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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주의·전체주의 비판·풍자 작가로
‘노동’ 뜻하는 체코어 ‘robota’서 차용
인간 위해 만든 로봇의 반란 혁명적 발상
20세기 초 작품 속에 현대 모습 그대로
두 사람의 공동작업은 차페크가 세계적인 작가가 된 이후에도 이어졌다. 1909년, 명문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차페크는 중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인 카렐 대학 철학과에 입학했다. 차페크는 베를린 대학과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도 여러 과목을 수강했고,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학자가 되고 싶었던 차페크의 꿈은 전쟁으로 깨졌다. 1914년 발발한 1차 세계대전은 문명의 이기가 총동원된 전쟁이었다. 기관총, 독가스, 탱크, 잠수함, 폭격기가 등장했고, 과학은 더욱 효율적인 살상을 목표로 발전했다. 다행히도 척추 질환으로 징집을 피할 수 있었으나 철학도였던 차페크는 전쟁을 보면서 깊은 충격을 받았다. 유럽이 그토록 자랑했던 ‘이성에 근거한 확실성의 세계’는 허무하게 무너졌다. 동시에 1차 세계대전은 체코에 독립을 가져다줬고, 차페크가 유명 작가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다.
1920년, 차페크는 희곡 『R.U.R: 로섬의 만능 로봇』을 발표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 희곡은 형 요세프와 공동작업을 거쳐 1921년에 프라하 국립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지능을 가진 로봇을 이용하여 인류가 노동에서 벗어난다는 작품의 설정은 당시 1920년대에는 가히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과학자 ‘로섬’이 발명한 인공지능 로봇은 인간의 육체노동과 사무 활동까지 대신하고, 군대의 병사들도 로봇으로 채워진다. 로봇 제조회사는 크게 번성하고, 인간들은 로봇 없이는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점점 지능이 발달한 로봇은 반란을 일으켜 인류를 멸절시키고 이 과정에서 로봇 제작과정이 담긴 설계도도 불타버린다. 손으로 일하는 인간 ‘알퀴스트’만 살아남는다. 로봇들은 알퀴스트에게 로봇을 수리하고 해체하는 작업을 시키지만, 그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수리 불가로 로봇 세계 역시 위기에 빠지게 된다. 우연히 한 쌍의 젊은 로봇이 희생정신과 사랑의 감정을 습득하는 것을 발견한 알퀴스트는 그들을 새로운 아담과 이브로 명명한다. 대량생산과 맹목적인 과학기술, 전체주의를 비판한 이 희곡에는 암울한 미래를 향한 차페크의 경고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계속 나빠지기만 했다. 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으로 경제 대공황이 시작됐고, 유럽 곳곳에는 전체주의가 득세했다. 불평등과 차별, 인종주의와 전체주의가 만연한 이 시기에 차페크는 많은 희곡과 소설을 집필했다. 그중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은 형 요세프와 함께 창작한 『곤충극장』이었다. 곤충의 세계를 여행하게 된 인간 관찰자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 연극은 곤충들의 습성을 통해 인간들의 부조리한 욕망을 풍자한다. 무가치한 똥에 일생을 다 바치는 쇠똥구리, 타자의 목숨과 재산을 빼앗아 연명하는 말벌들, 무분별한 성적 유희에 삶을 탕진하는 나비들, 조직적으로 전투를 벌이면서 살상에 중독된 전투개미 등 『곤충극장』에 등장하는 무수한 곤충들은 모두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을 닮았다.
이 연극은 오늘날까지 체코 연극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품으로 남았다. 희극과 풍자, 부조리가 가득한 이 연극은 연출에 따라 무한 변주가 가능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인간을 곤충에 빗댄 『곤충극장』은 당대 체코의 인기 작가였던 프란츠 카프카(1883~1924)의 대표작 『변신』(1916)의 설정과 흡사하지만, 카프카와는 달리 차페크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차페크는 불멸하는 존재의 지루한 삶을 다룬 희곡 『마크로풀로스의 비밀』(1922)에서 인간의 삶은 유한하고 나약하기에 더 아름답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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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정현은 중앙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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