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문학에 심취했던 슈만
심오하고 깊은 음악 세계에도 영향
슈베르트의 가치 알아준 친구들
악보 종이 구해주며 힘 되기도
어릴 때부터 큰 무대 경험한 모차르트
음악가인 아버지 따라 다니며 성장
오스트리아 비엔나시립공원 내에 있는 슈베르트 기념상. 사진=이미지투데이
필자는 어릴 때부터 못 하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잘하지 못하는 것은 그림 그리기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두 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첫째는 나 자신이 재능이 없고, 노력도 하지 않아서다. 두 번째는 미술 재료 준비물을 가져가지 못해서 적극적으로 미술 시간에 집중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 때 염시열 선생님이 담임을 맡으셔서 60명 가까운 우리 반 모든 학생에게 사군자(매, 란, 국, 죽) 중에 대나무를 그릴 수 있도록 가르쳐 주셨다. 그래서 지금도 붓펜만 있으면 대나무를 그릴 수 있다. “난을 치는 것까지 배웠으면 정말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래서 어린 시절 무엇을 보고 배웠느냐가 너무나 중요한 것 같다. 우리가 아는 위대한 작곡가들의 생애를 살펴보면 왜 그런 위대한 곡들이 나오게 되었나를 알게 된다. 슈만은 7살 이전에 작곡을 시작했지만 음악보다 문학을 더 좋아했고 더 심취했다. 왜냐하면 슈만의 아버지가 독일에서 서점상이고, 출판업자였기 때문이다. 14살 때 음악 미학에 관한 에세이를 쓰고, 아버지가 출판한 유명인들의 초상이란 제목으로 책을 쓰기도 했다. 그는 독일 철학자 실러, 괴테의 작품을 많이 읽었고 특히 리히터의 글이 슈만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슈만은 법학을 공부하다가 피아노와 작곡을 하게 된다. 그가 심오하고 깊은 음악을 작곡하게 되는 바탕은 그의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좋은 친구들이 있다
슈베르트가 음악을 처음 접했던 것은 5살 무렵이었다. 피아노 수리점에서 일하는 견습생이 슈베르트의 집에 수리하러 왔고, 슈베르트는 그가 일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견습생이 “꼬마야, 너 음악 좋아하니?” 그러자 슈베르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응. 아주 많이” 라고 대답했다. 그는 음악에 깊은 관심을 가지며 피아노, 바이올린, 기타, 성악 등 다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슈베르트는 11세에 그 재능을 인정받아 국립 신학교에 합창단원으로 들어가게 됐고, 좋아하는 음악을 계속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신학교에 입학했지만 잘 적응하진 못했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내야 하는 외로움을 슈베르트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이곳에서 슈베르트는 자신의 인생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좋은 친구들과 선배를 만나게 된다. 시를 곧잘 지었던 티롤 출신의 젠과 훗날 유명한 작가가 된 요한 네포무크 네스트로이, 그리고 법학을 공부하던 요제프 폰 슈파운이다. 내성적이고 외로운 작곡가 슈베르트에게 항상 “넌 훌륭한 작곡가야”라고 용기를 북돋워 주고 집이 가난해 항상 악보를 그릴 종이가 부족한 슈베르트에게 종이를 구해 주기도 하였다. 슈베르트는 늘 가난한 삶을 살았지만 언제나 그의 곁에는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주는 친구들과 동료들이 있었다. 아름다운 선율의 슈베르트 ‘세레나데 (Staenchen)’는 정말 고백하고 싶은 여인을 위해 작곡했다. 하지만 결국 고백하진 못했다고 한다. 그 곡을 들을 때마다 슈베르트의 소심함을 생각하게 된다.
