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일의 미래

일하는 공간이 바뀌면 일하는 방식도 바꿔야

입력 2022. 03. 21   16:51
업데이트 2022. 03. 2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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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재구성

 
개방적 공간 자유롭고 수평적인 문화
폐쇄적 공간 비민주적이고 수직 문화

 
수시로 대화·협의 필요한 기술기업
칸막이 없는 사무 공간이 제격

 
재택근무 증가로 공간 중요성 커져
MS 직원에 근무형태 자율 선택권

 
국내 기업 수평 조직문화 관심비해
업무 프로세스 성과 평가 아직 더뎌

 

마이크로소프트는 로비·휴게실 등은 소통을, 사무실은 협업과 창의성을 각각 북돋우는 쪽으로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사진=마이크로소프트
마이크로소프트는 로비·휴게실 등은 소통을, 사무실은 협업과 창의성을 각각 북돋우는 쪽으로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사진=마이크로소프트

서울 강서구 마곡에 있는 코오롱 원앤온리타워 내 회의실. 짧은 회의를 유도하기 위해 의자가 없고, 메모를 공유할 수 있도록 큰 종이가 테이블에 놓였다. 
 사진=코오롱
서울 강서구 마곡에 있는 코오롱 원앤온리타워 내 회의실. 짧은 회의를 유도하기 위해 의자가 없고, 메모를 공유할 수 있도록 큰 종이가 테이블에 놓였다. 사진=코오롱

20일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 계획이 발표되면서 이를 두고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논쟁에서 정작 빠진 주제가 있다. 공간 구조의 문제다.

공간 구조는 그 속에 있는 사람의 생각까지 바꿔놓을 정도로 중요하다. 개방적인 공간은 그 조직의 문화를 자유롭고 수평적으로 바꿔놓는다. 폐쇄적인 공간은 수직적이며 비민주적인 문화를 낳는다. 정부부처는 사무 공간이 영역과 조직별로 엄격히 구분돼 있는데 수직적인 공직문화를 깨뜨리기 위해서라도 공간 구조에 변화를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민간기업의 사무 공간은 정부와 비교해 확실히 개방적이다. 하지만 직원과 동떨어진 곳에 벽으로 둘러싸인 사장실과 임원실, 상사가 바로 등 뒤에서 지켜보는 사무실 풍경이 아직 일반적이다. 사장이나 임원이 문밖 비서에게 “다들 내 방으로 모이라고 해!”라고 지시하는 장면도 낯익다. 김홍진 워크이노베이션랩 대표는 “일반 직원은 좁은 사무 공간에 서로 소통할 곳도 모자란데 높은 사람이 꼼짝하지 않고 제 방이나 자리로 아랫사람을 불러 일을 처리하는 공간 구조가 조직의 효율과 문화를 망가뜨린다”라고 말했다. 이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사무실 환경을 소프트웨어를 비롯한 기술기업들이 바꿔놓기 시작했다.

기술기업은 ‘솔루션(Solution)’ 기업이라고도 불린다. 고객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것을 업으로 하기 때문이다. 고객이 제기한 문제나 요구를 기술적으로 빨리 해결하기 위해 영업과 기술 조직이 수시로 대화해야 한다. 같은 조직 내 협의도 필요하다. 서로 “네 탓”을 하면서 얼굴을 붉힐 때가 있지만 모두 고객 불만의 해결이라는 목표가 있어 뒤끝이 적다. 서로 계급장을 뗀 수평적 논의가 활발하면 해결책도 빨리 찾는다. 칸막이 없는 사무 공간이 제격이다.

