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군사 전쟁과 인간

‘로봇’ 단어 처음 쓴 작가 ‘암울한 미래’ 경고 담았다

입력 2022. 05. 11   15:58
업데이트 2022. 05. 11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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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위기를 예지한 작가-카렐 차페크의 삶과 문학

    
카렐 차페크.  필자 제공
카렐 차페크. 필자 제공

체코에서 발행된 차페크 기념 우표. 필자 제공
체코에서 발행된 차페크 기념 우표. 필자 제공

영화 ‘아이 로봇’의 한 장면. 차페크의 희곡은 오늘날 SF(공상과학)영화에 많은 영감을 줬다.  필자 제공
영화 ‘아이 로봇’의 한 장면. 차페크의 희곡은 오늘날 SF(공상과학)영화에 많은 영감을 줬다. 필자 제공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영화 ‘터미네이터’(1984)는 인류의 암울한 미래를 그렸다. 자원을 낭비하고 서로 갈등만 일삼는 인간들이 쓸모없다고 판단한 ‘지능을 가진 기계’들이 인간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디스토피아 영화의 고전이 된 이 영화의 상상력은 감독의 독보적인 전유물이 아니다. 영화의 저변에 깔린 상상력은 체코가 낳은 위대한 작가 카렐 차페크(1890~1938)에게 빚지고 있다. 카렐 차페크는 최초로 ‘로봇’이라는 말을 사용한 작가였다. ‘로봇’은 체코어로 ‘노동’을 뜻하는 단어 ‘robota’에서 비롯됐다.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미래를 그린 차페크의 작품들은 두 차례 세계대전 사이에 창작됐다.

체코 크로코노셰에서 태어난 카렐 차페크는 감수성이 풍부하고 지적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문학적인 풍토에서 성장했다. 뛰어난 이야기꾼인 외할머니도 손자들에게 속담, 민요, 전설 등을 알려줬다, 미술과 문학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형 요세프도 차페크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두 형제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창작하면서 이야기에 어울리는 삽화를 그렸다.


학자 꿈꾸다 1차 세계대전 참상에 충격

인종주의·전체주의 비판·풍자 작가로

‘노동’ 뜻하는 체코어 ‘robota’서 차용

인간 위해 만든 로봇의 반란 혁명적 발상


2차 대전 발발 전 독일 침략 예견·경고

20세기 초 작품 속에 현대 모습 그대로


두 사람의 공동작업은 차페크가 세계적인 작가가 된 이후에도 이어졌다. 1909년, 명문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차페크는 중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인 카렐 대학 철학과에 입학했다. 차페크는 베를린 대학과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도 여러 과목을 수강했고,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학자가 되고 싶었던 차페크의 꿈은 전쟁으로 깨졌다. 1914년 발발한 1차 세계대전은 문명의 이기가 총동원된 전쟁이었다. 기관총, 독가스, 탱크, 잠수함, 폭격기가 등장했고, 과학은 더욱 효율적인 살상을 목표로 발전했다. 다행히도 척추 질환으로 징집을 피할 수 있었으나 철학도였던 차페크는 전쟁을 보면서 깊은 충격을 받았다. 유럽이 그토록 자랑했던 ‘이성에 근거한 확실성의 세계’는 허무하게 무너졌다. 동시에 1차 세계대전은 체코에 독립을 가져다줬고, 차페크가 유명 작가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다.

1920년, 차페크는 희곡 『R.U.R: 로섬의 만능 로봇』을 발표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 희곡은 형 요세프와 공동작업을 거쳐 1921년에 프라하 국립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지능을 가진 로봇을 이용하여 인류가 노동에서 벗어난다는 작품의 설정은 당시 1920년대에는 가히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과학자 ‘로섬’이 발명한 인공지능 로봇은 인간의 육체노동과 사무 활동까지 대신하고, 군대의 병사들도 로봇으로 채워진다. 로봇 제조회사는 크게 번성하고, 인간들은 로봇 없이는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점점 지능이 발달한 로봇은 반란을 일으켜 인류를 멸절시키고 이 과정에서 로봇 제작과정이 담긴 설계도도 불타버린다. 손으로 일하는 인간 ‘알퀴스트’만 살아남는다. 로봇들은 알퀴스트에게 로봇을 수리하고 해체하는 작업을 시키지만, 그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수리 불가로 로봇 세계 역시 위기에 빠지게 된다. 우연히 한 쌍의 젊은 로봇이 희생정신과 사랑의 감정을 습득하는 것을 발견한 알퀴스트는 그들을 새로운 아담과 이브로 명명한다. 대량생산과 맹목적인 과학기술, 전체주의를 비판한 이 희곡에는 암울한 미래를 향한 차페크의 경고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계속 나빠지기만 했다. 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으로 경제 대공황이 시작됐고, 유럽 곳곳에는 전체주의가 득세했다. 불평등과 차별, 인종주의와 전체주의가 만연한 이 시기에 차페크는 많은 희곡과 소설을 집필했다. 그중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은 형 요세프와 함께 창작한 『곤충극장』이었다. 곤충의 세계를 여행하게 된 인간 관찰자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 연극은 곤충들의 습성을 통해 인간들의 부조리한 욕망을 풍자한다. 무가치한 똥에 일생을 다 바치는 쇠똥구리, 타자의 목숨과 재산을 빼앗아 연명하는 말벌들, 무분별한 성적 유희에 삶을 탕진하는 나비들, 조직적으로 전투를 벌이면서 살상에 중독된 전투개미 등 『곤충극장』에 등장하는 무수한 곤충들은 모두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을 닮았다.

