게 모인 거짓말이 실제의 삶 대부분을 침식한다. 돌이키려고 해도 스스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지경에 이른 셈이다. 수지는 겪어보지 못한 이러한 인물의 심리 상태를 ‘유미’에게 투영시키기 위해 촬영 전 심리 전문가를 만나서 조언을 구하며 공들였다. 극 중 유미가 행하는 일들은 엄밀하게 사기이고, 범죄 행위다. 안위를 위한 거짓말을 일삼고, 이를 통해 타인의 삶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다만, 이것을 지켜보는 시청자의 마음은 좀 복잡하다. 가난한 부모, 더욱이 농인 어머니는 치매 진단을 받았다. 재능도 있고 꿈도 많던 한 아이가 태생적인 가난에 치여 극심한 불행으로 치닫는 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 않는다. 비참한 인생의 서막이었다. 그리고 이 같은 일은 대한민국에서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현실임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이름을 바꾸고, 학위를 위조하고, 집안을 속이는 일로써 유미는 완전히 다른 대우를 받고, 새로운 삶을 마주하게 됐다. 부유층으로서의 삶을 흉내내고, 강단에서의 미술 교육을 위한 본인만의 치열한 노력이 곁들여지는 모습은 유미 스스로 지어낸 거짓말이 아닌 스스로의 노력이 쌓아 올린 일부가 존재한다고 믿게 이끌었을 터다. 그저 아주 사소한 거짓말이 만들어 낸 기회를 오롯이 스스로의 치열한 노력으로 붙들었다고 거듭 안심시키며, 자꾸만 내면에 차오르는 짙은 불안감을 힘껏 지워내려고 애쓸 것이다. 유미의 인생과 자아는 점차 희미해지고, 지어낸 허상인 안나의 삶은 반작용으로 더 또렷해진다.

이러한 이야기는 올해 초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돼 큰 관심과 인기를 얻었던 9부작 시리즈 ‘애나 만들기’를 떠올리게 한다. ‘애나 만들기’는 2017년 부유한 독일인 상속녀 행세를 하며 뉴욕 사교계를 발칵 뒤집었던 실재의 인물인 애나 소로킨 사건을 취재한 뉴욕 매거진 기자 제시카 프레슬러의 기사를 기반으로 제작된 9부작 시리즈. 넷플릭스 측이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애나로부터 해당 이야기의 권리를 32만 달러(한화 약 4억 원)에 사들여 ‘애나 만들기’를 탄생시킨 과정 역시 이슈가 됐다. 실화 속 애나는 부유한 이들에게 대접이 좋은 뉴욕을 타깃으로 삼고 계획적인 사기 행각을 벌였다. ‘애나 만들기’ 속 애나가 벌인 거짓에 기반한 사기 행각들은 그 규모와 형태 면에서는 좀 상이하지만, 결과적으로 ‘안나’ 속 유미가 행한 일들과 주요 맥락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우연처럼 ‘안나’와 ‘애나’ 모두 영어 철자가 ‘ANNA’로 동일하다.) 거짓을 첨가해 그것을 바탕으로 지금보다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려는 욕망이다. 애나는 수감된 이후에도 “난 성공을 위해 노력했어. 그래서 이뤄낸 성취”라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또한 애나의 변호사는 법정에서 이같이 말한다. “우리 모두 애나와 닮은 점이 있다. 거짓말은 조금씩 다 한다. 이력서나 영업용으로, 소셜 미디어 같은 곳에서.” 이를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애나와 안나는 다른 구석도 있다. 애나는 모든 이에게 자신의 화려한 삶이 공개되길 원했고, 인플루언서가 되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더 큰 일을 과감하게 벌였다. 반면 안나는 행여 자신의 삶이 사람들에게 공개될까 짐짓 두려워한다. 남편 지훈(김준한)이 정치인이 되면 이런 일이 가속화될까 염려하는 모습이 그러한 심경을 반영한다. 아마도 남은 회차에 그려질 모습은 안나의 과거를 알고 있는 현주(정은채)의 등장, 현 상황을 지켜내기 위해 과감하고 치밀해지는 안나의 거짓말, 그 거짓이 발각될까 조마조마해하는 불안감, 진실이 밝혀진 이후 맞닥뜨리게 될 주변과 세상의 반응 등이 아닐까.

안나와 애나를 향해 무조건적 적개심을 품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벌인 사기 행위 자체도 분명 문제지만, 그들이 만들어 낸 허상으로 너무도 쉽게 수많은 것들을 영위할 수 있도록 구조화된 우리 사회의 이면을 인지하고 있어서다. 사회적 동물이라 지칭되는 인간은 살면서 수많은 관계를 맺는다. 이 관계는 대부분 제각각 목적이 은밀하게 내포되어 있다. 하지만 애초에 가지지 못하고 태어나 정당한 경쟁을 펼치지도 못하는 이들은 선택조차 지극히 제한되는 사회다. 관계를 맺는 것도 용이하지 않다. ‘안나’의 제작진이 “한 사람의 정체성이 과연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라고 강조한 것에 대해 곱씹어 본다. 다만 하나 명확한 사실은 존재한다. 그들이 유발한 공감과 동정심이, 그들이 자행한 범죄에 대한 면죄부는 절대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