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군사 전쟁과 영화

그들이 전장의 한복판을 질주한 이유는…

입력 2022. 01. 05   17:08
업데이트 2022. 01. 05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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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2019)
감독: 샘 멘데스 / 출연: 조지 맥케이, 딘-찰스 채프먼, 콜린 퍼스, 베네딕트 컴버배치


베르? 전투와 솜 전투 거치며
중압감 최고조였던 1917년 배경
촘촘한 촬영·끊기지 않는 편집
전쟁 체험하듯 극사실적 영화 연출


영화 ‘1917’은 아카데미 촬영상과 음향믹싱상, 시각효과상을 수상하며 기술적으로 완벽하다는 찬사를 받았다.  사진=유니버설픽처스코리아
영화 ‘1917’은 아카데미 촬영상과 음향믹싱상, 시각효과상을 수상하며 기술적으로 완벽하다는 찬사를 받았다. 사진=유니버설픽처스코리아

“기관총을 앞에 두고 보병 돌격전은 헛된 노력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양측은 땅에 깊은 구덩이를 파지 않을 수 없었다. 양쪽 군대는 그 후 4년, 1460일 동안 이 구덩이에 머물렀다.” (『참호에 갇힌 제1차 세계대전』 존 엘리스 저, 마티 펴냄)


전 세계에 울려 퍼진 총성…20세기 역사 궤도 바꾸다


1차 세계대전은 비극적이고 불필요한 전쟁이었다. (존 키건)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프란츠 대공 부부가 보스니아의 민족주의자 청년에게 암살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이날 사라예보의 ‘총성’을 사람들은 ‘전 세계에 울려 퍼진 총성(shot heard round the world)’이라 부른다. 세계를 전쟁의 수렁으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이후 유럽 각국은 걷잡을 수 없이 싸움에 말려들었다. 한 달 만에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한 데 이어 독일이 벨기에를 침공하며 방아쇠를 당겼다. 그렇다고 모두 전면전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오래 끌 생각도 없었다. 정치가나 군 수뇌부, 심지어 병사들조차 낙엽이 지기 전에 전쟁이 끝날 것이라 예상했다. 수많은 청년이 국가의 부름에 따라 입대했다. 영국에서는 첫 8주 동안 70만 명의 남성이 지원했다. 프랑스군은 베를린을 점령하고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낼 참이었고, 독일군은 단숨에 파리를 개선행진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환상이었다. 독일의 기동전이 실패로 돌아간 뒤 몇 달 동안 전쟁의 주 무기는 총이 아니라 삽이었다. 병사들은 참호를 더 깊이 파고, 포상을 강화하고, 사로를 정비하고, 후방 참호를 만드는 작업을 했다. 구불구불 이어진 참호의 길이는 약 4만㎞에 달했다. 이렇게 형성된 전선은 서로에게 난공불락이었다. 산업화된 전쟁이 참호와 참호를 사이에 두고 ‘노맨스랜드(No Man’s Land)’라고 불린 황폐한 공간에서 4년이나 교착상태에 빠질 줄은 아무도 몰랐다.


“함정에 빠진 아군을 구하라”…사선 질주하는 두 영국군 병사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17년 어느 날. 나무 밑에서 휴식을 취하던 영국군 병사 블레이크(딘-찰스 채프먼)와 스코필드(조지 맥케이)는 장군의 부름을 받는다. 위장 퇴각 후 영국군을 유인해서 포 공격으로 섬멸시키겠다는 독일군의 작전을 영국 사령부가 파악한 것. 독일군에 의해 통신선이 절단된 상황에서 두 병사는 아군의 희생을 막기 위해 아침이 오기 전 공격 중지 명령을 전달하라는 임무를 받는다.

영국군 사령부는 ‘지도를 잘 보고 적진을 돌파할 의지’를 가진 병사로 블레이크를 선택한다. 함정에 빠진 영국군 부대에는 그의 형이 배속돼 있다. ‘줄을 잘못 선’ 스코필드는 단지 블레이크 옆에서 자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함께 사선을 넘어야 한다.

