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그렸나
주인공 나이·성격·지식 수준 그려넣고
시대 상황은 물론 자기 의견까지 담아
옆으로 각도 튼 해골 ‘메멘토 모리’ 상징
십자가 예수 “하늘서 보고 있다” 의미
한스 홀바인의 ‘프랑스 대사들(The Ambassadors, 1533)’. 필자 제공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는 세상에서 가장 특이한 초상화가 있다. 초상화는 얼굴을 중심으로 그린다. 그래서 대부분 배경이 간결하다.
그런데 오늘 소개할 초상화의 배경은 보통 복잡한 것이 아니다. 화가는 편안한 포즈를 위해 2단 테이블을 사용했는데, 너무 많은 물건이 그 위에 쌓여 있다. 그래서 주인공이 사람인지 물건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다.
이렇게 복잡해지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많은 물건을 넣은 것은 화가의 철저한 의도다. 초상화는 인물만 그려 넣고 나머지는 감상자가 알아서 보도록 하면 되는데, 화가는 그 정도에서 물러나는 것이 싫었나 보다. 그는 직접 나서서 주인공과 관련된 사항을 소개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시대 상황까지 알려주고,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의 의견까지 그림에 넣었다. 이 정도 되니 “진짜 초상화 맞습니까? 혹시 화가님의 생각을 그린 것은 아니고요?”라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이런 특이한 초상화를 그린 화가의 이름은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제목은 ‘프랑스 대사들(The Ambassadors·1533)’이다. 감상해 보도록 하자.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두 명의 남자고, 가운데 테이블 위의 여러 물건이 그만한 비중으로 시선을 끈다. 초상화이니 먼저 인물을 보도록 하자. 왼편에 주홍색 옷을 받쳐 입고 겉에 검정색 원단에 흰 털이 달린 모피를 입은 남자 이름은 장 드 당트빌(Jean de Dinteville)이다. 오른편에 성직자 복장을 한 남자는 조르주 드 셀브(Georges de Selve)다. 제목에 나와 있듯 이들은 프랑스 대사들이다. 이들은 지금 영국에 와 있다. 그리고 어느 날 만나 이 초상화를 그린 것이다. 이들이 영국에 온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림이 그려진 때쯤 영국은 헨리 8세가 다스리고 있었다. 당시 헨리 8세는 유부남이었다. 그런데 애인이 생겼다. 앤 불린(Anne Boleyn)이라는 궁녀다. 일반적으로 왕이라는 큰 권한을 갖고 있다면 궁녀쯤은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앤 불린은 특이하게도 헨리 8세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정식으로 자격을 갖추고 와야 받아준다는 것이다. 왕은 화를 낼 법도 하지만 오히려 몸이 달았다. 그러면 이혼하면 되지 않냐고? 당시 가톨릭이 유럽에서 큰 힘을 발휘하고 있었고, 아무리 왕이라도 교황의 허락이 없다면 이혼을 할 수 없었다. 헨리 8세는 교황 클레멘스 7세(Pope Clement VII)에게 요청을 한다. 하지만 교황도 쉽게 허락할 수 없었다. 헨리 8세의 부인인 아라곤의 캐서린(Catherine of Aragon)이 막강한 권력을 가진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Charles V)의 이모였기 때문이다. 교황은 양쪽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기다리다 못한 헨리 8세는 교황청의 허락을 무시하면서까지 결혼 무효 소송을 감행하려 했다. 예전 같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교황청의 뜻을 무시하다니.
하지만 마침 그때는 가톨릭이 위태롭던 시기였다. 종교 개혁을 겪으며 신교인 프로테스탄트(개신교)가 힘을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이 국교를 프로테스탄트로 한다면 왕은 뭐든 맘대로 할 수 있었다. 결국 몸이 달은 교황청은 사건을 수습하고자 대사를 파견한다. 일단 헨리 8세를 말려보고, 불가능하다면 동향이라도 살피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파견된 대사가 바로 장 드 당트빌과 조르주 드 셀브였다.
