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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나에게 처음으로 ‘진짜 사막’을 체험해 볼 기회가 찾아왔다. 생애 처음으로 가보는 라틴 아메리카 기행에서 페루의 이카 사막에 가보게 된 것이다. 바다가 매우 가까이에 있고, 광활하게 펼쳐진 사막 한가운데 커다란 오아시스가 있다. 오아시스에는 ‘와카치나’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지닌 마을이 있어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 이카 사막 근처에 도착하자마자 사륜구동 자동차로 질주하는 사막 투어 상품을 알리는 광고가 즐비하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아, 이럴 수가. 사막조차 상업화되다니. 하지만 그런 걱정을 뒤로하고 ‘던 버기’라 불리는 사륜구동차를 타고 사막 위로 질주하니 가슴이 쿵쾅거렸다. 사륜구동차의 엔진소리가 너무 크긴 했지만, 그래도 사막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어쩌면 생텍쥐페리가 말하는 천연 그대로의 사하라 사막은 내가 체험하기엔 너무 힘든 난코스일 것이다. 이카 사막은 나처럼 체력이 약한 사람도 도전할 수 있는 ‘일상 속에서 경험 가능한 사막’이었다.
이카 사막의 절경은 해 지는 순간에 절정에 다다른다. 사륜구동차의 요란한 엔진 소리가 넘치고, 모래 언덕 위에서 마치 윈드서핑을 하듯 샌드 보딩(Sand Boarding)을 즐기는 사람들의 떠들썩한 환호 소리도 가라앉으면, 어느새 사막에도 저녁노을이 물들기 시작한다. 사막의 황혼, 그것은 도시의 황혼과는 전혀 다른 감동을 전해준다. 빌딩 숲 사이로 해가 저물어갈 때면 온갖 지형지물 때문에 노을도 태양도 원래 모습보다 훨씬 이지러져 보이는데, 사막에서는 거칠 것이 없다. 환호소리가 가라앉고 물끄러미 차분하게 사막의 모래 언덕 구석구석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때부터 사막의 진짜 이미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엔터테인먼트의 대상으로서의 사막이 아닌, 관광장소로서의 사막이 아닌, 그저 있는 그대로의 사막. 마침내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나 『인간의 대지』의 아름다운 사막도 아닌, 그저 내 눈 앞에 펼쳐진 현실 그대로의 사막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막은 어떤 형용사도 꾸밈음도 필요 없이 아름다웠다. 하늘을 찌를 것만 같은 마천루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전쟁 같은 교통체증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사막은 기적 같은 평온을 선물해주었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물이 부족하고, 살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혹독한 생활환경일 수 있겠지만, 자연의 입장에서는 들판도 산맥도 호수도 없는 여백의 공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나는 사막의 추억이 던 버기투어와 샌드 보딩으로 가득한 것이 아쉬워, 친구에게 말했다. “내가 만약 여행상품 기획자라면, 말없이 사막 걷기, 사막에서 명상이나 요가하기,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 것 같아. 말없이 사막을 걷기는 정말 좋지 않아?” “그러니까 네가 여행기획자가 못 되는 거야. 그 상품이 팔리겠니?” 아쉽지만, 그럴 것 같다. 말없이 사막을 터벅터벅 걷고 싶은 나 같은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내 마음속의 사막은 바로 그 말없이 걷기 속에 비로소 충만하게 존재할 수 있었다. 말없이 걷는 조용한 몸짓 속에서, 사막은 내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왔다. 이카 사막은 나에게 속삭였다. 당신의 삶은 너무 복잡하지 않습니까? 당신의 일상은 너무 많은 스케줄로 뒤덮여 있지 않습니까? 당신은 감당하기 어려운 삶의 짐을 지고 휘청거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사막은 내게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사막처럼, 마음을 비울 수는 없는 걸까. 사막처럼 단출하고, 투명하고, 고요해질 수는 없는 걸까. 그런 질문을 하는 동안 고뇌의 파도는 가라앉기 시작했다. 온갖 열망들로 들끓어 오르던 복잡한 마음속이 호수처럼 잔잔해지기 시작했다. 사막은 그렇게 나에게 삶이라는 거대한 질문을 좀 더 단순하고, 여유롭고, 너그럽게 바라보는 투명한 시야를 선물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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