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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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 없는 호국은 없다고 생각해요. ‘나라를 지켜주셔서 고맙다’는 한마디에 참전용사들은 지나온 인생을 보상받은 듯 좋아하시거든요. 현충일에 태극기 건 집 한 곳 찾아보기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가 계속되면 더 이상 누가 나라를 위해 희생하겠다고 나서겠어요. 현역 군인들과 국가에 몸 바친 분들이 365일 존중·예우받는 사회적 분위기가 자리 잡았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칠곡군 호국평화기념관에서 만난 박 담당은 겸연쩍게 웃으며 “제가 한 게 별로 없는데…” 했지만 이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듯 입을 뗐다. 1999년 소위로 임관해 11년 동안 해병대 공보정훈장교로 복무한 그는 전역 후 대학 때 경제 전공을 살려 잠시 증권사에서 일하다가 8년째 칠곡군 공보담당으로 근무하고 있다. ‘호국보훈의 고장’에 산다는 자부심이 높은 칠곡군민들에게도 그는 꽤 유명하다. 인구 11만 명대의 작고 아담한 이 지역의 가치를 기발한 아이디어로 전국에 알렸기 때문이다.
그가 기획한 캠페인 중 6037명의 에티오피아 6·25 참전용사의 헌신을 기리는 ‘칠곡군 6037 캠페인’, 천안함 전사자와 고(故) 한주호 준위를 상징하는 ‘46+1 천안함 챌린지’는 전국 단위 캠페인으로 번졌다.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2020년에는 ‘적극행정 공무원’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 정도면 어깨에 조금 힘이 들어가도 되지 않을까. ‘제가 홍보 좀 하죠’라며 장난스레 으스댄다 해도 맞장구를 칠 수 있었다. 하지만 자랑에는 좀처럼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저는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참전용사들이 ‘와서 살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곳은 이곳밖에 없을 겁니다. 참전용사가 온다고 하면 가장 좋은 방 네 개를 내어주시는 호텔 사장님부터, 재능기부로 나서주시는 지역 예술작가님들 등 모두 칠곡군민들 덕분입니다.”
그는 최근 천안함 피격사건, 연평도 포격전, 제2연평해전, 목함지뢰 도발 등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헌신한 국가유공자들을 초청해 기획 전시를 마련했다. 지역에 거주하는 작가들이 이들의 부상 부위를 그린 작품들은 호국평화기념관에 상설 전시품으로 내걸렸다.
기발한 행사들을 기획할 수 있었던 데에는 작은 것 하나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 꼼꼼한 성격과 적극성이 단단히 한몫했다. 호국보훈의 가치를 올곧게 세울 수 있는 일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부딪쳤고, 그의 진심을 알아본 관계자들은 흔쾌히 응해줬다.
“지역 신문에서 두 줄짜리 단신 기사를 우연히 보게 됐어요. 낙동강 방어선전투 중 실종된 엘리엇 미 육군중위 자녀들이 평생 아버지를 그리워하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골을 뿌리기 위해 우리 지역에 방문했었다는 소식이었죠. 하지만 이분들을 접촉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밤새 수소문한 끝에 엘리엇 중위의 딸 조르자 레이번 씨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찾아 연락이 극적으로 이뤄졌다. 주한 미국대사관·주미 한국대사관·국가보훈처 등에 ‘엘리엇 중위 자녀를 공개 초청한다’는 협조 공문을 재차 보낸 지 일주일여 만이다.
가족들을 다시 한 번 칠곡군에 정중히 초청해 국내 유일의 호국축제인 ‘낙동강 세계평화 문화대축전’에서 명예 군민증을 수여하고, 칠곡의 대표 관광 명소인 호국의 다리 밑에 ‘엘리엇 공원’을 조성해 예우했다.
이 외에도 천안함 참전용사를 초청해 백령도 앞바다 물과 낙동강 물을 한데 붓는 ‘물을 지킨 사람들’, K9 자주포 폭발사고로 부상당했지만 모델로 활약 중인 이찬호 씨와 지역 청소년들이 함께 워킹하는 등 박 담당만의 감수성과 기획력이 빛난 행사들이 다수다. 특히 그가 촬영한 사진은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여섯 차례나 오르며 화제가 됐고, 직접 제작한 영상 두 편도 폭발적인 조회 수를 기록했다.
박 담당은 현재의 성과들이 ‘군에서 홍보 일을 체계적으로 배웠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떠올렸다. “지금의 홍보 감각은 군 경험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군은 느리다, 처진다’는 편견도 있는데, 당시 정훈교육이 정말 체계적으로 잘돼 있었어요. 군 생활 초반에 육군종합행정학교에서 6개월간 교육을 받은 경험이 큰 자산과 밑거름이 됐어요.”
박 담당은 끝으로 소망과 다짐을 전했다. “군인과 공직자로서 쌓은 노하우가 참전용사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칠곡군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호국과 보훈의 도시로 자리 잡고, 보훈 선진문화를 확립하는 데 앞장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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