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남북전쟁 때 화포 운반 배에서 유래
수송기·헬기서 막강한 무기로 보병 지원
전투기 요격엔 약점…실용적 운용 숙제
‘건십 2000’ 조종 쉬운 무장 헬기로 인기
‘스타크래프트’ 지상 최강 비행 유닛 활약
‘커맨드 앤…’ 실존 건십과 유사한 기동
현존하는 가장 유명한 건십 AC-130. 미 공군이 운용하는 가장 강력한 공군의 지상지원 무기다. 사진 출처=미 공군 홈페이지
게임 애호가들이라면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에서 유명세를 탄 한 장면을 잊지 못할 것이다. “하늘의 저승사자”로 불리는 미션에서 플레이어는 일반적인 보병의 시점이 아니라 열영상장비를 통해 하늘에서 지상을 감시하는 시점에서 게임을 시작한다. 25㎜ 기관포, 40㎜ 포, 105㎜ 포 세 종류의 무기를 번갈아 사용하며 지상에 확인된 목표에 가공할 화력을 퍼붓지만 정작 자신은 전혀 위협받지 않는 독특한 시점에서의 게임플레이는 현대전의 섬뜩함을 보여준 명장면으로 회자된 바 있었다. 게임의 이 장면에 사용된 무기가 바로 건십(Gunship)이다.
강한 화력을 오래 지속하는 ‘움직이는 포대’ 건십은 배를 가리키는 ‘십’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처럼 최초에는 함정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현대전의 효시로 불리는 미국 남북전쟁기에는 아직 건설 중이었던 철도 외에 중요한 수송 수단으로 미시시피 강 같은 전장을 가로지르는 긴 강을 통한 수운이 주목받았는데, 화력은 강하지만 무겁고 운송이 어려운 강력한 화포를 배에 실어 강을 따라 보병에게 화력지원을 제공하는 배들을 건십이라고 부른 것이 시초였다.
건십이라는 이름은 실제 크기에 비해 매우 강한 화력을 지닌 무기를 탑재한 장비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남북전쟁기에 활용된 대형 화포를 장비한 철갑선뿐 아니라, 수송용 대형 헬리콥터에 화포나 기관포를 장비해 대량의 탄약을 탑재하고 공중에서 오래 머물며 지상군에게 막강한 화력지원을 제공하는 헬리콥터에도 건십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일반적인 근접항공지원(CAS)은 빠른 지원이 가능하지만, 지나치게 빠른 항공기의 속도와 얼마 되지 않는 무장 탑재량 덕에 대체로 지상군 지원은 폭탄 몇 발, 기총소사 몇 초간에 가까울 정도로 단시간 동안의 화력지원만이 가능한 한계도 가지고 있었다. 헬기나 항공기를 통한 건십의 공중화력지원은 근접항공지원에 비해 훨씬 더 오랜 시간 동안 지속적인 화력투사를 통해 지상군을 강력하게 지원한다는 강점을 지니고 있었다.
2차대전기부터 수송기를 개조해 화력지원을 한다는 개념은 상당 부분 현실화되고 있었다. 거대한 동체로 막대한 공중수송을 실현해내는 C-130 허큘리스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AC-130은 다양한 구경의 기관총, 기관포와 함께 105㎜ 견인곡사포마저 탑재해 고공에서 지상으로 가공할 화력을 뿜어내는데, 수송기 기반의 기체에 막대한 탄약을 탑재해 쉴새 없이 화력을 퍼부을 수 있어 특수부대처럼 소규모 지상 병력이 투입되는 작전에서 화력지원을 도맡는 무기가 되었다.
지속적으로 막대한 화력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최강의 무기 같지만 건십 또한 무적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지상 화력지원에 집중된 무기이기 때문에 적 전투기에 의한 요격에는 속수무책이나 다름없는지라 안정적인 제공권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함부로 꺼내기 어려운 무기라는 점이 운용의 발목을 잡는다. 대형 수송기 기반의 건십이 사실상 미 공군에 의해서만 실용적 운용이 가능하다는 점이 이를 드러낸다.