이제 그림으로 돌아가 보자. 화가는 장 드 당트빌을, 그리고 그에 대한 설명을 시작한다. 외모와 부유함 같은 부분은 별도로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세밀하게 그리면 되니까. 장 드 당트빌은 외모가 훌륭하고, 복장으로 보아 상당한 부자다. 옷이나 목걸이·무기를 보면 짐작 가능하다. 궁금한 것은 나이다. 화가는 그가 들고 있는 황금색 단검에 나이를 적었다. 그는 29살이다.
이제 그가 팔꿈치를 걸치고 있는 2단 테이블 윗단부터 보자. 먼저 빨간 터키산 카펫이 깔려있다. 매우 비싼 것이다. 역시 부의 상징이다. 다음은 장 드 당트빌과 가까운 쪽부터 보자. 파란색 지구본 같은 것은 별과 행성을 관측하는 천문 도구다. 옆에는 황금색 실린더 같은 것이 세워져 있는데 해시계다. 그 옆에 반원이 파인 나무판은 위도, 경도, 시간 등 다양한 측정값을 잴 수 있는 기구다. 옆에 있는 다면체 기구도 해시계다. 한마디로 말해 장 드 당트빌은 상당한 천문과 과학적 지식을 갖고 있으며, 매우 활동적인 젊은이였다는 것이 화가의 설명이다.
이번에는 오른쪽에 있는 남자를 보자. 그는 오른팔을 테이블에 기대고 오른손으로는 장갑을 잡고 왼손으로는 옷을 여미고 있다. 복장으로 보아 사제가 틀림없는 그는 프랑스 라보르(Lavaur)의 주교다. 그는 장 드 당트빌에 비해 소박하다. 특별한 장식이 없고 모자도 그렇다. 그의 나이는 그가 오른손으로 받치고 있는 책에 쓰여 있다. 스물다섯 살이다.
이제 테이블에 아랫단을 보자. 장 드 당트빌 옆에는 커다란 지구본이 있다. 역시 그의 과학적 지식을 설명한 것이다. 그 아래에는 빨간색 표지로 된 책이 있는데 가운데 직각을 재는 자가 끼워져 있다. 살짝 보이는 책의 내용을 보니 수학책이다. 역시 장 드 당트빌의 수학적 지식을 나타내는 것을 알 수 있다. 조르주 드 셀브 옆에는 류트(lute·현악기의 일종)가 그려져 있다. 자세히 보면 줄이 끊어져 있는데, 이는 당시 상황을 나타낸 것이다. 신교와 구교가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하고 있고, 그 갈등으로 인해 나타나는 문제점들을 팽팽한 줄과 끊어진 줄로 비유한 것이다. 류트 목 아래에는 찬송가 책이 펼쳐져 있다. 모든 것은 종교 문제라는 것이다. 찬송가 옆에는 팬파이프가 있는데 개수가 모자란다. 부족함 때문에 완벽한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말한다.
지금까지 화가 한스 홀바인은 주인공과 시대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기 생각을 넣었다. 화면 하단부에는 길쭉하게 그려진, 알 수 없는 물체가 하나 보인다. 이것을 정상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그림 옆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상태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해골이 보인다.
해골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전달하고 싶을 때 화가들이 자주 그려 넣는다.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으로, 아무리 욕심을 내어봐야 다가올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대부분의 화가는 정상적인 해골을 그려 넣는다. 왜 한스 홀바인은 저렇게 찌그러진, 꼭 옆에서 보아야만 하는 해골을 그렸을까. 그는 허무함을 한 번 더 강조한 것이다. 해골을 보기 위해 옆으로 돌아가면, 정상적으로 보이던 모든 세상 것들은 다 찌그러져 알 수 없는 형태가 되니까.
