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형 매장에 가면 부쩍 늘어난 것이 있다. 무인 계산대다. 점원이 아니라 손님이 직접 상품의 바코드를 찍고 카드로 결제한다. 무인 계산대가 늘어난 만큼 유인 계산대는 준다. 평일 손님이 적은 시간대엔 한두 개만 운영한다.
셀프서비스 시대다. 고객 스스로 상품과 서비스를 주문하고 입력하고 결제까지 다 한다. 무인 계산대와 키오스크는 해가 다르게 늘어나며, 적용 범위도 넓어졌다. 주유부터 영화표·먹거리 구입까지 다양하게 응용한다. 한 끼 먹거리(밀키트·Meal Kit)를 자동판매기로 파는 무인 매장도 등장했다.
소비자로선 사실 셀프서비스가 불편하다. 바코드 리더를 들고 상품을 일일이 찍어야 한다. 화면 터치도 여러 번 한다. 직원에게 결제 카드만 건네주면 끝날 일을 직접 하려니 번거롭기 짝이 없다. 값을 깎아주는 것도 아니다. ‘매장을 편하게 하려고 왜 손님이 불편을 감수해야 하나’라고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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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생겨난 것이 완전 무인 매장이다. 고객이 그냥 물건을 들고 나가도 자동 결제된다. 미국 ‘아마존 고(Amazon Go)’가 효시다. 점원도, 계산대도 없다. 인공지능(AI)과 이미지 분석, 센서 기술이 스마트폰을 든 고객이 갖고 나온 상품을 인식해 자동 결제한다. 완전 무인 매장은 아직 초기 단계지만 머잖아 대세가 될 것이다.
무인 결제는 확실히 손님보다 매장에 이득이다. 시스템 구축 비용이 들지만, 이 덕분에 절약하는 인건비가 훨씬 크다. 투자 비용은 매년 감가상각을 하는데 인건비는 같은 인원이라도 해마다 늘어나기 마련이다. 시스템은 야근시킨다고 불만을 품지 않으며, 어느 날 갑자기 그만두는 일도 없다.
직원이 달랑 한두 명인 자영업자라면 인건비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작은 점포에서 포장 판매(테이크 아웃) 음식점을 혼자 하겠다는 자영업자에게 키오스크는 이제 거의 필수품으로 인식됐다. 최저임금 인상 부담이 커진 자영업자들도 키오스크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한다.
비용 절감만 이점이 아니다. 매장 운영 시간을 더 늘려준다. 24시간 무인으로 운영할 수 있다. 낮에는 사람이 있고 밤에만 무인으로 운영하기도 한다. 한나절만 쓰든 온종일 쓰든 어차피 나갈 매장 임차료는 같다. 전기료 등 일부 추가 비용만 부담하면 매장 활용을 극대화할 수 있다.
서비스 시간도 단축한다. 패스트푸드점의 평균 서비스 시간을 7초 단축했더니 시장 점유율을 1~3% 높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 밖에 매장에서 실시간으로 모은 고객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다. 온라인 데이터와 연계해 고객이 원하는 질 좋은 서비스를 개발하고 맞춤형 마케팅 활동까지 벌일 수 있다.
고객은 더 불편하고 딱히 경제적 이득이 없는데도 셀프서비스를 받아들인다. 매장의 일방적인 도입이라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젊은 층은 온라인 쇼핑에 익숙한 덕분인지 오프라인에서도 스스로 결제하는 것에 큰 거부감이 없다. 대면 접촉을 꺼리는 사람들은 되레 더 좋아한다. 물건을 고를 때 매장 직원이 다가와 말을 건네는 것을 귀찮아하는 사람은 무인 결제를 편하게 여긴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으로 비대면 결제 요구가 높아졌다. 셀프 결제 수요는 팬데믹이 끝나도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셀프서비스의 원조는 자동판매기(자판기)다. 현대적인 자동판매기는 188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나왔다. 엽서와 껌 판매로 시작해 담배, 커피, 음료수 등 품목이 다양해졌다.
셀프주유소도 나왔다. 일본은 웬만한 일상용품을 다 자판기로 만들어 ‘자판기 왕국’으로 불렸다. 우리나라 자판기 역사는 1970년대 커피자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에 비할 바는 안되지만 다양한 자판기가 등장했다. 지금은 침체했지만, 자판기는 한때 자본과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의 유망 사업 아이템이었다.
자판기는 그래도 기존 일자리를 줄이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여전히 기존 가게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키오스크는 다르다. 문 밖의 자판기와 달리 문 안으로 들어왔다. 가게 안의 인력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셀프서비스 확산은 일자리 감소를 부른다. 대형 상점 판매대와 영화관 매표창구만 봐도 안다. 종전엔 수십 명이던 직원이 이제 한 자릿수로 줄었다. 그나마 남은 직원의 일부는 고객의 셀프 결제를 돕는 일을 한다. 셀프 결제가 익숙해지면 이 일 또한 사라진다.
매장 인력이 줄어드는 만큼 다른 곳이라도 고용이 늘면 다행이다. 셀프 결제 시스템과 키오스크를 만드는 회사와 이를 공급하고 관리하는 회사의 직원은 아마도 늘어날 것이다.
무인 매장에서 나온 데이터를 분석하고 활용하는 전문 인력도 증가할 것이다. 실내장식 업자의 일감도 늘 것이다. 그래도 줄어든 일자리에 비하면 매우 적다.
그렇다고 사회주의 국가도 아닌데 필요하지 않은 인력을 의무적으로 몇 명씩 고용하라고 강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기계에 익숙하지 않은 일부 노년층과 장애인을 상대하는 최소한의 인력 배치 의무화 정도가 마지노선일 것이다. 실직은 셀프서비스의 그림자다.
필자 신화수는 30년간 기술산업 분야를 취재했으며 전자신문 편집국장, 문화체육관광부 홍보협력관, IT조선 이사 등을 역임했다. 기술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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