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군사 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

‘남이 쓰던 낡은 물건’은 옛말… 취향을 거래합니다

입력 2022. 04. 06   16:44
업데이트 2022. 04. 06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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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떠오른 신시장, 중고거래 트렌드
 
20~50대 이상 전 연령층 골고루 이용
매매 플랫폼서 지역 커뮤니티로 진화
 
리셀 ‘떡상’ 노리는 ‘스니커테크’
한우·새우 등 이색 투자 상품 눈길

 
최근 중고차 시장 대기업 진출
정보 투명성 강화 변화 모색도



요즘 중고마켓은 ‘아나바다 운동’으로 대표되는 이전의 중고거래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단순히 ‘남이 쓰던 상품’이 아니라, 몇 번째 받아 쓰더라도 새것에 버금가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중고는 더 이상 낡고 오래된 물건을 의미하지 않는다. 달라진 그 지점에 어떤 트렌드 변화가 있는지 살펴보자.

첫째, 중고시장 내 거래되는 상품이 다양화되었다. 중고시장은 오래된 제품을 저가로 거래하는 곳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다양한 사람들의 ‘취향’을 거래하는 장소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고마켓은 ‘키덜트를 위한 장’이 되고 있다. 중고거래 앱 번개장터에 따르면 2021년 3월 1일부터 1년간 이 서비스의 연령별 검색어 조회수를 분석한 결과 브랜드의 카테고리 중 ‘키덜트’에 해당하는 것이 15개였다고 한다. ‘키덜트’는 ‘아이(kid)+어른(adult)’을 합친 말로, 장난감·플라스틱 모델·게임 등을 구매하며 아이 시절의 감성과 취향을 유지하고 있는 어른을 가리킨다. 카테고리 중 스타굿즈(11개), 패션(7개), 디지털기기(6개)에 해당하는 것들이 대표적이다.

중고품의 다양화를 주도한 숨은 주역은 따로 있었다.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에 따르면 주요 중고 거래 앱 이용자는 40대가 28%로 가장 많았지만, 30대 23%, 50대 이상 21%, 20대가 20%를 차지하며 모든 연령대에서 고른 사용량을 보였다. 주이용층을 규정하는 것이 어려울 만큼, 학생부터 중·장년층까지 다양하게 이용하고 있었다. 특히 젊은층이 주도하던 이 시장에 최근 중·장년층이 빠른 속도로 유입되고 있다. 실제로 네이버 카페 중고나라는 2019년 상반기 대비 2021년 50대 이상 방문자 수가 10% 이상 증가했다.

둘째, 중고마켓은 점차 ‘커뮤니티’로 진화 중이다. ‘치매 어머님을 찾습니다’, 지역 커뮤니티 앱 ‘당근마켓’에 이런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어머니가 실종되자, 어머니의 사진과 이름·연락처, 치매 상태 등을 설명하며 제보를 요청하는 글이었다. 실종 3일 차, 경기도 부천시의 한 길거리에서 어머니가 발견됐다. 이 글을 통해 어머니의 얼굴을 알아본 한 시민이 경찰에 신고했다고 한다. 지역 기반의 중고거래 플랫폼이 실종 신고 창구도 된 셈이다.

대표적인 중고마켓인 ‘당근마켓’은 최근 앱 카테고리를 ‘쇼핑’에서 ‘소셜’로 바꿨다. 중고거래 플랫폼이 아닌 소셜 커뮤니티에 방점을 두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당근마켓은 ‘동네 생활’ 탭을 추가한 뒤로, 동네 기반 커뮤니티 이미지를 강화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오프라인 만남이 차단되면서, 사람과 사람 간의 연결을 지원해주는 것이다. 실제 당근마켓에서 ‘같이해요’나 ‘해주세요’ 등의 게시물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소비자들은 ‘같이해요’ 키워드를 선택해 “혼자 하려니 잘 안 가게 되는데, 저녁에 한강 달리기팀을 꾸릴 분 계신가요?”라고 글을 올리며 만남을 추진한다. 네이버 역시 2021년 3월, 동네 이웃과 소통할 수 있는 ‘이웃 톡’ 서비스를 시작했다. 향후 지역별 중소상공인과 네이버의 콘텐츠를 엮는 로컬 커머스 생태계 조성에 더욱 힘을 쏟을 계획이라고 한다.

