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SF 작가이기에 종종 미래의 로봇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에 가게 될 때가 있다. 이런 자리에서 자주 나오는 이야기가 로봇의 권리에 대한 의견이다. 로봇 기술과 인공지능이 아주 많이 발전해서 로봇의 말과 행동이 보통 사람과 거의 구분할 수 없어지게 되면 로봇에게도 인권과 비슷한 권리를 어느 정도 주어야 하지 않겠냐는 고민이다. 영화에는 사람보다 오히려 더 귀엽고 아름다운 겉모습을 가진 로봇이 자주 나오는데, 영화 속 사람들은 그 로봇들을 멸시하고 괴롭히며 조롱하고 학대할 때가 많다. 그런 모습은 아무래도 옳지 않아 보인다.
그 때문에 이런 이야기의 결론은 로봇도 발전하면 권리를 주자는 쪽으로 급격히 쏠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그런 결론만으로 문제가 깨끗하게 해결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로봇 인공지능의 지능 점수를 평가해서 80점 이상이면 그런 로봇은 함부로 괴롭히지도 말고 자유와 평등에 대한 권리를 보장해 줘야 한다는 법률을 시행한다고 상상해 보자. 만약 그런 법률이 시행된다면, 로봇 제작사들은 시험에서 무조건 79점까지만 받는 로봇만 만들어 팔면서 이 로봇은 함부로 써도 된다고 할 것이다. 로봇을 지켜 주려는 법률 때문에 오히려 더 똑똑한 로봇은 나오지 못한다.
또한 애초에 로봇을 사용하는 중요한 이유가 로봇에게는 사람과 같은 권리가 없다는 점이다. 불타는 용암 근처에 화산 관찰 로봇을 보내는 이유는 로봇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부서져도 되고 파괴돼도 괜찮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설령 미래에 사람과 비슷한 정도로 정교하게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로봇이 개발된다고 해도, 그 로봇을 개발한 이유는 그런 로봇에게 무엇인가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시키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힘든 노동을 몇백 시간 연속으로 하는 작업을 위해서건, 위험한 우주 임무에 투입하기 위해서건, 사람과 같은 권리를 갖고 있다면 시킬 수 없는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해 로봇을 개발하는 것이다.
반면,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사람과 똑같은 수준으로 절절한 감정을 표출하는 로봇을 개발한 뒤에, 그 로봇을 마음대로 괴롭히거나 무기를 들고 사냥해 보라는 오락 시설을 운영하는 것이 도덕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일에 감정적인 반발심을 느낀다. 그런 오락이 허용되는 사회는 그 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황폐하게 만든다고 여기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 모든 생각을 고려해 보면, 로봇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는 결국 사람들의 감정과 심성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오히려 더 타당해 보인다. 다시 말해 로봇을 지나치게 괴롭히는 일을 금지하는 것은 로봇이 원래 권리를 가져야 마땅하다는 것보다도, 그 사회에 사는 사람들, 인간들의 성정을 관대하고 이타적으로 유지하고 보호한다는 목적을 우선 따져서 시작돼야 한다.
나는 이런 사고방식이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의 다른 여러 대상을 평가하는 데도 한 가지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서울시에서는 주인 없이 사는 고양이들의 숫자를 대략 10만 마리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한다. 이 고양이들은 대개 비위생적인 환경과 물 부족, 균형 잡히지 않은 먹이 때문에 평균 수명이 3∼4년밖에 되지 않는다. 이 고양이들을 정책적으로 보호하면서 균형을 맞춰 관리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런 노력이 결국 그들과 같이 살아가는 우리 사람의 성정과 도덕을 보호하고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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