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도발적이고 관능적인 부를 향한 붓질

입력 2022. 05. 03   16:53
업데이트 2022. 05. 03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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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마라 드 렘피카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지만 아무나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두뇌와 노력 그리고 운이 따라야만 자신이 원하는 경제적인 부를 가질 수 있다. 예술가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사람은 예술가는 가난해야만 예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라파엘로도 일찍이 “예술은 부를 통해 꽃을 피운다”고 했던 것처럼 경제적 안정 없이는 화가로서 성공을 거두기가 어렵다.
경제적 안정을 누구보다 바랐고 명성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화가가 타마라 드 렘피카(1898~1980)다.


 
‘녹색 부가티를 타는 타마라’, 1925년, 목판에 유채, 개인 소장.
‘녹색 부가티를 타는 타마라’, 1925년, 목판에 유채, 개인 소장.
‘초록색 의상의 어린 소녀’, 1927년, 캔버스에 유채, 프랑스 근대 미술관 소장.
‘초록색 의상의 어린 소녀’, 1927년, 캔버스에 유채, 프랑스 근대 미술관 소장.
‘부카로 박사의 초상’, 1929년, 캔버스에 유채, 개인 소장.
‘부카로 박사의 초상’, 1929년, 캔버스에 유채, 개인 소장.

바르샤바 상류층 가정서 화려한 어린 시절
망명 후 곤궁한 생활…돈 벌려 화가의 길
남자들 세계였던 프랑스 화단에 도전장
여성 누드 비난 받았지만 부·명성 따라와
개성 돋보이는 초상화 파리 명사들에 인기



렘피카의 부에 대한 욕망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 ‘녹색 부가티를 타는 타마라’다. 붉은색 립스틱을 바른 여인이 장갑을 낀 손으로 녹색 부가티 운전대를 잡고 있다. 부가티는 1909년 에토레 부가티가 세운 자동차 회사로 호화로운 차와 경주용 차를 생산했다. 머리를 깊게 눌러쓴 갈색 실크 모자 사이로 금발이 보이고 목에는 실크 스카프를 두르고 있다. 실크 스카프가 목을 풍성하게 감싸고 있는 것은 바람을 맞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며 부가티 차량이 오픈카라는 의미다. 전통적으로 붉은색 입술은 여성의 유혹을, 자동차는 남성을 상징한다. 따라서 여인이 운전대를 잡은 것은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여자라는 뜻이다. 여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정면이 아니라 화면을 바라본다. 자동차 운전에는 관심이 없고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는 본인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욕망을 암시한다. 깊게 눌러쓴 실크 모자와 장갑 그리고 풍성한 스카프는 당시 파리 중산층 여인들의 패션으로 여인이 패션이 관심이 많은 멋쟁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어두운 배경과 화려한 패션은 여인이 연인을 만나기 위해 외출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 작품은 렘피카의 자화상이지만, 그녀는 실제로 부가티를 소유한 적이 없다. 하지만 렘피카는 부가티를 운전하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 고급 세단을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과 자기중심적인 그녀의 삶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렘피카가 돈에 집착하게 된 것은 러시아에서 프랑스로 망명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폴란드 바르샤바의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는 부모의 이혼 후 부유한 할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주변 친척들의 화려한 생활이 몸에 배어 있었다. 스위스의 일류 기숙학교에서 상류층 교육을 받던 그녀는 바르샤바에서 러시아로 이주한 후 가난하지만 잘생긴 변호사와 결혼한다.

남편이 러시아 혁명 때 볼셰비키들에 의해 감금되자 그녀는 관리들을 유혹해 남편을 탈출시킨다. 렘피카는 남편과 함께 파리로 망명하지만, 인권 변호사였던 남편은 경제적으로 무능했다. 어렸을 때부터 상류층 생활을 해왔던 그녀는 성공해야만 자신이 원하는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돈을 벌기 위해 화가가 되기로 한다. 화가로서의 성공이 자신에게 부와 명성을 가져다줄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더군다나 어린 시절 기숙학교에서 그림을 배웠던 것이 화가의 길을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된다.

