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재감테크
실재와 가상의 연속성 구현 기술
세계 최고가 레스토랑 서블리모션
과거·현재·미래 초현실적 경험 제공
한 끼 200만 원 달해도 예약 줄이어
가상공간 실재감 극대화한 메타버스
로블록스·포트나이트·제페토 대표적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언택트’가 일상의 당연한 일부로 자리 잡았다. 시공간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완전한 실재감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기술, ‘실재감테크(extended presence technology)’가 소비자와의 관계를 만드는 핵심적인 기술로 대두하고 있다.
현실과 가상의 연속성(reality-virtuality continuum)을 구현하는 일련의 기술을 아우르는 실재감테크는 가상공간 창조, 다양한 감각 자극, 디지털 데이터와 아날로그 방식 혼합 등 인간 생활의 스펙트럼을 확장시킨다. 실재감테크는 단지 기술적 완성도의 문제가 아니다. 수용자들이 얼마나 몰입하는지, 또 그 기술이 제공하는 혜택을 실제처럼 존재한다고 인지하는지의 문제다.
실재감테크는 인간의 여러 감각을 복합적으로 활용하는 ‘다중감각’,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거나 현실의 시간 흐름과 같게 흘러가는 ‘동시성’, 직접 몸을 움직여 집중하는 것에서 가치를 얻는 ‘체험성’을 주요 요소로 한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를 몰입시켜 스스로 초월했다는 감정을 갖게 하는 것이다. 초월은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며, 실재감테크는 우리의 감각과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게 한다.
인간의 다양한 감각을 자극해 경험성을 극대화하는 공간이 대표적이다. 서블리모션(Sublimotion)은 스페인 이비자섬(Ibiza)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레스토랑으로 초현실적인 식사 경험을 제공한다. 환상적인 식당 연출에는 건축가·디자이너·엔지니어·시나리오작가 등이 참여했다. 식당을 방문한 고객들은 바닷속과 하늘 위로 펼쳐지는 20세기의 과거 모습에서부터 2050년의 미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소와 시간을 여행하면서 3시간 동안 연회를 즐긴다. 20개의 코스요리 식사 비용이 1인당 1500유로(약 200만 원)에 달하지만, 예약 고객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가상공간에서도 실재감을 극대화한 것이 바로 메타버스다. 메타버스는 ‘사이에, 뒤에, 넘어서’ 등을 뜻하는 접두어인 메타(meta-)와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버스(-verse)를 결합한 합성어다. 현실 세계와 같은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의 가상 세계를 지칭한다. SF 작가 닐 스티븐슨이 소설 ‘스노크래시’에서 언급하며 등장했다. 또 3차원 가상현실 기반의 세컨드 라이프라는 게임이 인기를 끌면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최근 들어 5G의 상용화와 더불어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을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이 발전했고, 비대면 온라인 추세가 확산하면서 메타버스가 더 주목받고 있다.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로블록스·포트나이트·마인크래프트·제페토 등이 있다. 로블록스는 2006년에 출시된 이후 2021년 3월 뉴욕증시에 상장했을 만큼 성장 중이며, 월간 방문자 수가 1억9000만 명이 넘는다. 한국의 제페토는 2018년 네이버제트에서 출시한 이후 현재 가입자 수가 2억 명에 달한다.
가상공간에서 실재감을 제공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이용자가 현실에서처럼 자유롭게 활동하게 하는 것이다. 많은 메타버스 플랫폼은 타인과의 교류와 경제활동이 가능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다른 이용자들과 함께 콘서트나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포트나이트의 ‘파티로열모드’에서 열린 미국 가수 트래비스 스캇의 콘서트에는 1230만 명이 동시 접속했다. 방탄소년단(BTS)도 신곡 뮤직비디오를 전 세계 최초로 공개한 바 있다.
더불어 메타버스 환경 안에서 구독경제·콘텐츠 판매·광고·인앱 결제 등을 통해 플랫폼의 수익성을 이뤄내고 있다. 예를 들어 제페토 스튜디오에서 아바타의 패션 아이템을 디자인해 등록하면 심사를 거쳐 판매할 수 있다. 판매 수익은 자체 재화를 통해 이뤄지고, 추후 환금해준다. 또 내가 꾸민 아바타를 주인공으로 활용해 드라마로 만들어 공유하기도 한다. 현재 제페토에서 판매되는 아이템의 80% 이상이 이용자들이 직접 만든 것들이며, 누적 창작자 수는 6만여 명에 달한다.
이용자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기업들도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활동한다. 유통 및 패션기업들이 신규 고객 접점을 확보하고자 메타버스에 뛰어든다. 편의점 CU는 제페토 안에서 인기 맵 중 하나인 한강공원에 ‘CU제페토 한강공원점’을 오픈했다. 또 유저들이 자주 방문하는 공간인 교실이나 지하철에도 순차적 점포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CU제페토 한강공원점은 한강을 바라보면서 인기 상품을 즐길 수 있는 루프탑 편의점이다. 패션 명품 브랜드 구찌는 이탈리아 피렌체를 배경으로 한 ‘구찌 빌라’ 매장에서 제품을 둘러보고 구매할 수 있다.
실재감테크를 표방하는 메타버스의 성장성은 밝다. 다양한 기업들이 메타버스 시장에 진입할 것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플랫폼은 고객 모시기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펼칠 것이고, 비즈니스 모델이 생존하기 위해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할 것이다. 게임뿐만 아니라 제조·의료·관광 등 다양한 공공 산업 수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에 대해 다각적으로 고민해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실재감은 현대사회의 인류에게 결핍이자 욕망이다. 디지털을 기반으로 파편화되어가는 사회와 전 세계적인 전염병 사태는 다른 존재와 구별되는 ‘나’를 찾기 어렵게 하고 있다. ‘존재감 결핍의 해소와 존재감 회복의 욕망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과제가 실재감테크의 궁극적인 목적이 돼야 한다.
따라서 실재감테크를 비즈니스에 적용하려면 소비자가 그 안에 들어가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을 마련해야 한다. 또 기술 속에서 자기 비즈니스를 어떻게 느끼게 해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아울러 진솔하고 즉각적인 피드백이 필요하다. 요컨대 “어떻게 고객의 삶에 더 가까이 다가가 가치를 창출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적 도구로서 실재감테크에 진지한 접근이 요구되는 것이다.
생활의 모든 영역이 실제를 초월하고 있는 시대, 앞으로 소비자를 붙잡을 수 있는 기술적 역량의 핵심은 누가 더 실재감을 만들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필자 이수진은 서울대학교 소비자학 학·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으로 소비문화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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