헬기·항공기·SF 유닛… 공중화력지원 대명사 게임 속의 건십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서두에 언급한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의 AC-130 운용 장면이다. 적의 대공포도 닿기 어려운 거리에서 쏘아대는 화력지원은 무적에 가까운 상황이면서도 적의 지상 병력을 완전격멸할 수준으로 표현되며, 무엇보다도 사실상 건십 자체가 게임 속에서 공격당하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은 제공권이 확보된 상황에서의 건십이 무적에 가까운 포지션임을 보여준다.
1990년대에도 이미 건십이라는 이름은 게임에서 만나보기 어렵지 않았다. 공격헬기 기반의 건십을 운용하는 ‘건십 2000’은 대중적 인기를 크게 얻었던 게임이었다. 필자 제공
건십이라는 이름이 반드시 대형 수송기 기반의 항공기만으로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은 게임에서도 나타나는데, 오히려 게임 쪽에서는 헬리콥터 기반의 건십 게임이 1990년대에 이미 출시되어 상당한 인기를 모은 바 있었다. ‘건십 2000’이라는 게임이 그 주인공이다.
1991년에 출시된 ‘건십 2000’은 이미 1986년에 출시된 바 있는 동명의 게임 ‘건십’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항공기 시뮬레이션 게임의 선두주자였던 마이크로프로즈가 출시한 이 게임은 당시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의 주종을 이뤘던 고정익 항공기를 다루는 게임보다 초심자들에게는 두 가지 이유로 인해 더 인기가 좋았는데, 첫 번째는 고정익 항공기에 비해 착륙이 쉽다는 점 때문이었다.
실제 항공기도 그렇지만 별도의 훈련을 받거나 지식을 갖지 못한 게임플레이어들에게 항공기 시뮬레이션 게임의 최대 난제는 착륙이었기 때문이다. 임무를 아무리 잘 수행하고 와도 활주로에 적절하게 착륙하는 일이 어렵다 보니 초심자들에게 비행 시뮬레이션은 넘기 힘든 벽이었는데, 헬리콥터 기반의 ‘건십 2000’은 천천히 로터 속도만 낮춰도 손쉽게 착륙할 수 있었다. 손쉬운 운용을 자랑하면서도 건십 특유의, 막대한 무장량으로 지상의 적들을 제압할 수 있다는 즐거움은 ‘건십 2000’에 폭발적인 관심과 인기를 모아주며 ‘건십’이라는 이름의 의미를 각인시킨 바 있었다.
SF 기반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스타크래프트’에는 건십이라는 이름은 아니지만 건십과 동일한 운용법으로 등장하는 유닛이 있다. 저그 진영의 ‘가디언’은 공중에서 움직이는 비행 유닛으로, 긴 사정거리와 막강한 화력을 바탕으로 접근하는 적의 지상 병력을 적 사거리 바깥에서 초토화시킬 수 있는 최종병기급의 유닛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지상 유닛에겐 무적에 가까운 상성을 갖는 가디언이라고 해도 맘 편한 운영은 불가능하다. 건십의 최대 약점으로 거론된, 전무한 대공 전투능력 때문이다. 가디언의 공격은 오직 지상에만 한정되어 있어, 빠르게 급습하는 적의 공중 유닛에게는 순식간에 일점사당해 녹아내리기 십상이다. 충분히 제공권을 확보하고 있지 못할 경우 생산비용도 비싼 가디언은 별다른 활약도 못 한 채 산화해버리기 일쑤라 충분한 대공 화력이 보장된 경우에만 비로소 위력이 발휘되는 유닛이다.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의 특수 스킬로 출격하는 미군의 스펙터 건십. 그림에서 보듯 두 정의 기관포와 한 문의 야포가 지상 화력지원의 핵심이다. 필자 제공
근미래를 배경으로 삼는 전략 시뮬레이션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에서는 준장 특수기술로 소환할 수 있는 ‘건십 스펙터’가 출연한다. 명령을 내리면 현존하는 수송기 기반 건십과 동일한 방식의 스펙터라는 항공기가 출격해 적 상공에서 원형으로 선회비행하며 대략 30초간 기관포와 야포로 아군의 화력을 보조한다.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의 건십은 실존하는 건십과 매우 유사하게 움직이는데, 전장에 출현해 저공 선회비행으로 목표지점 위를 체공하면서 지속적으로 화력을 지원하는 방식과, 적 항공기에 의한 요격과 격추가 저속비행으로 인해 매우 쉽다는 점에서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미 남북전쟁 때 화포 운반 배에서 유래
