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의 최고 단점은 일과 경계가 없는 것이다. 내가 쉬는 시간에도 사건은 발생하고, 의뢰인의 궁금함이 해결되지도 않는다. 주말이나 휴가 중에도 업무용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해외로 휴가나 출장을 가면 국제 전화비가 수십만 원 나오거나, 새벽에 회의를 들어가는 일은 예사다.
반면 변호사의 장점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람에 대한 이해가 넓어진다는 것이다. 온갖 사회의 분쟁을 다루다 보니 어릴 적부터 사람들 사이의 욕망, 갈등이나 역학관계가 얼마나 처절한지 눈을 뜬다. 정치권에 법률가들이 너무 많은 것에 대한 지적이 있고 나 역시 조금 더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 이유는 단순히 권력에 가깝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사회 여러 관계를 반강제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직업적 특성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십 년 넘게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변호사는 사건 상담 때 대략적인 승패나 난이도 계산을 한다. 고객에게 어느 정도는 진행 방향을 알려줘야 하기도 하고, 보수 제안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인이 행사할 수 있는 권리가 10이라고 했을 때, 의뢰인들의 선택은 제각각이다. 가장 편한 고객은 10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변호사를 믿으면서 하는 분들이다. 권리를 1 정도만 행사하겠다는 고객도 열에 한둘은 있다.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사건임에도 변호사에게 사건을 털어놓는 것만으로 치유를 받았으니 진행하지 않겠다는 분들도 있다. 이 경우 사람을 도왔다는 보람은 있지만 내 수익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물론 이때의 경험들이 팟캐스트나 네이버 카페 등을 통해 고민상담을 하고 책을 쓰는 계기가 됐다.
최악의 고객은 왜 100이 아닌지 변호사에게 화를 내거나, 100을 얻기 위해서 상대방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부류다. 언론, 시민단체, 정부 기관에 권리남용 수준의 민원을 넣는다. 주변인을 통해 계속 연락해서 상대방이 지치게 만든다. 더 심한 일도 없지 않다. 아무리 말려도 잘 듣지 않고, 나중에는 변호사에게도 진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전형적인 ‘진상’ 고객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진상’들은 상대방에게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자기 회사 직원 등 주변인에게 가혹한 것은 당연지사고, 변호사도 못살게 군다. 사건이 한참 진행됐는데 자기의 억지 주장을 서면에 담아주지 않는다고 하면서 “너 같은 건 돈만 주면 어디서든 구할 수 있는데 왜 내 말을 안 들어”라고 막말을 하거나 수임료를 돌려주지 않으면 국가기관에 진정을 넣겠다고 협박을 한다.
대형로펌에서 나와 개업 경력이 쌓이면서 첫 만남 때부터 심상치 않은 분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너무 바쁘다거나, 이해충돌에 걸린다거나, 잘 모르는 분야라고 하면서 온갖 핑계를 들어 수임을 거부한다. 꼭 해달라고 하면 다른 건보다 훨씬 비싼 금액을 부른다. 대부분 자기 돈은 엄청나게 아까워하는 사람들이라 수임료를 높이면 거의 100% 돌아간다. 씁쓸하긴 하지만, 내가 살아야 일도 하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다.
가끔은 이런 ‘진상’들은 잘 먹고 잘사는데, 진짜 억울한 사람들은 조용히 주변부에서 사는 현실이 부조리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어쩌랴? 이게 세상인 것을. 반대로 또 생각해 보면, 나는 누군가에게 피해야 하는 사람은 아닐까? 아직은 좋은 제안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 그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구나 싶으면서도 매번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고 경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보다 훨씬 더 부자로 사는 ‘진상’들을 많이 봤지만, 나는 돈이 더 많아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저런 인간이 되고 싶지는 않다. 인간의 본성이 쉽사리 바뀌지는 않을 테니, 그냥 나는 나대로 남들에게 최대한 피해 안 주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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