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민의 연구소(연예를 구독하소) 3 -드라마 ‘어게인 마이 라이프’
억울하게 죽은 후 15년 전으로 회귀
사이다 전개·통쾌한 응징 쾌감 선사
‘이생망’ 자조 의식 녹아든 장르
회귀·빙의·환생 ‘회빙환’으로 구현
몇 년 전부터 웹소설 주요 소재로
『위대한 개츠비』를 집필한 미국의 소설가 F. 스콧 피츠제럴드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내 삶을 살고 싶다. 그래서 나의 밤은 후회로 가득하다(I want to live my life so that my nights are full of regrets).”
이는 비단 피츠제럴드에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인간의 삶은 언제나 후회의 연속이니깐. 다만 주어진 인생이 고작 한 번뿐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에 스스로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쓸 따름이다. 그런데 만약, 지금의 삶을 완전히 리셋하고 2회 차 인생을 살 수 있게 된다면?
이 같은 다소 황당한 설정에서 비롯된 드라마가 바로 SBS 금·토드라마 ‘어게인 마이 라이프’다. 이 작품은 억울한 죽임을 당하고 15년 전으로 회귀해 2회 차 인생을 살게 된 능력치 만렙 검사 김희우(이준기)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안방극장에서 익숙지 않은 설정 탓인지 첫 회 시청률은 5.8%(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에 그쳤지만 이후 입소문을 타며 5회 만에 9.7%로 2배가량 시청률 상승을 일궈 냈다. 금·토드라마 1위 자리를 꿰찼고, 주연배우 이준기가 4월 3주 차 드라마 출연자 화제성 순위 1위(굿데이터코퍼레이션 기준)에 이름을 올렸으니 시청률과 화제성 모두를 거머쥔 모양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어게인 마이 라이프’는 설정부터 여느 드라마와 궤를 달리한다. 모든 기억을 고스란히 안고, 15년 전으로 회귀한 김희우는 그 누구와도 비교 불가한 압도적 캐릭터. 1회 차 인생을 살아 본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고 있어 모든 요소를 치밀하게 활용하고, 맞닥뜨릴 난관을 사전에 대비한다. 신뢰할 만한 동료를 곁에 모으거나 믿어서는 안 될 적을 분별하는 일도 수월하다. 주가가 급상승할 주식을 사 두고,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런 김희우의 2회 차 인생 최종 목적지는 자신을 죽음에 이르도록 만든 부패 기득권 카르텔의 중심인 ‘정치계 거물’ 조태섭(이경영)을 처절하게 응징하는 일이다.
2회 차 인생은, 상상만으로 설레는 일이다. 이러한 두근거림은 시청자에게도 전이된다. 통상의 드라마라면 으레 주인공의 성장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답답한 ‘고구마’ 전개를 몇 번이고 등장시키는 법인데, 회귀물에는 애초에 그런 ‘고구마’가 없다. 그저 가슴을 ‘뻥’ 하고 뚫어 줄 통쾌한 ‘사이다’ 전개만 존재한다. 선악 구도가 명확하고, 전개는 시원하니 보는 이에게 쾌감만 안겨 준다. 이는 회귀물의 주요한 특성상 주인공이 ‘먼치킨’(비상식적으로 강력한 캐릭터)을 지녔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이준기의 탁월한 캐릭터 소화력도 흥행을 거들었다. 영화 ‘왕의 남자’(2005)로 시작해 드라마 ‘개와 늑대의 시간’(2007), ‘일지매’(2008), 군 전역 후 선보인 ‘투윅스’(2013),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2016), ‘무협 변호사’(2018), ‘악의 꽃’(2020), 그리고 이번 ‘어게인 마이 라이프’까지 긴 시간 동안 다수 작품의 주연을 소화하며 꾸준한 인기를 유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이런 이준기였기에 ‘회귀물’이라는 생경한 세계관 속 캐릭터를 시청자에게 단기간에 납득시켜 작품의 핍진성(逼眞性·그럴듯하고 있음 직한 이야기로 독자를 납득시키는 정도)을 견고하게 할 수 있었다.
이러한 회귀물은 드라마에서는 생소하지만, 웹소설에선 몇 년 전부터 주요 소재로 활용돼 왔다. 이를 회귀와 빙의, 그리고 환생의 앞 글자를 따서 ‘회빙환’이라고 통칭한다.
‘어게인 마이 라이프’처럼 현재의 기억과 지식을 가진 채로 과거 시점의 자신으로 돌아가면 ‘회귀물’, 기억과 지식을 가졌다는 점은 동일해도 자신의 몸이 아닌 과거·이세계·창작물 속 또 다른 인물의 몸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빙의물’, 그리고 현재의 기억과 지식을 가진 채 새로운 인물로 태어나는 것이 ‘환생물’이다. 물론 이 세 분류가 명확하게 나뉘지 않는 혼합형도 빈번하다.
‘회빙환’이 이토록 MZ세대의 두터운 지지를 받는 이유를 주목할 필요도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좀처럼 풀릴 것 같지 않은 현실의 복잡한 실타래에 지친 이들이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고 한탄하며 자조하는 의식이 녹아든 장르가 ‘회빙환’으로 구현됐다는 분석이 짙다. 가상의 콘텐츠를 통해서나마 대리만족을 느끼는 셈이다.
‘어게인 마이 라이프’의 뒤를 잇는 ‘회빙환’ 장르의 작품은 배우 송중기의 차기작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다. 동명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재벌집 막내아들’ 역시 재벌 총수 일가의 오너리스크를 관리하던 비서 윤현우가 횡령죄를 뒤집어쓰고 살해당하는 순간, 과거로 회귀해 재벌가 막내아들 진도준으로 ‘환생’하는 이야기다. 이전 삶에서 습득한 정보로 탁월한 비즈니스 실력을 발휘해 자신을 죽인 재벌가에 통쾌하게 복수하는 이야기를 주축으로 한다.
법조계에서 재계로 배경이 바뀌고, 동일한 인물로의 회귀가 아닌 다른 인물을 통한 환생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어게인 마이 라이프’와 유사한 궤적이다. ‘어게인 마이 라이프’와 ‘재벌집 막내아들’뿐만이 아니다. 웹소설과 웹툰에서 흥행이 검증된 ‘회빙환’ 작품 상당수의 판권이 이미 여러 제작사의 품에 안겨 있어 향후 꾸준히 드라마와 영화로 재탄생될 전망이다. 화면을 통해 접하는 ‘회빙환’ 장르가 시청자에게 낯설지 않을 날이 머지않았다는 이야기다. 아마 그때가 되면 ‘어게인 마이 라이프’가 종종 회자되고 ‘2회 차 인생’이라는 설정도 모두에게 아주 익숙한 요소로 자리 잡지 않을까.
필자 박현민은 잡식성 글쓰기 종사자이자, 14년 차 마감 노동자다. 가끔 방송과 강연도 하며, 조금 느릿하더라도 밀도가 높은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나쁜 편집장』을 포함해 총 3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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