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로 촉발 아프간전쟁 배경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된 미군 캠프
탈레반과의 치열한 실제 전투 그려
사실적 묘사 위해 무편집 기법 활용
영화 ‘아웃포스트’는 미군 병사 53명과 탈레반 400명 이상이 격돌한 실제 전투를 그렸다.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미국의 지도자나 정책 결정자들은 아프간의 복잡한 부족 관계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인종·민족·분파 간 분열을 따라 불평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민주주의가 집단 간 분쟁과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 아프간에 ‘탈레반’이 탄생한 것처럼, 이라크에서는 자유시장 민주주의의 빛나는 모델이 아니라 ‘ISIS’가 생겨났다.”(『정치적 부족주의』, 에이미 추아 지음, 부키 펴냄)
‘제국의 무덤’ 아프간…유일한 승자 탈레반 “제국의 무덤이 이제 중국을 부른다.”
2021년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을 떠나자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에 걸린 헤드라인이다. 눈길은 자연스레 중국을 향한다. 와칸 회랑의 끄트머리를 경계로 아프간과 국경이 맞닿아 있는 중국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19세기 이후 아프간은 제국의 각축장이었다. 동시에 덫이었다. 험악한 산지와 혹독한 기후, 주민들의 거센 저항에도 제국의 팽창을 위해서라면 반드시 이곳을 넘어야 했다. 러시아가 부동항을 얻기 위해 남하하자, 영국은 완충지대로 아프간이 필요했다. 3차에 걸친 전쟁을 거치며 영국은 일시적으로 아프간을 점령하고 지배하기도 했다. 하지만 완전 정복엔 실패했다. 굴욕적 패배도 맛봤다. 영국은 발길을 돌렸고 1919년 아프간은 독립했다. 영국으로서는 치가 떨렸으리라.
냉전이 한창이던 1979년 소련은 친소파 정권에 저항하는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 세력 무자헤딘을 진압하기 위해 아프간을 침공했다. 반면 미국은 소련군에 맞서는 무자헤딘을 도왔다. 파슈툰족(아프간 최대 부족) 전사들이 맹렬히 저항했고, 이들은 훗날 탈레반의 기원이 됐다. ‘그레이트 게임’의 승자는 영국에서 소련으로 이어졌지만, 결국 병력 5만 명을 잃은 후 1989년 철수했다. 이 전쟁이 소련 붕괴의 방아쇠를 당겼다.
소련이 아프간에서 패퇴한 지 32년 뒤, 냉전의 다른 축인 미국도 소련처럼 발을 잘못 들였음을 자인했다. 2021년 8월 31일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을 끝냈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그의 연설에 ‘승리(Victory)’라는 단어는 없었다. 미국이 9·11 테러 한 달 만인 2001년 10월 7일 아프간을 침공한 후 수렁에서 빠져나오는 데 꼬박 20년이 걸린 것. 미국은 아프간을 너무 몰랐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적어도 아프간에선 유효하다. ‘제국의 무덤’ 아프간에서 유일한 승자는 탈레반이었다.
이처럼 아프간과 탈레반은 냉전(cold war)의 폐허 위에서 탄생했다. 냉전은 아프간으로 가는 디딤돌인 동시에 장애물이었다. 냉전은 아프간의 자양분이자, 마비제였다. 냉전은 패권국가의 입장을 반영하는 말이었다. 따라서 오랜 세월 무력 충돌에 시달린 아프간에는 냉전이 형용모순이자 기만의 언어일 뿐이었다. 미사일 세례를 견뎌야 했던 아프간 국민에게 냉전은 ‘참혹한 열전’의 다른 표현이다.
생사 넘나드는 전투신 압권 영화 ‘아웃포스트’(2020)는 9·11 테러로 촉발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배경이다. 미군은 2006년 대게릴라전을 지원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북부 캄데시에 지방재건팀(PRT)을 만들고 전초기지(Outpost)를 세운다.