이 연극은 오늘날까지 체코 연극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품으로 남았다. 희극과 풍자, 부조리가 가득한 이 연극은 연출에 따라 무한 변주가 가능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인간을 곤충에 빗댄 『곤충극장』은 당대 체코의 인기 작가였던 프란츠 카프카(1883~1924)의 대표작 『변신』(1916)의 설정과 흡사하지만, 카프카와는 달리 차페크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차페크는 불멸하는 존재의 지루한 삶을 다룬 희곡 『마크로풀로스의 비밀』(1922)에서 인간의 삶은 유한하고 나약하기에 더 아름답다고 역설했다.

차페크가 전체주의의 위험을 자각하면서 쓴 소설 『도롱뇽과의 전쟁』.
 필자 제공
차페크가 전체주의의 위험을 자각하면서 쓴 소설 『도롱뇽과의 전쟁』. 필자 제공


1930년대에 차페크는 현실로 다가온 전체주의의 위험을 자각하면서 소설 『도롱뇽과의 전쟁』(1936)과 희곡 『하얀 역병』(1937)을 집필했다. 탐욕스러운 자본가가 양식한 도롱뇽이 진화한 뒤 대량으로 증식하여 인간 세계를 위협하는 내용을 다룬 『도롱뇽과의 전쟁』은 명백히 독일 파시즘을 비판하고 있다. 『R.U.R: 로섬의 만능 로봇』의 문제의식을 확장한 이 작품의 설정은 오늘날까지 숱한 SF영화의 토대가 됐다.

『하얀 역병』에는 치료 불가능한 전염병을 통치 수단으로 악용하는 독재자가 등장한다. 전염병으로 증폭한 대중들의 공포와 불만을 전쟁의 동력으로 삼는 독재자, 방역을 이익의 수단으로 삼는 타락한 의사들의 모습은 팬데믹을 겪는 현재의 풍경과도 비슷하다.

1936년, 스웨덴 한림원은 몇 번이나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른 차페크에게 상을 주는 문제를 두고 고심했다. 정치적 중립성을 표방하던 한림원은 여러 작품에서 독일 파시즘을 강력하게 비판한 차페크에게 상을 주는 것을 꺼렸다. 한림원은 차페크에게 정치색이 짙지 않은 작품을 하나 집필하면 노벨문학상을 주겠다고 제안했으나 차페크는 즉각 거절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한 차페크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1938년 9월, 뮌헨 회담에서 독일의 체코 수데테란트 병합을 영국과 프랑스가 합의하자 차페크는 프라하 국제펜클럽 총회에서 독일의 침략을 경고하면서 뮌헨 회담에 항의하는 체코 작가 성명서를 집필했다. 그러자 독일 비밀경찰은 차페크를 ‘공공의 적 3번’으로 지목했다. 주변인들이 차페크에게 영국으로 망명할 것을 권했지만, 차페크는 체코에 남는 길을 선택했다. 전쟁이 임박한 1938년 12월, 차페크는 인플루엔자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다음 해 체코에 진주한 독일 비밀경찰은 차페크가 사망한 사실을 모르고 그의 집에 들이닥쳤다. 차페크의 형 요세프는 곧 체포되어 베르겐-벨젠(Bergen-Belsen) 강제수용소로 이송됐다. 요제프는 1945년 4월, 전쟁이 끝나기 불과 3주 전에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차페크의 작품들은 지금도 전혀 낡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사는 세계가 여전히 불안하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필자 이정현은 중앙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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