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일의 미래

4차 산업혁명시대 의사·변호사 생존 전략은

입력 2022. 05. 16   16:48
업데이트 2022. 05. 16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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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직의 종말(?)
 
AI·빅데이터 등 첨단 기술 발달
새 전문 서비스 플랫폼 속속 등장
기존 일에 안주하려 한다면
기존 권위·명예·고소득 보장 못 받아
소비자 생각 알고 차별화해야

 


지난 11일 서울중앙지검은 ‘로톡’이 변호사법 등을 위반하지 않았다며 불기소를 결정했다. 로톡은 온라인 법률 플랫폼이다. 2015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변호사단체로부터 3차례나 고발당했다. 로톡이 돈을 받고 변호사를 소개하거나 알선하고 유인하는 행위를 금지한 변호사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다. 변호사단체는 또 로톡이 부정한 방법으로 개인정보가 있는 판례를 수집해 개인정보보호법을 어겼다고도 주장했다.

검찰의 판단은 달랐다. 로톡이 변호사로부터 받은 광고료는 의뢰인과 상담하거나 사건을 수임한 수수료와 달라 소개·알선·유인 대가가 아니라고 봤다. 수집한 판례 데이터도 법원의 판결문 열람 서비스로부터 나왔다고 판단했다. 공공 데이터라는 뜻이다.

로톡의 운영사인 로앤컴퍼니는 검찰의 잇따른 불기소 처분을 환영했다. 하지만 사업 차질을 여전히 걱정했다. 변호사협회는 지난해 로톡에 가입해 광고한 변호사를 징계한다는 규정을 만들었다. 변호사들이 대거 로톡을 탈퇴했다. 로앤컴퍼니는 변협의 징계규정이 헌법상 직업의 자유를 제한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위헌 결정이 나올 때까지 이 회사는 버텨야 한다.

이 사건을 법조계만 주목하는 게 아니다. 의사, 약사,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등 전문직단체는 ‘남의 일’로 여기지 않고 지켜본다. 당장 의료계는 ‘제2의 로톡 사태’를 걱정한다. 비대면 진료와 처방, 약 배송 등 원격 진료 쟁점이 있기 때문이다. 현행 의료법은 의사가 환자와 마주하지 않고 진료하거나 약을 처방하는 것을 금지한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이 심각 단계에 이르자 정부는 2020년 3월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막상 해 보니 반응이 좋았다.

2년간 비대면 진료 건수가 400만 건에 육박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비대면 의료서비스에 대한 인식과 수용도를 조사했더니 경험한 환자의 87.2%가 앞으로도 활용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간호사는 87.5%로 더 높았다. 의사 응답률은 66.4%로 간호사와 환자보다 낮았지만, 과거의 반대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경험하지 않은 의사의 42.5%가 활용 의향을 내비친 것과 비교하면 ‘한번 해 보니 나쁘지 않네’라고 생각한 의사가 많은 편이다. 의사들은 원격 모니터링과 원격 협진엔 각각 95.3%, 79.2%가 활용 의사를 밝혔다. 이러한 인식 변화를 반영하듯 의사단체들이 최근엔 원격 진료를 무조건 반대하지 않는다. 제한적 범위에서 수용하되 적정 수가를 보장받자는 쪽이다.

약사의 반응은 다르다. 여전히 전면 반대다. 약사계는 처방전의 위조나 중복 사용, 의약품 오남용과 오배송, 지역약국 체계 붕괴 등을 이유로 비대면 처방과 약 배송서비스의 계속 금지를 주장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 한시적 허용이 종료되면 약 배송서비스 플랫폼들은 서비스를 중단하거나 아예 사업을 접어야 한다. 허용하면 되레 약사업계가 큰 타격을 받는다.

두 사례는 기술 발달에 따른 새 전문 서비스 플랫폼의 등장과 이에 저항하는 기존 전문직의 갈등을 보여 준다. 자격증과 같은 라이선스와 지식 독점으로 오랫동안 굳건했던 ‘전문직’이라는 성벽(城壁)에 조금씩 균열이 생겼다. 공성전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어느 한 곳만 뚫려도 공성전은 다른 성으로 삽시간에 옮겨 갈 것이다.