수송기·헬기서 막강한 무기로 보병 지원
전투기 요격엔 약점…실용적 운용 숙제
‘건십 2000’ 조종 쉬운 무장 헬기로 인기
‘스타크래프트’ 지상 최강 비행 유닛 활약
‘커맨드 앤…’ 실존 건십과 유사한 기동
현존하는 가장 유명한 건십 AC-130. 미 공군이 운용하는 가장 강력한 공군의 지상지원 무기다. 사진 출처=미 공군 홈페이지
게임 애호가들이라면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에서 유명세를 탄 한 장면을 잊지 못할 것이다. “하늘의 저승사자”로 불리는 미션에서 플레이어는 일반적인 보병의 시점이 아니라 열영상장비를 통해 하늘에서 지상을 감시하는 시점에서 게임을 시작한다. 25㎜ 기관포, 40㎜ 포, 105㎜ 포 세 종류의 무기를 번갈아 사용하며 지상에 확인된 목표에 가공할 화력을 퍼붓지만 정작 자신은 전혀 위협받지 않는 독특한 시점에서의 게임플레이는 현대전의 섬뜩함을 보여준 명장면으로 회자된 바 있었다. 게임의 이 장면에 사용된 무기가 바로 건십(Gunship)이다.
강한 화력을 오래 지속하는 ‘움직이는 포대’ 건십은 배를 가리키는 ‘십’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처럼 최초에는 함정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현대전의 효시로 불리는 미국 남북전쟁기에는 아직 건설 중이었던 철도 외에 중요한 수송 수단으로 미시시피 강 같은 전장을 가로지르는 긴 강을 통한 수운이 주목받았는데, 화력은 강하지만 무겁고 운송이 어려운 강력한 화포를 배에 실어 강을 따라 보병에게 화력지원을 제공하는 배들을 건십이라고 부른 것이 시초였다.
건십이라는 이름은 실제 크기에 비해 매우 강한 화력을 지닌 무기를 탑재한 장비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남북전쟁기에 활용된 대형 화포를 장비한 철갑선뿐 아니라, 수송용 대형 헬리콥터에 화포나 기관포를 장비해 대량의 탄약을 탑재하고 공중에서 오래 머물며 지상군에게 막강한 화력지원을 제공하는 헬리콥터에도 건십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일반적인 근접항공지원(CAS)은 빠른 지원이 가능하지만, 지나치게 빠른 항공기의 속도와 얼마 되지 않는 무장 탑재량 덕에 대체로 지상군 지원은 폭탄 몇 발, 기총소사 몇 초간에 가까울 정도로 단시간 동안의 화력지원만이 가능한 한계도 가지고 있었다. 헬기나 항공기를 통한 건십의 공중화력지원은 근접항공지원에 비해 훨씬 더 오랜 시간 동안 지속적인 화력투사를 통해 지상군을 강력하게 지원한다는 강점을 지니고 있었다.
2차대전기부터 수송기를 개조해 화력지원을 한다는 개념은 상당 부분 현실화되고 있었다. 거대한 동체로 막대한 공중수송을 실현해내는 C-130 허큘리스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AC-130은 다양한 구경의 기관총, 기관포와 함께 105㎜ 견인곡사포마저 탑재해 고공에서 지상으로 가공할 화력을 뿜어내는데, 수송기 기반의 기체에 막대한 탄약을 탑재해 쉴새 없이 화력을 퍼부을 수 있어 특수부대처럼 소규모 지상 병력이 투입되는 작전에서 화력지원을 도맡는 무기가 되었다.
지속적으로 막대한 화력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최강의 무기 같지만 건십 또한 무적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지상 화력지원에 집중된 무기이기 때문에 적 전투기에 의한 요격에는 속수무책이나 다름없는지라 안정적인 제공권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함부로 꺼내기 어려운 무기라는 점이 운용의 발목을 잡는다. 대형 수송기 기반의 건십이 사실상 미 공군에 의해서만 실용적 운용이 가능하다는 점이 이를 드러낸다.