렘피카는 위대한 예술가가 되고 싶었지만, 여성으로서의 한계에 부딪혔다. 당시 화가는 남자들의 세계였다. 여성의 창의력은 인정받지 못했다. 그녀는 프랑스 화단의 주목을 받기 위해 미술의 전통과 관습을 깨고 여성 누드를 과감하게 묘사한 작품을 선보였다. 당시 여성의 누드화는 남성의 전유물로 여류 화가들은 꽃이나 풍경, 집안을 그리는 것에 만족했는데 렘피카는 누드화로 남성 영역에 도전한다.

그녀의 작품은 비난을 받지만, 그와 비례해 엄청난 관심을 끌었다. 결국 대중의 호기심은 렘피카에게 부와 명성을 가져다준다.

렘피카가 자화상을 통해 예술가로서의 성공을 자축한 작품이 ‘초록색 의상의 어린 소녀’다. 몸매가 드러나는 녹색 드레스를 입은 렘피카가 한 손으로 모자를 잡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작품 속 렘피카의 화려한 의상은 당시 여성들 사이에 유행을 낳았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당시 파리 대부분의 여성들은 몸매가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지 못했지만, 렘피카는 혁신적인 패션을 좋아했다. 배경은 기하학적으로 표현해 도시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강조한다. 차가운 스타일의 기하학적 배경은 렘피카의 예술 세계를 상징한다.

렘피카는 화가로서 명성도 높았지만, 영화배우 그레타 가르보를 연상시킬 정도의 빼어난 미모로 유명했다. 파리 미술계의 스타가 된 렘피카는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작가, 연예인, 예술가, 과학자, 기업인, 망명한 동유럽 귀족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녀가 그리지 않은 사람은 파리 유명인사가 아니라고 할 정도로 렘피카의 초상화는 상류층에 인기가 많았다.

렘피카가 그린 유명인사의 초상화 중 하나가 ‘부카르 박사의 초상’이다. 깃을 세운 흰색 옷을 입은 남자가 오른손으로 시험관을 들고 왼손으로는 탁자 위 현미경을 잡고 서서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남자가 입은 트렌치코트 형태의 흰색 가운은 부카르 박사가 의사라는 것을 나타낸다. 푸른색 셔츠와 진주 핀으로 고정된 넥타이, 가지런히 빗어 넘긴 머리와 잘 다듬은 콧수염은 부카르 박사가 외모를 중시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진주 넥타이핀은 그가 부자라는 것을 암시한다. 손에 든 시험관의 노란 액체는 부카르 박사가 만든 신약 락테올을 나타낸다. 부카르 박사는 오늘날까지 쓰이는 설사 치료제 락테올을 개발해 상당한 재산을 축적했다. 따라서 왼손의 현미경은 박사가 신약 개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기하학적인 배경과 모노톤의 색채는 박사의 강한 개성과 냉정한 성격을 돋보이게 한다. 렘피카는 이 작품처럼 색상을 제한해 인물의 개성을 돋보이게 하는 독특한 스타일의 초상화로 명성을 얻었다. 부카로 박사는 렘피카와 2년 계약을 맺고 자신과 아내 그리고 딸의 초상화를 의뢰했다.

이후 그녀는 가난한 남편과 이혼 후 미국의 부자 바론 쿠프너와 결혼해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할리우드로 이주했다. 이처럼 렘피카는 여성 미술가로서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고 그것을 그림에 도발적으로 표현하기를 즐겼지만, 미국에서는 화가로서의 명성이 위축된다.

렘피카는 미국에서 파리에서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새로운 양식의 그림을 선보였다. 당시 미국은 추상 표현주의가 대세였던 터라 그녀는 자신에게 명성을 안겨 준 인물화에서 벗어나 초현실주의풍의 그림을 그리지만, 새로운 작품은 대중이나 평론가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이 때문에 말년에는 화가로 성공하지 못하지만 사이보그식 그림들이 나중에 광고에 사용되면서 미술계에서 다시 주목받는다. 이미지=필자 제공


필자 박희숙 작가는 동덕여대 미술대학, 성신여대 조형대학원을 졸업하고 다수 매체에 칼럼을 연재했다. 『명화 속의 삶과 욕망』, 『클림트』,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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