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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걸었다 삶을 보았다 강원愛 빠졌다

입력 2022. 05. 04   17:08
업데이트 2022. 05. 05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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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도 보고 산책도 즐기는 강원도 미술관 3
 
‘국민화가’ 박수근 출생지, 양구
2002년 생가터에 미술관 개관
‘굴비’ 등 명작 포함 수백 점 전시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뮤지엄 산’
해발 275m에 펼쳐진 워터가든 인기
신라 고분 모티브 ‘스톤 가든’ 눈길
 
수십 년 세월 품은 바우지움조각미술관
산책공간 곳곳에 조각품…풍광도 작품

 

강원도 원주시에 있는 ‘뮤지엄 산’.
강원도 원주시에 있는 ‘뮤지엄 산’.
원주 뮤지엄 산.
원주 뮤지엄 산.
원주 '뮤지엄 산'의 명상관.
원주 '뮤지엄 산'의 명상관.

미술관 나들이를 가기 좋은 때다. 따분하고 어렵다고? 요새 미술관은 고상한 취미를 가진 특별한 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강원도 미술관이라면 더 그렇다. 강원도 산중에는 그 자체로 훌륭한 여행지이자 자연의 일부인 미술관이 많다. 심신이 정화되는 산책로를 품은 미술관이 있는가 하면 세계적인 건축가가 지은 명품 미술관도 있다. 시간을 내 찾아갈 만한 강원도 미술관 3곳을 소개한다.


양구 박수근미술관.
양구 박수근미술관.


국민화가의 고향, 양구 박수근미술관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읍내 유명 식당이나 터미널에 민간인보다 군인이 많이 보이는 동네가 양구다. 낭만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최전방, 첩첩산중 양구는 ‘국민화가’ 고(故) 박수근(1914~1965) 화백이 나고 자란 곳이다. 박 화백의 생가터에 2002년 박수근미술관이 들어섰다. 6·25전쟁 전후 서민의 질박한 삶을 담은 작품을 볼 수 있을뿐더러 느긋이 산책을 즐기기에도 더없이 좋은 미술관이다.

박수근을 몰랐다 해도 미술관을 둘러보면 그의 삶과 작품에 흠뻑 빠지게 된다. 우선 박수근기념전시관에서 화가의 인생을 살펴보자.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밖에 마치지 못했지만, 그는 붓을 놓지 않았다. 프랑스 화가 밀레처럼 서민의 삶을 그리겠다는 꿈을 품고 미술을 독학해 각종 대회에서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춘천, 포천, 평양 등을 전전하다가 전쟁통에 서울 미군 부대에서 초상화를 그리며 번 돈으로 서울 창신동에 정착했다. 그리고 51세에 간 경화로 세상을 뜨기까지 예술혼을 불태웠다.

‘나무와 두 여인’ ‘굴비’ ‘노상’ 같은 명작을 보면 왜 박 화백이 국민화가라 불리는지 알게 된다. 유명 작품뿐 아니라 판화, 스케치 등 작품 수백 점이 미술관에 있다.

산책하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기념관 뒤편 낮은 언덕에는 화백의 동상이 있다. 그 옆을 지나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박수근 파빌리온’ 건물이 나온다.

온갖 꽃이 핀 산책로와 푸릇한 청보리가 파도처럼 넘실대는 풍광이 그림 한 폭 같다. 파빌리온과 아래쪽 현대미술관에는 다양한 주제의 전시가 진행 중이다.

현대미술관 뒤편에는 박수근공원도 있다. 벤치에 앉아 쉬었다 가기 좋다.

박수근미술관은 양구군이 운영하는 군립 시설이다. 관람권(어른 6000원)을 사면 3000원짜리 양구사랑상품권을 환급해준다. 양구군에 있는 식당이나 카페에서 현금처럼 쓰면 된다.


다른 차원으로의 틈입, 원주 뮤지엄 산

원주시 북부 산자락에 있는 ‘뮤지엄 산(SAN)’은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미술관이다. 산이라는 미술관 이름이 중의적이다. 산 자체가 미술관이나 다름없다는 뜻이 있을 테고, ‘Space·Art·Nature’의 첫 글자를 따 예술과 자연이 어우러진 공간을 상징하기도 할 테다. 뮤지엄 산에 들어서면 자연도 공간도 모두 예술이라는 사실이 절로 수긍된다.