헬기·항공기·SF 유닛… 공중화력지원 대명사 게임 속의 건십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서두에 언급한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의 AC-130 운용 장면이다. 적의 대공포도 닿기 어려운 거리에서 쏘아대는 화력지원은 무적에 가까운 상황이면서도 적의 지상 병력을 완전격멸할 수준으로 표현되며, 무엇보다도 사실상 건십 자체가 게임 속에서 공격당하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은 제공권이 확보된 상황에서의 건십이 무적에 가까운 포지션임을 보여준다.
1990년대에도 이미 건십이라는 이름은 게임에서 만나보기 어렵지 않았다. 공격헬기 기반의 건십을 운용하는 ‘건십 2000’은 대중적 인기를 크게 얻었던 게임이었다. 필자 제공
건십이라는 이름이 반드시 대형 수송기 기반의 항공기만으로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은 게임에서도 나타나는데, 오히려 게임 쪽에서는 헬리콥터 기반의 건십 게임이 1990년대에 이미 출시되어 상당한 인기를 모은 바 있었다. ‘건십 2000’이라는 게임이 그 주인공이다.
1991년에 출시된 ‘건십 2000’은 이미 1986년에 출시된 바 있는 동명의 게임 ‘건십’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항공기 시뮬레이션 게임의 선두주자였던 마이크로프로즈가 출시한 이 게임은 당시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의 주종을 이뤘던 고정익 항공기를 다루는 게임보다 초심자들에게는 두 가지 이유로 인해 더 인기가 좋았는데, 첫 번째는 고정익 항공기에 비해 착륙이 쉽다는 점 때문이었다.
실제 항공기도 그렇지만 별도의 훈련을 받거나 지식을 갖지 못한 게임플레이어들에게 항공기 시뮬레이션 게임의 최대 난제는 착륙이었기 때문이다. 임무를 아무리 잘 수행하고 와도 활주로에 적절하게 착륙하는 일이 어렵다 보니 초심자들에게 비행 시뮬레이션은 넘기 힘든 벽이었는데, 헬리콥터 기반의 ‘건십 2000’은 천천히 로터 속도만 낮춰도 손쉽게 착륙할 수 있었다. 손쉬운 운용을 자랑하면서도 건십 특유의, 막대한 무장량으로 지상의 적들을 제압할 수 있다는 즐거움은 ‘건십 2000’에 폭발적인 관심과 인기를 모아주며 ‘건십’이라는 이름의 의미를 각인시킨 바 있었다.
SF 기반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스타크래프트’에는 건십이라는 이름은 아니지만 건십과 동일한 운용법으로 등장하는 유닛이 있다. 저그 진영의 ‘가디언’은 공중에서 움직이는 비행 유닛으로, 긴 사정거리와 막강한 화력을 바탕으로 접근하는 적의 지상 병력을 적 사거리 바깥에서 초토화시킬 수 있는 최종병기급의 유닛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지상 유닛에겐 무적에 가까운 상성을 갖는 가디언이라고 해도 맘 편한 운영은 불가능하다. 건십의 최대 약점으로 거론된, 전무한 대공 전투능력 때문이다. 가디언의 공격은 오직 지상에만 한정되어 있어, 빠르게 급습하는 적의 공중 유닛에게는 순식간에 일점사당해 녹아내리기 십상이다. 충분히 제공권을 확보하고 있지 못할 경우 생산비용도 비싼 가디언은 별다른 활약도 못 한 채 산화해버리기 일쑤라 충분한 대공 화력이 보장된 경우에만 비로소 위력이 발휘되는 유닛이다.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의 특수 스킬로 출격하는 미군의 스펙터 건십. 그림에서 보듯 두 정의 기관포와 한 문의 야포가 지상 화력지원의 핵심이다. 필자 제공
근미래를 배경으로 삼는 전략 시뮬레이션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에서는 준장 특수기술로 소환할 수 있는 ‘건십 스펙터’가 출연한다. 명령을 내리면 현존하는 수송기 기반 건십과 동일한 방식의 스펙터라는 항공기가 출격해 적 상공에서 원형으로 선회비행하며 대략 30초간 기관포와 야포로 아군의 화력을 보조한다.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의 건십은 실존하는 건십과 매우 유사하게 움직이는데, 전장에 출현해 저공 선회비행으로 목표지점 위를 체공하면서 지속적으로 화력을 지원하는 방식과, 적 항공기에 의한 요격과 격추가 저속비행으로 인해 매우 쉽다는 점에서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