하지만 군사 전문가들은 영화에 등장하는 ‘캠프 키팅’을 ‘몰살 캠프’라고 불렀다. 방어 자체가 불가능한 곳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험준한 힌두쿠시 산맥에 둘러싸인 계곡 아래에 위치해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된 지형이었다. 병력 지원이나 공중 지원도 제대로 받기 힘든 거리적 특성도 지녔다. 완벽하게 고립된 공간이었다. 전투와 방어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이 전초기지는 병사들에게 사실상 무덤이나 다름없었다.
한밤중에 전입해 온 클린튼 로메샤(스콧 이스트우드) 하사는 기지를 병풍처럼 포위하듯 펼쳐진 지형을 확인하고는 “(탈레반은) 우릴 훤히 보고 있다”며 경악한다. 전초기지 속 미군의 일상은 말 그대로 살얼음판이다. 병사들은 불시에 이루어지는 탈레반의 공격 속에서 생과 사를 넘나든다.
두 명의 지휘관이 연달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상부는 기지를 폐쇄하려고 하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연기된다. 미군에 협조하는 대신 돈과 자원을 요구하는 주민들. 조금씩 압박하며 화력을 키우던 탈레반. 드디어 철수를 앞둔 기지에 화력을 퍼붓는다. 이때부터 관객도 전투의 한가운데에 놓인다. 흔들리는 화면에 호흡도 가빠진다. 이곳엔 총알이 알아서 피해 가는 주인공은 없다. 캠프 키팅의 병사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영화는 미국 저널리스트 제이크 테퍼가 생존 병사의 증언을 토대로 쓴 동명 베스트셀러가 원작이다. 미군 병사 53명과 탈레반 400명 이상이 격돌한 실제 전투를 그렸다. 살아남은 두 명의 병사는 50년 만에 미군 역사에서 생존 병사로는 최고 훈장인 ‘명예 훈장’을 받았다.
기존 전쟁영화가 기승전결의 서사 구조, 인물들의 캐릭터가 유기적으로 결합한다면 ‘아웃포스트’는 중반 이후 무려 40분 남짓 이어지는 전투를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로드 루리 감독은 몰려오는 적과 눈앞에 닥친 죽음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오너스(무편집) 기법을 활용했다. 감독의 선택은 옳았다.
영국이 멋대로 그은 선, 비극의 국경선이 되다 아프간의 38선 ‘듀랜드 라인’과 탈레반 1893년 영국은 민족과 언어, 생활 터전을 무시하고 중앙아시아 지도 위에 국경선을 그려 넣는다. 파키스탄(당시 인도)과 아프가니스탄 사이에 그은 듀랜드 라인(Durand Line)이 바로 그것. 영국이 멋대로 설정한 이 선은 최대 5000만 명에 달하는 파슈툰족 거주 지역을 두 동강 냈다. 비극의 탄생이다.
아프간을 이해하려면 부족 정치를 알아야 한다. 국가(國歌)에 무려 열네 부족이 등장한다. 주요 부족으로 파슈툰·타지크·우즈베크·하라자가 꼽힌다. 이들 사이에는 오랜 적대와 반목의 역사가 있다. 파슈툰은 아프간의 지배 부족이자 탈레반의 주력이다. 혈족주의가 강하고 명예가 손상되면 반드시 복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탈레반의 자존심도 여기에서 나왔다. 타지크는 북부동맹으로 탈레반과 내전을 벌이고 있다. 몽골의 후손인 하자라는 동양적 외모로 천대받는 소수 부족이다.
소련에 이어 미국도 아프간에서 부족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을 놓쳤다. 국가보다도 부족 의식이 강한 아프간의 증오는 날로 커져 간다. ‘파슈툰판 38선’ 듀랜드 라인으로 비롯된 반목과 갈등은 과연 언제까지 피를 부를까.