그는 의미심장한 것을 하나 더 그려 놨다. 작품의 전체 배경은 뒤에 드리워져 있는 녹색 커튼이다. 그런데 왼쪽의 끝, 위를 보자. 살짝 열린 커튼 사이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예수님이 그려져 있다. 그가 이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있던 것이다. 화가는 다시금 상기시켜 준다. “하늘에서 다 보고 있답니다.” 이미지=필자 제공 <서정욱 아트앤콘텐츠 대표>
어떻게 그렸나
주인공 나이·성격·지식 수준 그려넣고
시대 상황은 물론 자기 의견까지 담아
옆으로 각도 튼 해골 ‘메멘토 모리’ 상징
십자가 예수 “하늘서 보고 있다” 의미
한스 홀바인의 ‘프랑스 대사들(The Ambassadors, 1533)’. 필자 제공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는 세상에서 가장 특이한 초상화가 있다. 초상화는 얼굴을 중심으로 그린다. 그래서 대부분 배경이 간결하다.
그런데 오늘 소개할 초상화의 배경은 보통 복잡한 것이 아니다. 화가는 편안한 포즈를 위해 2단 테이블을 사용했는데, 너무 많은 물건이 그 위에 쌓여 있다. 그래서 주인공이 사람인지 물건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다.
이렇게 복잡해지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많은 물건을 넣은 것은 화가의 철저한 의도다. 초상화는 인물만 그려 넣고 나머지는 감상자가 알아서 보도록 하면 되는데, 화가는 그 정도에서 물러나는 것이 싫었나 보다. 그는 직접 나서서 주인공과 관련된 사항을 소개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시대 상황까지 알려주고,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의 의견까지 그림에 넣었다. 이 정도 되니 “진짜 초상화 맞습니까? 혹시 화가님의 생각을 그린 것은 아니고요?”라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이런 특이한 초상화를 그린 화가의 이름은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제목은 ‘프랑스 대사들(The Ambassadors·1533)’이다. 감상해 보도록 하자.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두 명의 남자고, 가운데 테이블 위의 여러 물건이 그만한 비중으로 시선을 끈다. 초상화이니 먼저 인물을 보도록 하자. 왼편에 주홍색 옷을 받쳐 입고 겉에 검정색 원단에 흰 털이 달린 모피를 입은 남자 이름은 장 드 당트빌(Jean de Dinteville)이다. 오른편에 성직자 복장을 한 남자는 조르주 드 셀브(Georges de Selve)다. 제목에 나와 있듯 이들은 프랑스 대사들이다. 이들은 지금 영국에 와 있다. 그리고 어느 날 만나 이 초상화를 그린 것이다. 이들이 영국에 온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림이 그려진 때쯤 영국은 헨리 8세가 다스리고 있었다. 당시 헨리 8세는 유부남이었다. 그런데 애인이 생겼다. 앤 불린(Anne Boleyn)이라는 궁녀다. 일반적으로 왕이라는 큰 권한을 갖고 있다면 궁녀쯤은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앤 불린은 특이하게도 헨리 8세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정식으로 자격을 갖추고 와야 받아준다는 것이다. 왕은 화를 낼 법도 하지만 오히려 몸이 달았다. 그러면 이혼하면 되지 않냐고? 당시 가톨릭이 유럽에서 큰 힘을 발휘하고 있었고, 아무리 왕이라도 교황의 허락이 없다면 이혼을 할 수 없었다. 헨리 8세는 교황 클레멘스 7세(Pope Clement VII)에게 요청을 한다. 하지만 교황도 쉽게 허락할 수 없었다. 헨리 8세의 부인인 아라곤의 캐서린(Catherine of Aragon)이 막강한 권력을 가진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Charles V)의 이모였기 때문이다. 교황은 양쪽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기다리다 못한 헨리 8세는 교황청의 허락을 무시하면서까지 결혼 무효 소송을 감행하려 했다. 예전 같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교황청의 뜻을 무시하다니.
하지만 마침 그때는 가톨릭이 위태롭던 시기였다. 종교 개혁을 겪으며 신교인 프로테스탄트(개신교)가 힘을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이 국교를 프로테스탄트로 한다면 왕은 뭐든 맘대로 할 수 있었다. 결국 몸이 달은 교황청은 사건을 수습하고자 대사를 파견한다. 일단 헨리 8세를 말려보고, 불가능하다면 동향이라도 살피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파견된 대사가 바로 장 드 당트빌과 조르주 드 셀브였다.