셋째, 주식 ‘따상’보다 리셀 ‘떡상’을 위한 중고거래의 약진은 고무적이다. △가치 상승을 위해 재판매 시점을 노린다. △미래 가치를 내다보고 구매한다. △구입 제품 관리가 새 상품처럼 철저하다. 모두 중고 리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기본자세다. 리셀이 가장 활발한 상품 중 하나는 역시 스니커즈다. 여기서는 신발이 예쁜지, 편한지 여부가 구매 기준이 아니다. 구매 이후 시세가 오르느냐, 내리느냐가 중요하다. ‘스테크(스니커즈+재테크)’가 일반화되면서 이제는 백화점에서도 신발에 투자할 수 있게 되었다. 번개장터는 여의도 더현대서울에 오프라인 공간 브그즈트 랩(BGZT Lab by 번개장터)을 마련해 한정판 스니커즈 컬렉션을 공개하며 ‘스니커즈 성지’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

중고시장에서 현물을 통한 재테크 혹은 리셀의 품목도 다양해졌다. 저금리 기조 속에 다양한 재테크가 등장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음악·미술품·한우·다육식물·새우와 같이 다소 생소한 투자 상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뱅카우’는 농가와 일반 투자자가 한우에 공동 투자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플랫폼이다. 일반 투자자가 송아지를 취득하면, 농가가 대신 사육한다. 2년 후 송아지가 한우 성체로 자라면 경매를 통해 한우 자산을 현금화하고, 이 대금을 투자자와 농가가 투자 비율만큼 나눠 갖는다. 그간 한우는 보통 100~3000마리 단위로 사육이 이뤄져 최소 10억~300억 원에 달하는 현금이 필요했지만, 뱅카우는 약 4만 원으로 6~7개월의 송아지에 투자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중고마켓은 대표적인 C2C(Consumer to Consumer) 거래가 이루어지는 시장이다. 개인별 취향을 극대화할 수 있으며, 소비자들이 주도하는 시장인 만큼, 근미래 거래 플랫폼으로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상품의 품질과 가격 측면에서 우려되는 면도 존재한다. 사기와 허위광고 및 서비스 품질의 문제가 대표적이며, 중고시장이 대표적인 ‘레몬 시장’으로 꼽히는 이유다. 레몬은 미국 속어로 ‘구매 후에야 결함을 알게 되는 불량 중고차’다. 미국 경제학자인 애컬로프 교수는 구매자와 판매자 간 거래대상 제품에 대한 ‘정보의 비대칭성(information asymmetry)’으로 인해 중고차시장에는 복숭아(우량 차량)는 사라지고 레몬(불량 차량)만 남는 결과가 초래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중고시장은 이러한 비대칭성을 줄이기 위한 방향으로 진화 중이다. 최근 중고차 시장의 지각변동이 가장 화제가 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중고차 판매업에 대한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원회를 열고 중고차 판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원래 중고차 판매업은 2013년부터 대기업 진출이 막힌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분류돼왔다. 하지만 이번에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 빗장이 풀리면서,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는 있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정보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변화로 진일보하고 있다는 평이 존재한다.

아울러 상품 품질뿐만 아니라 가격 및 결제 안정성도 더 강화될 필요가 있다. 왜곡된 중고 시세로 인한 소비자 피해 문제가 종종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거래 시장이 커지면서 안전한 결제에 대한 필요성도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중고 플랫폼들은 에스크로 기반 안전결제 시스템인 페이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를 이용하는 소비자의 현명한 소비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중고품이 몇 번째 받아 쓰더라도 새것에 버금가는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필자 이수진은 서울대학교 소비자학 학·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으로 소비문화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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