9·11테러로 촉발 아프간전쟁 배경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된 미군 캠프
탈레반과의 치열한 실제 전투 그려
사실적 묘사 위해 무편집 기법 활용
영화 ‘아웃포스트’는 미군 병사 53명과 탈레반 400명 이상이 격돌한 실제 전투를 그렸다.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미국의 지도자나 정책 결정자들은 아프간의 복잡한 부족 관계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인종·민족·분파 간 분열을 따라 불평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민주주의가 집단 간 분쟁과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 아프간에 ‘탈레반’이 탄생한 것처럼, 이라크에서는 자유시장 민주주의의 빛나는 모델이 아니라 ‘ISIS’가 생겨났다.”(『정치적 부족주의』, 에이미 추아 지음, 부키 펴냄)
‘제국의 무덤’ 아프간…유일한 승자 탈레반 “제국의 무덤이 이제 중국을 부른다.”
2021년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을 떠나자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에 걸린 헤드라인이다. 눈길은 자연스레 중국을 향한다. 와칸 회랑의 끄트머리를 경계로 아프간과 국경이 맞닿아 있는 중국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19세기 이후 아프간은 제국의 각축장이었다. 동시에 덫이었다. 험악한 산지와 혹독한 기후, 주민들의 거센 저항에도 제국의 팽창을 위해서라면 반드시 이곳을 넘어야 했다. 러시아가 부동항을 얻기 위해 남하하자, 영국은 완충지대로 아프간이 필요했다. 3차에 걸친 전쟁을 거치며 영국은 일시적으로 아프간을 점령하고 지배하기도 했다. 하지만 완전 정복엔 실패했다. 굴욕적 패배도 맛봤다. 영국은 발길을 돌렸고 1919년 아프간은 독립했다. 영국으로서는 치가 떨렸으리라.
냉전이 한창이던 1979년 소련은 친소파 정권에 저항하는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 세력 무자헤딘을 진압하기 위해 아프간을 침공했다. 반면 미국은 소련군에 맞서는 무자헤딘을 도왔다. 파슈툰족(아프간 최대 부족) 전사들이 맹렬히 저항했고, 이들은 훗날 탈레반의 기원이 됐다. ‘그레이트 게임’의 승자는 영국에서 소련으로 이어졌지만, 결국 병력 5만 명을 잃은 후 1989년 철수했다. 이 전쟁이 소련 붕괴의 방아쇠를 당겼다.
소련이 아프간에서 패퇴한 지 32년 뒤, 냉전의 다른 축인 미국도 소련처럼 발을 잘못 들였음을 자인했다. 2021년 8월 31일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을 끝냈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그의 연설에 ‘승리(Victory)’라는 단어는 없었다. 미국이 9·11 테러 한 달 만인 2001년 10월 7일 아프간을 침공한 후 수렁에서 빠져나오는 데 꼬박 20년이 걸린 것. 미국은 아프간을 너무 몰랐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적어도 아프간에선 유효하다. ‘제국의 무덤’ 아프간에서 유일한 승자는 탈레반이었다.
이처럼 아프간과 탈레반은 냉전(cold war)의 폐허 위에서 탄생했다. 냉전은 아프간으로 가는 디딤돌인 동시에 장애물이었다. 냉전은 아프간의 자양분이자, 마비제였다. 냉전은 패권국가의 입장을 반영하는 말이었다. 따라서 오랜 세월 무력 충돌에 시달린 아프간에는 냉전이 형용모순이자 기만의 언어일 뿐이었다. 미사일 세례를 견뎌야 했던 아프간 국민에게 냉전은 ‘참혹한 열전’의 다른 표현이다.
생사 넘나드는 전투신 압권 영화 ‘아웃포스트’(2020)는 9·11 테러로 촉발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배경이다. 미군은 2006년 대게릴라전을 지원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북부 캄데시에 지방재건팀(PRT)을 만들고 전초기지(Outpost)를 세운다.
