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서정욱 미술토크

어떤 장면일까?…꼬리에 꼬리 무는 수수께끼

입력 2021. 12. 21   16:27
업데이트 2021. 12. 2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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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내셔널 갤러리 여행-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결혼식이나 약혼식 같은데…장소는 침실?
정원은 초여름인데 모피로 치장한 남녀
남자의 치켜든 손·가느다란 다리 묘하고
둥근 거울 보니 반대편엔 두 명 더 있어

얀 반 에이크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1434).
얀 반 에이크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1434).
사람들은 퀴즈나 수수께끼를 좋아한다. 처음부터 답을 아는 것보다 찾아가는 과정이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국 내셔널 갤러리에는 세상 그 어떤 퀴즈나 수수께끼보다 더 흥미로운 작품이 있다. 1843년 이 작품이 대중에 공개되자 사람들은 삽시간에 모여들었다. 수많은 수수께끼를 던져줬기 때문이다. 작품은 금방 유명해졌다. 오늘 소개할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The Arnolfini Portrait, 1434)’이다.

사실 아르놀피니 부부인지도 확실치는 않다. 단순한 초상화인지 아닌지도 그렇다. 다만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많은 사람이 도전했고, 대다수가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일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은 것이다.

안타깝게도 수수께끼의 확실한 답을 알려 줄 화가 얀 반 에이크는 한참 전에 세상을 떠났다. 어디에도 답을 남겨 놓지 않은 채 말이다. 우리도 풀어보기로 하자. ‘작품이 어떻게 수수께끼를 낸다는 거야’라고 할 수도 있지만, 막상 작품을 보면 몸에서 느껴진다. ‘이게 도대체 뭐지?’라는 궁금증이 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한 쌍의 남녀다. 화면 왼편에는 어두운 옷을 입고 커다란 모자를 쓴 남자가 한 명 있다. 오른편에는 밝은 초록색 치마를 입은 어려 보이는 여자가 있다. 둘은 손을 잡고 있다. 그런데 처음부터 좀 이상하다. 남자의 얼굴과 복장, 치켜든 오른손과 가느다란 다리에서 묘함이 느껴진다.


그나마 오른편에 있는 여자는 덜 이상하다. 표정은 부끄러워하는 것 같기도, 조심성 있게 서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남자와 손을 잡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눈에 띄는 것은 불쑥 나와 있는 배다. 여자는 배 위에 왼손을 살며시 올리고 있다. 임신한 것일까. 도대체 이 남녀는 누구고, 무엇을 하는 것일까. 수수께끼를 낼 때 최소한 열쇠가 될 한 가지쯤은 알려줘야 한다. 얀 반 에이크도 그것을 넣어 놓았다. 손을 잡은 남녀 사이 뒷벽에 동그란 거울이 걸려 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라틴어로 이렇게 쓰여 있다. “얀 반 에이크가 여기 있었다. 1434(Johannes de Eyck fuit hic. 1434)”. 이제 몇 년에 그려진 것은 알았고, 얀 반 에이크가 그렸다는 것도 추측할 수 있다.

재밌는 것이 눈에 띈다. 동그란 거울을 자세히 보니 반대편 모습이 어슴푸레하게 그려져 있다. 확대해 보면 작품에 나와 있는 남녀가 반사돼 있고, 방 안에 두 사람이 더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 명은 얀 반 에이크일 것이고, 또 다른 한 명은 누구일까. 여기까지 얻은 정보로 사람들은 수수께끼를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인공 중 남자는 아르놀피니 가문의 한 사람이고, 여자는 그의 부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남겨져 있는 문헌과 그려진 시기를 대조해 내린 결론이다. 아르놀피니는 이탈리아 가문 출신으로 15세기 플랑드르의 브루게(Brugge)에서 상업으로 상당한 부를 축적했다고 한다. 작품은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식을 그린 초상화라고 해석된다. 그런 가정 아래 감상해 볼까.

먼저 남자의 옷이 어두운 톤인데 모피로 장식돼 있다. 여자의 옷은 과도하게 부풀려져 있고, 역시 소매에는 모피 장식이 있다. 이렇게 해석된다. 아르놀피니 가문의 결혼식인 만큼 가장 비싼 옷을 꺼내 입었다는 것이다. 특히 남자 옷은 두껍다. 겨울에 입는 옷이다. 그런데 왼쪽 창문 밖에 살짝 보이는 정원에는 체리가 열려 있다. 초여름이라는 뜻이다.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부를 과시하기 위해 겨울옷을 입은 것이다. 그런 의미로 그려진 것이 여기저기 더 있다. 남자 뒤에는 작은 테이블이 보이고, 그 위에는 오렌지가 그려져 있다. 부의 상징이다. 여자 뒤에 보이는 붉은 침대도 부의 상징이고, 바닥에 깔린 카펫도 그렇다.


결혼식이라고 놓고 보면 이해되는 것이 여러 개 더 있다. 신부 아래 있는 강아지다. 개는 주로 충성을 의미할 때 사용되니, 결혼을 신성하게 지키겠다는 뜻으로 그려진 것이다. 남자 발 왼편에는 벗어 놓은 신발이 있는데, 신발을 벗었다는 것은 신성한 곳이라는 뜻이다. 결혼은 신성한 것이니까. 남자 얼굴 오른편에는 황동으로 만든 장식등이 있는데, 촛불이 하나 켜져 있다. 촛불은 결혼식에 어울린다. 여자 배가 살짝 나온 것은 혼전임신이 아닐까? 그래서 이 작품은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연구가 진행되며 결혼식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게 된다. 장소가 침실인 데다 결혼식이라면 응당 있어야 할 공증인이나 사제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임신도 아닌 것으로 밝혀진다.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작품들을 보면 옷을 돋보이게 하려고 여자의 배를 저런 식으로 표현한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약혼식이라는 해석도 있다. 약혼식은 당시 가정에서도 많이 이뤄졌고, 특별한 격식이 없었으며, 꽤 유행했다고 한다. 몇 년 전에 죽은 부인을 잊지 못해 그림으로 남긴 초상화라는 해석도 있다. 매달려 있는 황동등 장식의 남자 쪽 초에는 불이 붙어 있는데, 여자 쪽의 초가 없고 촛농이 흘러내린 것을 그 이유로 보는 것이다. 남편이 아내에게 권한을 내리는 것을 기념하는 초상화라는 해석도 있다. 그래서 서약을 하듯 손을 잡고 남자는 오른손을 들어 뭔가를 선언하는 장면이라는 것이다.

단순하게 그려진 초상화라는 해석도 물론 있다. 묘하게 서 있는 남자와 여자, 특이한 시선, 동그란 거울과 거울 주변에 작게 그려진 10개의 예수님 수난 모습, 거울 옆에 걸려 있는 구슬 묵주와 벗어 놓은 신발, 그리고 남자와 여자는 정면을 보지 않는 데 비해 정면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강아지, 밖에 살짝 보이는 체리 나무, 놓여 있는 오렌지 등…. 얀 반 에이크는 수수께끼를 계속 내며 우리의 시선을 끌어들인다. 특히 그는 잘 사용하지 않던 특별한 유화와 기가 막힌 기법으로, 당시에는 상상도 못할 세밀한 그림을 그려가며 우리를 유혹한다. 이제 그림에서 빠져나와 멀리서 한번 보자. 여러분은 어떤 장면 같은가.  이미지=필자 제공
<서정욱 아트앤콘텐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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