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군사 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

獨한 사회 풀어줄 공감능력이 필요해…

입력 2022. 01. 12   16:43
업데이트 2022. 01. 12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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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사회
 
한국 트렌드에 미치는 영향
1. 내 트렌드 당신이 모르는 게 트렌드
2. 직장마저도 모였다가 흩어지는…
3. 가정 분해되고 그 기능은 시장화
 
나노사회 블루 대처 방법
공감 능력 바탕으로 공동체 강화
친절·협력·협동의 가치 인정해야
행동에 실제 보상 줄 방안 모색을
 

한국 사회가 파편화하고 있다. 공동체가 개인으로 조각조각 부스러져 모래알처럼 흩어진다. 개인은 더 미세한 존재로 분해되며 서로 이름조차 모르는 고립된 섬이 되어 간다. 이러한 현상을 사회가 극소단위로 분화됐다는 의미에서 ‘나노사회(nano society)’라 명명한다. 나노사회 현상은 산업화 이후 꾸준히 제기돼 온 문제이지만, 최근 그 경향성이 매우 강력해졌을 뿐만 아니라 다른 트렌드 변화를 추동하는 중요한 동인(動因)이 되고 있다는 이유에서 다시 한번 주목한다.

나노사회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관찰되는 여러 변화의 근인(根因)이다. 비단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외로움의 경제’가 감지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대면 접촉을 건강에 위협적인 것으로 만들어 ‘사회적 불황’을 촉발하기 전에도 이미 미국 성인 다섯 명 중 세 명이 스스로 외롭다고 여기고 있다. 독일도 인구의 3분 2 정도가 외로움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응답했다. 영국에서는 이 문제가 너무나 중요해져서 2018년에는 총리가 외로움 부처(minister for loneliness) 장관을 임명하기에 이르렀다.

개인 단위로 흩어지는 나노사회는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사회적 변화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서도 개인주의화 돼가는 양상을 어렵지 않게 체감할 수 있다. 중국 과학 아카데미와 싱가포르 난양 경영대학원은 1970년에서 2010년 사이에 매년 가장 인기가 높았던 대중가요 열 곡을 분석했다. 그 결과 1인칭 대명사 중 단수형인 ‘나는’ ‘나의’ ‘나를’ 등의 사용은 현저히 증가한 반면 복수형인 ‘우리가’ ‘우리를’ ‘우리의’ 등의 사용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주의적 색채가 점점 강해지고 있는 셈이다. 예를 들어 1977년 영국의 록그룹 퀸(Queen)은 “우리는 챔피언(We are the champions)”이라고 외쳤지만, 2011년 걸그룹 2ne1은 “내가 제일 잘나가”라고 주창했다.

나노사회가 한국 트렌드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나의 트렌드를 당신이 모르는 것이 요즘의 트렌드”라는 말처럼 트렌드의 미세화를 촉발한다. 유행어는 트렌드 흐름을 살필 수 있는 유용한 언어적 기호다. 최근 형성되는 유행어들은 생성과 사멸 속도가 상당히 빠르고, 모두가 아는 유행어도 줄어들었다. 인공지능 소프트웨어(SW) 기업 코난테크놀로지의 2019년과 2020년 10대 유행어 소셜 분석 결과를 보면, 겹치는 유행어가 단 한 개도 존재하지 않는다. 신조어를 생산하는 커뮤니티가 다양해지면서 이를 해당 커뮤니티에 속한 사람들끼리만 즐기며 사용하는 경향이 커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둘째, 개인의 성공과 실패가 각자의 몫이 되면서 긱(gig·일시적인 일) 노동을 마다치 않는 노동의 파편화가 강해진다. 나노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직장마저도 고정된 무대가 아니라 일시적으로 모였다가 흩어지는 공간으로 빠르게 변모 중이다. 2020년 한국 노동자의 평균 근속 연수는 6.8년으로 OECD 회원국 중 짧은 편에 속한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긱 노동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찾는 수단이 된 지 오래다. 배달은 물론 ‘탤런트뱅크’ ‘크몽’ ‘숨고’ 등 생활 서비스나 전문 분야를 가리지 않고 프리랜서를 지원하는 애플리케이션이 크게 성장하고 있다.

셋째, 가정이 분해되고 그 기능이 시장화하면서 사회 인프라와 유통업 등 산업이 세분화된다. 1인 가구의 불편함을 다방면으로 해결하고 있는 편의점 성장이 대표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유통업 매출 동향 집계를 시작한 이래로 편의점 3사(社)의 2021년 분기 매출이 사상 처음으로 대형 마트를 앞섰다. 대형 마트에서 장을 보기보다 소량 구매가 가능하고, 홀로 가볍게 끼니를 해결하기 좋은 편의점에 대한 소비자 선호가 자리 잡고 있다. 생산 방식도 나노 단위의 소비자에게 맞춘 ‘개인화 니즈’를 맞추기 위해 재편되고 있다.

나노사회는 쪼개지고 뭉치고 공명하는 양상을 띠며,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는 경향이 있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개인의 정신적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2012년 영국에서 7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연구에서는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외로울 확률이 10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외로움은 세포와 호르몬 수준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밝혀졌다. 외로움이 내분비샘의 기능을 손상시키며 신체 건강의 회복도 방해한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환자는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사건을 경험한 후 혈압이 정상 수치를 되찾기까지 더 오래 걸리고, 고립된 고령자는 사회적 접촉이 잦은 고령자들보다 평균적으로 기대수명이 낮다.

전염병은 이러한 문제를 더욱 심화시켰다. 코로나19 발발 이후 몇 달에 걸친 봉쇄조치, 자가격리, 사회적 거리 두기로 젊은 사람이든 노인이든, 남자든 여자든, 비혼이든 기혼이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비슷하게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코로나 이후 외롭고, 단절되고, 소외됐다고 느끼고 있는 셈이다.

‘나노사회 블루’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는 공감 능력을 바탕으로 공동체를 강화해야 한다. 먼저 친절·협력·협동과 같은 가치를 명시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단지 말로만 그치지 않고 행동에 실제 보상과 인센티브를 줄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으로 꼽힌 시스코는 협력과 친절을 장려하고 이러한 행동을 적극적으로 보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청소부부터 최고경영자(CEO)까지 직위를 불문하고 누구나 남에게 특별히 도움을 줬거나, 친절을 베풀었거나, 협력적이었던 직원을 지명할 수 있고 확인 과정을 거쳐 해당 직원에게 100달러에서 1만 달러까지 현금 보너스를 지급한다. 세계에서 일하기 가장 좋은 기업으로 뽑힌 배경에는 분명 이러한 제도가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공동체는 개인들이 시간을 들이고 주도적으로 참여해야만 번성한다. 함께 살아가고, 일하는 사람들이 의미 있는 방식으로 활발히 상호작용하지 않으면 공동체를 구현하기 어렵다. 개인들은 다양한 우연적 경험의 폭을 넓히며, 보다 큰 공동체적 휴머니즘, 특히 ‘지구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춰나가야 한다.


필자 이수진은 서울대학교 소비자학 학·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으로 소비문화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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