개방적인 사무 환경 조성에 모바일 인터넷이 큰 몫을 했다. 무선 와이파이만 있으면 노트북과 스마트패드로 어느 곳에서도 접속해 일할 수 있다. 굳이 고정된 자리에 앉을 필요가 없다. 유선으로 연결되는 무거운 데스크톱 PC로는 이리저리 자유롭게 자리를 옮겨 다니는 개방형 사무실을 만들 수 없다. 고정석을 없애 남는 공간을 회의실이나 휴게실 등으로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개방형 사무 공간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다. 협업과 소통을 돕는 공간이 오히려 업무 생산성을 죽인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대면 상호작용을 되레 떨어뜨리고 디지털 비대면 상호작용을 늘린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다른 사무실 사람과의 소통은 좋아졌는데 정작 같은 사무실 내 사람들 사이에 새 장벽이 생겼다는 지적도 있다. 진짜 의견이나 속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들릴까 봐 조심하는 사람도 있다. 시끄럽고 산만해 업무에 몰입할 수 없다는 사람도 많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과 더불어 개방적 사무실은 감염에 취약한 약점도 드러났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년 전부터 별도 연구를 할 정도로 공간과 업무 생산성의 문제를 깊이 판 기업이다. 늘 사무 공간 디자인에 심혈을 기울인다. 개발자 업무 몰입과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개인형 사무실을 고수한 이 회사는 2014년 개방형 공간 디자인을 도입했다. 16~24명을 기준으로 완전 개방형 사무실로 꾸몄다. 그러나 개발자 불만이 터져 나왔다. 소음에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심지어 동료와의 교류를 끊는 사람마저 생겨났다. MS는 이런 불만을 반영해 개방형 공간 기준을 8~13명 규모로 줄이고 사적 공간을 크게 늘렸다. 개방형을 유지하면서 개인 공간을 보장한 절충안이다. 직원 불만은 사라졌고, 생산성도 높아졌다.

코로나 팬데믹이 퍼지면서 사무 공간은 새 변화에 직면했다. 사무실에 갈 일이 없어지자 역설적으로 업무 공간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서로 떨어져 있지만, 고립감을 느끼지 않고 동료와의 연결성과 협업을 극대화할 방법이 절실해졌다. ‘클라우드’라는 가상 업무 공간이 적절한 솔루션으로 등장했다.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넣고 언제든 접속해 작업한다. 문서 공동 작업을 비롯한 쪽지창 기반 협업 도구, 업무 포털, 전용 장비 등의 기술도 동원한다.

재택·원격근무 2년이 넘어가면서 직원들의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31개국 3만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절반 이상이 연봉보다 건강, 웰빙(Well-being), 유연 근무를 더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이 보장되지 않으면 회사를 그만둔다는 응답자가 18%에 달했다. 과거에는 하지 않던 생각들이다.

MS는 사무실 문을 다시 열어도 완전 재택이든 부분 재택이든 상사의 동의를 얻으면 허용해주기로 했다. 그만두는 사람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직원에 자율 선택권을 준 이 회사는 자신감을 갖고 구글, 애플 등보다 먼저 사무실을 다시 열 계획이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최근 몇 년 사이 수평적인 조직 문화와 공간 디자인에 관심을 쏟았다. 연공서열과 수직적 직급에 따른 상의하달 문화를 깨기 위해 직급 구조와 호칭을 단순화하고 고정석을 없애는 공간 변화를 시도한다. 그 결과 수평적인 조직 문화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하지만 직원 스스로 제 업무 역량을 높이고 유연 근무에 적응할 수 있도록 업무 프로세스와 성과 평가 방식을 세우는 작업은 아직 더디다. 기대 효과가 반쪽에 그치는 이유다.

4차 산업 혁명기다. 경쟁국과 경쟁사를 따라가기만 할 게 아니라 선도해야 뒤처지지 않는 시대가 왔다. 남과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창의적으로 도전하는 문화가 우리 사회에 절실하다. 공적 영역이든 민간 영역이든 다르지 않다. 업무 공간부터 바꿔보는 시도를 하면 어떨까.


필자 신화수는 30년간 기술산업 분야를 취재했으며 전자신문 편집국장, 문화체육관광부 홍보협력관, IT조선 이사 등을 역임했다. 기술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을 응원한다.
필자 신화수는 30년간 기술산업 분야를 취재했으며 전자신문 편집국장, 문화체육관광부 홍보협력관, IT조선 이사 등을 역임했다. 기술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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