철조망으로 덮여 있고 시신들이 널린 참호 밖, 썩어가는 진흙 웅덩이, 독일군이 남긴 부비 트랩…. 제시간에 도착해야 하기에 참혹한 전쟁터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질주하는 그들. 자, 이제 두 사람의 발에 영국군 1600여 명의 목숨이 달려 있다. 과연 그들은 미션을 수행할 수 있을까.

‘이야기꾼’ 샘 멘데스 감독이 1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1917년을 택한 이유는 절묘하다. 1917년은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기대는 사라지고 베르? 전투(1916)와 솜 전투(1916)를 거치며 무의미한 죽음 앞에 군인들의 사기가 완전히 땅에 떨어진 시점이다. 영웅도, 명분도, 승리도 없는 참혹한 전쟁의 중압감이 마치 터지기 직전 압력솥처럼 최고조에 다다른 바로 그 순간이다.

관계의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샘 멘데스는 이 지점에서 1차 세계대전에 전령병으로 참전한 할아버지 알프레드 H. 멘데스의 경험을 끌어온다. ‘로드 투 퍼디션(2002)’에서 부자 관계의 종말을, ‘레볼루셔너리 로드(2008)’에서 부부 관계의 균열을 그려낸 샘 멘데스는 ‘1917(2017)’에서는 가족 관계의 복원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평범한 인물의 이야기가 관객의 이야기로 전달되길 원했던 샘 멘데스는 두 병사의 배역을 대중에게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에게 맡긴다. 그리곤 두 병사들의 처절한 하루를 그저 따라간다. 카메라는 두 병사가 달리는 대로 시체가 널린 진창을 뛴다. 관객들도 두 병사와 함께 철조망을 지나 참호를 넘고 사선을 질주한다.

이를 위해 감독은 ‘원 컨튜니어스 샷(여러 장면을 이어 붙여 영화가 끊이지 않는 하나의 장면으로 보이게 하는 기법)’을 절묘하게 사용한다. 2시간 남짓의 러닝타임이 단 두 신만으로 이뤄진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동선을 촘촘하게 이어 나간 촬영과 한 땀 한 땀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편집 덕이다.

기품 있는 봄·가을 외투로 사랑받는 트렌치코트는 참혹한 1차 세계대전 참호 속에서 탄생했다.
기품 있는 봄·가을 외투로 사랑받는 트렌치코트는 참혹한 1차 세계대전 참호 속에서 탄생했다.


참호전과 트렌치코트


1차 세계대전은 전쟁과 과학이 본격적으로 결합한 인류 역사 최초의 전쟁이면서 최악의 전쟁이었다. 1차 세계대전은 기관총 전쟁이라고도 부른다. 전투의 중심이 된 기관총 때문에 양쪽은 서로의 진영을 돌파하지 못하고, 길고 좁은 참호를 판 채 웅크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참호는 병사들이 먹고 자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하루하루는 지옥과 다를 바 없었다. 병사들은 적군과 상대하기에 앞서 참호 속에서 들쥐, 벼룩, 이와 먼저 싸워야 했다. 이런 비참한 장소에서 낭만의 아이콘 ‘트렌치코트’가 탄생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영국 버버리(Burberry)가 만든 트렌치코트(Trench coat)는 말 그대로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이 참호에서 비를 피하기 위해 입던 야전 코트였다. 따라서 전투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다양한 기능을 갖췄다.

트렌치코트 어깨 위 끈은 견장과 견식을 달기 위한 용도로 만들었다. 소총이나 망원경을 거는 데도 유용했다. 벨트에 달린 D 모양 고리는 수류탄이나 수통을 걸 수 있도록 고안됐다. 벨트 모양으로 소매 버튼을 만든 것은 한 손으로 쉽게 조이고 풀기 위해서인데, 총상을 입었을 때는 지혈을 위한 끈으로도 썼다. 트렌치코트는 비상시 부상자를 옮기기 위한 들것으로도 유용하게 쓰였다. 이후 트렌치코트는 멋과 기능으로 알려지면서 클래식한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필자 김인기 국장은 전자신문인터넷 미디어전략연구소장, 테크플러스 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전자신문인터넷 온라인편집국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 속 IT 교과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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