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거나 특별하거나… 명품보다 희귀템에 열광
득템력
사치의 대중화·소셜미디어 발달 영향
재력만으론 타인과의 구별 어려워져
구하기 어려운 제품, 차별화 기호 돼
특템 과정이 여가이자 놀이문화로
값비싼 브랜드가 아니라, 갖기 어려운 아이템을 누가 얻는가가 과시와 차별화의 요소가 되고 있다. 경제적 지불 능력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희소한 상품을 얻을 수 있는 소비자의 능력을 ‘득템력’이라 할 수 있다. ‘득템’은 원래 게임 문화에서 만들어진 단어다. 원하는 게임 아이템을 얻었을 때, ‘얻을 득(得)’자와 아이템(item)의 ‘템’자를 합쳐 득템이라고 표현했는데 이제는 쇼핑 문화에서 감지되고 있다. 가격에 더해 소비자들의 노력과 간절함을 저울질하는 시장에서 소비자들은 득템력을 발휘하고 있다.
과거 신분제 사회에서는 세련된 에티켓이나 문화적 소양 등으로 자신의 지위를 은근히 과시했는데, 이를 ‘보이지 않는 잉크(invisible ink)’라고 한다. 예를 들어, 과거의 상류층들은 오페라 감상이나 와인 매너처럼 쉽게 익힐 수 없는 지식을 쌓아서 다른 계급과 구별되는 은밀한 표식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도시화로 익명성이 커지면서 비싼 사치품 같은 ‘보이는 잉크(visible ink)’가 그 역할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평범한 이들은 쉽게 구매할 수 없는 고가의 사치품은 자신이 상류층임을 드러낼 수 있는 유용한 기호(signal)가 됐다.
사치의 대중화와 소셜미디어의 발달은 또 한차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지위를 표시하는 재력만으로는 타인과의 구별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소통하는 시대에는 돈만으로는 얻기 어려운 아이템을 향유하는 것이 더욱 희소한 경험이 되었다. 득템력은 기본적으로 보이는 잉크이지만,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이해력(literacy)을 가진 사람끼리만 공유되는 능력이라는 측면에서는 보이지 않는 잉크의 측면도 동시에 가지고 있어, ‘흐릿한 잉크’ 전략이라고 부를 수 있다. 즉, 돈이 있어도 살 수 없고, 득템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소비자들의 일종의 ‘구별 짓기’ 전략인 셈이다.
득템력을 발휘하는 첫 번째 방법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줄 서고 기다리는 것이다. 매장 오픈 전부터 하는 밤샘 줄서기에 텐트가 동원되기도 한다. ‘오픈런’을 하는 소비자들의 이야기다. 소비자들은 서로 오픈런 노하우나 정보를 공유한다. 줄서기 대행 아르바이트는 3~4시간에 5만 원 정도로 최저 시급을 훌쩍 넘는 금액이며, 중고마켓에는 줄서기 자리를 거래하는 글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실제 2021년 6월부터 오픈런 대행 아르바이트를 중개하는 ‘오픈런 갓바타’라는 서비스를 운영 중인 곳도 있다.
다음으로는 ‘운’으로 쟁취하는 전략이다. 수량이 한정된 제품에 대해 구매 자격을 추첨으로 선정하는 ‘래플(raffle)’에 수많은 사람이 몰린다. 명품브랜드 디올과 신발 브랜드 나이키가 컬래버레이션해 만든 스니커즈 ‘에어디올’을 정가 300만 원에 전 세계 소비자를 대상으로 8000켤레 판매했는데, 응모자가 500만 명이었다고 한다. 이 같은 전략이 꼭 또 명품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화제성을 불러일으켜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는 상품이나 서비스는 “다른 사람들은 구하지 못하는 것을 나는 구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라는 것 자체가 과시의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 전략은 득템하고 싶은 간절함을 증명하는 방법이다.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브랜드에서 원하는 구매 금액을 채우고, 혹은 요청하는 드레스 코드도 갖춰서 구매하러 가야 한다. 또 매장 직원을 내 편으로 만들어 기회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어떤 시계 브랜드의 경우 자신의 구매 이력을 에세이로 제출할 것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제품뿐만 아니라 서비스의 경우, 한 맛집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위치정보시스템(GPS)으로 그 맛집 근처에 있음을 인증해야 한다. 이런 마케팅 전략을 ‘헝거 마케팅’이라고 하며, 의도적으로 리미티드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다.