미술관은 해발 275m 산자락에 들어서 있다. 강원도에서 이 정도면 높은 편은 아니지만, 사방을 산이 두르고 있어 깊은 산중에 폭 안긴 느낌이 든다. 입구를 지나면 ‘플라워 가든’이 펼쳐진다. 융단처럼 깔린 패랭이꽃과 수피가 하얀 자작나무가 어우러져 있고, 곳곳에 조각품이 전시돼 있다. 워터가든으로 들어서면 뮤지엄 산의 상징 같은 장면이 펼쳐진다.

물 위에 돌로 만든 미술관이 떠 있는 모습과 빨간색 아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미술과 건축에 조예가 없더라도 누구나 압도되는 풍광이다.

미술관 본관으로 들어서면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 화가들의 작품과 거장 백남준의 미디어 아트 작품도 볼 수 있다. 미술관을 지은 한솔기업이 제지회사인 까닭에 종이의 역사를 담은 ‘페이퍼 갤러리’도 운영한다. 미술관을 나가면 경주의 신라 시대 고분에서 착안한 ‘스톤 가든’이 나온다. 돌로 만든 봉분 하나하나가 작품이다.

뮤지엄 산 어른 입장료는 1만9000원이다. 기본 입장권으로 야외 정원과 미술관을 둘러볼 수 있는데 지갑을 조금 더 열면 전혀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빛의 예술가’로 불리는 제임스 터렐이 설계한 제임스터렐관, 명상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는 명상관은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

오묘한 빛깔과 4차원 형태의 공간을 경험할 수 있는 제임스터렐관이 특히 인기다.


고성 바우지움조각미술관.
고성 바우지움조각미술관.


고성 바우지움 조각미술관


고성군 토성면, 미시령 자락에서 군 생활을 했다. 애증이 교차하는 동네인데 20년 전 복무 시절이나 지금이나 울산바위가 한눈에 담기는 풍광만큼은 한결같이 아름답다.

설악산 산세가 병풍처럼 펼쳐지는 토성면 원암리에 바우지움 조각미술관이 있다. 2018년 ‘문화공간건축학회’로부터 문화공간상 박물관 부문 대상을 받은 주인공이다.

미술관이 있는 원암리는 온천으로 유명하다. 온천을 즐기거나 잠을 자고 가지만 딱히 즐길 거리가 마땅치 않은 동네였다. 고성과 속초는 산과 바다는 아름답지만 문화 예술을 향유할 만한 곳이 없었다. 2015년 바우지움 조각미술관의 등장이 반가웠던 이유다. 미술관은 2015년에 개관했지만 조각가인 김명숙 관장은 2000년께부터 땅을 마련해서 정원을 가꿨다. 그리고 40년간 수집해온 조각품과 직접 만든 작품을 전시했으니 수십 년의 세월을 품은 미술관이라 할 만하다.

조각미술관이라 해서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천천히 산책하며 건축과 작품, 풍광을 감상하면 된다. 미술관은 ‘근현대 조각관’ ‘김명숙 조형관’ ‘아트 스페이스’ 같은 전시공간과 5개 정원으로 이뤄졌다. 근현대 조각관에는 문신·김창희 같은 내로라하는 거장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2만3000여 ㎡(7000평)에 달하는 미술관에서 잔디정원, 소나무정원, 물의 정원 등 여러 정원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좋다. 곳곳에 감각적인 조각품도 설치돼 있다. 물에 반영된 설악산의 모습이나 액자처럼 구멍을 낸 벽을 통해 담긴 주변 풍광 자체도 하나의 작품 같다.

3년 전인 2019년 봄, 토성면에는 큰 산불이 났다. 미술관도 피해를 봤다. 건물 10분의 1이 탔고 미술관을 두른 울창한 소나무숲이 시커멓게 변했다. 김명숙 관장은 사비를 들여 약 3만 그루 나무를 심고 죽은 나무 주변에 작품을 전시해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치유 공간으로 꾸미고 있다. 미술관 입장료는 어른 1만 원. 미술관 카페에서 입장권을 보여주면 아메리카노 한 잔을 무료로 준다.



필자 최승표는 중앙일보 레저팀 기자다. 국내외 여행 기사를 두루 써왔다. 현재는 역병의 시대를 맞아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소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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