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김애양 조명탄] 내일은 오늘보다

입력 2022. 02. 23   16:34
업데이트 2022. 02. 23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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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양 은혜산부인과 원장
김애양 은혜산부인과 원장


설이 지난 어느 날, 우리 병원 위층에 있는 선물 대행업체 사장님과 마주쳤다. 예년에 비해 매출이 너무 적었다면서 유일하게 햄, 스팸과 같은 저장식품 선물 세트만 조금 팔렸을 뿐 고기나 굴비 등의 고가상품은 거의 전멸이었다고 울상을 지었다. 코로나시대의 음식 문화를 대변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외식 횟수도 줄고 자가격리 사례가 늘다 보니 저장식품이 각광 받는 것 같았다. 또 한편 저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사니까 선물까지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야말로 제대로 선물을 하지 못한 명절을 보내게 됐다.

코로나를 겪으며 경기가 어려워지는 것은 진료실에 앉아서도 체감할 수 있다.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내원환자가 줄었는데 사람들이 외출을 자제하고 또 어지간히 아프지 않고는 병원에 오지 않는 까닭도 있다. 또 찾아오는 환자들은 시름 섞인 이야기를 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사람이 아프게 되는 데는 스트레스가 큰 원인이 되는데 불경기 탓에 경제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았다. 창밖을 내다보면 맞은편 건물 설렁탕 집도, 그 옆 생태집도 문을 닫았고 골목길 안 카페와 꽃집도 폐업했다. 불과 6개월 사이의 일이다.

이렇게 상황이 우울할 때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해야 할까? 내가 물질에 대해 자신감을 잃을 때 떠올리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알렉산더 대왕의 일화다. 마케도니아에서 태어나 그리스와 페르시아, 이집트와 시리아까지 정복했던 영웅은 물욕이 없고 남에게 베푸는 기쁨을 깨닫고 누릴 수 있었다. 알렉산더는 전쟁을 치르러 나가기에 앞서 모든 이들에게 골고루 재산을 나누어주며 누구에게는 토지를, 또 다른 이에게는 항구를, 심지어 마을 전체를 내어주기도 하였다. 이렇게 왕실 재산을 다 써버리자 한 장군이 물었다. “대왕께서는 자신을 위해 무엇을 남겨 놓으셨습니까?” 그때 알렉산더가 대답했다. “희망”이라고.

얼마나 매력적인 대답인지…. 그 결과 수많은 전투마다 승리가 가능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대왕쯤 되면 능력도 있고 자신감도 넘쳐 희망을 품기가 쉬울는지 모르겠지만 평범한 우리는 대체 무슨 희망을 품을 수 있을까? 2년도 넘게 코로나에게 시달리고 일상이 암울하기만 한데….

그런데 다른 이야기 속에서 특별한 희망을 품게 됐다. 201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이다. 인류가 가까운 미래에 반려 로봇(Artificial Friend)을 이용할 것을 예상하고 쓴 작품이다. 주인공 클라라는 매장에 진열돼 있던 로봇인데 한 소녀를 돌보는 용도로 팔려간다. 그 소녀는 ‘향상’되기 위해 유전자 조작을 받았으므로 항상 몸이 아프다. 아픈 소녀를 성심으로 돌보며 클라라는 인간을 이해하려고 무척 애를 쓴다. AF들은 태양열로 에너지를 충전 받으므로 그들에겐 태양이 신과 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클라라는 소녀를 낫게 하려고 태양에게 기도를 드리며 기꺼이 자신의 부속품 일부까지 바친다. 기적적으로 소녀가 낫고 대학에 진학하게 되자 더는 클라라의 존재는 필요치 않다. 끝내 클라라는 폐기 처리장으로 가지만 AF일지라도 지고의 선의를 가진 클라라를 보면 우리는 인간적인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착한 로봇과 냉정한 인간이 대비되는 것이다. 또 작품을 읽고 나면 마음속에 차오르는 희망이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태양이 있다는 사실이다.

눈을 가린다 해도 태양은 한결같이 세상을 밝힐 것이고 또 뜨거운 열을 제공해 줄 것이다. 그것이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란 믿음과 희망을 품는 이유다. 봄 담은 햇살이 유난히 따사롭게 창가에 쏟아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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