하지만 군사 전문가들은 영화에 등장하는 ‘캠프 키팅’을 ‘몰살 캠프’라고 불렀다. 방어 자체가 불가능한 곳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험준한 힌두쿠시 산맥에 둘러싸인 계곡 아래에 위치해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된 지형이었다. 병력 지원이나 공중 지원도 제대로 받기 힘든 거리적 특성도 지녔다. 완벽하게 고립된 공간이었다. 전투와 방어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이 전초기지는 병사들에게 사실상 무덤이나 다름없었다.
한밤중에 전입해 온 클린튼 로메샤(스콧 이스트우드) 하사는 기지를 병풍처럼 포위하듯 펼쳐진 지형을 확인하고는 “(탈레반은) 우릴 훤히 보고 있다”며 경악한다. 전초기지 속 미군의 일상은 말 그대로 살얼음판이다. 병사들은 불시에 이루어지는 탈레반의 공격 속에서 생과 사를 넘나든다.
두 명의 지휘관이 연달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상부는 기지를 폐쇄하려고 하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연기된다. 미군에 협조하는 대신 돈과 자원을 요구하는 주민들. 조금씩 압박하며 화력을 키우던 탈레반. 드디어 철수를 앞둔 기지에 화력을 퍼붓는다. 이때부터 관객도 전투의 한가운데에 놓인다. 흔들리는 화면에 호흡도 가빠진다. 이곳엔 총알이 알아서 피해 가는 주인공은 없다. 캠프 키팅의 병사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영화는 미국 저널리스트 제이크 테퍼가 생존 병사의 증언을 토대로 쓴 동명 베스트셀러가 원작이다. 미군 병사 53명과 탈레반 400명 이상이 격돌한 실제 전투를 그렸다. 살아남은 두 명의 병사는 50년 만에 미군 역사에서 생존 병사로는 최고 훈장인 ‘명예 훈장’을 받았다.
기존 전쟁영화가 기승전결의 서사 구조, 인물들의 캐릭터가 유기적으로 결합한다면 ‘아웃포스트’는 중반 이후 무려 40분 남짓 이어지는 전투를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로드 루리 감독은 몰려오는 적과 눈앞에 닥친 죽음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오너스(무편집) 기법을 활용했다. 감독의 선택은 옳았다.
영국이 멋대로 그은 선, 비극의 국경선이 되다 아프간의 38선 ‘듀랜드 라인’과 탈레반 1893년 영국은 민족과 언어, 생활 터전을 무시하고 중앙아시아 지도 위에 국경선을 그려 넣는다. 파키스탄(당시 인도)과 아프가니스탄 사이에 그은 듀랜드 라인(Durand Line)이 바로 그것. 영국이 멋대로 설정한 이 선은 최대 5000만 명에 달하는 파슈툰족 거주 지역을 두 동강 냈다. 비극의 탄생이다.
아프간을 이해하려면 부족 정치를 알아야 한다. 국가(國歌)에 무려 열네 부족이 등장한다. 주요 부족으로 파슈툰·타지크·우즈베크·하라자가 꼽힌다. 이들 사이에는 오랜 적대와 반목의 역사가 있다. 파슈툰은 아프간의 지배 부족이자 탈레반의 주력이다. 혈족주의가 강하고 명예가 손상되면 반드시 복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탈레반의 자존심도 여기에서 나왔다. 타지크는 북부동맹으로 탈레반과 내전을 벌이고 있다. 몽골의 후손인 하자라는 동양적 외모로 천대받는 소수 부족이다.
소련에 이어 미국도 아프간에서 부족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을 놓쳤다. 국가보다도 부족 의식이 강한 아프간의 증오는 날로 커져 간다. ‘파슈툰판 38선’ 듀랜드 라인으로 비롯된 반목과 갈등은 과연 언제까지 피를 부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