많은 여행과 경험이 그를 성장시키다
모차르트는 만 5세 때 이미 작곡을 했다. ‘미뉴에트 G장조’가 그의 첫 번째 작품이다. 그의 아버지도 뛰어난 음악가였지만 천부적 재능을 가진 모차르트를 데리고 오스트리아, 독일 등 전 유럽을 다니며 연주 기회를 주고 그가 성장해 작품을 만들거나 활동하는 데 큰 도움이 되도록 했다. 모차르트 음악은 늘 거침이 없고 유쾌하고 경쾌하다. 그의 여행과 어릴 때부터 큰 무대에 자주 섰던 경험이 그를 두려움 없이 성장시켰지 않았나 싶다.
필자의 경험으로 돌아오자면 그림을 그릴 줄 모르니,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한다.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한다. 보는 것과 찍는 것은 그리는 것에 비하면 너무나 쉽게 때문이다. 기회가 될 때마다 갤러리에 가거나 그림이 있는 곳이라면 조금 멈췄다 가곤 한다. 그래서 이제는 이게 좋은 그림인지 아닌지 나름대로 판단 기준이 생기기도 했다. 내가 못한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모든 사람이 능소능대 (能小能大·크고 작은 일에 재능이 있다는 뜻으로 다방면에 재능이 있는 사람을 이르는 말)할 수 없고 할 필요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
위대한 작곡가들도 어릴 적 환경에 의해 그들이 좋아하는 쪽으로 발달했고 그들도 못하는 일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남들이 잘하는 면만 보고 부러워하거나 자신을 자책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지 말길 바란다. 노력해 보고 안 되면 쿨하게 그 일을 잘하는 사람을 불러 즐기면 된다. 내가 잘하는 것을 더 잘하게 만들어 보길 바란다. 이런 내적인 자유가 있을 때 남들이 부럽지 않은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 하는 말로 ‘부러우면 지는 거다’.
필자 하만택 교수는 다수의 국제 콩쿠르에서 수상했고, 독일 쾰른 극장 전속 솔리스트 등을 역임했다. 현재 코리아아르츠그룹 대표 및 벨라비타문화예술원 주임교수를 맡고 있다.
어린 시절 문학에 심취했던 슈만
심오하고 깊은 음악 세계에도 영향
슈베르트의 가치 알아준 친구들
악보 종이 구해주며 힘 되기도
어릴 때부터 큰 무대 경험한 모차르트
음악가인 아버지 따라 다니며 성장
오스트리아 비엔나시립공원 내에 있는 슈베르트 기념상. 사진=이미지투데이
필자는 어릴 때부터 못 하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잘하지 못하는 것은 그림 그리기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두 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첫째는 나 자신이 재능이 없고, 노력도 하지 않아서다. 두 번째는 미술 재료 준비물을 가져가지 못해서 적극적으로 미술 시간에 집중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 때 염시열 선생님이 담임을 맡으셔서 60명 가까운 우리 반 모든 학생에게 사군자(매, 란, 국, 죽) 중에 대나무를 그릴 수 있도록 가르쳐 주셨다. 그래서 지금도 붓펜만 있으면 대나무를 그릴 수 있다. “난을 치는 것까지 배웠으면 정말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래서 어린 시절 무엇을 보고 배웠느냐가 너무나 중요한 것 같다. 우리가 아는 위대한 작곡가들의 생애를 살펴보면 왜 그런 위대한 곡들이 나오게 되었나를 알게 된다. 슈만은 7살 이전에 작곡을 시작했지만 음악보다 문학을 더 좋아했고 더 심취했다. 왜냐하면 슈만의 아버지가 독일에서 서점상이고, 출판업자였기 때문이다. 14살 때 음악 미학에 관한 에세이를 쓰고, 아버지가 출판한 유명인들의 초상이란 제목으로 책을 쓰기도 했다. 그는 독일 철학자 실러, 괴테의 작품을 많이 읽었고 특히 리히터의 글이 슈만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슈만은 법학을 공부하다가 피아노와 작곡을 하게 된다. 그가 심오하고 깊은 음악을 작곡하게 되는 바탕은 그의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좋은 친구들이 있다