당장은 수비가 강하다. 전문직은 거대 이익집단이다. 의사, 약사, 판사,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변리사, 건축사, 감정평가사 등 이른바 고소득 전문직은 더욱 그렇다. 국회와 정부에 진출한 인사도 많아 힘도 세다. 상대는 가진 게 기술뿐인 스타트업이다. 게임이 되지 않는다. 원격 의료 논쟁이 거의 20년간 겉돌기만 한 것도 힘의 격차가 일방적이었기 때문이다.

전문직들의 방어논리는 소비자 권리 보호다. 그런데 바로 이 소비자 권리에 의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그들만의 아성이 흔들린다. 법률이든 의료든 회계든 전문서비스의 소비자는 약자다. 이른바 ‘정보 비대칭’이 있기 때문이다. 워낙 어려운 분야라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당연히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 다른 대안도 쉽게 찾을 수 없다. 그나마 정부의 규제와 감시가 있어 부당한 소비자 권리 침해는 적어졌지만, 여전히 불만스럽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디지털 서비스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소비자가 법인을 통하지 않고 전문직과 직거래하거나 값싸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선택권도 넓어졌다. 기술이 저 높은 곳에 있던 전문직을 보통 사람의 눈높이까지 내려오게 했다.

많은 사람은 AI가 비교적 단순한 일부터 대체하고, 전문 분야는 나중에 될 것으로 생각한다. 사실은 정반대다. 오히려 전문 분야에 AI가 파고들기 좋다. 양질의 데이터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법률과 의료는 판례, 법률문서, 의학논문, 통계 등 지식이 체계적으로 정리된 분야다. 더욱이 수많은 전문가의 검증을 거쳐 나온 데이터다. 오염이 덜 돼 품질까지 우수하다. AI가 분석하기 딱 좋다. AI는 이렇게 양질의 데이터가 있었기에 빨리 학습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사람과 대결해 완승했다. AI는 사나흘이나 걸리는 법률 판례 검색을 몇 분 만에 뚝딱 해치운다. 20~30분이 걸리는 엑스레이 판독도 몇 초 만에 끝낸다. 게다가 사람보다 더 정확하다. 벌써 몇 년 전의 일이다. 회계와 세무 분야면 아예 실시간으로 데이터가 쌓인다.

사실상 전문직이 할 일이 없을 정도로 AI가 발전했다. 전문직이 유일하게 AI를 이기는 것은 그 결과에 책임을 진다는 것뿐이라는 자조가 나온다. 책임성이야말로 전문직이라는 성을 지키는 ‘해자(垓子)’다.

그렇다고 전문직의 종말이 머잖았다고 전망하는 것은 성급하다. 이전과 같은 위세나 부를 누리는 게 힘들어졌다는 것뿐이지 여전히 전망 좋은 고소득 직종이다.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 물론 어려운 자격증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다만 전문직이 그들만의 성에 안주하려 한다면 권위와 명예, 고소득을 전혀 보장받을 수 없다. 접목되는 기술과 그 변화를 잘 이해해야 한다. 무엇보다 소비자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같은 눈높이에서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실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상황에서 남과 차별화하지 않고선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전문직은 미래에도 좁은 문이다. 하고 싶다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기술 쪽으로 접근하면 간접적이나마 가능하다. 비록 자격증을 따지 못하더라도 관련 분야 일을 할 기회를 만들 수 있다. 떠오르는 전문 서비스 분야 기술기업에 취업할 수도 있고, 창업하는 방법도 있다. 이 경우 고객인 전문직이 원하는 것을 빨리 파악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다.

이 점에서 사람 의사보다 AI의 판단을 더 신뢰한다는 조사 결과에 주목한다. 궁금한 게 있어도 묻지 못하고, 불친절해도 참았던 소비자의 쌓인 불만이 묻어 나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비자 생각을 빨리 읽지 않으면 쉽게 대체될 수 있다. AI가 아니더라도 임금이 싼 저개발국가의 우수한 의사나 건축가에게 고객을 빼앗길 수 있다.


필자 신화수는 30년간 기술산업 분야를 취재했으며 전자신문 편집국장, 문화체육관광부 홍보협력관, IT조선 이사 등을 역임했다. 기술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을 응원한다.
필자 신화수는 30년간 기술산업 분야를 취재했으며 전자신문 편집국장, 문화체육관광부 홍보협력관, IT조선 이사 등을 역임했다. 기술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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