이제 그림으로 돌아가 보자. 화가는 장 드 당트빌을, 그리고 그에 대한 설명을 시작한다. 외모와 부유함 같은 부분은 별도로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세밀하게 그리면 되니까. 장 드 당트빌은 외모가 훌륭하고, 복장으로 보아 상당한 부자다. 옷이나 목걸이·무기를 보면 짐작 가능하다. 궁금한 것은 나이다. 화가는 그가 들고 있는 황금색 단검에 나이를 적었다. 그는 29살이다.
이제 그가 팔꿈치를 걸치고 있는 2단 테이블 윗단부터 보자. 먼저 빨간 터키산 카펫이 깔려있다. 매우 비싼 것이다. 역시 부의 상징이다. 다음은 장 드 당트빌과 가까운 쪽부터 보자. 파란색 지구본 같은 것은 별과 행성을 관측하는 천문 도구다. 옆에는 황금색 실린더 같은 것이 세워져 있는데 해시계다. 그 옆에 반원이 파인 나무판은 위도, 경도, 시간 등 다양한 측정값을 잴 수 있는 기구다. 옆에 있는 다면체 기구도 해시계다. 한마디로 말해 장 드 당트빌은 상당한 천문과 과학적 지식을 갖고 있으며, 매우 활동적인 젊은이였다는 것이 화가의 설명이다.
이번에는 오른쪽에 있는 남자를 보자. 그는 오른팔을 테이블에 기대고 오른손으로는 장갑을 잡고 왼손으로는 옷을 여미고 있다. 복장으로 보아 사제가 틀림없는 그는 프랑스 라보르(Lavaur)의 주교다. 그는 장 드 당트빌에 비해 소박하다. 특별한 장식이 없고 모자도 그렇다. 그의 나이는 그가 오른손으로 받치고 있는 책에 쓰여 있다. 스물다섯 살이다.
이제 테이블에 아랫단을 보자. 장 드 당트빌 옆에는 커다란 지구본이 있다. 역시 그의 과학적 지식을 설명한 것이다. 그 아래에는 빨간색 표지로 된 책이 있는데 가운데 직각을 재는 자가 끼워져 있다. 살짝 보이는 책의 내용을 보니 수학책이다. 역시 장 드 당트빌의 수학적 지식을 나타내는 것을 알 수 있다. 조르주 드 셀브 옆에는 류트(lute·현악기의 일종)가 그려져 있다. 자세히 보면 줄이 끊어져 있는데, 이는 당시 상황을 나타낸 것이다. 신교와 구교가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하고 있고, 그 갈등으로 인해 나타나는 문제점들을 팽팽한 줄과 끊어진 줄로 비유한 것이다. 류트 목 아래에는 찬송가 책이 펼쳐져 있다. 모든 것은 종교 문제라는 것이다. 찬송가 옆에는 팬파이프가 있는데 개수가 모자란다. 부족함 때문에 완벽한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말한다.
지금까지 화가 한스 홀바인은 주인공과 시대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기 생각을 넣었다. 화면 하단부에는 길쭉하게 그려진, 알 수 없는 물체가 하나 보인다. 이것을 정상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그림 옆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상태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해골이 보인다.
해골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전달하고 싶을 때 화가들이 자주 그려 넣는다.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으로, 아무리 욕심을 내어봐야 다가올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대부분의 화가는 정상적인 해골을 그려 넣는다. 왜 한스 홀바인은 저렇게 찌그러진, 꼭 옆에서 보아야만 하는 해골을 그렸을까. 그는 허무함을 한 번 더 강조한 것이다. 해골을 보기 위해 옆으로 돌아가면, 정상적으로 보이던 모든 세상 것들은 다 찌그러져 알 수 없는 형태가 되니까.
그는 의미심장한 것을 하나 더 그려 놨다. 작품의 전체 배경은 뒤에 드리워져 있는 녹색 커튼이다. 그런데 왼쪽의 끝, 위를 보자. 살짝 열린 커튼 사이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예수님이 그려져 있다. 그가 이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있던 것이다. 화가는 다시금 상기시켜 준다. “하늘에서 다 보고 있답니다.” 이미지=필자 제공 <서정욱 아트앤콘텐츠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