득템력이 중요해진 이유는 단연 사치의 대중화로, 높은 가격보다 구하기 어려운 아이템이 차별화의 기호가 됐다는 점이다. 아울러 소비자에게 득템의 과정 자체가 하나의 여가이자 놀이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것도 중요한 요인이다. 기성세대의 경우 맛집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 노동일뿐이지만, 득템을 즐기는 소비자에게는 그 과정도 즐겁다. SNS에 그 과정을 올리거나, 유튜브 영상으로 콘텐츠를 만들기도 한다. ‘빵지순례’ ‘디저트 뿌시기’ 등 인증샷 문화가 더욱 커지는 것도 배경이 된다.
또 한정된 아이템이 투자의 일환이 된다는 점도 득템력 트렌드 확산의 이유로 꼽힌다. 중고마켓 플랫폼이 발달함에 따라 리셀(중고거래) 상품을 사고 파는 것이 용이해졌다. 중고마켓에서 특히 한정판의 가치는 그 어떤 상품들보다 막강하기 때문에 더욱 효과를 발휘한다. 이에 중고마켓 시장은 매년 성장 중이다. 국내 스니커즈 리셀 1위 플랫폼인 크림은 시장에서 잠재력을 인정받아 2021년 10월에 1000억 원 규모 시리즈B 투자를 유치했다. 기업가치도 4000억 원에 달한다. 크림은 출범 2년 만에 회원 160만 명을 모았고 누적거래액도 2022년 1조 원을 앞둘 만큼 성장 속도가 빠르다.
소비자의 즐거움이 대상이 되는 득템력도 종종 사회문제를 야기한다. 특히 ‘되팔렘’ 같은 중고가격 왜곡은 소비자 피해로도 이어질 수 있다. 되팔렘이란 물건을 사들여 비싼 값에 되파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다. 2012년 블리자드에서 컴퓨터 게임 ‘디아블로3’ 한정판을 내놓았을 때 이를 사재기해 되파는 사람들이 나타나면서 되파는 행위와 게임 캐릭터 ‘네팔렘’을 합성해 등장한 용어다. 사려는 사람은 많은데 물량이 충분하지 못한 제품들이 주 타깃이 된다. 예를 들어, 한정 생산으로 유명한 에르메스 명품 가방의 경우 매장 정가가 1400만 원인데, 중고가는 3000만 원 선에 거래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는 단시간에 수많은 클릭을 유발하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정상적 방법으로 구매하려는 사람들의 구매를 제한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행위는 사람들의 정상적인 소비 의욕을 떨어뜨려 시장 경제에 해악을 끼친다. 정작 제품이 꼭 필요한 사람들이 구매하지 못하거나 비싼 값에 사면서 소비 만족도가 떨어진다. 궁극적으로 상품을 제조한 회사들도 다른 소비자에게 부정적인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피해를 입게 된다.
득템력 트렌드는 기업 입장에서는 막강한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된다. 적절한 기획력으로 소비자들의 갈급함을 자극해, 브랜드 파워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득템력은 과소비와 상대적 박탈감의 근원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득템력 트렌드의 부상에 힘입어 소비자 복지를 위한 시장의 자생적 노력과 더불어 제도적 피해 구제 방안에 대한 고민을 함께 발전시킴으로써 비로소 건강한 시장으로 완결될 것이다. 상품 과잉의 시대, 돈만으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현대판 구별 짓기 경쟁은 앞으로도 강화될 것이다.
필자 이수진은 서울대학교 소비자학 학·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으로 소비문화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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