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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에 만난 사람] 인구 11만명 칠곡, 보훈 고장으로 "보훈 없는 호국 없죠"

조수연

입력 2022. 06. 17   17:33
업데이트 2022. 06. 19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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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석 칠곡군 기획감사실 공보담당
 
에티오피아 6·25참전용사 기리는 ‘칠곡군 6037 캠페인’ 등 기획
낙동강 방어선전투 중 실종된 엘리엇 미 육군중위 자녀들 초청도
“군서 받은 정훈교육 밑거름 돼…보훈 선진문화 확립에 앞장설 것”



13일 경북 칠곡군 칠곡호국평화기념관에서 박종석 칠곡군 기획감사실 공보담당이 국방일보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병문 기자
13일 경북 칠곡군 칠곡호국평화기념관에서 박종석 칠곡군 기획감사실 공보담당이 국방일보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병문 기자


호국보훈의 달 6월. 전국 곳곳에서 기념행사 소식이 들리지만, 한 달 반짝 기념하곤 잠잠해지기 일쑤다. 국가를 위해 몸 바친 호국 영웅들의 희생은 긴 세월과 함께 쉬이 잊히고,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의 가슴 아린 기억으로만 남기도 한다. 그런데 인구 11만 명의 작은 고장인 경북 칠곡군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6·25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 중 하나였던 이곳에선 수시로 참전용사 초청행사가 열리고, 마을에는 이들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칠곡이 호국보훈의 상징이 된 데는 칠곡군 기획감사실에서 근무하는 박종석(48) 칠곡군 공보담당의 역할이 크다. 해병대 공보정훈장교 출신인 그는 19년째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의 사연을 알려온 ‘호국’ 전문 홍보인이다. 현재도 ‘사복 입은 군인’이라는 신념으로 일한다는 그를 지난 13일 만났다. 글=조수연/사진=김병문 기자


13일 경북 칠곡군 칠곡호국평화기념관에서 박종석 칠곡군 기획감사실 공보담당이 국방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병문 기자
13일 경북 칠곡군 칠곡호국평화기념관에서 박종석 칠곡군 기획감사실 공보담당이 국방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병문 기자



“보훈 없는 호국은 없다고 생각해요. ‘나라를 지켜주셔서 고맙다’는 한마디에 참전용사들은 지나온 인생을 보상받은 듯 좋아하시거든요. 현충일에 태극기 건 집 한 곳 찾아보기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가 계속되면 더 이상 누가 나라를 위해 희생하겠다고 나서겠어요. 현역 군인들과 국가에 몸 바친 분들이 365일 존중·예우받는 사회적 분위기가 자리 잡았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칠곡군 호국평화기념관에서 만난 박 담당은 겸연쩍게 웃으며 “제가 한 게 별로 없는데…” 했지만 이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듯 입을 뗐다. 1999년 소위로 임관해 11년 동안 해병대 공보정훈장교로 복무한 그는 전역 후 대학 때 경제 전공을 살려 잠시 증권사에서 일하다가 8년째 칠곡군 공보담당으로 근무하고 있다. ‘호국보훈의 고장’에 산다는 자부심이 높은 칠곡군민들에게도 그는 꽤 유명하다. 인구 11만 명대의 작고 아담한 이 지역의 가치를 기발한 아이디어로 전국에 알렸기 때문이다.

그가 기획한 캠페인 중 6037명의 에티오피아 6·25 참전용사의 헌신을 기리는 ‘칠곡군 6037 캠페인’, 천안함 전사자와 고(故) 한주호 준위를 상징하는 ‘46+1 천안함 챌린지’는 전국 단위 캠페인으로 번졌다.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2020년에는 ‘적극행정 공무원’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 정도면 어깨에 조금 힘이 들어가도 되지 않을까. ‘제가 홍보 좀 하죠’라며 장난스레 으스댄다 해도 맞장구를 칠 수 있었다. 하지만 자랑에는 좀처럼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저는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참전용사들이 ‘와서 살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곳은 이곳밖에 없을 겁니다. 참전용사가 온다고 하면 가장 좋은 방 네 개를 내어주시는 호텔 사장님부터, 재능기부로 나서주시는 지역 예술작가님들 등 모두 칠곡군민들 덕분입니다.”

그는 최근 천안함 피격사건, 연평도 포격전, 제2연평해전, 목함지뢰 도발 등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헌신한 국가유공자들을 초청해 기획 전시를 마련했다. 지역에 거주하는 작가들이 이들의 부상 부위를 그린 작품들은 호국평화기념관에 상설 전시품으로 내걸렸다.

기발한 행사들을 기획할 수 있었던 데에는 작은 것 하나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 꼼꼼한 성격과 적극성이 단단히 한몫했다. 호국보훈의 가치를 올곧게 세울 수 있는 일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부딪쳤고, 그의 진심을 알아본 관계자들은 흔쾌히 응해줬다.

“지역 신문에서 두 줄짜리 단신 기사를 우연히 보게 됐어요. 낙동강 방어선전투 중 실종된 엘리엇 미 육군중위 자녀들이 평생 아버지를 그리워하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골을 뿌리기 위해 우리 지역에 방문했었다는 소식이었죠. 하지만 이분들을 접촉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밤새 수소문한 끝에 엘리엇 중위의 딸 조르자 레이번 씨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찾아 연락이 극적으로 이뤄졌다. 주한 미국대사관·주미 한국대사관·국가보훈처 등에 ‘엘리엇 중위 자녀를 공개 초청한다’는 협조 공문을 재차 보낸 지 일주일여 만이다.

가족들을 다시 한 번 칠곡군에 정중히 초청해 국내 유일의 호국축제인 ‘낙동강 세계평화 문화대축전’에서 명예 군민증을 수여하고, 칠곡의 대표 관광 명소인 호국의 다리 밑에 ‘엘리엇 공원’을 조성해 예우했다.

이 외에도 천안함 참전용사를 초청해 백령도 앞바다 물과 낙동강 물을 한데 붓는 ‘물을 지킨 사람들’, K9 자주포 폭발사고로 부상당했지만 모델로 활약 중인 이찬호 씨와 지역 청소년들이 함께 워킹하는 등 박 담당만의 감수성과 기획력이 빛난 행사들이 다수다. 특히 그가 촬영한 사진은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여섯 차례나 오르며 화제가 됐고, 직접 제작한 영상 두 편도 폭발적인 조회 수를 기록했다.

박 담당은 현재의 성과들이 ‘군에서 홍보 일을 체계적으로 배웠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떠올렸다. “지금의 홍보 감각은 군 경험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군은 느리다, 처진다’는 편견도 있는데, 당시 정훈교육이 정말 체계적으로 잘돼 있었어요. 군 생활 초반에 육군종합행정학교에서 6개월간 교육을 받은 경험이 큰 자산과 밑거름이 됐어요.”

박 담당은 끝으로 소망과 다짐을 전했다. “군인과 공직자로서 쌓은 노하우가 참전용사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칠곡군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호국과 보훈의 도시로 자리 잡고, 보훈 선진문화를 확립하는 데 앞장서겠습니다.”


조수연 기자 < jawsoo@dema.mil.kr >
김병문 기자 < dadaz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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