슈베르트가 음악을 처음 접했던 것은 5살 무렵이었다. 피아노 수리점에서 일하는 견습생이 슈베르트의 집에 수리하러 왔고, 슈베르트는 그가 일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견습생이 “꼬마야, 너 음악 좋아하니?” 그러자 슈베르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응. 아주 많이” 라고 대답했다. 그는 음악에 깊은 관심을 가지며 피아노, 바이올린, 기타, 성악 등 다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슈베르트는 11세에 그 재능을 인정받아 국립 신학교에 합창단원으로 들어가게 됐고, 좋아하는 음악을 계속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신학교에 입학했지만 잘 적응하진 못했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내야 하는 외로움을 슈베르트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이곳에서 슈베르트는 자신의 인생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좋은 친구들과 선배를 만나게 된다. 시를 곧잘 지었던 티롤 출신의 젠과 훗날 유명한 작가가 된 요한 네포무크 네스트로이, 그리고 법학을 공부하던 요제프 폰 슈파운이다. 내성적이고 외로운 작곡가 슈베르트에게 항상 “넌 훌륭한 작곡가야”라고 용기를 북돋워 주고 집이 가난해 항상 악보를 그릴 종이가 부족한 슈베르트에게 종이를 구해 주기도 하였다. 슈베르트는 늘 가난한 삶을 살았지만 언제나 그의 곁에는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주는 친구들과 동료들이 있었다. 아름다운 선율의 슈베르트 ‘세레나데 (Staenchen)’는 정말 고백하고 싶은 여인을 위해 작곡했다. 하지만 결국 고백하진 못했다고 한다. 그 곡을 들을 때마다 슈베르트의 소심함을 생각하게 된다.
많은 여행과 경험이 그를 성장시키다
모차르트는 만 5세 때 이미 작곡을 했다. ‘미뉴에트 G장조’가 그의 첫 번째 작품이다. 그의 아버지도 뛰어난 음악가였지만 천부적 재능을 가진 모차르트를 데리고 오스트리아, 독일 등 전 유럽을 다니며 연주 기회를 주고 그가 성장해 작품을 만들거나 활동하는 데 큰 도움이 되도록 했다. 모차르트 음악은 늘 거침이 없고 유쾌하고 경쾌하다. 그의 여행과 어릴 때부터 큰 무대에 자주 섰던 경험이 그를 두려움 없이 성장시켰지 않았나 싶다.
필자의 경험으로 돌아오자면 그림을 그릴 줄 모르니,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한다.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한다. 보는 것과 찍는 것은 그리는 것에 비하면 너무나 쉽게 때문이다. 기회가 될 때마다 갤러리에 가거나 그림이 있는 곳이라면 조금 멈췄다 가곤 한다. 그래서 이제는 이게 좋은 그림인지 아닌지 나름대로 판단 기준이 생기기도 했다. 내가 못한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모든 사람이 능소능대 (能小能大·크고 작은 일에 재능이 있다는 뜻으로 다방면에 재능이 있는 사람을 이르는 말)할 수 없고 할 필요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
위대한 작곡가들도 어릴 적 환경에 의해 그들이 좋아하는 쪽으로 발달했고 그들도 못하는 일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남들이 잘하는 면만 보고 부러워하거나 자신을 자책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지 말길 바란다. 노력해 보고 안 되면 쿨하게 그 일을 잘하는 사람을 불러 즐기면 된다. 내가 잘하는 것을 더 잘하게 만들어 보길 바란다. 이런 내적인 자유가 있을 때 남들이 부럽지 않은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 하는 말로 ‘부러우면 지는 거다’.
필자 하만택 교수는 다수의 국제 콩쿠르에서 수상했고, 독일 쾰른 극장 전속 솔리스트 등을 역임했다. 현재 코리아아르츠그룹 대표 및 벨라비타문화예술원 주임교수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