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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보다 자극 그녀들의 땀이 아름답다 [박현민의 연구소]

입력 2022. 04. 26   16:17
업데이트 2022. 05. 10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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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지내던 서로의 무대를 보고 자극받고, 성장한다
경쟁구도에 몰두하기보다 앞서거나 뒤서거나 하며 호흡과 연대를 보여준다“

 

효린
효린







지난 2019년 첫발을 뗀 엠넷 ‘퀸덤’은 당초 ‘걸그룹의 컴백 전쟁’을 표방했다. 그리고 3년 만에 새로운 시즌으로 돌아온 ‘퀸덤2’는 추가적으로 ‘글로벌’을 전면에 내세웠다. 최근 전 세계로 확장된 K콘텐츠 위상 변화에 맞게 판을 한층 더 키운 셈이다. 글로벌 투표와 글로벌 평가단의 심사가 더해진 것도 유사한 맥락이다. ‘퀸덤2’ 박찬욱 CP는 “참여한 그룹들이 ‘글로벌 퀸’이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그러니깐 ‘퀸덤2’는 이미 실질적으로 존재해 온 그룹 간 치열한 컴백 경쟁을 보다 더 직관적으로 관람할 수 있게끔 교묘하게 설계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유일한 솔로 참가자인 효린을 비롯해 비비지(VIVIZ), 브레이브걸스, 우주소녀, 이달의 소녀, 케플러(Kep1er) 등이 ‘퀸덤2’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채 경합하고 있다. 3차 경연을 앞둔 이들은 방송 회차로 막 4회를 넘긴 상태다. 효린이 1~2회 차 경연 1위를 압도적인 점수 차로 휩쓸면서 어쩌다 모두의 미션이 ‘효린을 이겨라’가 된 분위기지만, 이는 딱히 예상 범주를 크게 벗어났거나 우려할 수준의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다만 오디션이나 서바이벌 프로가 직면하는 평가에 대한 ‘공정성’ 논란과 더불어 엠넷의 트레이드마크(?)처럼 자리매김한 ‘악마의 편집’에 대한 볼멘소리는 어김없이 등장했다. 어느 때보다 ‘공정’에 민감한 시대인 만큼 ‘퀸덤2’ 제작진이 당초 평가에 있어 모두를 납득할 수준의 객관적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쏟아야 했다는 의견도 상당하다. 그룹 실력과 무관하게 무대에 투여되는 비용에 따라 격차가 갈리는 것을 방지하고자 무대 제작 및 비용을 엠넷 제작진이 담당하는 것으로 교체된 것은 탁월한 변화였다.

컴백을 앞둔 아이돌 그룹에는 어차피 치러야 할 ‘컴백 전쟁’이다. 이걸 엠넷이 본격적으로 판을 깔아 준 게 바로 ‘퀸덤2’다. 다소 잔인해 보일 수 있지만, 컴백에 필요한 홍보나 마케팅의 역할을 프로그램이 상당 부분 수행한다. 그 과정에서 당초 컴백과는 무관한 몇 차의 경연 과정으로 예정에 없던 에너지가 소요되겠지만, 이 또한 컴백을 앞두고 방송 채널의 힘을 빌려 팬과 대중과의 사전 접점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딱히 나쁜 거래는 아니다. 더욱이 즉각적인 피드백을 통해 스스로 하고 싶은 무대와 대중이 원하는 무대의 적당한 타협점을 도출할 가능성도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무대에 설 기회가 흔치 않다. 컴백 홍보를 위해 원치 않은 예능 프로에 출연해 사생활 토크로 점철된 시간을 할애하는 일보다 아티스트로서 공들인 무대로 실력을 보여 주는 것이 결코 밑지는 선택은 아니다. 서로에게 순위를 매기고, 날 선 신경전에 상처를 입거나 입히고, 실수나 아쉬움으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애처롭지만, 이를 단순한 마이너스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소리다.

순위 경쟁을 소재로 한 ‘서바이벌’은 방송적인 요소다. 제작진 입장에서 흥미를 유발해 관심을 끌고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인 셈이다. 그들의 의도대로 누군가는 1등을, 또 누군가는 꼴찌를 하겠지만 참가자들까지 꼭 순위에 목을 매고 연연할 필요는 없다. 해당 무대를 보는 이들이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 역시 순위가 아니라 누가 더 멋진 무대를 꾸미고 보여 줬느냐 하는 대목이었으면 한다. 아티스트 입장에서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는 무대를 얻었으니, 앞으로 활동하는 내내 수도 없이 회자될 만한 무대를 꾸미는 것이 순위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 어차피 무대 풀버전은 유튜브 플랫폼을 통해 남고, 이는 두고두고 검증을 받는다. 지난 시즌 ‘퀸덤’에서 AOA, 오마이걸, 마마무, (여자)아이들 등의 출연 팀이 평소 음악방송에서 보여 주지 못했던 레전드 무대를 완성하며, 향후 활동에 강력한 탄력을 받았던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퀸덤2’ 제작발표회에서 효린이 “부담감도 크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프로그램과 상황을 통해 음악적으로, 직업적으로 성장할 기회라고 생각한다”는 발언은 이런 의미다. 출연자의 성장이 핵심이다.

곰곰이 생각하면 ‘퀸덤’은 단순히 피 튀기는 경쟁에 그칠 게 아니다. 오디션처럼 이번 무대의 실수가 데뷔 팀 합류의 좌절로 이어지는 경우와는 상이하다. 이미 알고 지내던 서로의 무대를 보고 자극받고, 성장한다. 방송국이 짜놓은 경쟁구도에 몰두하기보다 미션에 따라 앞서거나 뒤서거나 하며 서로 밀고 당겨 주는 호흡과 연대가 필요하다.

경쟁이라는 요소를 걷어 내도, 각자의 팀은 이미 충분한 서사가 존재한다. 누구 하나 쉽게 그 자리에 오른 이들이 없고, 누구 하나 허투루 경연에 참여하지 않았다. 씨스타로 데뷔해 수많은 히트곡을 내고 활약했지만 솔로 전향 후 이렇다 할 성공을 거두지 못한 효린, 역주행을 이뤘지만 새로운 ‘한 방’이 없는 브레이브걸스, 여자친구라는 이름을 벗고 3인으로 재탄생한 신인 비비지, 투자금 소송 패소 등의 상황이 공개돼 데뷔 후 가장 큰 위기에 직면한 이달의 소녀, 탄탄한 기획사에서 꾸준하게 활동하지만 여전히 대중성에서 아쉬움이 묻어나는 우주소녀, 그리고 엠넷 오디션 ‘걸스플래닛999: 소녀대전’으로 탄생해 ‘퀸덤2’ 투입으로 받게 된 특혜 의혹과 시선을 실력으로 반드시 벗어나야 하는 케플러. 누군가를 이기고 넘어서는 것에 앞서, 그들 앞에 직면한 높다란 벽을 넘어서는 게 우선이다.

28일 방송되는 ‘퀸덤2’ 5회에서는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이 예고됐다. 앞으로도 방송국은 참가자의 ‘경쟁’과 ‘불화’ 등에 초점을 맞출 수 있지만, 그들을 응원하는 시청자라면 순위보다 그들의 땀이 무대에서 어떻게 발현됐고 이전보다 얼마만큼 성장했는지에 주목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필자 박현민은 잡식성 글쓰기 종사자이자, 14년 차 마감 노동자다. 가끔 방송과 강연도 하며, 조금 느릿하더라도 밀도가 높은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나쁜 편집장』을 포함해 총 3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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